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217 이걸 어떻게 구했어?
* * *
김준과 일행들은 집으로 향했다.
그 뒤에서는 행상인 아재 양근태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차가 멈춘 순간, 김준은 무전기를 통해 행상인 차가 왔으니 나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전했다.
저번에 가야 일로 인해서 여자들 여럿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경계는 해야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만, 한 탕 하고 오셨나베?”
“아저씨도 다시 오신 거 보니까 좋은 거 많이 가져오셨어요?”
“내 저번에 말했잖아? 두족류 좋아하냐고?”
“!?”
양근태는 안에서 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꺼내 김준에게 건네줬다.
김준이 그것을 열어보자 그 안에는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아, 아니 이게….”
“싱싱하지? 배터리로 공기까지 넣어서 바로 먹을 수 있어.”
스티로폼 박스 안에 든 것은 쭈꾸미였다.
쭈꾸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낙지도 몇 마리 있어서 그동안 통조림 생선이나, 황여사 일행을 찾을 때 먹던 연못의 민물고기 매운탕을 제외하면, 정말 최고의 제품이었다.
“그래, 자네는 뭘 구해왔는가?”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아~ 아~ 그거 안 물어보기로 했잖나? 나 입 무거운 사람이야?”
이쪽에 관한 이야기도 그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니, 다른 생존자 일행에 대해서도 묻지 말라고 하는 행상인 양근태의 대답.
김준은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가져온 사냥감들을 보여줬다.
“어이구~ 사냥을 했구만? 오리가 몇 마리야?”
“한 열 마리 잡았어요. 이걸로 교환 됩니까?”
“오리도 나쁘지는 않은데… 거기에 밀가루도 좀 있어?”
“엔진오일 있으면 드리죠.”
“그건 넘쳐나지!”
양근태는 바로 차 안을 뒤적거리면서 안에 있는 황소 로고 모양의 트럭용 엔진오일을 꺼내 김준에게 건네줬다.
그 거래를 유심히 보고 있던 은지는 조용히 가진 물건들을 살펴봤다.
“언니, 저기….”
“음?”
나니카가 가리킨 곳에서는 2층 창문에서 커튼을 살짝 젖히고서 힐끗거리는 눈들이 많았다.
“흐음, 이것도 거래가 되려나?”
“응, 네?”
은지는 침대 밑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다가 더블백을 꺼냈다.
안에서 나온 것은 아까 미용실에서 잔뜩 챙겼던 샴푸와 린스가 나왔다.
그리고는 김준과 양근태가 거래하는 와중에 그것들을 가져와 물었다.
“저기요, 이것도 교환이 되나요?”
“응? 이거 뭐야, 샴푸네?”
“린스도 있죠.”
“뭐, 쓸 사람은 많으려나?”
“이거… 그래, 뭐 씻는 거니 필요는 하지. 그럼 여기 있는 쭈꾸미랑 낙지 중에서 두어 마리만 빼고….”
“가위도 드리죠.”
“!”
“여기 있는 거 다 가져가려면 뭘 더 줘야 하죠?”
“은지야!”
김준이 은지를 제지하려는 순간, 양근태가 크게 웃었다.
“아이고~ 아가씨가 아주 장사를 잘 하네? 하하하하!!!”
“진짜 다 파실겁니까?”
양근태는 호기롭게 차를 탕탕 치면서 거래 조건에 대해 말했다.
“밀가루 한 포대에 오리 세 마리, 여기있는 샴푸하고, 가위 두 자루. 이거면 됐소.”
“그리고 여기 있는 낙지랑 쭈꾸미랑 엔진오일 교환, 그래요. 합시다.”
김준과 양근태가 악수를 나눴을 때, 은지는 그 자리에서 하나 더 꼈다.
“혹시 다시 오실 때 말이죠.”
“음?”
“게도 있으면 좀 구해주세요. 쪼그만거 말고, 큰 꽃게.”
“호! 아가씨 요리 좀 하나배?”
“구해주실 수 있나요?”
“하하하, 한 번 알아봐야겠어.”
양근태는 오늘의 거래가 만족스러운지 차에 한가득 싯고서 바로 돌아갔다.
김준은 사냥 이후로 양근태와의 거래로 풍족한 식량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거기서 은지가 나서서 거래까지 잘 마쳐서 어깨가 가벼웠다.
뒤늦게 행상인 트럭이 돌아갔을 때, 하나 둘씩 나오는 애들을 보고 김준은 오늘 잡아온 것들을 준비했다.
***
오늘 하루 잔뜩 준비한 식량들을 보존하기 위해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김준이 손질해서 토막친 고라니는 인아가 대야에 양념장을 만들어서 장조림과 불고기 용으로 재워놨다.
“식초에, 와인에, 양파에, 간장, 마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인아는 수시로 양념의 맛을 본 다음에, 에밀리와 라나를 시켜서 고라니 고기를 재웠다.
“자, 양념장은 이쯤 됐는데….”
“으~ 징그러워.”
“소고기나 멧돼지 고기는 잘 만졌으면서?”
“그래도요! 고라니면 그거 아니에요? 막 이상하게 울어대는 쪼끄만 사슴.”
“맞아.”
“예전에 행사 가다가 매니저가 그거 치여가지고 사고났었는데, 차 바퀴에 들어간게… 으으으!”
라나는 옛날 일을 떠올리면서 소름이 돋는지 두 팔을 잡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짝
“꺄앗!?”
듣다못한 에밀 리가 라나의 등짝을 확 쳤을 때, 그녀는 화들짝 놀라다가 등을 어루만졌다.
“트라우마 생길 소리 하지 말고, 고기나 만들어.”
“우…네.”
에밀리는 비닐 장갑을 끼고 능숙하게 고라니 고기를 재웠고, 그러다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더니 김준을 보고 말했다.
“헤이~ 준 오빠.”
“음?”
“트라우마가 무슨 뜻?”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오~ 이제 아는구나?”
“엉덩이 팡팡 마렵지?”
예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하는 장난에 김준은 들고 있던 칼을 조용히 내려놓고 손바닥을 펼쳤다.
그 앞에는 마리가 털이 다 뽑힌 오리를 깨끗이 씻어서 배를 갈라 내장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유심히 지켜보면서 배우고 있는 건 은지였다.
“이렇게 따서 칼이 갈비뼈 끊은 거 확인한 다음에, 쫙 벌려서 안에 있는 내장 다 빼내고, 씻어내면 돼요.”
“으응, 생선처럼 배 가른다음에 반으로 펼치는 거구나?”
사냥 때도 그랬지만, 은지는 김준이 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그걸 터득하기 위해 다른 애들을 붙잡고서 직접 손을 썼다.
사냥도 그렇지만, 그 뒤로 잡은 동물에 대해서 손질을 하는 법을 마리에게 배우고, 먹기 좋게 썰었다.
“자~ 고기는 이렇게 재워놓고, 오늘 쭈꾸미도 있으니까….”
김준은 인아와 은지를 불러놓고서, 오늘 먹고 싶은 메뉴를 말했다.
“불쭈삼이 땡기는데, 삼겹살은 없으니 오리고기로 어떨까?”
“아, 오리고기에 쭈꾸미…요?”
“왜? 인아 이거는 못 만들어?”
“아니요. 해 보기는 하겠는데… 으음, 일단 양파하고, 버섯, 고추 새로 따와야 하고 또 필요한게.”
“양념장이랑 고기 손질은 내가 다 할게.”
은지가 직접 고기를 손본다고 하자, 인아가 나니카나 도경과 같이 야채를 따러 내려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맛난 것을 먹을 생각에 에밀리와 라나가 히죽 웃으면서 잔을 까딱이는 시늉을 했다.
“오빠, 오늘 그러면 이거 한 잔 하는 거야?”
“맞아요! 회식 한 번 해요. 회식!”
김준은 그 말에 가야를 슬쩍 봤지만,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못 먹어도, 자리에 앉을 수는 있어요. 동생들 먹이세요.”
가야의 몸 상태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녀는 자기 때문에 동생들도 못 먹는건 민폐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그렇게 김준이 주도적으로 오늘은 쭈꾸미와 오리를 버무린 매콤한 볶음을 만들기로 했다.
은지와 인아, 두 아이가 준비하면서 김준이 다른 사이드 메뉴 세팅도 준비했다.
많이 통조림을 가지고 튀김을 만들고,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가지고, 면은 뺐어도 스프만으로 햄이랑 콩나물, 김치 등을 넣어서 찌개도 끓였다.
“자~ 먹자!”
김준은 냉장고에 시원하게 놔둔 소주를 따고, 아이들에게 한 잔씩 돌리면서 오늘의 회식을 시작했다.
“가야는 이거.”
“아….”
소주 대신에 분말을 풀어 만든 아이스티를 건네줬고, 아쉬운대로 그걸 마시면서 그녀의 미소를 봤다.
“오늘 사냥도 그렇고, 루팅도 그렇고 진짜 잘 해줬어.”
김준의 말에 오늘 같이 간 나니카가 활짝 웃었고, 은지는 조용히 자신이 만든 술안주를 먹으면서 묵묵히 들었다.
여전히 활짝 웃는 모습은 보기 힘든 은지의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다른애들이나 김준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는 문제가 없었다.
“은지, 한 잔 받아.”
“아, 네.”
김준이 직접 은지의 빈 잔을 채워줬을 때, 그녀는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예전부터 자신이 술 세다는 것을 보여줬었고, 특히 그래서 더 잔 채워지는 속도가 빠른 아이였다.
“다음주는 더 화려하겠지? 가야 언니 생일이잖아.”
“나랑 같이 할 거야!”
에밀리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고,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다들 생일 얼마나 남았어?”
“흐응, 달력 보니까 다음 달은 라나 생일이고요.”
“응, 그 다음엔?”
“다다음달이 대박이네요. 인아랑 도경이랑, 나니카가 한데 생일이고, 다다다음 달이… 저네요?”
“와! 은지 언니는 여기서 생일 파티 두 번 하는거야?”
에밀리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은지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게 된 상황이라 웃음이 나왔다.
“근데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응?”
“준이 오빠 생일은 왜 한 번도 안 말해?”
에밀리의 말에 김준은 뺨을 긁적이다가 넌지시 말했다.
“…사실 지났어.”
“에엑?!”
김준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말도 안 돼! 왜 안 챙겨요? 우리도 다 같이 챙길수 있는데.”
“아니야, 그냥 그때 생각해서 내가 회식 한 번 했거든? 그걸로 넘어갔다 생각했어.”
“흐으응 그래도….”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아쉽다는 투로 말했을 때, 김준은 당장 양 옆에 있는 도경과 에밀리, 그리고 맞은편의 나니카와 마리까지 한 번씩 쓰다듬으며 토닥거렸다.
“우린 그냥 여기서 이렇게 먹고 마시고, 그러면 그게 그냥 파티지 뭐.”
“한 잔 해요.”
은지가 잔을 들자 모두가 잔을 채웠고, 그날은 원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남은 것을 정리하는 것은 역시 언니들 몫이었다.
“으으응~ 음냐….”
“후~ 라나 얘도 진짜 답없이 들이킨다니까?”
“으히히 나 오늘 여기서 잘래요♥”
도경이가 라나를 데리고 대충 2층 작은방으로 들어갔고, 마리 역시 뒷정리 마치고는 은지랑 나니카랑 같이 올라갔다.
인아야 설거지가 끝나면 올라간다고 했고, 가야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미닫이 방에 얌전히 들어가 누웠다.
각자 방에 들어가서 푹 쉬니 이제 김준도 안방으로 향했다.
“푸우우”
“우왓, 씨발?”
자려고 왔는데, 이미 침대를 누가 점거하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비치는 반들거리는 금색의 머리카락에 반듯이 누워 있어도 보이는 굴곡진 몸매.
김준은 그녀를 흔들어 깨웠지만, 이미 만취한 상황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후우”
김준은 손바닥을 들어올리고, 있는 힘껏 그녀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짝
오늘따라 소리가 통쾌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