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61화 (261/374)

“큰일날뻔~”

라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은지가 처리한 좀비를 사이드 미러를 통해 확인했다.

아까는 뒤에서 좀비가 달려온다는 말에 창문 닫는것도 깜빡하고 패닉에 빠졌다가 금방 돌아온 라나였다.

“항상 조심하라니까….”

“그래야겠어요. 은지 언니 고마워요.”

은지는 라나의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한숨을 내쉬며 다음 현장으로 향했다.

고가밑 골목을 지나서 김준이 향한곳은 좌회전이었다.

맨 처음 루팅을 했던 만물상에 내려서 안을 살폈을 때, 세 명의 생존자는 각각의 물건을 챙겼다.

“분무기, 화분받침, 그릇, 나무젓가락, 휴지….”

은지는 생필품 중에서도 평소 집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라나 역시도 다양한 것을 챙겼다.

“캔들 많이 있네? 이거 챙기고, 방향제 필요하고, 이건… 섬유유연제인가?”

한 장씩 뽑아다 쓰는 시트형 섬유유연제 박스를 챙기는 라나.

김준이 바깥에서 경계를 서는 동안 생필품 잡화상에서 이것저것 챙기는 둘이었다.

철컥-

김준은 멀리서 보이는 인기척에 바로 총을 겨눴고, 긴장되는 대치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월- 월- 크르르릉!

들개 한 마리가 달려와서 김준을 향해 짖어댔다.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품에 있는 육포 하나를 던졌고, 그것을 보고 킁킁 대다가 넙죽 집어서 달려가는 들개를 보고 넌지시 중얼거렸다.

“동물들만 살판난 세상이구만.”

개 뿐만이 아니라 전기가 끊긴 전봇대 위에 있는 수많은 까치집, 그리고 하늘에 유유히 날아다니는 각종 세 때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오빠, 일단 이거 실을 게요.”

은지가 카트 하나분량의 짐을 가득 가져와서 담는 동안 김준은 엄호를 하면서 슬며시 손잡이 하나를 집어 같이 들어올렸다.

“얼마나 더 가져오려고?”

“한, 두 번 더?”

“너무 많이 챙기지 마. 먹을 거 담을 때, 공간 부족해.”

“네, 염두에 두고 있어요.”

뒤이어 라나까지 왔을 때, 김준은 이번에도 짐을 같이 들어줬다.

그렇게 만물상에서 별의 별 것을 전부 털어낸 은지와 라나가 차에 탔고, 김준이 운전을 시작하면서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 간 곳은 종묘상과 철물점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제가 경계 설게요.”

“조심해라. 아까 같은 일 생기지 말고.”

“걱정 마세요~”

라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석궁을 들고서 주변 경계를 했고, 은지와 김준이 나란히 들어가서 각각의 물건을 챙겼다.

“철물점 공구는 내가 챙길테니까 안에 야채 씨 중에서 쓸만 한거 있으면 다 챙겨.”

“네, 이건 박스 하나로 충분하겠네요.”

부피가 작고 얇은 비닐팩의 씨앗들이니 얼마든지 챙겨도 문제가 없었다.

전기가 끊겨 냉장고가 방치돼 그 안에 있는 썩은 음식들의 역한 냄새가 가득했지만, 은지는 묵묵히 씨들을 챙겼다.

“무, 치커리, 애호박, 숙주콩, 청경채….”

푸르딩딩한 풀때기 씨앗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은지를 보고서 김준은 용접봉과 그라인더 톱날을 챙기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은지야.”

“네?”

“오늘 저녁 짬뽕 되냐?”

“어… 만들어볼게요. 고기는 없지만.”

“저번에 쭈꾸미 얼린거 다 먹었던가?”

“다 먹었죠.”

“그러면, 골뱅이 통조림 있으니까 대충 그거 넣어서 만들어 먹자.”

“네~ 네~”

루팅을 하는 와중에 오늘 저녁 메뉴까지 논의하던 김준과 은지는 각각의 물건을 한가득 담아서 차에 차곡차곡 담았다.

세 건의 가게 털이를 하면서 캠핑카 안은 각종 루팅 물건으로 꽉꽉 차 있었다.

시간도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을 때, 김준 일행이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인근에 있는 구멍가게였다.

“자~ 여기까지만 털고 가자.”

“오!”

김준이 볼트 커터로 자물쇠를 뜯어내고, 슬레이트를 연 구멍가게에는 각종 물건이 가득했다.

편의점과 다르게 즉석식품이 없어서 냄새는 덜했고, 먹을 것도 한가득이었다.

“물 먼저 챙기고, 그다음으로… 소면, 조미료….”

“어머, 3분카레 유통기한이 24개월이었어? 챙겨야겠네.”

안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는 라나와 은지를 두고 김준은 천천히 경계를 섰다.

네 곳이나 털었는데, 중간에 좀비 잡았던 것 외에는 아주 조용한 하루였다.

이렇게 움직이는 루팅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그였다.

그리고 조용히 뒤를 바라봤을 때, 은지는 음식들을 챙기다가 김준과 눈이 마주치고는 빙긋 웃어보였다.

‘그러고보니 약속했었지. 다른 날은 몰라도 루팅 전후에는 무조껀 자기만 안아달라고.’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진짜 천지개벽수준으로 바뀐 은지의 마인드였다.

예전엔 손만 잘못 뻗어도 바로 경계하면서 노려봤던 애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놓고 아이까지 가지려고 했으니 말이다.

김준은 달라진 그녀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바라봤고, 그 모습을 보던 라나가 물었다.

“왜 이쪽을 계속 봐요?”

“그냥. 일 잘하는 거 같아서.”

“뒤에 좀비 안나오겠죠?”

“흐음~”

김준은 그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돌려 총을 들고 보초를 섰다.

1시간 좀 넘게 걸린 시간에 캠핑카 안이 꽉꽉 찰 정도로 채운 일행은 드디어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때는 새로운 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

“이게 웬 거야?”

“어머, 살아있는 게네?”

김준이 만든 나무 상자 안에 살아 움직이는 꽃게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밧줄로 매단 말린 우럭 한 두릅도 있었다.

“양 사장 왔다 갔어?”

“네, 그 행상인 아저씨요. 제가 직접 물물교환 했어요.”

김준의 부재시에도 가야가 남아서 집에 찾아온 행상인과 물자를 거래했다고 한다.

에밀리와 나니카는 꽃게에다가 젓가락을 가져다 대며, 갖고 놀고 있었고 인아는 은지와 같이 짬뽕 만들 준비로 야채들을 꺼내 손질했다.

“우럭이랑 게 진짜 많이 받았네. 이걸로 짬뽕 국물 만들어내면 되겠다.”

“와~ 오늘 저녁 짬뽕?”

짬뽕이란 말에 눈을 반짝이는 도경이나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받는데 뭐 줬어?”

“기름이요. 휘발유가 필요하다는데 말통으로 세 통이요.”

“몇 리터짜리?”

“10리터요.”

30리터 휘발유에 이걸 교환한 거라면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어차피 기름이야 차 한 대 굴리는 것과 발전기 돌리는 양으로 충분했고, 주유소 루팅 안한지 오래되도 워낙에 넘치긴 했다.

“그리고 남은 통에 그거 채웠어요.”

“그거라니?”

“라이타 신나요. 박스 털어서 빈 통에 그거 담았어요.”

“흠~ 그래, 잘 했어.”

김준이 없는 와중에도 가야가 집안 살림을 잘 해놔서 뭐 빠질게 없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짬뽕을 만드는데 쓴다며 꽃게를 가져가 손질하고 육수로 끓여낼 때 김준은 남는 시간 소파에 누워 쉬면서 피식 웃었다.

“편하네.”

“많이도 가져왔어.”

에밀리가 슬며시 다가와서 김준의 옆에 앉았을 때 커다란 엉덩이가 머리에 닿았다.

그러면서 자기 허벅지를 탕탕 치는게 여기 배라는 뜻 같았다.

김준이 고개를 올려서 에밀리의 무릎베개에서 쉬고 있을 때, 점점 매콤한 냄새가 났다.

“탕수육 고기 좀 있으면 좋은데.”

“그거 만들자. 탕수어.”

“언니, 그거 만들 줄 아세요?”

“요리책에서 봤어. 한 번 시도해 보려고.”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고, 라나나 나니카가 슬며시 주방을 오가면서 밀가루를 가져오고 제면기를 돌릴 준비를 했다.

“밀가루 꼭 뿌려! 안그러면 저번처럼 늘러붙으니까.”

“네~ 네~ 이번엔 면 잘뽑을 수 있어요.”

라나가 지난번 수제비로 만든 대참사를 만회하겠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김준은 그 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웃었다.

“열심히야.”

에밀리가 김준의 소매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몸을 주무르고 있을 때, 김준은 눈 앞에 커다란 가슴을 보면서 편히 누웠다.

“너도 나중에 요리 하나 해라.”

“내가 만들면, 재료 버려. 대신 맛있게는 먹어줄게.”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면서 웃고 있는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고기 떨어졌는데, 슬슬 움직여야 하나?”

“헌팅 가는 거야? 그럼 나도 갈래.”

“사냥이 그렇게 재미난게 아니야.”

“나도 한 번 잡아보고 싶어. 은지는 저번에 사슴 잡아왔더만.”

“상황 볼게 많아.”

“그러니까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상황이야 준이 봐 줄거잖아?”

에밀리의 칭얼거림에 김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김준을 향해 에밀리는 은근슬쩍 몸을 숙여서 가슴이 그의 얼굴에 닿게 했다.

이대로 눌려서 주물거릴 수 있는 상황에서 김준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사냥 나갈 때 데려갈게.”

“와! 만세!”

그렇게 상점털이 루팅 다음에는 고기를 구하기 위한 사냥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나가서 잡아내면 그게 오리가 됐건, 꿩이 됐건, 고라니건, 토끼건, 멧돼지건 모조리 잡아다 먹어치우면 된다.

그 와중에 은지랑 인아가 만든 짬뽕과 소스를 만들어 뿌린 탕수어가 나왔고, 오늘도 굉장히 호화스러운 저녁상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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