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220 여전사 양성, 8인분.
* * *
여느때와 똑같은 날.
김준은 인아와 가야와 같이 야식을 먹으면서 최근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네. 이대로 가다간 썩을 수도 있어요.”
“그건 안 되지.”
최근 들어 1층과 옥탑방은 따사라온 햇빛 아래 화학 비료와 풍족한 수분 보충으로 농장이 되었다.
인아가 전담해서 가장 빨리 자라는 순으로 버섯도 키우고, 시금치에, 깻잎에, 고추에, 토마토에 총각무까지 있는대로 재배하면서 이것만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 넘치는 건 모자름만 못하다고 했던가?
그동안 주변에 씨앗도 나눠주고, 다른 생존자들 역시 그걸로 농사를 지으면서 그럭저럭 지냈는데, 공급 과잉이 되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 집이 농사 짓기에는 좀… 좁죠?”
인아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기껏해야 텃밭 수준이고, 이만큼 공간 내서 키우는 것도 용했어.”
“그래서 배추나 무나 감자 같은 것들은 절 같은곳에서 가져오잖아요?”
가야 역시도 그 일을 알아서 남은 씨앗에 대해서 물자 조사를 한 수첩을 건네줬다.
김준은 그것들을 보고서 결심했다.
“명국이네 가야겠다.”
“아, 그 닭 키운다는 부부요?”
인아가 물어보자 김준은 생각해보다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너는 가 본 적이….”
“없어요.”
“진짜?”
“저는 그 절하고, 뭐냐 노래방 언니들 있는데만 거기만!”
“오~ 그랬구만.”
김준은 내친김에 잘됐다 생각하고, 인아를 대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파트너는….”
“마리, 데려가요.”
“뭐? 에이 아니야. 걔는 당분간 안 데리고 갈 거야.”
마리를 데리고 나가서 타 생존자들에게 의사라는 것을 알리고 생존물품 교환하는데 굉장히 유용하긴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가는 것으로 가야가 맹장이 터져 급성 충수염으로 앓았고, 행상인 아니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더 끔찍한 생각을 했다면, 가야가 아프다고 은지랑 같이 갔는데 행상인 아재가 나쁜 마음 먹고서 김준의 부재시에 그곳을 조폭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알렸다면…
“안 돼!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돼.”
“오빠… 저 진짜 괜찮으니 그렇게 해요.”
가야는 김준의 손을 슬며시 잡으면서 말했다.
언제봐도 색기있는 곱슬머리에 눈을 깜빡일때마다 한쪽 눈의 쌍커풀이 도드라졌다.
“저도 거기 가봐서 알아요. 셋이나 있잖아요?”
“셋? 둘이 아니… 아, 뭐.”
가끔 잊고 있지만, 거기는 둘만 사는게 아니라 뱃속에 새 생명도 있는 곳이었다.
사실 그래서 마리를 대동하면서 간간이 임신중독증이나, 혈압 문제 등에서 관리를 해주고는 했었다.
“거기 다녀올 동안 또 별일은 없을 거에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김준이 그냥 만류할수도 없었다.
“정, 그러면 내일 마리한테 물어볼게.”
“내일이요? 그냥 여기서 묻죠.”
“!?”
인아가 잠시 일어나서 거실에 있는 무전기를 가져오더니 바로 말했다.
“언니, 준이 오빠가 닭키우는 농장 간다는데, 갈 거예요?”
[치직 어? 어? 잠깐만! 이 판 나가리!]
[치직 아 그딴게 어딨어!?]
[손목 맞기 가지고 너무 진지해 하지마.]
무전기 너머로 3층 옥탑방에서 벌어지는 일이 귀에 모두 들어왔다.
요새 애들 사이에서 포커하고, 화투를 다시 치더니만 무섭게 퍼지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마리가 들어왔고, 그녀는 김준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면서 은근슬쩍 옆에 착 달라붙었다.
“루팅 나가요?”
“어, 씨앗 가지고 교환좀 하려고.”
“그랬구나~ 그럼 저도 나가야죠.”
몸을 배배 꼬면서 계속 부비대는게, 요새 많이 쌓인 것 같았다.
가야나 인아나 이제는 그런 여우짓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넘어갔고, 김준 역시 딱히 숨길 생각도 없이 그녀의 등을 주물거렸다.
엉덩이나 가슴도 아니고, 뒷목의 머리카락이나 어깨, 등을 쓰다듬으며, 옷 안에 브라끈 감촉 느끼는 게 그렇게 좋나보다.
그렇게 마리까지 오니 김준은 인아와 같이 주변에 대해서 루팅 계획에 대해 말했다.
“일단 어디로 가는지는 잘 알지?”
“그렇죠.”
“그리고 저번에 신작로 통해서 가는 곳 있잖아? 가야가 오토바이 하이바하고, 레이싱 슈츠 얻은데.”
“네~ 네~”
“거기 넘어가면 구도심이 하나 있는데, 당재리라고.”
당재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뀌긴 했지만, 현지인인 김준 입장에서는 여전히 당재리라 불리는 곳이었다.
김준이 백번 말해야 소용 없으니 바로 보여주겠다면서, 명국의 집 주변으로 있는 수많은 논밭에서 가야랑 마리랑 같이 갔던 수로 넘어서 있는 동네와 바로 그 너머의 단지를 가리켰다.
“여기가 당재아파트 거리라고, 한 800세대 되는 동네야. 웬만한 건 다 해결 가능하지.”
“오오~ 그렇구나?”
이 소사벌시라는 곳은 아직도 탐험하지 않은 곳이 많았고, 그래서 김준이 새로운 곳을 간다는 말에 세 아가씨가 반짝였다.
“내가 몸만 괜찮았어도 직접 가는 건데….”
“뭐, 이번엔 제가 대신 갈게요. 최근에 안 간지도 오래됐고.”
인아가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게, 지난 날 비와가지고 중간에 차 퍼지고, 라나랑 김준이랑 같이 캠핑카에서 라면 먹다가, 행상인 만나 차 고치고, 공단면 황 여사 일행 만나고 올때였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확실한건 이제는 김준을 보고서 피하지도 않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겪은’ 존재 인지라 그냥 모든 것을 담담하게 넘겼다.
“자, 그럼… 준비하고 손발 한번 맞춰볼까?”
“네~ 네~”
좀비가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가는데, 그녀들은 상당히 해맑았다.
***
“자, 출발한다.”
“네~ 네~”
마리는 콧소리까지 내면서 조수석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김준이 분위기 너무 해이해진거 아니냐는 말을 했을 거다.
하지만, 김준 자체로도 동탄이나 아산같은 타 지역 다녀오고 좀비웨이브를 겪다보니, 상대적으로 지금의 필드가 상당한 이지 난이도라는 것이 몸에 뱄다.
뛰는 좀비가 거의 나오지 않고, 그나마도 잦은 루팅으로 인해 나와서 잡아대니 진짜 동네가 조용해지긴 한 것이었다.
“뭐, 그래도 바깥에 아직 좀비들은 많으니까 정신 단단히 차려!”
“네, 그럴게요.”
마리는 신형 석궁을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그랬듯이 처음에는 골목을 나오고, 폐허가 된 상가 일대를 돌면서 재래시장으로 간다.
이제는 바깥에 내놓았던 전통시장의 생선과 고기, 각종 음식들이 썩다 못해 아예 분해가 되어서 흔적만이 남았다.
간간이 차가 움직이는 소리에 후다닥 움직이는 쥐와 벌레떼들, 그리고 그것을 노리는 고양이도 보였다.
“쟤들만 살판 난거지.”
“맞아, 저번에 은지 언니한테 들었는데 너구리도 나온다면서요?”
“어, 막 돌아다니더라.”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너 혹시 라면 봉지에 나온 그렇게 생긴 걸 너구리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어, 아니에요?”
그러자 뒤에 있던 인아가 그 이야기를 듣고서 넌지시 말했다.
“마리 언니, 너구리 엄청 위험해요. 더 시커멓고, 이빨도 날카롭고, 물리면 광견병 걸려요.”
“어… 그래?”
“라나도 예전에 너구리한테 한 번 물어뜯길 뻔 했다잖아요.”
“아! 그거 기억 나. 고물상 털다가 갑자기 뭐 튀어나온거 보고 좀비한테 물린줄 알았다고.”
어째 가는 길에 그동안 루팅에서 있었던 여덟 아가씨의 썰만 이야기해도 한 시간이 금방 갈 것 같았다.
그리고 재래시장 위에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 김준 역시 하천 다리를 보고서 멈칫했다.
“오빠, 왜요?”
“자! 지금부터 입 꾹!”
“웁?!”
김준이 앞으로 보고서 바로 클락션을 울렸을 때,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스믈스믈 올라오는 것들이 있었다.
“어우! 좀비!”
“어쩔거야?”
“같이… 쏴도 되겠죠?”
마리의 말에 김준은 뒤쪽을 향해 손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인아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후좌우를 살폈다.
“하천쪽에서 뭐 올라올건 없는거 같아요. 개 몇 마리가 전부에요.”
“아래는 괜찮고, 뒤에는?”
“저기 불탄 가게 두어개에 뭐 없어보이는데요?”
“오케이, 그럼 됐어!”
적어도 사각에서 기습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 김준이 공기총을 꺼냈고, 마리 역시 석궁을 겨눴다.
어제부터 시작해 좀비가 있는 바깥에 나간다고 했는데, 아주 싱글벙글했던 그녀였다.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좀비 보자마자 손으로 입틀어막고서 벌벌 떨고 어떡해어떡해! 이러지도 않았다.
좀비를 먼저 발견하고, 무기인 석궁을 겨누면서 침착하게 스코프를 통해 녀석의 머리를 노렸다.
거기에 맞춰 김준 역시도 반대편에서 공기총을 들고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띵
파아아앙
거의 동시에 발사된 공기총 연지탄과 석궁의 알루미늄 화살.
파앗
파각!!!
연지탄은 정확히 좀비의 미간을, 그리고 마리가 쏜 알루미늄 화살도 좀비 하나의 눈을 꿰뚫어서 얼마 남지도 않은 썩은 피를 쏟아내게 했다.
크어어 으어어어
철컥
끼이이이익
침착하게 연지탄을 장전하고, 대쉬보드에 있는 화살을 꺼내서 걸어놓는다.
그리고 밖으로 내밀며 안전장치를 풀고는 둘 다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도 둘 다 머리를 꿰뚫어서 끝냈다.
“남은 좀비 여섯.”
“아니요. 일곱! 저기 나무 뒤에 흔들거리는 것도 좀비 같아요.”
“잠깐만… 어, 맞다!”
한때는 미디어에 나온 톱스타들은 이제 능숙하게 좀비를 잡으면서, 생존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김준과 마리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좀비들이 픽픽 쓰러졌고, 열 마리가 넘는 개체들이 손쉽게 무너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