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241 위로 받는 이야기.
* * *
새벽에 갑자기 좀비 습격을 받은 뒤로 모두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술이라도 까고 싶었지만, 또 언제 좀비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치익
“후우”
김준은 절에서 이어 집에서도 야간 보초를 서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바깥에 잡은 수많은 좀비의 시체 썩은 내로 마스크를 꼈지만, 퀴퀴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락스를 몇 통이나 퍼부었는데도….”
다음에 나간다면 말통 단위로 락스와 섬유유연제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한 김준이었다.
그렇게 눈코입이 괴로운 보초 속에서 담배 연기로 겨우 지워나갈 때, 조용히 옥탑방 문이 열렸다.
“안 힘들어요?”
“그러는 너는 안 자?”
은지가 조용히 나와서 들어오라고 살랑살랑 손짓했다.
평소에 애교라고는 없는 애가 활짝 웃으면서 저러니 김준은 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안으로 들어왔다.
은지는 잔잔한 미소로 책상 위에 만든 아이스티를 만들어 건넸다.
갓 만들어서 얼음이 띄워진 달달한 맛이었고, 은지는 조용히 김준을 바라봤다.
“오늘도 고생많으셨어요.”
“새삼스럽게?”
“그래도 이런 말을 들어야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
의욕이라는 말에 김준 역시도 웃음이 나왔다.
1년 동안 사람 형상을 한 좀비를 질리도록 잡아댔고, 어느순간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로가 쌓였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준이 가장 좋아하는 애 중 하나인 은지가 이렇게 서비스를 해주니 오늘 하루 있었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잠깐 쉬어도 괜찮겠죠? 그동안 새벽에 좀비 나온 적도 없었고.”
은지의 말에 김준은 어깨에 맨 총을 내려놓고 안전장치를 걸었다.
그리고는 은지가 건네주는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편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절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혼자 보초를 서는데.”
“그렇다고 니들 시킬 순 없잖아?”
“전 별로 잠 없어요.”
“!?”
진짜로 시키면 야간보초도 서겠다는 의지를 가진 주은지양을 보고서 그냥 미소가 나오는 김준이었다.
“잠깐 쉬셔도 될 거 같아요.”
“오래는 못 쉬어.”
“그럼 한 시간 정도는?”
“문제는 없겠지만….”
은지가 한 시간을 언급했을 때, 순간 김준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뭘 생각하는 지 안다는 듯 두 팔로 X자를 그리면서 한 가지 제약을 걸었다.
“쉰다고 했으니 스테미너 쓰는 건 안되겠죠?”
“….”
“그리고 요새 아랫배 계속 아파서 당분간 안 해요.”
“어디 아파?”
“그냥 좀 쑤시… 아, 마리한테 말했는데 단순 복통이라니 상관없어요.”
“어, 그래.”
김준은 누가 몸 상태 안좋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 굉장히 신경이 곤두섰다.
은지 역시 괜한말을 했다고 생각한건지, 느긋한 얼굴로 그의 옆에 앉아 소파에 몸을 기댔다.
잠 안 잤다고 하더니, 옷차림도 갓 샤워를 마치고,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과 돌핀팬츠에 검은 티셔츠 차림으로 아주 단촐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김준의 눈이 은지의 매끈한 다리와 돌핀팬츠로 살짝 삐져나온 엉밑살이 드러났지만 그녀가 격하게 거부했다.
“그냥 1시간 정도 눕고 싶다.”
“자리깔아드려요?”
“무릎베개도 돼?”
“….”
“하는 건 아니다?”
“유사… 아니다.”
은지는 자리를 옮겨 소파에 앉으면서 자신의 허벅지를 팡팡 쳤다.
“무거우면 바로 떨어트릴거예요.”
“응!”
김준은 은지의 무릎을 배면서 힐링을 느꼈다.
샤워하고 온 뒤라 바디워시 포도향이 은은하게 났는데, 간간이 손이 그녀의 종아리에 닿았지만, 주물거리는거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몇인데… 뭐 이리 흰머리가.”
“그런 말 하지 마. 한 번도 그런적 없었어.”
“그래도 뭐. 머리숱은 풍성하네요.”
은지는 가지고 다니던 파우치에서 핀셋을 꺼내 김준의 흰머리를 하나하나 뽑아줬다.
여친도 잘 안해줄 호사를 누리고 있는 행복함이 느껴졌다.
“다 하면 귀도 파줘.”
“오늘 별거별거 다 하네요.”
툴툴거리면서도 묵묵히 흰머리를 뽑아 김준의 눈앞에 보여주자 요사이 진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오빠 이제 서른이잖아요?”
“그렇지.”
“나이를 어떻게….”
“군대 시계는 3배 더 가.”
그래도 나름 관리를 했었는데, 부사관 10년 가까이 하면서 비타민D 넘치는 자외선은 넘치도록 흡수했었다.
게다가 딱히 돈 쓸데도 없다고 나가기는커녕, 부대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인생의 낙이라고는 걸그룹 음악 듣는거랑 휴대폰 게임 결재, 간간이 간부들 차 고쳐주는게 전부였다.
“청춘을 소비했어….”
“별 다를 바 없어요.”
“!”
“정산금이 통장에 가득 있으면 뭐하나~ 뽑을 데도 없고, 쓸데도 없는데.”
은지의 말이 갑자기 슬프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가야 언니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안 가고 여기 남는다죠?”
“그랬지. 그것 때문에 기념으로 반지 준 거로 뭐라 하는 애들 엄청 많았고.”
“옥탑방에 며칠동안 냄새가 안 빠졌어요.”
“…미안.”
은지는 묵묵히 흰머리를 뽑아내면서 김준의 머리카락을 골라줬다.
그러는 사이 은지의 새하얀 다리를 주물거리는걸로 참던 김준은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말이야.”
“네?”
“나는 너도 계속 여기 있어주면 좋겠다.”
“….”
김준은 직접 그 제안을 했고, 은지는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파우치에서 길다란 귀이개를 뽑았다.
“자~ 요청하신 귀청소 서비스입니다.”
“으앗?! 잠깐만, 쿡쿡 찔러대지 마!”
“속이 참~ 더럽네요.”
은지는 사정없이 김준의 귓속을 파대면서 원하시는 청소를 해 줬다.
***
다음 날.
“우욱! 씹!”
금발의 아가씨가 찰지게 한국말로 욕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안 나와도 된다니까!”
“그렇다고 집 안에서 있을 수만 없잖아요?”
에밀리 옆의 도경 역시도 마스크를 두 겹이나 낀 상태로 눈을 크게 찌푸렸지만,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밀대 준비했… 우욱!”
윙~윙윙~
“어우, 저 파리떼 봐.”
“쟤들은 아주 파티겠지.”
커다란 밀대를 여러자루 가져온 가야 역시 어제 잔뜩 잡아댄 좀비 이후로 그 악취에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 엄청 걸릴 거야. 가야는 밀대 주고 호스 이어서 틀어.”
“네.”
“그리고 에밀리랑 도경이는 지금 말할게. 힘드니까 들어가 있어.”
“한다니까?”
“저 할 수 있어요.”
도경과 에밀리가 의지를 밝히면서 밀대를 들었을 때, 김준은 문을 열고 그 참상을 눈 앞에서 맞이했다.
“우욱!”
“아 썅! 다 썩었네!”
“좀비니까 당연히 썩었지.”
어젯밤 집을 습격했던 수많은 좀비들.
그것들이 다음날 해가 쨍쨍 뜬 곳에서 땡볕 아래 콘크리트 바닥까지 오염시킬 정도로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김준은 마스크를 확인하고는 밀대를 가지고 힘껏 좀비 시체더미를 밀었다.
“간다!”
“쉣!”
“가, 가요!”
김준, 에밀리, 도경이 힘껏 밀어낼 때, 새카만 피가 누르는데마다 콸콸 쏟아지면서 밀려났다.
“주변에 까마귀 봐.”
에밀리의 한 마디에 진짜 등골이 서늘했다.
“까마귀가 시체 먹다 흘린 피가 막 우리 몸에 떨어져서 감염….”
“거, 잡소리 좀 그만해라!”
“히익!”
에밀리는 김준에게 한 소리 들은 뒤로 밀대에 힘을 주었다.
질질 밀리는 좀비 시체 속에서 가야가 호스를 길게 빼왔을 때, 바깥 참상을 본 가야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오, 오빠!”
“호스 줘! 에밀리랑 도경이 뒤로 빠지고.”
겨우 5m 밀어낸 뒤로 김준은 화단 가꾸는데 쓰는 호스를 풀로 틀어서 좀비 시체들에 뿌려댔다.
락스와 물에 절여서 퉁퉁 불은 시체들의 핏물이 사이드로 흘러내릴 때, 에밀리는 바로 발을 들었다.
10분동안 계속 뿌려대서 핏물부터 빼낸 뒤로 다시 밀대를 잡은 김준은 힘있게 밀어붙였다.
“간다!”
“오케이!”
에밀리와 도경은 인력으로 밀어내면서 밀대를 통해 좀비 시체들을 겨우 집 근처에서 다 밀어낼 수 있었다.
옆집까지 시체 더미를 밀어버리니 마치 바리케이트처럼 만들어진 모양새.
“저대로 놔 둬요?”
“내일 마르면, 기름 뿌리고 불 당길거야.”
지금은 그저 이 시체 더미에 불붙인게 지금 집까지 번지지 않게 밀어버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악취는 심했고, 에밀리의 1억불짜리 콧대는 마스크 자국이 새빨갛게 남으면서 냄새도 잘 못 많는다고 징징댔다.
게다가 하필 그날 저녁은 은지가 건강식이라고 토마토 야채수프 준비한다고 해서 에밀리가 밥상 뒤엎을뻔했다.
***
다음 날 김준은 다른 애들에게 말하지 않고서 혼자 밖으로 나왔다.
말통 하나에 가득 담아둔 등유를 가지고 온 김준은 어제의 좀비 무리에서 수많은 파리와 벌써부터 구더기가 끼고, 각종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참상에서 사정없이 기름을 뿌려댔다.
그리고는 라이타를 들어서 신문지 만 것에다가 붙여 던져줬다.
화르르륵
내부에는 아직도 물기가 가득 있는 상황이었지만, 기름 먹은 불길은 겉에서부터 서서히 타들어가면서 안을 말렸다.
양옆에 새빨간 벽돌 담장은 때아닌 불길에 점점 그을음이 쌓여갔고, 김준은 오늘 하루 지켜보기로 하고서 겨우 좀비 시체를 정리할수 있었다.
이제는 여름이 다가와 좀비만 잡는게 끝이 아니라 주변에 썩어들어가니 뒤처리가 문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