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252 큰 결심.
* * *
캠핑카에서 가져온 재료로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한 김준 일행.
며칠간 묵을 것을 대비해서 캠핑카 내의 냉장고와 창고에다가 각각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스튜를 끓였다.
“자, 먹자.”
마리랑 에밀리를 포함해서 노래방 아가씨들은 통조림으로 끓인 스튜를 국자로 퍼서 그릇에 받았다.
그동안 채집과 재배로 숙식했는 이들에게 있어 이건 엄청난 특식이었다.
“음~”
잘 끓인 스팸 한 조각을 입에 넣고 행복해하는 에밀리, 햄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식사때는 자신들끼리 중국어나 베트남,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들 속에서 에밀리의 귀가 쫑긋거렸다.
“@!@$$#!@!!@@#@!”
분명 영어인데, 뭔가 발음이 요상했고, 표준어라 하더라도 못 알아들을 외국어에 김준은 그녀들을 쳐다보다가도 이내 조용히 식사했다.
그렇게 다 먹은 뒤로 잽사게 필리핀과 중국 아가씨들이 움직였다.
“이거, 우리가 치울게요.”
“어, 그래요.”
김준은 그릇을 다 치운 뒤로 식후 땡을 위해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갔고, 에밀리와 마리가 넌지시 뒤따라갔다.
치익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옥상에 있는 파랗고 커다란 빗물받이 탱크가 있었고, 그 옆으로 각종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가 있었다.
“민들레에, 쑥에, 총각무에, 고수에 많이도 심었네?”
이쪽 역시도 예전에 인아가 건네준 채소 씨를 받아서 영양분 섭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능한 곳이었다.
적어도 물과 자급자족할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이들이 지금까지 사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아까 말이야. 애들 말하는 거 신경 쓰였어.”
“음?”
에밀리느 영어로 서로 대화하던 필리핀이나 베트남 여자들의 이야기를 귀로 듣고 조용히 말했다.
“여기 마담이 없으면 자기들은 짐 챙길 서로 이야기하더라?”
“!?”
담배를 물고 있던 김준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고, 에밀리는 거기에 대해 부연 설명도 해 줬다.
“걔들 말로는 마담이 오빠가 맡아줄 거라고 말했다는데?”
“뭔 소리야. 시팔!”
김준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까 황 여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잘못 되면, 우리 애들 좀 맡아달라. 건달들 노리개만 안 되게 좀 해 달라.’
“지금 우리 식구 챙기기도 힘든데.”
“식구~ 란 말이죠.”
마리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미소를 지었고, 그 와중에 옥상으로 올라온 또 다른 이가 있었다.
“준아, 나도 담배좀.”
“아, 누나!”
은별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김준은 한 대 건네줬고 불도 붙여줬다.
“후우 사장님 갈수록 건강이 안 좋아지셔.”
“그래도 빨리 나으셔야지.”
“사장님 원래 관절염하고 디스크 심했는데, 제일파 새끼들 막다가 걷어차이셔서 갈수록 안 좋아져. 요새는 걷는 거 힘드시고.”
“….”
“너한테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들었어?”
“내가 다 못 데려가.”
“그럴 거 같았어.”
은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금, 이 곳이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계속 상기했다.
“그동안 도와 준 걸로 우리가 살아 있었어. 너 아니었으면 진짜 다 죽었을 걸.”
“그러니까 앞으로 잘 지내.”
“하나는 말할 수 있어. 다른 애들 딴 데 간다고 해도 나는 남을 거야. 그냥 사장님하고 함께 가려고.”
은별은 다른 아가씨들이 어딜 가건 자신은 이곳에 남아서 사장님하고 같이 있겠다고 선언했다.
오랜 기간 둘이 함께 했다고 하니, 은별에겐 사실상 황 사장이 엄마와도 같은 분이었다.
“나미는 어떨지 모르겠고, 하여튼 그래.”
“후우 난감하네.”
“물론 사장님 건강만 괜찮아지면 그냥 다들 여기 계속 있으면 돼.”
“좋아지실 거야.”
김준은 그 상황에서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식사 대접을 하고, 여기서 짐을 챙긴 다음 그래도 아프다고 여기까지 와서 치료해준 김준 일행을 위해 황 여사는 장독과 식용유 박스, 위스키 등을 건네줬다.
“이것도 슬슬 다 떨어져 가고, 이거나 가져가.”
“골드바….”
위스키 포장하는 천 행낭에 담겨 있는 작은 골드바 하나를 받아 든 김준은 이게 있어 봤자 누구 치아 나가면 금이빨 때우는 데나 쓸 법한 것을 챙겼다.
“와 줘서 고마워. 어떻게 성의를 보였나 모르겠네.”
“아닙니다. 몸 관리 잘하세요.”
“그… 방법 한 번 같이 생각해 보자고.”
“네~ 네~”
김준은 황 여사 일행과 인사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바로 시동을 걸어서 힘차게 달려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중간 지점에 무전기를 설치한 다리였고, 오면서 잡고 온 좀비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서 땅바닥에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김준은 다리를 넘어가 좀비 시체와 떨어진 곳에 차를 멈추고 시동을 껐다.
“후우”
띵 띵 띵
시동을 끄고서 에어컨을 풀로 튼 김준은 생각에 잠겼다.
마리와 자리를 바꿔서 조수석에 앉은 에밀리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서 김준에게 물었다.
“8명이 15명 되는 거야? 경쟁이 늘어났네?”
“집에 데려갈 생각 없어.”
“흐으음~ 그럼 기회가 더 많겠네?”
이 상황에서도 김준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의 에밀리를 두고서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황 여사네 문제는 따로 생각해 보겠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어떻게, 여기서 가냐 마냐인데.”
“미군 부대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김준은 다리를 건너 양 갈래로 이어진 시골 논밭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 그리고 좌회전하면… 그 건달 새끼들 피해서 서해안 지나 미군 부대 있는 대산리로 갈 수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정말 이 상황에서 그곳을 갈 때, 위험성을 다시금 각인 시킬 셈이었다.
무장한 살아 있는 미군들을 봤을 때, 에밀리랑 마리가 대동했으니 대화는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정의로운 미군인지는 모르고 잘못하면, 김준의 목숨은 물론이고 마리랑 에밀리가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우회전으로 그냥 돌아갈 경우에는 다시 기회를 잡아서 라디오의 방송에 집중하고 그쪽에서 먼저 올 때를 기다린다.
김준이 그것에 대해 물었을 때, 에밀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Just Go!”
“한 번 가 보죠. 어차피 이렇게 된 상황에서.”
에밀리도 마리도 그냥 가 보는자는 의견이었다.
물론 집에 있는 은지 역시도 찬성을 했고, 약속까지 받았었다.
“한번 둘러보고 집에 가면 되잖아요?”
“갔다 오면 준 오빠는 좋을 걸? 약속 받았으니까.”
“약속? 누구랑 무슨 약속?”
“아마, 밤에 은지랑….”
“아, 시끄러!”
김준이 나서기 전 조사하고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동안 안했던 하룻밤을 허락한다는 포상.
뒤에서 에밀리가 그걸 봤어서 묘한 얼굴로 운전석에 장벽을 톡톡 쳤다.
“나도 같이 껴도 될까?”
“…간다.”
김준은 다시 시동을 걸고 논밭의 길을 달리면서 미군부대 방향으로 향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잔뜩 챙겨 놓은 무기를 쟁였고, 급하게 나오면서도 방에 있는 것을 챙겨 놓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준 오빠 옷도….”
“!?”
“군복 바지잖아? 워커에다가.”
에밀 리가 그것에 대해 말하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에밀리에게 말했다.
“대쉬보드 열어서 안에 뒤져 봐.”
“흐응, 화살 말고 뭐가 있… 오오?!”
에밀리는 그 안에 있던 목걸이형 신분증이 보였다.
그 안에는 군인 시절 찍은 사진이 인상적인 공무원증이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로 국방부 소속에 육군중사 김준이라는 군번과 국방부가 인증한 직인까지 있었다.
“이게 오빠 옛날 신분증?”
“혹시 몰라 챙겼어.”
“그러네요. 적어도 전역했어도 신분증을 보여주면 그쪽에서도 뭐를 좀….”
뒤에서 바라본 마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준이 가는 길을 살폈다.
그렇게 대산리 미군 부대 근처로 가는 동안 좁은 샛길을 통해 갈 때, 처음 온 곳에 수많은 좀비들이 보였다.
“와~ 저거….”
“지나칠 거야.”
“알아.”
에밀리가 창밖에서 들판을 돌아다니는 좀비를 보고 사파리 파크 동물처럼 바라봤다.
밀짚모자에 장화를 신은 농부 옷차림의 좀비들이 비 온 뒤로 진흙탕이 된 논밭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정형행동을 하는 게 딱 보였다.
다행히 샛길을 통해 직진하는 도중에 앞을 가로막는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장거리 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마침내 시내로 진입했을 때, 미군부대 인근의 대산리는 폐허 상태였다.
“오, 쉣!”
“후우….”
김준과 에밀리 모두 눈앞에 보이는 아포칼립스의 현장에 한숨을 내쉬었다.
영어 간판과 한국어 간판이 섞여 있는 곳에서 차들은 여기저기를 들이받아 찌그러지고 폭발한 흔적.
가게 여기저기가 유리창이 깨지고 그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좀비들.
김준은 바로 무기부터 챙겼다.
“저~기 보이지? 빨간 벽돌.”
“오~ 쭉 있네?”
“저기가 미군 부대야.”
마치 붉은 벽돌의 산성 같이 만들어진 그곳이 주한미군 사단이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 미군부대 군무원 하는 친구가 있어서 한 번 들어가 봤는데, 저 안에 수많은 편의시설과 숙소, 그리고 사단 병력의 미군과 그 가족들끼리 모두 있는지라 안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문제는 그곳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캬아아악 캬아]
[크르르르 으어어어!]
주변에 보이는 좀비들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김준의 눈에 보이는 몇몇 특별한 놈들이 있었다.
“미군 좀비?!”
정말 군복을 입고 새카맣게 부패한 좀비들이 걸어 다녔다.
아쉽게도 총은 없었지만, 그거보다 중요한 건…
타앙
팟!
[캬아아아악!]
군복 입은 녀석들이 산탄총 한 방에 안죽는다.
부대 인근에 있는 좀비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김준은 바로 자동차 기어를 바꿨다.
우우우우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