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221 이제 좀비는 잘 잡아요.
* * *
띵
파앙
김준과 마리가 동시에 발사하는 연지탄과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두 마리씩 좀비를 잡아갔다.
그동안 은지나 에밀리, 도경이 정도만 능숙하게 쏘던 석궁이었는데, 수렵용으로 된 스코프 달린 전문 보우건을 쓰자 명중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
십여 마리의 좀비를 전부 쓰러트린 뒤로 김준은 총을 옆에 놓고 다시 출발 준비를 했다.
“좋은 콤비였어요.”
“이제 좀비는 잘 잡네?”
“걷는 좀비라면 여유있게 잡을 수 있어요. 뛰는 애들은 좀 위험하지만.”
“흐으음.”
김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걷는 좀비에 대해서는 이제 내성이 생겼다.
그리고 좀비 만큼이나 무서운건 역시 사람이었다.
행상인 아재에게 들은 말로 실제 제일파는 규모가 크고 위험한 존재이기는 해도, 두목이 가진 총에 총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 일은 없을 것이고, 무기도 기껏해야 사시미칼이 전부일거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준은 그냥 신릉면으로 쳐들어가서 제일파를 모조리 몰살시킬까도 생각했다가 관뒀다.
안 그래도 좀비들만 넘치는 곳에서 괜히 쳐들어가서 사람들 죄다 죽이는 것은 아직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지나, 이미 한 번씩 털어버린 상가들을 지나칠 때, 김준은 한 곳에서 멈춰섰다.
“공판장이다.”
“아, 여기! 몇 번 털었던 곳.”
그동안 명국의 집에 갈때마다 좀비가 많아서 몇 번 우회한 것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가서 털던 곳이었다.
하지만, 몇 번에 걸쳐서 털어도 아직은 쓸만한게 조금 있었다.
“잠깐 기다렸다가 한 번 나가볼게. 천천히 나와.”
“네, 뒤에 살펴볼게요.”
인아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혹시라도 어디선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를 경계했고, 마리 역시도 나갈 준비를 했다.
끼이익
깨지고 녹슨 유리문을 열면서 안으로 들어오자 휑한 가판대 속에서 아직 남아있는 휴지나 칫솔, 비누, 양초등의 생필품들이 보였다.
김준은 안을 뒤적거리다가 그 속에 있는 창고까지 열었고, 그 안에서도 한번씩 털었던 종이 박스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아무도 안 왔었네?”
김준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리와 인아를 나오게 했다.
더블백을 잔뜩 싸들고 나온 인아를 보고 마리가 가방 두어개를 받아서 챙길 준비를 했다.
“일단 챙기고 있어.”
“네~ 네~”
마리가 안으로 들어가 하나씩 챙겼다.
먹을 거는 거의다 챙기면서 남은 잡동사니를 담았는데, 대부분은 화학조미료 등이었다.
“빙초산 챙기고, 이건 뉴슈가? 이것도 챙기고, 그 다음은….”
마리가 하나둘씩 챙길 때, 옆에서 인아 역시도 휴지나 양말, 핀셋 등을 챙겼다.
김준은 엽총을 든 채 바깥에서 경계를 서면서, 그녀들이 루팅을 하는 동안 기다렸다.
그때, 김준의 주변으로 움직임이 보였다.
바스락
“?!”
철컥
김준은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고, 이번에도 들개나 너구리였으면 싶었지만, 골목에서 피에 젖은 손이 올라왔다.
그어 그어어어어
타앙!!
김준은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좀비가 멧돼지 탄에 맞아 피를 뿌리면서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게 하나가 아니었다.
우워어어어
어어어 어어어어어억
바람빠지는 하울링 소리와 함께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좀비들.
이미 몸이 썩어서 두 눈이 뿌얘진 상태에서 손을 내밀고 서서히 다가오는 좀비들.
한둘이 아닌 상황에서 김준은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철컥!
두 발짜리 엽총이 동난 순간, 장전의 시간도 없이 바로 메고 있는 다른 엽총을 꺼냈다.
세로로 두 발 총열이 된 클레이 사격장용 엽총을 겨눠서 바로 발사했다.
탕 탕
철컥
네 발을 발사한 뒤로 거리를 뒀을 때, 김준은 그 찰나에 장전을 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멧돼지탄 두 발을 꺼냈다.
하지만 그때, 걷는 좀비들 사이에서 한 마리의 별종이 있었다.
캬아악 캬아아아아
“!?”
장전 중에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미친 듯이 달려오는 상황에서 김준은 심장이 멎을 뻔 했다.
“흥!”
하지만, 그 상황에서 장전을 마친 뒤로 3m까지 달려와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미는 좀비의 머리를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촤아아아악
찰나의 순간으로 바로 엽총을 발사해서 뒤로 물러나게 한 다음에 바로 두 번째 발도 날린 김준.
캬악! 캬아아악!!! 아아아아악!!!!
두 발을 맞고도 계속 몸부림 치는 좀비를 향해, 김준은 바로 엽총에 손을 떼고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뽑아다가 발사했다.
탕 탕 탕
털썩
권총을 뽑아 연달아 발사했을 때, 뛰는 좀비도 버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다행히 피가 여기까지 튀지는 않았다.
“후우”
김준은 헬멧의 고글 부분을 열면서 겨우 숨을 돌렸고, 안에서 루팅을 하던 마리와 인아는 석궁과 새총을 들고 나왔다.
“뭐, 뭐에… 꺄앗!”
“뭐야? 왜 이렇게 가까워요?”
“됐어. 안에서 챙겨.”
김준은 근처에 있는 장대를 가지고 확실히 죽은 좀비를 밀어냈고, 몸이 돌아가자 40대 남성 정도로 보이는 좀비의 몸에서 새카만 피가 콸콸 쏟아졌다.
김준은 품 안에서 드링크 병에 담긴 희석 락스를 꺼내 여기저기 뿌려댔고, 잠시 후 얼추 물건을 챙긴 인아와 마리가 그것들을 뒷좌석에 담았다.
“잘 챙겼어?”
“생필품하고 비누나 세제, 조미료 정도요.”
“잘 했어.”
김준은 다시 차키를 꽂고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명국의 집을 보면서 한때 논밭이었던 곳들은 물이 마르고 잡초만 무성했다.
그런데 그 근처에서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오빠, 저거 좀비 맞죠?”
“음?”
논밭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
거기에 화살까지 꽂혀 있는 것이 명국이 잡은게 맞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한둘이 아니었고, 명국네는 아직도 집 근처로 달려오는 좀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 동네가 진짜 좀비가 많다니까.”
김준은 혀를 차면서 명국의 집까지 널브러진 좀비 여럿을 지나쳐서야 도착했다.
빵 빵 빠앙
세 번의 클락션을 울리고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음?”
빵 빵 빵
클락션을 다시 울려도 반응은 없었다.
“뭐야, 이거?”
“안에 사람 없는 거 아니에요?”
“흐으음.”
“봐바요. 문도 열려있네?”
언제나 쇠사슬로 굳게 잠가놨던 문이었는데, 열려있었다.
김준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혹시나 싶어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문을 연 다음에 차를 안으로 가서 주차시켰고, 조용히 담배를 물면서 기다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니겠죠?”
마리가 걱정스럽게 물었을 때, 뒤에 있던 인아는 창밖에 있는 사육장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거 같아요. 저기 닭이랑 오리들. 물하고 먹이 먹는거 보면요.”
정말 사육장 안에는 갓 먹이를 준 것 같이 대야에 빻은 과자가루가 가득 있었고, 닭이랑 오리는 그걸 맛나게 먹고 있었다.
김준은 아무래도 이상해서 마리와 인아에게 안에 있으라고 한 다음 엽총을 장전하고 조용히 나왔다.
그리고는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다가가 안의 문을 열었다.
덜컥
“!?”
안에는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고, 짐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안에는 갓 도축한 닭과 야채가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할게 없는 집 안이었다.
“어디로 간 거야. 대체….”
김준은 바깥으로 나와서 담배를 한 대 더 물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눈치를 보던 마리가 슬며시 나오려고 할 때, 그가 손을 뻗어 제지했다.
그리고는 사육장 안에 있는 닭과 오리, 반대편에 있는 메추리 무리를 보면서 안 온 사이에 또 부화한 병아리들이 많이 커졌다.
“이 녀석이 와야 뭘 교환을 하고, 닭을 받아가는데.”
그렇게 김준은 담배를 태우다가 다시 집 안에 들어와서 조용히 기다렸고, 할 것 없이 지루한 시간이 계속될 때였다.
부우웅 우우웅
“어? 오빠, 뒤에!”
“!?”
김준이 사이드 미러를 보자 안에서 삼륜 오토바이를 탄 명국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짐칸에 지붕까지 설치되어있었다.
김준이 반가운 마음에 클락션을 울렸고, 깜짝 놀란 명국은 익숙한 캠핑카를 보고서는 바로 멈췄다.
“아, 형님.”
“안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더라.”
“그게요. 같이 다녀왔거든요.”
“음?”
명국이 바로 달려가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내 수영이 나왔다.
“아, 그… 오셨어요?”
“아우, 제수씨 힘들어보이네요.”
만삭의 몸으로 남편이 부축해야 겨우 움직이는 수영의 몸상태였다.
슬리퍼를 신은 발도 퉁퉁 부어있었고,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명국이 그녀를 안아서 겨우 방으로 데려갔다.
마리와 인아 역시 그것을 보고는 천천히 나와서 서로 인사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와, 이제는 진짜 출산일이 임박했네요.”
“…네.”
“이게 혈액순환이 잘 안 돼서 그런거에요. 발은 계속 주물러서 풀어줘야 해요.”
마리가 수영의 몸 상태를 살피면서 도울 때, 김준은 명국과 같이 나와서 사육장을 살폈다.
“예정일을 모르니까 진짜 조마조마하더라고요.”
“그렇지. 주변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번 주부터 밖에 나가서 물건 챙길때는 그냥 같이 나가게 됐어요. 좀비는 못 보게 짐칸 만들고 문 닫아서요.”
“그래, 잘 했어.”
그렇게 챙겨온 물건들을 보자 쌀가루와 고춧가루, 그리고 유리병에 담긴 밀봉된 들기름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종자 좀 가지고 왔는데, 앞마당에 심을 수 있겠어?”
“저희야 좋죠.”
“좋아, 그럼 천천히 거래나 하자.”
김준은 언제나 그랬듯이 거래를 위해서 각자 가진 물건들을 살폈다.
그 사이 마리가 수영을 돌보고, 김준과 명국이 창고로 향했을 때, 인아는 조용히 사육장의 닭들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 중에서 가장 큰 장닭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