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29화 (229/374)

〈 229화 〉 229­ 새 생명과 꺼져가는 생명.

* * *

“니들한테 진짜 미안하다.”

“하핫­ 괜찮아요. 이미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마리는 새벽에 일어난 상태에서도 차분하게 수술도구와 의료상자를 챙기면서 김준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은지 또한 황급히 2층으로 내려가 미리 준비한 것을 챙겼다.

마리가 의료행위를 하는데 보조로 은지를 쓰겠다고 이야기 해서 딱히 김준이 태클 걸 것은 없었다.

달그락­ 쿵­

“후우­ 이걸 챙겨두길 잘했지.”

은지는 냉장고와 찬장에 있던 상자들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그것들도 챙길 준비를 했다.

그때 김이 새서 김준의 안방에서 나오던 에밀리와 라나와 마주쳤다.

“…아.”

“!?”

“앗, 저기! 은지 언니 이건….”

한 눈에 봐도 굉장한 차림새의 두 아이돌을 보며 은지는 조용히 바라보다가 그냥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할로윈 아직 멀었어.”

“….”

졸지에 에밀리와 라나는 집 안에서 오지도 않은 할로윈 코스츔을 한 꼴이 되었다.

은지가 도구를 챙기고 나갈 때, 두 아이돌은 멍하게 있다가 라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 방에서 우리끼리 한 잔 콜?”

“오케이~ 오는 순간 준 오빠 잡아먹을 거야.”

그렇게 작은방으로 들어간 둘을 두고 곤히 자고 있던 다른 애들은 옥탑방에서 자던 가야를 깨워서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다.

“금방 올게. 출산만 도와주고 돌아올거야. 잘하면 점심에 오겠네.”

“흐아암~ 알았어. 조심히 다녀오고, 무슨 일 있으면 준이 오빠 이 무전기로 할께.”

가야는 집안 일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김준과 마리, 은지가 캠핑카에 올라탄 다음에 바로 출발했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지금은 조수석에 앉지 않고 둘이 모두 뒷좌석에 앉았다.

“일단 최대한 빨리 가 주세요. 저희 지금 씻은 다음에 도구 체크 할게요!”

“그렇게 해!”

김준이 액셀을 밟고서 명국의 집으로 갈 때, 출산 산파를 준비하는 마리와 은지는 일단 몸부터 깨끗이 씻은 다음에 안에 놓인 손세정제를 찾아 다시금 소독했다.

그 와중에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면서, 김준이 신경질적으로 와이퍼를 돌렸다.

쏴아아아아­

끼릭­ 끼리릭­ 끼릭­!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가야에게 빗물 탱크 맡기긴 했는데 잘 할지 모르겠다.

“뭐, 인아랑 도경이가 있으니 그거 여는 거는 문제가 없을테지만….”

김준은 다른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돌아가면 에밀리랑 라나좀 달래줘야지. 그동안 못 먹었던 술도 같이 먹고, 당분간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그래도 아포칼립스 속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하천 다리를 건너가고 쭉 달리고 있을 때, 다행히 폭우 속에서 좀비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김준은 저 멀리서 보이는 도로의 장애물을 보고서 흠칫했다.

“!?”

끼이이이이익­

“꺄앗! 뭐에요?”

쿠당탕탕­

“아, 씨!”

김준의 급정거에 뒤에서 중심을 못잡고 넘어진 마리와 은지.

그녀들은 엉덩방아를 찧고서 무슨일이 생긴건지 앞으로 달려갔다.

“뭐예요? 앞에 좀비 있어요?”

“오빠, 무기 꺼낼까요?”

“씨발! 개 씨발! 명국아!!!”

“?!”

김준은 라이트를 켜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가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빗길을 달리다가 넘어진 오토바이.

그리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핏물이 쓸려나간 상황이라 명국의 흔적도 안 보였다.

“오빠, 저거 뭐에요?”

“저 오토바이… 그 활 아저씨꺼 아닌가?”

“….”

김준은 그 상황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펴보면서 바로 엽총을 꺼내고 우비 하나 입을 새 없이 바로 뛰쳐나왔다.

“명국아! 명국아!”

쏴아아아아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플래시를 비추면서 주변을 살펴봤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싶어서 찻길 사이드의 난간을 밑을 봤을 때, 좀비 사태 이후로 잡초가 무성한 곳에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 풀숲은 웬만한 어린이보다 큰 잡초들이었고, 그 속에 빠진 순간 대낮에도 찾기 힘들거다.

하지만 김준이 그곳에 내려가 찾으려고 했을 때, 마리가 황급히 외쳤다.

“오빠! 일단은 그쪽 집으로 가야 해요.”

“!?”

“산모 진통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요! 그리고 지금 그 아가씨 혼자 있을거잖아요?”

“잠깐만! 딱 10분만 내려가서….”

“1분이라도 더 빨리 가야 해요!”

마리의 외침에 김준은 그냥 뛰어내려서 밑에서 명국이 찾아 올라오려고 했지만, 다시 차에 타야했다.

콰앙­

홧김에 가드레일을 걷어차고 차에 올라탄 김준은 입술을 짓씹으면서 비에 젖은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일단은 산모와 아이부터 구한다.

그리고 다시 구하러 갈 것이다.

제발 그때까지만 명국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김준은 더욱 액셀을 밟아 초스피드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까지 들어오며, 여기저기에 비에 젖어 퉁퉁 분 상태의 좀비의 시체가 몇몇 보였다.

죽은 좀비들의 몸에 화살이 여기저기 꽂힌 것이 여기까지 오면서 무전을 할 때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다급했는지 평소에 잠가놨던 쇠사슬 문도 다 풀린 채 열려있었고, 김준은 황급히 들어가 차를 멈췄다.

“다들 내려!”

“네!”

“언니, 이거 챙겨주고요!”

은지가 자기 챙긴걸 가지고 내리려 할 때, 마리가 다른 상자까지 건넸다.

그리고 비를 맞으면서 셋이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애처로운 소녀의 비명이 울렸다.

“끄으윽… 끄아아아… 하윽!”

드르르륵­

“수영 씨!”

안의 상황도 굉장히 심각했다.

김준이 만들어준 출산대를 부여잡고서 누운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수영의 몸에서 새빨간 피와 뒤섞인 양수가 바닥 전체에 뿌려진 상태였다.

“은지 언니! 세정제!”

“여기.”

마리는 다시 한 번 손에 세정제를 잔뜩 발라 수건에 닦아낸 뒤로 바로 출산을 돕기 위한 산파가 되었다.

“은지 언니! 물 데워 주세요! 살짝만!”

“알았어!”

마리는 일단 수영을 반듯하게 눕힌 다음에 바닥에 있는 피와 양수부터 닦아내고, 배 이곳저곳을 눌러봤다.

배 위가 단단한지 살피고, 혹시라도 자궁구 쪽이 물컹거리면 큰일인데 그것 역시도 확인했다.

이리저리 짚어본 마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후우~ 다행히 역아는 아닌데… 아두골반(출산시 아기의 사이즈와 골반크기 불균형)만 아니면….”

일반의라도 최소한의 지식은 갖춘 마리가 하나하나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가 마스크를 입에 쓰고는 수영에게 힘을 주게 했다.

“수영 씨? 제가 왔어요. 지금부터 아기 출산 도울테니까 힘 내주셔야 해요? 엄마니까.”

마리가 손을 잡으며 그녀를 진정시키자 희미하게 뜬 눈으로 손을 꼭 잡은 수영이었다.

한편 마리가 준비하라는 것을 챙기며 주방에서 미리 준비된 사골용 냄비에 생수를 붓고 데우는 은지를 보고 김준은 바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기 둘은 니들한테 맡긴다.”

“…!”

은지가 고개를 돌렸을 때, 김준은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빠!”

“?”

“꼭… 구해와요.”

은지의 말에 김준은 주먹을 불끈 쥐며 그녀에게 건넸다.

***

“으으윽! 끄으으으!”

혹시라도 이를 쥐다가 잇몸이 무너질수 있어서 수영의 입에 거즈를 물린 마리는 자궁구를 연신 확인하면서 크게 외쳤다.

“힘 계속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아이 못 나와요!”

“으으윽! 으윽!”

어린 나이에 생전 처음 겪는 출산의 고통에 수영은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지만, 옆에서 은지가 손을 잡아줬을 때, 그녀의 손도 꼭 잡았다.

“계속 힘 줘요! 애기가 못 나와요.”

“끄으으으윽!!!!”

“아, 다시 열렸다! 이대로 계속 힘 줘요! 머리 나오려고 해요!”

마리는 몇 번이고 씻고 소독한 손에 수술용 장갑까지 낀 채로 아이를 받아냈다.

“우으읍! 흐읍!!!”

“아기 머리 조금씩 나와요! 계속 힘주세요! 계속!”

마리는 은지에게 시켜서 윗배를 계속 누르게 하고, 무통주사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연 분만을 하기 위해 산모에게 힘을 주게 했다.

“으으으으! 꺄아아아앗!”

“앗, 안돼요! 그거 거즈 뱉으면….”

거즈 물려 어금니 꽉 깨물고 힘을 주다가 순간 뱉어내져 집안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수영.

그리고 비가 더욱 더 거칠게 쏟아지다가 벼락이 쳤다.

***

탁­ 탁탁­

“제발… 아가야. 제발 숨 쉬어라.”

“….”

마리는 피에 젖은 채 태어난 아이를 더운물로 씻긴 다음에 등을 조금씩 두들기고 계속 비벼대면서 초조하게 외쳤다.

아직 탯줄도 자르지 못했는데, 겨우 태어난 아기가 숨을 쉬지 않으니 산파로 온 마리와 은지가 더 초조했다.

갓 태어난 신생이를 계속 다독이는 마리를 보면서, 은지가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을 때…

쿨럭­ 쿨럭­

으헤 으에에에엥!!!

“됐다! 아기 운다!”

마리는 그제야 안도하면서 집게와 요오드를 잔뜩 바른 가위를 가지고 탯줄을 잘라줬다.

그리고 배꼽 부분을 확실하게 소독해준다음에 면포에 담긴 아이를 수영에게 안겨줬다.

“수영씨, 딸이에요.”

“아아… 아, 하하….”

수영은 겨우 태어난 딸을 안으면서 탈진한 상태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쿠우웅­

“!?”

그리고 김준의 차 소리와 함께 뭔가 거칠게 닫히는 소리에 마리가 다시 움직였다.

“은지 언니! 여기 좀 봐줘요.”

“으, 으응!”

진짜 빗길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난 거라면 저쪽도 엄청 다쳤을거라며 직감한 마리가 밖으로 나온 순간… 거기에는 피투성이가 된 명국이 쏟아지는 빗물에 계속 상처가 쓸리는 것을 확인했다.

“아, 아앗?!”

“마리야, 얘 어떻게 살릴 수 있겠냐?”

옷은 여기저기 찢어졌지, 찢겨진 옷 너머로 찰과상은 심각하지. 거기에 비까지 맞아서 소독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지.

일단은 산모 말고 반대쪽 창고로 쓴다는 방으로 명국을 데리고 치료를 하기 위해 의료도구를 챙기고 황급히 달려왔다.

“으으윽, 크윽….”

“의식은 있어요?”

짝짝­ 짝­

“야, 명국아! 명국아! 이 새끼 아까까지는 의식 있었는데…”

김준의 말대로 중간 지점에서 무전기로 연락한다고 빗길에 급하게 오다가 미끄러져서 구른 상태였다.

그대로 날아가서 난간을 넘어가 두렁에 처박힌 것을 김준이 발견했고, 주변에 좀비가 없다는 게 정말로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감염 이전에 지금 외상이 너무 심각해서 문제였다.

“골반도 덜렁거리고… 다리도 부러진 것 같고, 지금 내장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상황에서 마리는 점점 피부색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하는 명국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수혈도 해야 하는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