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216 내가 하는걸 다 따라하려는 아이돌.
* * *
은지는 석궁을 들고서 고라니를 노렸다.
첫 사냥감치고는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녀석이었지만, 은지는 침착하게 석궁에 화살을 장전하고 겨눴다.
“침착하게, 머리를 노려서 한 방에.”
만약 빗맞아서 날뛰는 순간, 그건 먹을 가능성을 포기해야 했다.
흔히 고라니가 누린내가 심해서 못먹는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몸 안에 혈액이 터져서 떡이 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라니는 잡자마자 손질해서 소금에 절이지 않으면, 살기 위해 먹는다 해도 그 썩는 냄새를 감당하기 힘들다.
은지 역시 그것을 듣고서 더욱 집중해 고라니의 머리를 노렸다.
차가 근처에 있는데도 겁을 내기는커녕 특유의 걸음걸이로 통통 튀어다니는 고라니가 조준하기 힘들었지만, 은지는 차분했다.
김준이 그동안 가르쳐준대로, 방아쇠를 세 단계에 걸쳐서 밀 듯이 당겨냈고, 그 순간…
파앙 콰직
꺄아아악
은지가 쏜 화살이 정확히 고라니의 눈을 꿰뚫고 나갔다.
고라니가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르고 날뛰다 픽 쓰러졌고, 김준은 그 상황에서 주변을 확인한다음 엽총을 메고서 바로 나갔다.
“나니카! 준비한거!”
“넷, 네엣!!”
김준이 미리 준비하라고 한 양동이와 식칼 두 자루, 천막 등을 꺼냈다.
뒷문을 열어서 나니카가 준 것을 받아들고 은지와 같이 나갔다.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은지의 사격 솜씨는 정말 수준급이었다.
“대박이네, 한 방에 헤드샷이야.”
“힘들었어요.”
쿨하게 대답한 은지를 두고 김준은 천막을 깔고 그 위에 고라니를 질질 끌어다 올려놨다.
정확히 왼쪽 눈을 박아 반대편까지 뚫린 상황에서 김준은 품 안에서 도끼를 꺼내 바로 목줄부터 땄다.
팍 팍 퓨우우우웃
목을 여러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내고, 피가 쏟아질 때 양동이를 뒤집어 세운다음, 은지랑 같이 뒷다리를 잡아 기울였다.
그 순간 피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은지야, 좀 무겁겠지만, 여기 뒷다리 잡고 있어.”
“그러죠.”
은지는 김준과 붙잡던 고라니 뒷다리를 잡아 뒤집힌 상태로 고정시켰고, 피가 쏟아지는 속에서 김준이 잘라낸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이 쏜 화살로 죽인, 첫 사냥감이었다.
그동안 좀비를 석궁과 새총 등으로 쏴서 잡은 적은 있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직접 쏴서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시골 체험 예능에서 다른 애들 못한다고 귀여운 척 할 때, 직접 칼을 들고 생선 비닐 긁고, 배를 따내던 것도 생각났다.
“자, 여기를 이렇게!”
뚝 뚜둑
김준은 잘 벼려진 칼로 고라니 배를 찢어서 안에 있는 내장을 하나하나 긁어냈다.
순간 뒷다리를 든 은지도 그 역한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야생동물은 이게 문제야. 피냄새도 엄청 고약하고, 내장은 절대 못 먹거든.”
“그렇네요.”
“일단 잡은 순간엔 무조껀 머리 잘라내서 피 다 뽑고, 끄으응! 이렇게 창자까지 다 긁어내서!”
과거 멧돼지를 잡았을 때처럼,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고, 빠르게 고기를 뜯어냈다.
이럴 때는 정말로 능숙한 엽사인 김준이었고, 겨드랑이와 가랑이 쪽에 칼집을 내서 가죽까지 다 뜯어낸 다음, 은지랑 같이 손질한 고라니 고기를 들고 갔다.
“나니카 문 열어.”
덜컥
“히이이….”
좀비때 보다 더 무서워하는 나니카의 모습에 김준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박스 안에 오리가 가득 쌓인곳에 비닐을 덮고, 그 위에 고라니를 담았다.
그때 뒤에서 석궁을 들고 있던 은지는 지금의 소란 속에서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석궁을 들었다.
피에 젖은 아이돌의 흰 손으로 다음 타겟을 노리며 겨눈 석궁의 화살.
김준이 고기를 챙기고서 돌아가려고 할 때, 은지를 보고 황급히 총을 꺼냈다.
“뭐야, 또 있어?”
“아뇨, 계속 저기 움직이는….”
그 순간 풀숲에서 머리를 불쑥 내민 것은 다름 아닌 개였다.
고라니를 잡은 자리에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야생화된 들개 여러마리가 잘린 고라니의 머리를 보고는 덥썩 물었다.
몇몇은 바닥에 널브러진 고라니 피를 핥아대고, 내장을 킁킁 거리다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어머나….”
단순 진돗개 뿐만 아니라, 아파트에서 키울법한 시츄나, 요크셔 같은 개들도 오랫동안 방치돼 털이 덥수룩한 상태에서 삶을 위해 먹어댔다.
“됐다. 가자.”
겨우 야생 들개 정도는 김준 일행에 위협될게 없었고, 그 녀석들도 고라니 잔해만 신경쓰지 딱히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위협할 리도 없었다.
김준은 은지와 같이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오전동안 잡은 것만 하더라도 엄청났고, 이대로 돌아가면 아마도 최단기간 루팅으로 끝이 날 것 같았다.
김준 역시 그것을 알아서 은지에게 넌지시 물었다.
“가야는 뭐 좋아해?”
“네? 으음… 튀김 좋아하고, 소주에 회 먹는 거 좋아하고….”
“먹는거 말고는 없어?”
“헤어샾 가는 거 엄청 좋아했어요.”
“응?”
은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야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했고, 김준은 생각난김에 한 번 더 돌기로 했다.
“약간 시간이 남는데, 그럼 헤어샾…은 이 동네에는 없고.”
“그냥 미용실 제품이어도 될 거예요. 어차피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은지는 자신이 하겠다는 듯이 손에 묻은 피를 물티슈로 슥슥 닦아내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란지 손을 코에 대고 킁킁 거렸고, 고라니 피 냄새가 꽤나 지독한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건 잡긴 잡았는데….”
“집에가서 한 번 씻으면 돼.”
김준은 그런 은지의 모습을 보면서 대견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자기가 잡은 짐승 가지고, 청승맞게 슬퍼하는 것도 아니라 손에 피냄새 맡으면서 그거 씻을 준비를 하고, 다른 루팅을 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길을 찾는걸 보면 말이다.
다시 만물상이 있는 거리에서 김준은 서행으로 주변을 돌았다.
시골 집이 가득한 곳에 단층 빌라가 몇 개 있는 동네.
만물상 옆에는 공인중개사, 그 옆에는 옛날에 재료가 다 썩어버린 식당 등이 보였다.
그 속에서 김준이 발견한 것은 할머니들이 많이 다니고, 사장님이 염색한 강아지 키울 것 같은 분위기의 미용실이었다.
탁
“자, 한 번 찾아볼까?”
“제가 갈게요.”
은지가 미용실에서 의지를 보이며 같이 움직였고, 이번에 경계는 나니카가 석궁을 들고서 기다렸다.
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는데, 대부분은 염색약이나, 파마약 같은 냄새와 물에 고인 머리카락의 썩는 냄새였다.
“드라이기하고, 고데기, 숱가위하고, 거울….”
은지는 능숙하게 미용 용품들을 분류해서 더블백에 하나하나 담았다.
그 외에 파마약과 염색약을 챙기고, 스펀지와 샴푸 등도 같이 챙겼다.
“이런건 안 썩어?”
“보관 기간 평균 3년이에요. 충분하죠.”
“그럼 됐어.”
김준이 쿨하게 말할 때, 세면실에 보일러를 본 김준은 저것도 예전에 미용실에서 털었던 것처럼 뜯어갈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미용실 내에서 이것저것 털고 있을때였다.
“꺄앗?!”
“!”
김준이 반사적으로 뛰쳐나갔을 때, 나니카의 뒷모습이 보였다.
파앙
“캬아아아악!”
좀비였다.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몰라도 맹렬하게 달려오는 뛰는 좀비였고, 반사적으로 나니카가 발사했을 때, 좀비의 허벅지에 맞았다.
거기에 맞아 휘청거리는 좀비가 다시 달려오려는 순간, 김준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캬아아악!!
김준의 샷건을 맞은 좀비가 바로 나가떨어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확인 사살을 위해 한 방 더 날렸다.
철컥 타앙!
이번에 새로 가져온 세로형 더블배럴 샷건은 클레이 접시 대신, 좀비의 머리통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확인 사살을 한 김준은 부들부들 떠는 나니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침착하게, 머리를! 급박해도 잊으면 안 돼.”
“히익, 네, 네엣!”
모두가 다 똑같은 훈련을 해도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멈칫거리는 게 사람이었다.
그게 나니카 탓도 아니었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아이한테 뭐라 할 생각도 없었다.
김준은 머리를 쓰다듬어줘도 진정 못하는 소녀를 두고 엉덩이를 팡팡 쳐줬다.
“꺄앗?!”
“기운 내고 차 안으로 들어가! 루팅 물건 들어간다.”
“우… 네.”
에밀리 만큼이나 타격감이 좋은 엉덩이었고, 나중에 한 번 더 두들겨 볼까 생각하는 김준을 두고 뒤에서 은지가 짐을 가득 싯고 왔다.
“애들 엉덩이 때리는게 무슨 재미라고….”
“아, 끝났어?”
“얼추 다 챙겼어요. 이 정도면 8명 전부 염색하고, 파마까지 전부 할 수 있을걸요?”
“나도 머리 볶을까?”
“와~ 볶는다는 말 진짜로 쓰는 아재가 다 있네?”
은지는 넉살좋게 농담도 하면서, 차에 같이 올라탔다.
김준은 오늘 성과에 대해 매우 만족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자~ 다시 고가 타고, 좀비 없나 살펴보고, 차 없는지 확인…어?”
“어머.”
은지와 김준 모두 반사적으로 맞은편에 다가오는 차를 보고서 멈칫했다.
그쪽 역시도 김준의 차량을 발견하고는 바로 비상등을 켜고는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바로 지난번 절에서 헤어졌던 행상인 아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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