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55화 (255/374)

〈 255화 〉 255­ 그들의 기록물.

* * *

김준 일행이 돌아왔을 때, 마중 나왔던 아이들은 웬 탱크같은 차량이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군인들과 동행해서 같이 오는 건가 생각했지만, 거기서 나오는 게 김준인 걸 보고서 짐부터 챙겼다.

“이 차는 또 유리창이 깨졌네요.”

“그렇게 됐어.”

“스페어 유리가 하나 더 있긴 한데… 내일 고치나요?”

“천천히 하자 천천히.”

다른 아이들이 얼마 안 되는 짐을 옮기고 있을 때, 은지는 바깥에 있는 새 차량인 험비와 안에 들어와서 앞 유리에 금이 간 캠핑카를 보고 치울 준비했다.

“됐어. 들어가 있어.”

“아뇨, 오빠가 들어가 계세요.”

“!?”

“안줏거리 잔뜩 만들어 놨으니까!”

은지는 고생하고 돌아온 김준과 에밀리, 마리는 먼저 들어가게 한 다음에 자신이 우비를 착용하고 선캡 바이저를 차서 치울 준비했다.

이제는 사람 시체가 갈가리 찢긴 좀비의 조각을 보고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솔과 락스로 긁어내는 은지였다.

김준은 뭐라도 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은지의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피식 웃었다.

***

“오~ 이거 꼬치 엄청 맛있다.”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저녁돼서 준비한 은지의 술상은 정말 정성 들인 흔적이 가득했다.

지난번에 잡아서 양념에 재운 고라니 고기꼬치에, 파, 동그랑땡 등도 만들어서 철판에 구운 것은 냄새부터가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이거.”

은지가 양철 주전자에 올려놓은 것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수제 맥주였다.

“와 맥주!”

“남은 홉으로 이번에 담가 봤어.”

직접 담근 맥주에 요리까지 아주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김준이 흐뭇한 얼굴로 은지에게 엄지를 올렸을 때, 그 옆에서 라나가 살며시 자기 손을 보였다.

여기저기 밴드를 붙이고 피가 배어난 게 같이 요리 돕다가 꼬치에 이리저리 찔렸나보다.

“은지 수고했고, 라나도 옆에서 도왔나 보네.”

“네~ 네~♥”

그 상황에서 자기 존재감까지 드러낸 소녀는 언급해주자 매우 흡족해했다.

그렇게 오늘의 분위기도 힘든 루팅 이후로 아주 훈훈한 분위기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술자리 속에서 에밀리는 아까 가져온 수첩에 대해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제임스 S 맥클러리. 캠프 험피의 미 2사단 대대장이다. 이 기록물을 보는 자는 훗날 세상이 돌아온다면, 미국 정부에 전해 주길 바란다.”

“뭐야?”

“어머….”

에밀리가 읽은 수첩을 보고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

그리고 김준이 설명해 줘서 여기에 있는 일기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계속 읽어보라고 했다.

“X월 X일. 갑자기 본토에서 긴급 무전이 왔다, 국민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죽인다고 한다. 지저스! 배스솔트나 또 새로운 마약인가?”

에밀리가 마치 강사처럼 그때의 수첩 일기를 읽어나가자 그 앞에는 라나, 나니카, 도경 같은 애들이 소설책을 읽듯이 집중했다.

“CFC부터 박살 났다. 불행하게도 한국인 부사령관이 작전 논의 도중 습격을 받아 물어뜯겼다고 한다. 다급하게 사령관이 품의 권총을 쏘았으나 결국 그 역시도 죽었다. 우린 하루 만에 수뇌부를 잃었다.”

“어우….”

미군부대 안에 한미연합사령부가 있고, 미군 포스타와 한국군 부사령관 포스타가 있었는데 그들이 습격을 받아 몰살당했다고 한다.

“여긴 살아있는지옥이다. 그동안 수많은 특수전에 대해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다! 마약에 중독된 매드맨이 아니라 진짜로 좀비라고?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퍼진 거야?”

“….”

에밀리는 쭉 읽어나가다가 그 기록물이 적힌 날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적힌 이 날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음?”

“뭐야? XX월 XX일?”

그때 그걸 알아차린 게 딱 셋이었다.

김준은 당연히 알아서 고개를 끄덕였고, 맞은편에서 트라우마가 왔는지 한숨을 푹 쉬는 두 언니들이었다.

“우리 이 동네에 촬영차 온 첫날.”

“맞아. 호텔 없어서 근처 모텔 한층 통째로 대절해서 쉬었던 곳.”

“어머?!”

가야와 은지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깜짝 놀라면서 머릿속에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금 상기하게 했다.

“맞아. 모텔방에서 다 쉬고, 이튿날에… 그 리허설 나왔지?”

“그 리허설 촬영 준비한다고 나갔는데, 다들 기억해요? 시내에 있는 병원인데 사이렌 개 크게 울렸던 거.”

마리가 기억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 도경이 거기에 대해서 자신이 봤던 것을 은근슬쩍 꺼냈다.

그러니 다른 멤버들도 맞다고 박수를 치고, 그 와중에 김준도 말했다.

“참고로 나 그때 수렵면허 갱신하고, 꿩잡으러 간다고 경찰서에 맡긴 총 가져올 때였어.”

정말 기가 막힌 우연으로 때마침 수렵 시즌이어서 경찰서에 맡긴 수렵총을 신고해서 가져오고, 친한 총포사 사장님에게 꿩탄하고 멧탄 달라고 할 때였다.

“계속 읽어봐.”

“흐음, 잠깐만… 나머지는 대부분 CFC상황이 어떻고, 안에 있는 미군 가족들이 어떻고 이런 게 전부야.”

에밀리는 그 와중에 뭔가 읽어볼 만한 파트가 있는지 살펴봤고, 거기에서 뭔가를 찾은 듯 말했다.

“급한 대로 임시 지휘를 하는 게, 스테판 목사였다…목사?”

“목사가 지휘?”

“Military chaplain라는데? 커넬이면 대령 맞지?”

“군종장교구만.”

일단 이걸 쓴 화자가 대대장이니 중령쯤 됐을 테고, 군종목사 중에 대령 계급인 사람이 그 스테판 목사인가 보다.

“어, 암튼 남아 있는 간부가 이런 상황이었고, 좀비를 막기 위해 들어간 곳이 부대 내 지하 볼링장이었대. 거기서 2주간 농성했다고, 무기도 총도 별로 없고.”

일단 무장해서 집합은 했는데, 그 와중에 사열 중 갑자기 발작한 좀비들 사이에서 서로가 물고 뜯고… 그러다가 겨우 남은 자들만 나와서 부대 내 편의시설에서 농성했다.

“아, 이건 좀 슬프다. 전우라고 생각해서 같이 부축해서 온 병사 하나가 사실 물린 감염자였고, 살기 위해 달려온 옆의 동료를….”

“어윽!”

“와 씨발….”

“어떡해….”

이미 그 내용에 몰입해서 눈물까지 보이려는 애도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에서 둘 다 쏴버렸다라고 하네.”

그 뒤로 에밀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행방불명된 장군 한 명을 창고에서 찾았는데 PTSD로 힘들어하다가 부대 내에 있는 프로작을 먹으면서 겨우겨우 버틴 이야기.

이대로 가다간 다 죽을 거라면서 난동을 부린 병사가 총기난사를 벌여 좀비만이 아니라 군인 가족인 민간인도 같이 죽은 이야기.

전시의 상황이니 부대 내의 야전병원에 가서 병사들에게 모르핀과 옥시코돈을 구해다가 주사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꺼낸 참모 이야기.

스트레스 속에서 가족들을 지키다가 죽은 용감한 상사, 그리고 약식으로 치른 장례식에서 그 부인이 다른 생존자 병사와 눈이 맞아서 즉석 재혼도 했다는 막장 드라마 이야기.

가장 압권은 반격을 위해서 전차병들을 모아 기갑 병기창으로 향했는데, 전차 해치를 연 순간 그 안에서 오래전에 감염되어 있던 좀비가 갑자기 튀어나와 용기 있게 수색하던 전차병을 잃은 이야기였다.

“미친….”

“1년 동안 이런 상황이면 사실상 그 안에도 뭐 없는 거 아니야?”

“아냐, 그래도 몰라.”

어쩌면 여기 있는 걸 모두 읽음으로써 내부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안의 생존자들과 협상카드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단락은 이거 같아. 결국, 내부에서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나를 따르는 병사들을 모아 부대 밖에 나간… 아, 이게 그 이야기구나.”

“그 상황에서 내분으로 갈라선 거야?”

“어, 준 오빠. 이게 군사용어야?”

“어디….”

김준이 에밀리가 묻는 약어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 줬고, 그러니 더 이해가 빨라진 그녀가 추가로 설명해줬다.

“그럼 아까 그 미군들이… 흐음.”

김준은 아까 바깥에서 총을 쏴대다가 결국 좀비 습격으로 죽은 미군들의 존재를 떠올렸다.

“결국 선택의 길이었다. 이대로 부대 내에 있는 보급 물자를 탈탈 털어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있던가, 아니면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트럭을 이용해서 밖으로 나가 인근의 다른 한국군의 군부대나 생존자를 찾아 다 같이 살 방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바깥에 나간 거구나.”

“오빠, 그럼 여기 사람들 다 죽은… 거예요?”

눈물을 연신 글썽이던 라나의 물음에 김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내부로 들어갈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뭐가?”

“미군부대 거기 다시 갈 거지? 안에 들어가서 이거 가져다 주고.”

“그거는 생각해봐야겠지.”

에밀리는 김준의 대답에 자신이 읽어준 그 수첩을 들고서 이리저리 흔들면서 말했다.

“안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여기 보면 발전기 돌리려고 중유 창고를 점거한 이야기라던가, 바닷물도 바로 증류해서 먹을 수 있다는 생존장비부터 별의별게 다 있대.”

“장비야 많겠지. 장비는….”

하지만 여기 이 중령의 수기를 보면 알겠지만, 절대 밖에 나가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해 아예 요새화 시킨 생존 미군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영역을 바리케이드까지 넘어서 갈 때 과연 문제가 없을까?

이건 생각해 볼 문제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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