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254 문 앞은 찍고 갔다.
* * *
김준은 착찹한 마음으로 피에 젖은 m4 소총을 바라봤다.
그 상황에서 총은 주고 희생한 것이 옛날에 어떤 인연을 떠올리게 했다.
“후우”
“….”
김준이 한숨 쉬는 모습을 보고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마리.
용기내서 가 보자고 했는데, 끔찍한 꼴을 본 것 같았다.
그동안 좀비에 대한 위험성만 알았지, 실제로 눈앞에서 사람이 물어뜯긴 다음, 감염되는 꼴을 또다시 보게 되었다.
“준, 계속 가야 하지 않을까?”
그 와중에 조수석에 있는 에밀리의 말에 마리가 눈치챙기라며, 인상을 썼지만 그녀는 태연했다.
“저거 하나만이 아닌 거 같은데? 적어도 부대 근처는 계속 돌아봐야 하지 않아? 생존자 더 있을 거 같은데.”
“에밀리….”
그때 김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총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
“일단 이거부터 씻고.”
김준은 보루 하나를 꺼내 피에 젖은 소총의 겉면을 씻은 다음 탄창을 빼내 바로 분해에 들어갔다.
m16 소총이나 k1, k2 정도만 만져 봤는데, 뜻밖에 구조는 다를 바가 없었다.
분해는 간단했고, 강중유가 없으니 아쉬운 대로 면으로만 닦아낸 다음에 끊어진 멜빵을 뜯어내 던지고는 운전석에 올려놨다.
“에밀리 말이 맞아. 위험해도 일단 한 번 돌아보긴 해야 해.”
“나도 준비할게.”
“됐어. 좀비는 내가 다 잡을 테니까 경계만 신경 써.”
김준은 에밀리와 마리에게 다시금 강조한 다음, 교체한 지 얼마 안 돼 또다시 금이 간 앞유리를 보고는 조용히 기어를 바꿨다.
세 번째로 후진 이후 다시 미군 부대 인근을 돌 때, 김준은 자기 계획에 대해 말했다.
“일단 미군 부대 주변으로 한 바퀴 삥 돌거야. 그리고 별거 없으면 바로 집으로 가자.”
“네, 그러죠.”
마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새총을 준비했고, 에밀리 역시 사이드미러를 살피면서 재진입하는 골목에서 모두가 집중했다.
[크어어어 어어]
[크르르 쿠웨에에엑]
이미 옥상에서 인간의 생명은 끊어지고 좀비가 된 상태에서 날뛰는 미군들을 보고, 김준은 담담하게 보다가 조용히 석궁을 겨눴다.
파각!!
보이는 좀비마다 얼굴을 꿰뚫어 버리고, 더 이상 좀비가 보이지 않을 때, 클락션을 크게 울렸다.
빵 빵 빠아아앙!!!
앞뒤로 어디에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김준이 클락션을 크게 울렸을 때, 거기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아마 저 상가 위에 있던 미군들을 끝으로 여기 좀비는 전부 잡은 것 같았다.
“후우”
“준, 저기 올라가서 물건 루팅해?”
에밀리의 물음에 김준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미쳤니? 그냥 지나갈 거야.”
“아깝다. 위로 올라가면 총 더 있잖아?”
“다음에 다시 오면 돼. 그때 되면 좀비들 다 썩어서 흔적도 안 보일 거다.”
김준의 설명에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피에 젖은 폐건물에 영어로 써진 간판을 보고 넌지시 중얼거렸다.
“하필 펍 이름도 [호텔 캘리포니아]야.”
“….”
김준은 그대로 직진해서 천천히 부대 주변을 한 바퀴 돌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옆에 있던 마리가 다급히 외쳤다.
“오빠! 오빠! 저기요!”
“음?!”
좀비인가 싶어서 사이드미러를 봤을 때, 김준의 눈에도 들어온 게 있었다.
“저거 그거 아니예요? 미군 장갑차!”
“험비네?”
김준은 혹시나싶어 차를 돌리고는 그 험비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 갔다.
사막색 도색이 된 험비는 그 엄청난 내구성 속에서도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고, 새카만 피와 살점 조각이 이리저리 붙어 있었다.
김준은 그것을 앞에 두고서 잠자코 기다렸다.
혹시라도 다른 좀비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클락션을 눌러대다가 10분 정도 반응을 보고 엽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15분이 지나서야 조용히 움직였다.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
“엄호할게.”
“내가 말하면!”
“오케이!”
에밀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김준은 무장한 상태에서 차 문을 열고 천천히 나왔다.
그러고는 험비의 주변을 돌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천천히 손잡이를 당겼다.
덜컥
안이 열린 순간 그 안에는 찐득한 악취가 확 풍겼다.
“욱”
차량 시트에 새카맣게 묻어난 건 아무리 봐도 피였다.
혹시 몰라서 품 안에 희석락스 병을 들고 부었을 때, 녹아내린 핏물이 시트를 지우면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내부를 살펴봤을 때, 아쉽게도 험비하면 떠오르는 루프탑 위의 기관총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도 이미 사용한 탄피들이었다.
“흐음~ 흠~”
그나마 몇 발 나뒹구는 실탄이 있었고, 김준이 그걸 손으로 직접 집었을 때 차 안에서 총 네발의 총알을 챙길 수 있게 됐다.
그 외에 대쉬보드나 콘솔박스를 살펴봤을 때, 안에는 각종 볼펜과 수첩이 하나 있었다.
“음?!”
수첩을 집어다 펼쳐보니 안에는 영어로 쓴 필기체가 가득, 그 외에는 깔끔했다.
달그락
“!?”
그때 운전석에서 뭔가 떨어져 황급히 총을 들었지만, 바닥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
차키였다.
그것도 험비를 쓸 수 있는 차키.
김준은 그것 역시 챙기고, 내부 수색을 끝낸 뒤로 돌아왔다.
“에밀리.”
김준은 그녀에게 영어로 써진 수첩을 던져 줬다.
“뭐라 쓴 건지 천천히 읽어봐. 마리가 대신 사이드 시야좀 봐 줘.”
“아, 네!”
에밀리는 필기체 가득한 그 수첩을 보고는 조용히 눈을 기울였고, 김준이 다시 시동을 걸어서 출발했다.
아직 해가 질 때까지 시각은 충분했고, 부대 한 바퀴 도는데는 시간이 충분했다.
우우우웅
침묵 속에서 김준이 차로 돌며 이곳저곳을 살폈을 때, 정문 외에 다른 입구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 갔다.
하지만 그 안에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휘유~”
“저거… 차로 저렇게 막은거예요?”
“안에 누가 있긴 한 거 같은데….”
거대한 철문의 너머로 트레일러 한 대가 있었다.
아예 트레일러를 옆으로 주차해서 그 누구도 쳐들어오지 못하게 꽉 막아 놓은 것을 보니 진짜 안에도 생존자가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쭉가면 문 하나가 더 있어. 거기가 아마 발전소 있는 근처일 거야.”
“발전소요?”
마리가 물었을 때, 김준이 설명했다.
“예~ 전에 한 번 파견공사 간 적이 있었어. 이 안에 차 타고 다니는데, 미군 애들은 자체적으로 기름발전소랑 변전소를 구비하고 있어.”
“와….”
“참고로 여기 문이 세 개인건, 가장 후방은 강이거든. 거기 펌프도 있을 걸?”
“완전~ 작은 나라 수준이네요?”
자급자족으로 전기와 물을 수급하고, 거기에 중무장한 병사와 대규모 숙소와 교통편을 모두 갖춘 곳.
김준은 과연 이곳을 다니면서 추가 생존자를 만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지막 남은 문으로 가 보리고 했다.
그사이에 에밀리는 김준이 준 수첩을 이리저리 읽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첫날에 부대 안에서 20%가 죽었다는데?”
“!?”
“부대 밖이 비상이라고 해서 전군 사열하고 작전 알리려는데 갑자기 서로가 깨물었대.”
“….”
에밀리가 수첩의 내용들을 말해주자 김준은 뭔 상황인지 바로 그려졌다.
미군도 그럴진대 아마 국군도, 아니 다른 대규모 인원들이 모인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갑자기 좀비화된 인간이 서로 물면서 혼란 속에서 빠르게 잠식된 이야기가 딱 보였다.
“진짜 재앙이야….”
“그것도 아포칼립스 존(요한계시록) 수준으로….”
에밀리가 적절하게 운을 띄웠지만, 지금 옆에서 읊지 말라고 한 마디 하고는 다시 부대 주변을 천천히 도는 김준.
그나마 다행이라면 처음에 그 좀비 무리를 잡은 뒤로 신기하게도 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준은 마지막에 있는 문 마저도 컨테이너로 막힌 것을 확인하고는 돌아가기 위해 차를 돌렸다.
하지만 그때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얘들아!”
“?!”
“네?”
“나 하나 물어볼게 있다.”
“뭐야?”
“뭐죠?”
“너희들… 혹시 새 차 타고 싶어?”
“!”
“!?”
김준은 이미 결심한 눈치였고, 두 여자들은 뭘 생각하나 했다.
***
“앞에 좀비! 꽉 잡아라!”
“오우!”
쿠당탕 콰드드드드득
[크롸아아아악]
드드드득 콰직!
수많은 좀비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사막바람 전장을 누볐을 도색의 험비가 맹렬히 돌진했다.
마치 거대한 코뿔소를 보는 것 같은 돌진에 그동안 캠핑카때 이상으로 무지막지한 차량이 좀비들을 그대로 짓밟았다.
3톤에 육박하는 장갑차 수준의 험비가 좀비들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노빠꾸로 돌진했고, 캠핑카때와 달리 수동 기어를 돌리면서 액셀을 밟아대는 김준으로 인해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아메리칸 스타일!”
“완전 거칠어….”
피가 묻어난 조수석 대신 후방에 택시처럼 얌전하게 타고 있는 마리와 에밀리였다.
에밀리는 아까 챙긴 수첩을 차 안에서 천천히 읽었고, 마리는 뒤에서 견인체인에 이끌려 잘 따라오는 원래의 차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두 대가 됐네요.”
“이건 바깥에다 놓을 거야. 손볼게 많아.”
“차고가 좁기도하고.”
에밀리가 현실적으로 하나 지적을 하자 김준은 그 말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늘 하루 미군부대를 가면서 얻은 성과는 여러 개였다.
캠핑카 외에 운전할 수 있는 새로운 이동 수단인 험비.
좀비에게 물려 죽기전에 미군 장병이 던져 준 M4카빈 소총.
그리고 그들의 기록물과, 바리케이드로 잠긴 대문을 보고 생존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희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