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지물포 지나서, 두 블록 꺾으면 나오는 미니스톱….”
“!”
김준은 조수석에서 중얼거리는 라나의 말에 순간 눈동자가 돌아갔다.
그녀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맨날 거기부터 털고 시작했잖아요?”
“잘 아네.”
“거기서 바로 내려가면 큰 길 나오고, 가야 언니가 맨날 말하는 그 고가 밑 대로.”
“맞아. 한번 훑어보고 갈 거야.”
“근데… 더 털 것도 없지 않아요?”
그동안 수많은 편의점과 마트를 털면서 아주 익숙한 길에 라나가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서 김준이 가는 길을 따랐다.
“거기 창고는 좀비 하나 죽은거 피가 쫘앟-”
“그렇지. 근데 캔 남긴건 조금 있어.”
“황도랑 담배 정도는 있겠네요.”
“음.”
김준은 문제 없다면서 그곳으로 향했고, 라나가 말한 미니스톱에 도착했을 때, 그 근처에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 내부는 침묵이 가득했다.
이제는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동네에 인간이라고는 자기들 밖에 없는 곳이어서 폐허 속에 살아가는 아포칼립스를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이었다.
“저기 건물은 진짜 녹색빌딩 됐네.”
뒤에 있던 은지의 한 마디에 고개를 돌리니, 지난 번 담쟁이 덩굴이 조금씩 자라던 붉은 벽돌 빌딩이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이미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말 그대로 ‘빌딩 숲’이 되어버린 담쟁이 덩굴의 건물.
김준은 그걸 볼 때마다 진짜 이렇게 살아가는 게 길기도 하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나부터 먼저 나가 볼게.”
“조심하세요~”
“응!”
덜컥-
김준이 엽총을 들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확실히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보고 천천히 들어갔다.
“왓, 씨발 뭐야?!”
“!!!”
후다다닥-
김준이 안에 들어가자마자 외쳐 라나와 은지가 창문을 들여본 순간 깨진 유리창 너머로 뭔가가 후다닥 달려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보인 것은 비닐팩에 담긴 오징어 훈제를 입에 물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후- 놀랬네. 좀비인줄.”
“그랬으면 총소리가 먼저 났겠지.”
“그나저나 저기도 냥이가 있네.”
고양이를 냥이라고 부르면서 관심을 가지는 은지였다.
어쨌건 가방을 가지고 나온 둘은 김준을 따라서 은지가 경계를 서고, 라나가 안에서 챙겼다.
“일단 담배 챙기고, 이거는… 챙기자.”
편의점 카운터에 있던 나무젓가락, 숙취해소 환약, 그 외에 거의 다 털어서 남는게 별로 없는 싸구려 황도 캔이나, 후르츠 등을 챙겼다.
햄이나, 참치, 장조림은 전부 털어간 지 오래였고, 그나마 쓸 만한 것을 찾는다면 가루 미역 정도였다.
“가방 하나 분도 안나오겠다.”
“이제 여기 편의점은 앵꼬야.”
김준은 있는대로 다 담은 다음에, 생필품이라고 해도 어따 쓸지 모르는 렌즈 식염수나 이력서 봉투, 수첩등을 넌지시 바라봤다.
그래도 빈 가방을 두긴 싫은지 그걸 하나하나 챙기면서, 라나의 눈에 보인게 있었다.
“임테기는 왜?”
“글쎄요~?”
어따쓸 지도 모르는 임테기까지도 챙긴 라나는 다 터는데 15분도 안 걸린 편의점 털이에서 짐들을 뒷좌석에 챙겼다.
그 와중에 은지는 묵묵히 짐을 받으면서도 저 멀리서 고양이가 이빨로 오징어훈제 봉지 뜯고서 먹는 걸 바라봤다.
“고양이 좋아하나 보네.”
“아, 그냥 뭐.”
김준은 그런 은지의 머리를 쓰담쓰담 하면서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일단 하도 들쑤셔댄 곳이어서 별거 없는 곳이었지만, 이게 시작이었다.
오늘의 루팅은 어디까지나 그동안 파헤친 곳에서 마지막 남은 것까지 털어가는 나락쓸기의 자리이니 말이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가야에게는 언제나 트라우마였던 고가밑이었다.
그 일대에 트럭 행상들의 생필품은 다 털었지만, 그곳에 멈춰서 상황을 볼 셈이었다.
“좀비… 이제 없지 않을까요?”
“혹시 모르니까, 큰 길가에서 어디로 갈지 보자고.”
김준은 어제 루팅을 가기 전 지도로 그녀들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젠 길을 거의 다 숙지한 아이들은 어느쪽으로 가면 뭐가 나올지 잘 알았다.
“우회전으로 가면, 생필품 마트 거치고, 바로 상수도 공단쪽으로 가는 거죠?”
“음, 먹을건 몰라도 일단 필요한 건 많이 가질 거야. 철물점이랑 화훼단지 가서 씨앗도 챙기고.”
“오빠! 좌회전은 거기죠? 그 바 언니들 옛날에 살던 곳.”
“음, 샛길로 빠지면 명국이네고.”
어느쪽이던 70% 이상 물자를 캐냈던 곳이었고, 이 아이들이라면 아주 잘 아는 길이었다.
“우회전으로 가면 거기도 있잖아요? 저번에 미용실 털었을 때, 안쪽으로 슬레이트 친 구멍가게.”
“그래, 거기 한번 뜯어볼까?”
“오빠, 그냥 공판장이 낫지 않아요? 거기는 아예 물류창고 손도 안 댔잖아요?”
“…어째, 나보다 너희들이 더 잘 안다?”
김준은 두 소녀의 제안을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이 리드하면서 어디로갈까 길을 찾는게 아니라 이제 지리를 알고 있으니 이쪽으로 이렇게 가자! 라는 것을 제안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게 고가밑 큰 길로 나왔을 때, 김준 일행에게 보인 것은 한 무리의 좀비였다.
“어머?!”
“수렁에서 기어나왔구만!”
김준은 공기총과 엽총을 각각 준비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근성이야, 근성.”
김준이 그 말을 할 만했다.
그동안 탁 트인 4차선 대로를 자유롭게 오가던 캠핑카였다.
그 옆으로 논밭으로 기어다니던 좀비들이 보였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못 올라온다면서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기어이 그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뻘밭에서 올라온 좀비들이 대로변에 서성이자 야생동물 로드킬은 이렇게 당하는 거라면서 총구를 겨눴다.
“기껏 올라왔으니, 죄 잡아야지.”
인간의 형상을 하지만, 이미 죽은지 1년 가까이 된 시체였다.
김준은 저것들을 인간이 아닌 진흙더미에서 나온 로드킬 당할 야생동물로 여겼다.
그리고 그 놈들을 처리 하게 위해 스코프 너머에 머리를 겨누고는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타앙-
경쾌한 엽총의 소리와 함께 산탄에 맞은 좀비가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으어어어-”
“크어어- 크어-”
걷는 놈들이지만, 그 수가 대여섯이 되니 다가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김준은 침착하게 다음 타겟을 조준했고, 방아쇠를 당긴 순간 두 번째 좀비가 쓰러지고 흩뿌려진 산탄에 다른 좀비들까지 움찔 거렸다.
“오빠! 잡아요?”
“쏠 수 있으면, 근데 각 안나온다.”
“각 나와요. 내가 뒤에서 보고 있으니까….”
뒤에서 라나를 엄호하겠다고 말한 은지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후방 경계를 철저히 서고 있었다.
“은지야! 저기 파란 건물 보이지? 저기가 스포츠 센터인데, 저 골목으로 주공단지 이어졌어. 그리 튀어나올수 있다!”
“네, 잘 보고 있어요.”
철컥-
은지 역시 석궁을 장전하고서 캠핑카 뒷창문을 열고서 어디든 튀어나오면 작살내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 와중에 라나 역시도 대쉬 보드에서 석궁 화살을 꺼내 천천히 장전했고 그 와중에 김준이 하나 더 잡았다.
타앙-
파각-
세 번째 좀비도 힘없이 쓰러졌을 때, 그 좀비들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서서히 다가오다보니 10m 정도의 거리가 생겼고, 라나가 장전을 마치고 재빨리 좀비를 노려 머리를 향해 겨눴다.
파아아앙-
파각-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좀비의 머리를 파워풀하게 꿰뚫었다.
진흙과 썩은 피가 사방에 튀면서 비틀거리다가 풀썩 주저앉은 좀비.
그때 은지가 뒤에서 다급히 외쳤다.
“라나! 들어가!”
“!?”
“들어가! 뒤에 좀비!”
“!!!!”
라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창밖으로 내민 몸을 집어넣었다.
그때 김준도 다급히 외쳤다.
“차나라! 창문!”
“히익!?”
라나는 순간적으로 들어왔다가 깜빡한 열린 창문을 보고 닫으려 했다.
물론 운전석 문쪽에 있는 컨트롤러로 김준이 조수석 창문까지 닫아줬고, 라나는 순간적인 충격에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은지가 창문을 살짝 열고 뒷문에서 다가오는 좀비를 겨눴다.
캬아아악- 캬아악-!!!!
파아아앙! 콰직!
정확히 김준이 말했던 그 샛길을 통해 소란을 듣고 튀어나온 좀비.
그것도 뛰는 녀석이어서 전력으로 달려들었을 때, 은지가 정면을 향해 보우건을 발사했다.
얼굴에 맞은 상태에서 비틀비틀 거리다가 다시 달려들려는 좀비를 보고 은지는 화살을 재장전하려다가 그냥 석궁을 내던졌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새총을 꺼내, 22mm 너트를 장전하고 힘껏 당겼다.
파아앙-
빠각-
손가락 하나 정도의 틈으로 연 창문을 통해 새총으로 너트를 발사해 뒤이어 달려드는 좀비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턱이 박살나고 사방이 깨진 이빨이 흩뿌려지는 상황에서 은지는 다음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김준이 만들었던 장대 전기충격기, 테이저건, 그리고 지팡이 칼까지 별의별게 있었다.
“끝났어요.”
은지는 담담하게 뒤의 샛길에서 달려든 좀비를 잡고 김준에게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