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42화 (242/374)

〈 242화 〉 242­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

* * *

“후우­”

며칠 동안 좀비 시체 썩는 냄새에 시달린 김준은 들어오자마자 여러 번 목욕하고 나왔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지 은지가 빨래하고 갓 다려놓은 티셔츠를 입으면서도 연신 킁킁거리며 냄새를 확인했다.

“당분간은 밥도 생각 안나겠어.”

“이해해요.”

그게 김준만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냄새를 못맡는다고 하는 도경이나 악취로 인한 두통으로 앓아누운 에밀리도 있었다.

“그래도 오빠 덕분에 시체는 다 치워졌어요.”

“그래~”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찝찝한 시취에 담배부터 물고 주변에 연초향을 풍기는 김준.

그때 마리가 조용히 바깥의 잿더미를 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근데 저것들 저렇게 놔두면 하수도로 가지 않을까요?”

“하수처리시설 안 돌아가니 그냥 강이나 하천으로 가겠지.”

“저기 그러면… 물 오염되지 않아요?”

“그럴지도.”

“….”

마리는 김준이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지라 자신이 뭘 잘못 알고 있나 싶었다.

그 와중에 은지는 조용히 받아 놓은 빗물들로 차를 끓이면서 냉장고에 각각 담아놨으며 식수는 문제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무래도 벌레가 엄청 꼬이는데, 전염병이나 병충해 방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 이따가 락스랑 솔벤트 말통 있으니까 그걸로 집 한번 싹 청소할 거야.”

“아, 아니 그거 말고 관정이요.”

“흐음.”

김준은 마리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 동네에 대한 옛날 이야기해 줬다.

“자~ 여기서 나 따라서 사냥 했던 애들 손.”

“!?”

“???”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일단 가야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뒤로 질문자인 마리도 손을 들었고, 은지 역시도 거기에 동의했다.

“전 직접 잡기까지 했고요.”

“응, 은지 그때 잘했어.”

“근데 그걸 왜 묻죠?”

“우리 갈대숲이나 아파트 짓는다고 땅 밀었던 곳 있잖아. 거기 일대 팔 때 뭐가 나왔게?”

“뭐, 뭔데요?”

“설마….”

그때 김준의 말을 듣고서 엄청나게 뜨악한 얼굴로 답을 아는 것 같은 인아의 반응.

김준은 그 반응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강원도 산골소녀 출신인 인아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고 확인해줬다.

“돼지뼈 1만구, 닭뼈 10만개.”

“으아악!”

“아으… 그거….”

“그것도 농업용수 쓰는 하천 근처에다가 말이지. 당시에 구제역이다 조류독감이다 해서 땅 파고 그냥 있는 대로 죽여서 다 집어넣고 파묻어 버렸거든.”

“히익?!”

담담하게 말하지만 진짜 모르고 먹었다면, 당시에 환경오염으로 난리가 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그런 게 있을 리가 만무했고 김준도 당시 군부대 있으면서 닭고기만 디립따 나온다고 투덜거릴 때였다.

“솔직히 나도 근처에 불도저라도 있으면, 싹 다 쓸어다가 저기 논밭에다가 밀어버려서 거름으로 만들고 싶은데 그건 또 힘들잖아?”

“….”

김준의 말에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은지 또한 한 마디 거들었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작년부터 개천가에 물 먹어 봤는데 문제없었다고.”

“….”

“적어도 좀비가 빠져죽었을지도 모르는 그 물… 먹어도 문제는 없는 거 같더라.”

“하긴, 그… 노래방 아줌마들은 대놓고 그 물에 있는 고기 잡아먹잖아요?”

“으엑­”

인아도 한마디 했을 때, 라나는 그때 그 붕어찜 엄청 맛 들여서 먹었던 기억과 ‘시체 썩은 물’ 이야기를 생각하니 갑자기 구역질이 나왔다.

김준은 그런 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달래줬다.

“저녁에 꽁치찜으로 먹을래?”

“으으으­”

생선은 좋아하지만 그 이야기가 연신 트라우마인지 울 것 같은 표정의 라나였다.

암튼 그렇게 지금 상황에 대해 나오면서 김준은 한 가지는 확실히 정했다.

“앞으로 마실 물은 생수랑 빗물만, 그것도 확실히 끓여서 차로 하자.”

“네.”

“그리고 욕조에 물 채우고, 락스 뚜껑으로 살짝만 부어서 희석해. 그거 은근히 좋다.”

전형적인 군부대식 식중독 방지였지만, 이 상황에서는 뜻밖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을 때, 김준은 애들 모아 놓고서 대대적인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모두가 마스크와 바닥솔, 그리고 말통으로 꺼내온 락스와 솔벤트를 가져다가 물에 풀어서 바닥에 뿌려대고는 구석구석 쓸어댔다.

“우욱! 이거 냄새가 더 독해!”

“솔벤트 장갑 끼고 만져라! 손가락 피부 다 까진다!”

“오빠! 이거 장갑 흐물거려요!”

“응, 갈아신어. 장갑 많아.”

나니카와 라나가 세척용 고무장갑이 쭈글쭈글해지다가 점점 구멍이 뚫리려 하니 바로 새것을 건네줬다.

“비켜 봐! 이건 이렇게 쓰는 거야.”

김준은 바깥에 설치된 발전기를 통해, 에어콤프레셔를 돌리고, 분무기 형식으로 락스액이 가득 담겨 있는 통을 확인하고는 구석구석 뿌려댔다.

치이익­ 치이이이익­

마스크에 바이저까지 쓴 대청소 작업에서 그렇게 배어 있던 좀비 썩은 내는 락스와 솔벤트가 싸그리 씻어냈다.

“후우­”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은지가 손을 내밀자 김준은 그것을 건네주며, 어떻게든 자신이 하는 작업을 눈으로 보고 바로 따라 해서 습득하려는 것을 지켜봤다.

청소 작업이지만, 각종 기계를 쓰면서 9명이 모두 몰려 있으니 시끌시끌한 분위기.

그리고 당분간 화학용품을 잔뜩 뿌려댔으니 담배는 자제하고 주변 정화에 신경 썼다.

***

“자~ 먹자!”

최근에 입맛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은지와 인아가 준비한 것은 김밥이랑 장국이었다.

김준 외의 다른 멤버들의 부탁으로 최대한 냄새 안 나는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제법 괜찮은 선택으로 보였다.

“음~ 좋다.”

“라볶이 땡긴다.”

“기다려~ 그것도 끓일게.”

“치즈 있어? 치즈?”

“슬라이스는 없고… 아, 식용유로 만든 건 있는데!”

이제는 아이돌이 프로 요리연구가가 되어서 각종 재료가지고 별의별 것을 다 만들었다.

식사는 모두가 웃는 자리였고, 풍족하게 먹은 뒤로는 남는 시간 동안 자유시간이었다.

김준 역시 깔끔하게 청소한 바깥을 둘러보다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2층 거실에서 포커나 장기를 두거나, 오락기를 가지고 움직이던 애들과 달리 3층 옥탑방은 상당히 차분했다.

덜컥­

“여기는 뭐 하….”

“어맛?!”

순간 김준은 안에 있는 도경의 비명을 듣고 멈칫했다.

“….”

“그냥 한 번 입어 봤는데….”

문 열었는데 여자가 옷 갈아입고 있다고 얼굴 빨개지고 바로 닫는 상황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김준은 별거 없다는 듯이 넌지시 들어와서 지금 도경이가 입은 옷을 살펴봤다.

“그거 사이즈가 맞아?”

“조금 땅기긴 하지만….”

도경은 구제옷 가게에서 루팅해온 실업 배구팀 유니폼을 두고 계속 눈독들이고 있었다.

은지가 각종 스포츠 저지를 가져 왔을 때, 통풍도 잘되고 쓸 만하다며 구연산 푼 물에 며칠간 담가놓고 박박 빨아서 널었을 때 마르자마자 바로 챙겨서 자기 걸로 만들었다.

그리고서 한 번 입어보고 거울을 보며 옛날의 추억을 살필 때, 딱 김준을 만난 것이었다.

“배구부 시절 인기 많았겠네?”

“그… 여고라서.”

“그때 애들은 오히려 쎈언니 좋아하지 않나?”

“조금 그렇긴 했죠. 막 언니언니 하면서 따라온 애들.”

도경은 다른 때와 다르게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부끄부끄하면서 김준의 옆에 슬며시 앉았다.

소파에서 유니폼을 입은 다음에 부끄러워하는 배구 소녀를 보니 김준은 저절로 그녀에게 손이 갔다.

“아….”

언제나 단발을 고수했는데, 최근 좀 자라서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머리카락 길이였다.

그런 머릿결을 슬며시 손으로 넘기자 피어스 하나 없는 새빨개진 귀가 인상적이었다.

당장에라도 얼굴을 대고 입을 살짝 벌려 귓불을 앙­ 하고 깨물어 주고 싶었다.

“저, 저기… 아직 밑에는.”

“도경아.”

“네?”

“여기 또 누구 있어?”

“!?”

그때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을까요~?”

그 익숙한 목소리에 김준이 고개를 돌리니 팔짱을 낀 채로 화장실 벽에 있는 은지가 있었다.

옆방을 쓰다가 소란을 보고 슬며시 나온 은지는 더 해 보라는 투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째 그게 더 신경 쓰이는 얼굴이라 김준은 헛기침을 하다가 조용히 그녀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도 그런 건 안 해요?”

“그건 아니야.”

“뭐~ 다른 애들하고 하는 건 상관없어요. 성인 남녀가 그럴 수 있죠. 단지….”

은지는 조용히 김준과 도경 사이에 머리를 내밀면서 한 가지만 당부했다.

“여기서는 안 돼요.”

은지는 그러면서 조용히 옥탑방 거실의 서랍장을 열더니 그 안을 뒤적거리다 입을 열었다.

“도경아.”

“네, 넷?!”

휙­

“아….”

“잘 챙기고.”

은지는 서랍장 안에 있는 콘돔 박스를 도경에게 던져 주면서 다른 건 몰라도 피임 하나는 확실히 신경 쓰라고 알렸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들고 방에 들어간 은지를 두고 소파에서는 김준과 도경이 뻘쭘한 상태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할 코스프레 섹스를 기대했는데, 은지로 인해 잠시 머뭇거리는 두 남녀.

하지만 김준이 다시 불끈하면서 옆에 있는 도경이에게 말했다.

“도경아.”

“네, 오빠.”

“이따가 캠핑카하고, 안방 어디로 갈까?”

“음… 그래도 역시 안방?”

도경은 지금 말고 조금만 있다 하기로 하면서 일단 지금 입고 있는 배구 유니폼부터 슬며시 벗었다.

짝 달라붙는 핫팬츠가 내려갈 때, 탐스러운 골이 눈앞에 드러났고 당장에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지금 등 뒤의 벽 너머로 디아블로가 대기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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