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219 장르가 바뀐건가?
* * *
“오~ 좋은거 있네?”
김준은 밤새 냄비에서 고아내고 올라온 새하얀 국물을 보고 바로 떴다.
최근에 인아하고, 은지가 냉동실에 소뼈를 가지고 설렁탕 만든다고 하더니, 제대로 고아졌다.
김준은 데운 설렁탕에 냉장고에 있던 파를 조금 썰어넣고, 소면까지 불려서 김치랑 같이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와~ 국밥~”
“먹자!”
에밀리는 몇 년만에 먹을지 모를 설렁탕을 두고서 바로 한술 뜨고는 바로 소금을 챙겼다.
“음~ 너무 좋아.”
“맛있네.”
아마, 아침에 일어났다면 식사 메뉴는 설렁탕이었을거다.
특히 어제 술 진탕 먹은 애들이 많아서 아마 숙취로 머리 붙잡다가 겨우 먹을거다.
“역시 하고 난 뒤에는 국밥이야.”
“음?”
“오빠하고도 그렇잖아? 그 선지에다 내장 끓인거.”
“아… 양평해장국.”
생각해보니 김준도 과거 여친 사귈 때, 술 진탕 마시고 모텔 다녀온 다음에 아침에는 무조건 해장국 먹고 돌려보냈었다.
그것도 벌써 몇 년전인데, 이제 오니 그런 건 일상이 되었다.
“후우~ 속풀린다.”
에밀리는 얼큰한 설렁탕 국물을 마시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아, 계속 아파.”
“아프다고?”
“쉬지도 않고 박아댔잖아.”
“….”
새벽에 술기운에 눈 맞아서 짐승같이 했던 둘이었고, 지금 이거 한 그릇 먹은 다음에 급속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나 한숨 자련다.”
“같이 갈래?”
“또?”
“어, 생각은 했는데 보지가 너무 아파서 안 되겠어….”
그 순간 김준은 조용히 에밀리의 머리를 토닥이면서 다시금 말했다.
“아, 쫌.”
“아, 준오빠 자지보지 이러는 말 굉장히 싫어하지?”
“알면서 그래?”
“그럼 짬….”
그 순간 김준이 손을 들었을 때, 에밀리가 바로 양반다리를 하면서 엉덩이 못 때리게 바닥에 딱 붙었다.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방으로 들어갔고, 에밀리는 바로 소파 위로 올라오다 뒹굴거리면서 아랫배를 잡은채 웅크려 잠들었다.
그리고 김준이 눈을 뜬 건 오전 11시였다.
“어우 푹 잤네.”
새벽에 스테미너 장난 아니게 쓴 다음에 나오자 애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김준을 맞이했다.
“아, 일어나셨어요?”
가야가 반갑게 맞아줬고, 그 옆에 은지는 아침 거르고 나온 김준을 보고는 묘한 눈으로 고개 인사를 했다.
“다른 애들은 뭐해?”
“위에서 포커 한다고 하던데요? 에밀리는 아침부터 한 그릇 더 먹고 자고.”
“아….”
“설거지는 됐어도, 그릇만 싱크대에 놔 주시지….”
“…미안.”
은지가 다 알고서 한 말에 김준은 멋쩍게 웃었다.
그 뒤로 점심을 앞두고 무척이나 평화로운 날이었다.
점심 메뉴는 설렁탕 국물에 밥 대신 소면을 말아서 만든 국수였고, 깍두기가 떠오른다는 말에 창고에 쌓아뒀던 무를 캐다가 즉석에서 김장까지 했다.
그 와중에 김준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기껏해야 김장하는 김에 쓰는 칼이나 갈고, 도마로 만들 나무나 깎고, 집 어디 전구 하나 나간거 없는 튼튼함에 한번씩 돌아봐도 허전했다.
“창고는 상태 괜찮아?”
그 말에 가야가 바로 답했다.
“오빠, 하도 나무 상자 만들어서 남아 돌아요.”
“흠, 흠~ 공구들은?”
“저번에 WD뿌려서 녹 싹다 긁어냈잖아요?”
이번엔 라나가 한 마디 했고, 김준은 갓 담근 깍두기와 겉절이를 보다 말했다.
“사냥한 거 고기 손질을….”
“네~ 네~ 인아가 양념장 만든걸로 지금 푹 재워놨어요. 며칠 걸리면 고기 부드러워 질 때 구울게요.”
이번엔 은지가 바로 답하자 김준은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서는 다른 애들이 수군거렸다.
그리고 은지가 다시 한 번 김준을 보고는 넌지시 말했다.
“준이 오빠가 할 거 없어서 심심하신가 보네.”
“그런 거 아니야.”
“저번에 사냥 이후로 좀이 쑤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에밀리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럴 리가, 낮이어서 그렇지 밤이 되면 또 재미를…웁?!”
“눈치 좀 챙겨라!”
“오~ 밤에 또 그러셨어?”
에밀리 양 옆에 마리와 도경이 그녀를 제지했고, 옆에옆에 있던 나니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더니 식은땀까지 흘렸다.
“진짜 슈퍼맨이네~ 아주 그냥 매일 몇 번을 하는 거에요~”
라나가 슬며시 김준 옆에 다가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고, 그 와중에 다른 년들은 참 잘도 한다고 생각한 도경이 넌지시 자기 가슴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이거인가….”
“아니, 이거.”
옆에 있던 에밀리가 손가락으로 가슴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 고간을 쿡쿡 찌르자 순간 도경이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오늘 하루도 끝이 났고, 김준은 낮에 하도 자서인지 밤에 홀로 나와서 계단에 앉았다.
슬슬 밤도 더울때였고, 선풍기라도 꺼내놔야 하나 생각할 때, 그 뒤에서 문이 열렸다.
끼이이
“?!”
문이 열리면서 나온 것은 가야였다.
“몸은 괜찮아?”
“네, 이제는 먹는것도 문제없고요.”
가야가 슬며시 티셔츠를 올렸을 때, 이제는 거즈 하나 붙인걸로 끝이 난 상처였다.
많이 아물은 상처를 보니 안심이 되는 김준이었고, 가야는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휘유~”
“….”
가야는 조용히 김준을 보고는 곱슬거리는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댔다.
김준 역시도 그 상황에서 조용히 그 미역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등까지 어루만져줬다.
“엄청 자유롭지 않아요?”
“그러게.”
“그럼 엄청 좋은거잖아요?”
잔잔한 미소로 김준에게 기댄 가야의 말.
김준은 조용히 손으로 강아지 쓰다듬듯이 가야의 머리나 등을 쓸어내리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좀비가 없으면 모두한테 편하지.”
“네, 그렇죠. 우리도 위험할 거 없고요.”
“근데 그 주변에 아무것도 없더라. 기껏해야 개나 너구리나 고라니 이런 거만 보이고.”
“사람이 없는데, 동물이 덮은거네요.”
“그렇지.”
김준은 조용히 숨을 내쉬다가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자기 옆에 착 달라붙은 가야를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리면서 조용히 품 안에 집어넣었다.
아무리 할 거 다 한 사이라고 해도, 다친애 옆에서 연기나 뻑뻑 내뱉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그저 성욕이 끓는 것도 아니고, 편한 상황에서 난실거리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서 새까만 어둠속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 때, 김준이 입을 열었다.
“나중에 좀비를 모두 잡는다고 해도 말이야.”
“으흠~”
“과연 살아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글쎄요? 이 동네만 하더라도 몇 십명은 될 테니, 아마 다른 곳도….”
“알잖아? 다른 동네에서 뭔 꼴 났었는지.”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 모르죠? 멀리 가는 만큼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요.”
“그럴수도 있지.”
“저는 안 가봤지만, 그 밑에까지 내려가서 있다는 소 키우는 농부 가족이라던가, 거기서 더 가면 또 사람들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거기까지 계속 돌려면 1박 2일이 아니라 3,4일은 걸릴걸?”
“그러니까요~ 그렇게 갈때마다 사람이 있는 건 보이잖아요?”
“….”
가야의 말에 김준은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머리카락을 모아서 포니테일로 만들었다.
그녀 역시도 그걸 신경 쓰는지 주머니에서 고무줄 하나 꺼내, 김준이 모아준대로 묶어 올려서 헤어 스타일을 고정시켰다.
“감촉이 좋다니까.”
“아, 고마워요.”
그리고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리 이렇게 사는 것도 얼마나 갈지 몰라.”
“…?”
“좀비는 없지만, 사람도 없어지고 그러면서 메말라가는거야.”
“그렇네요. 어디서 새로 좀비가 나오는 건 아닐테고….”
“인구대로 사라진다, 인구대로….”
이전에는 좀비가 너무 나와서 집 근처까지 쳐들어와서 공방전으로 전기철망 설치하고, 총으로 쏴대서 잡았는데, 이제는 없으니까 그만큼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서 생각이 많아진 김준이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좀비가 모두 사라지고 인간의 사회로 다시 돌아온다 해도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걸 생각하니까 어쩌면 15만이 살던 이 동네에서 생존자가 100명도 안되는 지금 이곳처럼 전세계적으로 과연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겠는 김준이었다.
“씁쓸하긴 하네. 우리야 운이 좋아서 계속 살아있는거지.”
“네, 맞아요. 진짜 운이 좋았죠.”
가야는 김준의 옆에 붙으면서 눈을 감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계속 운 좋게 살아있자고요. 저도 이 상황에서 맹장 떼고도 살아있잖아요~”
“그렇지.”
“그… 에밀리 말마따나 좀비 다 잡아서 할 거 없으면, 우리들하고 놀면 되잖아요? 그… 섹스도 그렇고.”
“너도 이젠 자연스럽구나?”
“아하하….”
이렇게 말하니 더 할 말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약한 몸 상태에, 맏언니라고 이거저거 다 해서 부담감도 장난 아니었고, 게다가 김준과 8명의 아이돌들의 묘한 분위기의 동거속에서 자진해서 자기가 먼저 대주던 가야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 더 장한 맏언니였고, 지금은 은지한테 다 맡긴다 하더라도 창고나 안에 있는 물자 관리 맡기면서 꼼꼼한 모습에 안심하고 밖을 다닐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니 김준은 바로 자리에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휘유 백 번 이런 이야기 해야 궁상이지. 내일 일이나 준비해야겠다.”
“네~ 네~ 내일 뭘 할지 생각해보죠.”
가야 역시도 일어나서 들어가려 할 때, 김준은 크지는 않지만 슬랜더하고, 나름 운동한 그녀의 엉덩이를 보고서 가볍게 쳐 볼까 하다가 그냥 들어갔다.
다음주 생일 되면, 그때나 다 나았을 때 충분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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