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256 드렁큰 나이트.
* * *
미군에 대한 기록물을 읽은 뒤로 모두 잠잠해졌다.
무장한 생존자라고 해서 혹시나 싶었지만, 그 뒤로 상황을 보고 있으니 위험성이 높은 곳이었다.
“맥주 떨어졌는데, 더 마실 사람 있어?”
“은지야.”
“네, 오빠.”
“위스키로 바꾸자.”
김준의 제안에 은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저기, 안주 제가 만들게요!”
인아도 뒤늦게 일어나서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2차로 위스키 셋팅을 하는 동안 옆에서 전기수처럼 영문 수기를 낭독했던 에밀리가 엉덩이로 걸으면서 슬금슬금 다가와 김준의 옆에 살포시 안겼다.
“역시 내가 있어야 하지?”
“어,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더욱 밀착하면서 가슴이 팔에 닿는데, 더욱 부비대는 에밀리.
김준은 이제는 익숙한 그 구도에서 슬금슬금 라나나 도경이 같은 애가 오자 조용히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계획 보류야.”
“으응~?”
“일단 부대 근처에서 한 번 헤집었으니까 나중에 다시 가야지.”
“아, 그래요?”
라나도 거들면서 눈을 반짝거릴 때, 김준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당분간은 이제 생존자들도 한 번씩 봤으니 다시 우리 먹을 거 루팅 위주로 돌 거야.”
“찬성이야!”
“그러면서 좀비 시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 되면 그때 다시 가 봐야지.”
“그렇구나~”
에밀리가 그러면서 몸을 더욱 밀착해 가슴골에 팔을 감싸려고 할 때, 가야나 마리 같은 언니들이 그녀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황제가 따로 없네요.”
위스키를 세팅해온 은지는 식탁 상석에서 라나와 에밀리에게 둘러싸인 김준을 보고서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은 내 거니까♥”
에밀리가 대놓고 한 선전포고에 은지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다가 조용히 테이블 위에 위스키를 올려놨다.
그러면서 별안간 자기 트레이드 마크인 땋은 머리 끈을 슬며시 풀어 헤치며 긴 생머리를 보였다.
김준이 그 모습에 반응한순간 반대편에선 라나의 눈이 김준의 아랫도리 바짓단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어째 오늘은 약속이 있는데도 그걸 스틸 하려고 하는 도둑고양이들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잘못하면 도둑고양이들이 채가려고 하는 김준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맞춰 김준은 반사적으로 두 미소녀를 떼어 놓고 바로 손을 뻗어 잔을 잡았다.
“자, 한 잔 하자! 한 잔!”
졸지에 우선순위에서 밀린 에밀리와 라나는 토라진 얼굴로 슬금슬금 다시 다가가려고 했다.
“자~ 튀김 안주 받으세요~”
굵게 잘라 낸 감자튀김에 소스까지 직접 만든 인아의 특제 안주를 보고서 하나둘씩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 와중에 에밀리와 라나, 은지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각각 위스키를 잔에 채웠다.
딱
“한잔 해.”
“음~ 나 취하게 해서 어떻게 하려고?”
“싫으면 내가 먹고.”
은지는 에밀리에게 건넨 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에밀리는 그걸 받아들고 원샷으로 쭉 들이켰고, 빈 잔을 은지에게 내밀면서 자신도 채워주겠다고 했다.
“이거 다음엔 라나야.”
“어머, 저요?!”
김준은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저기서 먼저 나가떨어진 애들은 조용히 자는 거고, 끝까지 남은 쪽이 오늘 밤 메인 이벤트를 맞이 할 것이다.
그걸 눈치챈 다른 멤버들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슬며시 자기들끼리 자리를 피했다.
***
탁
“한잔 더?”
“으으으으 아메리칸 스타일!”
버번 위스키를 벌써 연달아 들이켠 에밀리는 새하얀 얼굴이 완전 벌게져서, 만취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만은 또렷했고, 거기서 또 한 잔 채우려고 했다.
“버번은 콜라랑 섞어야 제맛인데!”
“이튿날 머리 깨져.”
은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냉정하게 말했고, 에밀리가 건네준 위스키를 언더락으로 이리저리 돌리고는 쭉 들이켰다.
그 순간, 옆에서 눈이 풀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라나는 슬며시 김준에게 쓰러졌다.
“어우, 나라는 완전 갔네.”
“으히히 안 되겠어요. 포기! 포기!”
내심 오늘 밤을 바랬던 것 같지만, 결국 두 언니들과 한 술내기에 빨리 나가떨어진 라나.
그리고서 김준의 무릎을 배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쓰담 쓰담 하면서 자신도 한 잔 마셨다.
“진짜 어지간히들 좀 하지.”
“내버려 둬요. 술내기 제대로 하려는 거 같은데.”
거실 한쪽에서는 아예 따로 떨어진 네 명이 포커를 치면서 저 객기와 같은 술 게임을 보고 있었다.
가야가 카드를 내려놓으면서, 한마디 하자 그 옆에 마리, 도경, 나니카는 각각 패를 가지고서 저 술 내기는 절대 끼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자~ 이게 마지막 안주예요.”
달그락
그 와중에 인아가 가져온 것은 토마토와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로 만든 샐러드였다.
인아가 올려놓은 샐러드 안주를 보고 에밀리가 토마토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고 우물거릴 때, 은지는 마저 한 잔을 채웠다.
“내가 그동안 여기 살면서 하나는 느꼈어.”
“으응~?”
“내 앞에서 술 먹고 다들 먼저 취한다는 거.”
아예 바텐더 역할하면서 각종 칵테일에 술상 만드는데 전문이었던 은지는 자신이 몇 번이고 술이 세다고 자부했던 소녀였다.
에밀리 역시도 나름 버틴다고 버텼고, 만취 상태로 김준과 죽어라고 섹스해댄 적이 많았지만, 눈앞에서 은지가 너무 셌다.
그 와중에 아예 김준의 품에서 늘어지게 잠든 라나는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탁
“계속 이렇게 마실 거?”
“엄청 집요하네. 그렇게 준이랑 하고 싶은 거야?”
“글쎄?”
“나는 너 섹스 리스인 줄 알았어. 맨날 질색하는 모습만 봐서.”
“….”
대놓고 은지 앞에서 너 섹스 리스 아니었냐는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거야?”
“딱 봐도 반응이 그렇잖아? 맨날 빼기만 하고. 준을 무슨….”
그 순간 김준이 손을 뻗어서 그 말에 대해서 제지했다.
‘무슨 XXX처럼 본다.’라는 말을 하려고 한 건 알겠는데, 당사자는 그런 걸 듣기 싫어한다.
“은야야!”
“아, 네! 오빠.”
“얘 방에 데려가서 재워야겠다.”
분위기 환기를 위해 김준 무릎 위에서 세상 모르고 자는 라나를 챙기라고 하자 가야랑 도경이 직접 일어나서 그녀를 챙겼다.
“자~ 자~ 차나라씨. 방에 들어가 잡시다~”
“으으응~ 으응!”
“어우! 얘는 몸도 째끄만 애가 무겁네?”
도경이 라나를 안아서 들어 올렸고, 가야가 앞장서서 가장 가까이 있는 여닫이문 방을 열고서 침대에다가 그녀를 눕혀줬다.
그 분위기 속에서 나니카나 마리 같은 애들도 슬며시 포커를 접고서 뒷정리를 준비했다.
한편 그 와중에 에밀리와 은지의 기 싸움은 끝나지 않고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있었다.
탁
“그럼 왜 그렇게 빼는 거야? 우리 언니는 혼자만 특별하다고 생각?”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주변 신경 안 쓰고 짐승 같이 해대는 취민 없어.”
“오 쉐엣~ 짐승이라니!”
“난교 취미는 없거든?”
“준 오빠는 좋아하던데?”
에밀리 역시도 절대 지지 않고 은지와 상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은지가 난교라고 말한 것을 두고서 김준 역시도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면, 쓰리썸이라는 것도 이 아이들을 만나고서 벌어진 일이었다.
처녀라는 나니카 데리고 와서 캠핑카 안에서 했던 쓰리썸.
그 뒤로 크리스마스 기념이라고 방에 쳐들어와서 라나랑 했던 쓰리썸.
그 이후로 당사자는 몸 안 좋아서 쉬었지만, 아예 옥탑방 전체를 대절해서 4명하고 밤새도록 했던 파이브썸.
그리고 가야 하고 오붓한 자리를 가졌는데 기어이 난입해서 만든 쓰리썸에, 또 라나랑 하다가 아예 도경이랑 마리까지 올라왔던 2차 파이브썸.
생각해 보니 에밀리와는 둘이서도 엄청 불같이 보냈지만, 다른 애들까지 껴서 정말 서양 야동의 갱뱅 파티같은 분위기를 여러 번 연출했다.
“난 그런 거 질색이거든. 둘이서만이라면 몰라도.”
“오~ 그래서 내가 빗치 같아 보였어?”
“그런 생각은 안 했어. 단지….”
탁
은지는 남은 위스키를 마저 마시면서 넌지시 말했다.
“징그럽다고 여길 뿐이지.”
“흐으응~ 은지, 엄청 로맨틱해?”
언제나 러브 앤 피스의 모드였던 쾌락주의자 에밀리.
하지만 거기에 대비되게 평소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있지만, 정말 응한 사람에게는 스스로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지고지순한 은지.
그러면서 그녀가 김준을 보는 모습은 평소에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색기가 넘치는 눈이었다.
“알았으면, 오늘은 내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나한테 하는 말?”
“약속했잖아요?”
은지의 의지를 두고서 에밀리는 조용히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그럼 다 같이 끼면 되잖아? 우린 기둥 자매잖아?”
“싫어.”
김준하고 하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그저 혼자서만 이 남자를 독점해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집착감이 조금 심할 뿐이었다.
결국 30분 정도 더 술내기를 한 다음에 버티다 못한 에밀리가 화장실로 뛰어가서 거하게 역류한 모습을 뒤로 은지는 조용히 김준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좀 성가셨어.”
약간 취기를 띄면서 홍조를 가진 은지의 얼굴을 보고 김준은 바로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 올렸다.
이렇게 오늘 밤의 프린세스는 은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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