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 240 돌아가는 길은 험난해.
* * *
“뭐야? 이것도 축구 셔츠야?”
“여기 사장님은 운동을 좋아하셨나 보네요?”
은지가 챙긴 옷들은 대다수가 폴리에스테르로 된 스포츠웨어 들이었다.
마트에서 나이키다, 아디다스다 가득 챙기긴 했지만, 이거는 소사벌 시 내에 실업팀 유니폼들이었다.
“순면이나 드라이 해야 하는 건 오래돼서 걸레로도 못 써요. 그나마 이런 재질이 입을 만 하죠.”
“그래그래, 어차피 은지 네가 수선해서 쓰면 되니까.”
옷을 잔뜩 챙긴 뒤로 몇 상자를 넣은 다음에는 고물상에서 이것저것 챙겼다.
“커피포트 많은데….”
“많을수록 좋아.”
“밥솥도 충분하고요.”
“그거 물물교환용으로 쓰자.”
“발전기는요?”
“음… 이건 못쓰겠다. 물 먹은 상태에 안에 녹이 잔뜩 꼈어.”
김준이 고물상에서 쓸 만한 것과 아닌 것들을 분류하고 하나하나 정리했다.
정 안 되는 것들은 손도끼를 꺼내서 전선만 잘라 내고, 그걸 한 다발 모아서 집에서 개조해 쓸 생각이었다.
“대충 챙겼으면 가자.”
“네, 네~”
고물상의 물건들도 차곡차곡 담은 마리가 해맑게 대답하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 멀리 보이는 대로를 봤다.
“저기만 넘어가면 진성시인데….”
톨게이트까지 수많은 폐차들과 함께 넘어오는 좀비 무리를 보고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곳이었다.
저 길로 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고, 샛길로 간다면 못 갈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가기에는 준비할게 많았다.
“신축 경찰서라면 권총이나 소총도 잘만 하면….”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단 짐부터 챙기고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가는 길 역시도 순탄하지가 못했다.
[캬아아악! 캬아악!!!!]
[크에에에!!!]
“이런 씨발!”
탕 탕!!!
리볼버 권총이 불을 뿜으면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좀비들을 쓰러트렸다.
분명 여기까지 올 때도 한 무리의 좀비를 짓이겨 버리면서 왔는데, 어디서 또 나타나는지 한 무리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뛰는 녀석들이 주류였고, 김준과 은지는 바로 전투에 들어갔다.
쌔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석궁 화살이 좀비의 목을 뚫어 버렸고, 비틀거리는 좀비를 향해 김준이 공기총으로 막타를 먹였다.
[캬아아악]
그중에 다른 좀비가 달려들었을 때, 김준은 공기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파앗 팍!
연지탄이 작기는 해도 한 방 제대로 맞으면 고라니도 잡을 수 있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좀비에게 머리에 연달아 맞은 좀비가 비틀거리다가 차 앞에서 풀썩 쓰러졌다.
“후우 후우”
화약냄새에 땀 냄새까지 가득한 캠핑카 안에서 김준은 연신 콘솔 박스에 있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돌아가는 길에도 총알을 상당히 쓴 상태였고, 이런 좀비 웨이브를 계속 상대하다 보면 정말 총알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젠장….”
앞에 있는 좀비들을 상대하다가 이 꼴이 나오니 김준은 그냥 무시하고 들이받기로 했다.
“마리야! 은지야! 꽉 잡아!”
“!!!”
김준은 기어를 바꾸고 그대로 돌진했다.
“으으읏?!”
은지가 창문 위에 손잡이를 꽉 잡고 있을 때, 그 앞으로 수많은 좀비들의 기괴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쿠당탕탕 콰아앙!
그래도 사람의 신체인 좀비의 충격은 차에 그대로 들어왔고, 앞범퍼에 쇠붙이를 달아놔서 그대로 차바퀴에 깔려들어가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수가 많았다.
쩌억
“으긋?!”
“씨발!”
좀비 중 하나가 들이받히면서 캠핑카 앞유리를 향해 그대로 받혔다.
그러면서 유리창에 균열을 내고 옆으로 널브러졌는데, 덜렁거리는 상황에서 계속 시체가 걸렸다.
부우우웅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순간 좀비들에게 말려서 그 압력으로 다른 유리까지 깨지고, 차가 부서질 것이다.
김준은 계속 액셀을 밟아 댔고, 흰색의 캠핑카에 새카만 썩은 피와 살점이 뒤덮인 채 겨우 그 좀비 웨이브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10km 남짓.
그런데도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했다.
“오빠! 저기!”
“저건 그냥 무시하자!”
예전에 기능을 상실한 논밭으로 좀비들이 캠핑카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지만, 걷는 좀비에 그냥 피해서 따돌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김준이 액셀을 밟았다.
계기판이 점점 올라가면서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캠핑카.
그리고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 한 무리의 좀비들이 또 보였다.
“미친! 오늘 무슨 날 잡았냐?”
그동안 적은 인구의 시골 동네에서 웬만큼 처리했다고 생각한 좀비들이 진짜 날 잡고 모여 있었다.
작정한 듯이 김준 일행을 보고 달려드는 좀비 무리를 보고 김준은 그동안의 상황에서 오랜만에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
“잡아야 하지 않나요?”
“…아니야!”
“집 근처인데?!”
“차라리 집에서 잡는 게 나아!”
김준은 결심한 듯 차를 돌려서 바로 샛길로 빠졌다.
블록형으로 기획된 동네에서 우회전과 좌회전만 잘해도 지금의 좀비 무리를 피해 집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김준은 미리 아이들에게 문을 열어놓으라고 한 다음 곧바로 들어왔다.
“어서 오시… 꺄아아악?!”
가야랑 에밀리가 문을 열고 맞이한순간 엉망이 된 차를 보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오 쉣! 준! 지금 나오지 마.”
“!”
“차 문 열자마자 좀비 팔이 보여! 저거 움직인다고!”
“씨발!”
아까 들이받은 좀비 중에서 몸이 끼인 채 꿈틀거리는 녀석이 있다는 말에 김준은 잘못하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갈게요!”
“은지야!”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처리할게.”
은지는 자신을 믿으라는 듯이 엄지를 올렸고, 바로 차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김준의 차문에 걸려 있다는 좀비를 살폈다.
“불!”
“으응?”
“불! 빨리!”
은지의 외침에 가야가 라이타를 꺼내 줬고, 그녀는 일 전에 애용했던 보루로 뒤덮인 장대를 들어다가 불을 붙였다.
화르륵
그 횃불같은 장대를 가지고 김준의 차 밑에 낀 채 덜렁거리는 좀비 팔에 서서히 가져다 댔다.
치지직 치이익
“죽은 거 맞네.”
팔이 까딱거리는 건, 차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는 거였고, 이미 머리나 하반신도 날아간 상태에서 끼인 좀비를 서서히 태워 나갔다.
치이이이이
“됐어요.”
덜컥
김준이 나온 순간 은지는 장대를 통해서 타들어 간 좀비의 팔을 밀어내서 떨어트렸다.
김준은 직접 본 난장판이 된 차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세차하고 유리 갈아 끼워야겠다.”
김준은 벌써 두 번째로 깨진 차 유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챙기는 건 이따 하고 다들 물러나, 싹 치워야겠다.”
“우… 네.”
가야는 뒷걸음질을 치다 황급히 물러났고, 에밀리는 집게를 찾아서 그 좀비 팔을 던지려고 했다.
“하지 마.”
“내가 할게.”
“시끄럽고 가서 우비랑 방독면 가져와. 살 닿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치이”
아직도 철없는 모습을 보이는 에밀리를 두고 김준이 한 소리 해서 보냈고, 은지는 돕겠다는 듯이 조용히 자기 우비도 챙겼다.
그렇게 물과 희석 락스를 뿌려대서 핏물을 뒤집어쓴 차를 싹 쓸어냈고, 좀비의 시체는 오물을 태우는 곳에 모아 놓고 그 위에다 장작을 잔뜩 올린 채 태웠다.
젖은 시체조각이 휘발유로 붙인 불에 닿아서 매캐한 연기가 올라왔지만, 방독면을 쓴 상태에서 묵묵히 정리하는 김준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일어나는 대로 차 유리를 교체하려고 했지만, 편히 잘 수도 없었다.
***
[캬아악 캬아아아]
“아, 진짜 오랜만이다!”
파아앙
정말 얼마 만에 겪는지 모를 좀비 무리의 집 습격이었다.
쾅쾅 콰아앙
쿵 쿵 쿵
좀비들이 철문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흔들어대면서 강제로 열려 했고, 벽을 타고 올라올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전기가 잔뜩 흐르는 철망이었다.
지지직 지직 퍼어엉!
전기 철망을 잡은 좀비가 부들부들 떨다가 손부터 피가 터져 나와 떨어졌고, 그 뒤로 수많은 좀비들이 타고 올라가려 했으나 옥상에서 달리는 석궁 화살과 새총 너트샷으로 농성하는 아이돌들에게 머리통이 터지면서 나가떨어졌다.
“오빠! 뒤에도요!”
“봤어.”
띵
집 안에서는 공기총으로 교환해 연지탄 뭉치를 둔 김준이 좀비가 머리를 내미는 대로 바로 바람구멍을 내 줬다.
좌르르륵
“탄 가져 왔어요.”
나니카와 라나는 나무 상자에 가득 담긴 피스와 너트 등을 가져와 바닥에 늘어 놨고, 새총을 든 에밀리와 도경이 하나씩 집어서 바로 고무줄을 당겼다.
“천천히… 침착하게!”
피유우웅 파각!
은지는 자기 암시하듯이 중얼거리면서 석궁으로 좀비를 맞췄고, 그 옆에 있던 마리도 능숙하게 발사했다.
모든 아이들이 합심해서 농성전을 벌였고, 좀비 무리의 시체가 점점 쌓이는 가운데, 자정 가까이 된 시간에서야 좀비 무리들을 전부 퇴치할 수 있었다.
“후우우”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방아쇠를 당겨댄 김준은 총성으로 인해 귀도 멍한 상황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승리의 선언인 순간에서 다른 아이들도 서로 부둥거리면서 오늘도 살았다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때 도경이가 조용히 다가와 김준에게 생수병을 건넸다.
“수고하셨어요.”
“…니들이 잘해줬지.”
김준은 그것을 받고 바로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 밤도 아주 길었던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