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230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 *
마리는 만신창이가 된 명국의 몸 상태를 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김준 역시 자기가 구해 온 애아빠를 보고서 물었다.
“어떻게 수술 안 되겠어?”
“제가 거기까지는 어떻게 모르겠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면….”
마리는 무너진 멘탈을 빠르게 수습하고는 수술용 장갑을 꺼내고 명국의 바지부터 벗겼다.
“일단 속옷 빼고는 전부 벗기세요. 오염됐을지 모르니까 가위로 잘라도 돼요.”
“어, 어!”
마리의 말에 일단 비에 맞아 잔뜩 젖고 찢겨진 명국의 옷을 가위를 꺼내 하나하나 잘라 냈다.
그리고 팬티 바람의 상태에서 수건으로 몸을 한 번 닦아낸 다음 전신에 요오드 용액을 발라서 상처까지 한 번에 소독했다.
“일단 골반 덜렁거리는 거 이거! 고관절 탈구 같으니까 한번 맞춰 볼게요.”
“탈구면… 야, 뼈 빠진 거냐?”
“지금 맞출게요.”
뚜둑 뚝
다리 한쪽이 기괴하게 틀려서 들어진 다리를 마리가 골반부터 다리까지 잡아서 힘껏 비틀었다.
원래 고관절 탈구야 정형외과 가면 5분 안에 바로 맞출 수 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방치되어 있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흐읍! 흡!”
마리가 힘줘서 요오드가 잔뜩 발라진 명국의 다리를 원래대로 끼워 맞췄다.
겨우 빠진 다리를 끼웠을 때, 마리는 그 뒤로 점점 부풀어 오르는 왼발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부러진 거 같은데….”
“수술 해야 해?”
“원래라면 째서 안에 핀 박아야겠죠. 근데 여기서 그럴 수는 없고.”
마리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면서 발바닥서부터 발목을 고정할 수 있는 부목을 찾았다.
김준이 황급히 주변을 뒤졌을 때, 거기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어, 어어!?”
“오빠, 왜 그래요?”
“심 봤다.”
김준이 창고에서 가져온 것들은 다리와 팔, 허리 등에 댈수 있는 각종 부목, 그리고 재활 운동에 쓰는 고무 밴드 등이 있었다.
“어머, 이런 게 있었어요? 먼지 털고 싹 닦아내면 쓸 수 있겠다!”
“이 새끼 이런 거 어떻게 챙기… 아 맞다. 체대 출신이라고 했지.”
맨 처음 만났을 때, 자기소개를 했을 때 들었던 것이었다.
명국은 체육대학 출신의 전국체전에 참가할 양궁선수였고, 그래서 재활 운동기구들을 몇몇 가지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닦아볼게.”
“손세정제 있어요! 그걸로 바르세요.”
“알았어.”
김준이 그것들을 전부 소독용 알코올로 씻어낸 다음에 가져다주자, 마리가 명국이 다친 부분에 대고 단단이 고정했다.
부러진 발목과 다리에 덧댄 부목.
찢어진 팔과 어깨에 대한 봉합.
머리에 있는 찰과상 역시도 그 자리에서 메스로 살짝 잘라낸 다음 압박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배였다.
“여기서는 진짜 기도해야 해요.”
“…뭐?”
“만약 이대로 보면서 이분 배가 부풀어 오르면… 그땐 정말로 답 없어요.”
“배가 불러? 그게 뭔데?”
“내장 파열… 어디가 다쳐서 피가 배에 쏠려서 부푸는거예요.”
“….”
그건 전문의, 그것도 응급실 외상외과 전문이 아니고서야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가 당시에 ‘지니어스 서젼’이라는 드라마를 찍었을 때, 외상외과 쿨시크한 펠로우 선생님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자문으로 나왔던 외상외과 교수님에게 대본 때문에 배운 게 있긴 했지만, 레지던트 경험은 없는 마리였다.
“만약 여기서 복부가 부풀어 오르면 내출혈로 앓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럼 큰일이잖아!”
“문제는 수술을 한다면 당장에 무슨 혈액형인지도 모르고, 정말 최악의 경우라면….”
마리는 가능성을 두고서 천천히 말했다.
“셀 세이버를 할 수도 있어요. 장비도 없이요.”
“그게 뭔데? 좀 알기 쉽게 이야기해봐.”
“셀 세이버라고, 자가수혈을 할 수 있는 기계인데, 간단하게 말해서 명국씨 수술하려고 개복하면 피가 막 쏟아지죠? 그걸 받아다가 항생제 풀어서 다시 자가수혈을 시키는거예요.”
“….”
“물론 오염된 피라 항생제를 계속 부어야겠지만, 그러다 감염으로 죽을 수도 있고, 내부에 내장이 두 개 이상 터지면 제가 손도 못대요.”
어떻게 들어도 최악의 상황밖에 안 된다는 상황에서 길게 한숨을 쉬는 마리.
그 와중에 문이 열리면서 은지도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상태가 안 좋아요.”
“마리야! 일단 네가 가서 수영씨한테 가서 말해. 여기는 내가 볼게.”
“은지 언니, 그러면….”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지에게 몇몇 가지를 당부하고, 아까 말한 김준에게도 확실히 일렀다.
“조금이라도 배 부푸는 거 싶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알았어.”
마리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뭐라도 손을 대기 위해서 의지에 굳은 눈을 했고, 은지와 김준은 명국을 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게 뭔 꼴이냐.”
“….”
거리를 두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 은지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기, 만약예요.”
“응?”
“출산 임박했을 때, 다른 곳에 보냈으면 어땠을까요? 얘를 들면….”
이미 끝난 일이었지만,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은지가 물어 봤던 것.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었겠네.”
“그러면 이렇게 다급한 일은 없었을 거고요.”
“흐으음.”
“뭐, 결과론적이니까요.”
은지는 여기서 그런 말해봤자 이제는 끝난 일이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행상인 양근태 같은 또 다른 사람이 다녀왔다가 빈집을 싹 털어간다거나, 좀비가 모르는 순간에 들어와 있다거나, 별의별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냥 이 녀석이 깨어난 거나 살펴야지.”
“네, 맞아요.”
“근데 은지야, 딸이었냐 아들이었냐?”
“딸이요. 3kg는 넘어보였어요. 마리가 탯줄까지 잘랐고요.”
“휴우우”
그때 김준이 잡고 있던 명국의 손이 슬며시 움직였다.
“!?”
분명 손에 힘이 들어간 상태였는데, 다시 의식이 없었다.
***
김준이 명국을 돌보면서 상처에 계속 드레싱을 해 주는 동안 은지와 마리는 갓 해산한 수영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줬다.
“혹시나 해서 내가 챙겼지.”
은지는 마리의 의료장비 도구 말고도 따로 챙겨 온 것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먼저 꺼낸 보온병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뒤적거리면서 비닐팩에 담긴 것을 꺼내자 그 안에는 건미역이 가득했다.
“명국씨 이야기는 했어?”
“좀 놀라기는 했는데, 우리가 치료해 줄거라고 믿는데요.”
“…괜찮겠지?”
“일단은요.”
은지는 마리의 말에 조용히 미역을 불리고, 참기름을 꺼내면서 천천히 볶았다.
그다음으로 보온병에 담긴 사골육수를 붓고, 삶은 닭가슴살을 찢어 넣어 육해공으로 미역국을 끓여줬다.
“역시 은지 언니가 이런 거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니.”
은근히 주변 사람에 대해서 내색 안 하는 것 같으면서도 말없이 도와주고는 했다.
그렇게 미역국에다가 얼린 쭈꾸미를 해동해서 칼로 탕탕이처럼 잘게 다진 다음 야채를 썰어넣어 죽을 쑤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과 함께 수영을 향해 차려 줬을 때, 그녀는 지친 몸으로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늘어져 있었다.
“수영 씨 오늘 진짜 수고했어요.”
“아아….”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면서요? 오늘 여기서 같이 묵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한 수저 떠요.”
“고맙… 습니다.”
“어어어? 울지 말고!”
마리가 수저를 손에 쥐여 준 순간 수영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고, 사골 미역국을 먹었다.
***
“후우”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김준은 명국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몸에 있는 상처에 드레싱을 해 줬다.
“이거… 부른 거 아니지?”
어제 체크한 뒤로 배가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김준은 천만다행으로 그 사고 속에서 내장 파열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부러진 뼈를 수술 없이 부목으로만 대서 붙이는 데다가 인대나 반월판 어디가 나간 상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에 어떻게 재활을 해야 할 거다.
그리고 손에 머리를 댔을 때, 불덩이 같은 몸에 황급히 마리를 불렀다.
부스스한 얼굴로 들어온마리는 명국의 상태를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빠 앞으로 찬물로 씻은 수건이랑 얼음으로 열 내려야 해요.”
“왜 이러는 건데?”
“외상 이후에 몸에서 열이 오르는거예요. 이거 천천히 식히면서 대소변이 나온다면 깨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애도 아니고… 설마 그것도 내가 해 줘야 하냐?”
“그럼 제가 할게요?”
“…됐다. 내가 할게.”
김준은 이 녀석이 깨어나는 대로 닭 10마리, 아니 20마리는 받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다시 몸을 살폈다.
그리고 명국이 깨어날 때까지 주변을 손봤다.
어제 쏟아진 폭우로 인해서 쓰러진 닭장 축대를 직접 고치고, 닭이나 오리가 낳았던 알들을 수거했으며, 발전기를 통해 돌아가는 부화기에서 각각의 유정란에 적혀진 날짜를 확인하고 다시 태어날걸 살폈다.
그 와중에도 은지와 마리가 수영과 태어난 딸을 케어하는 도중에 김준은 결심한 듯 차 안에서 무전기를 챙겼다.
그리고 저번에 시도했던 것을 위해 바로 차에 올라탔다.
“마리야, 은지야. 나 잠깐 어제 거기 좀 다녀올게.”
“사고났던 곳이요? 왜요?”
“기지국 설치!”
“!?”
김준은 지난번에 구상했던 것을 시도하기 위해 그 현장으로 홀로 달려갔다.
물론 무기와 통신장비를 챙긴 상태에서 지금 집에서 왜 안 오냐고 기다릴 애들에게 알리기도 해야 했다.
“씨팔 거, 잘못하면 며칠 있어야겠네.”
만약 그 와중에 행상인 양 사장이라도 온다면 바로 이곳으로 와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필요한 물건 리스트를 잔뜩 챙겨달라는 요청과 함께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