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215 이게 헌팅이지!
* * *
김준은 만물상에서 물건을 잔뜩 챙긴 다음,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 기간 동안 정말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진짜 상황이 그러네요.”
“좀비가 안 보이니 지루해?”
“그럴 리가요.”
은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주변을 보면서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인 텅 빈 거리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완전 유령도시~”
“나중에 신도시 올라갈 때, 그 이야기해 봐.”
“거기가 그렇게 위험했다면서요?”
“좀비도 바글바글한데, 거의 다 뛰는 놈들이야.”
“시골좀비하고는 다른 건가?”
시니컬하게 말하는 은지의 말에 김준은 대형 마트를 생각하면, 언제고 다시 갈 수 있지만, 과연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녀석을 상대할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위험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할 때가 확실히 온 것이다.
한편 뒤에 있던 나니카는 양옆과 뒤쪽을 창문을 통해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는지 바로 김준에게 말했다.
“오빠, 저거요.”
“음?”
“오른쪽에 저거 움직이는 거.”
“!”
김준이 고개를 돌리자 옛날 쓰레기장이었던 곳에서 뭔가 계속 덜그럭거렸다.
“그냥 쥐려나요?”
“쥐는 저렇게 못 움직이는데?”
바퀴가 달린 커다란 음식쓰레기통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덜그럭거리자 뭔가가 움직여서 계속 미는 거로 생각한 김준은 바로 공기총을 들었다.
그러고는 차를 멈추고서 골목 쓰레기장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향해 총을 겨눴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에서 과연 그 존재가 뭐인지 기다리는데, 그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으르릉! 커엉!!
“꺄앗! 저거 뭐예요?”
“아, 뭐야~”
김준은 김이 샜는지 공기총을 다시 옆에 놓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구리잖아.”
컹 컹
캠핑카를 향해 으르렁 거리다가 바로 골목으로 뛰어가는 검은 물체는 야생 너구리였다.
평소라면 겁이 많아서 사람 사는 데는 얼씬도 못할 녀석이었지만, 제집인 양 길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물들만 살판 났지.”
“그래도 다행이네요. 좀비가 된 동물은 없어서.”
“그러게나 말이야.”
이런 거 볼 때마다 정말 인간만 걸리는 무슨 바이러스인가 싶기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언제나 ‘알 수 없음’이다.
김준의 차가 가는 동안 보이는 것은 차 소리에 놀라는 길고양이, 옛날에 다 썩은 음식쓰레기를 뒤져대는 너구리, 저 멀리서 날아다니는 새 등이었다.
그리고 김준이 말한 늪지대에 도착한순간 김준은 바로 총을 들었다.
철컥
“딱 한 마리.”
“주변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수도 근처에 왔을 때, 돌아다니는 좀비 한 마리.
옛날에 헤진 작업복을 입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을 보니 여기 상수도공사 직원인 듯했다.
김준은 1년 내내 의지를 잃고 돌아다니는 좀비 직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공기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띵 찰칵 띵
공기총 연지탄 두 발과 함께 쓰러진 좀비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거기서 안심하지 않은 김준은 은지와 나니카에게 말했다.
“다들 귀 막으시고.”
“!”
빠아아아아아아앙 빠아아아아아앙!!!!!
길게 클락션을 눌러대서 주변에 있을 좀비들을 부르는 의식을 진행했다.
조수석에 있던 은지가 귀를 막으면서 미간이 살짝 찌푸러들었지만, 김준은 멈추지 않았다.
클락션에 놀라서인지 상수도 근처의 숲에서 새들이 놀라 튀어나왔지만, 김준은 그 상황에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치익
그러고는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여유 있게 기다렸다.
두 대를 태우고도 좀비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김준은 창밖으로 꽁초를 던진 다음에 총을 준비했다.
“자,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 설명할게.”
김준은 먼저 은지와 나니카에게 오늘의 사냥에 대해 말했다.
“여기서 좀만 더 올라가면 상수도에서 폭이 좁은 하천이 있는데, 거기가 관로야.”
“거기까지 가서요?”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잡아야지. 원래부터 오리가 많은 곳이거든.”
하천 오리야 모를 때는 그냥 ‘지자체가 잘 꾸며놨구나’ 싶은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생존수단으로 쓸 수 있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김준의 차가 다시 움직여 상하수도 공사 건물을 지나 하천가로 갔을 때, 그곳에는 그가 말한 대로 정비가 잘 됐던 하천이 있었다.
‘잘 됐던’이라는 과거형에 맞게, 보도블록 사이로 무성한 잡초가 자라고, 철제 계단은 전부 녹슬어 있었다.
“진짜 저기 많이 있네?”
“그렇다니까.”
김준이 말한 대로 인간이 없는 하천에서 오리들이 한가롭게 헤엄을 치면서 간간이 물속에서 뭔가를 잡아먹는지 머리를 집어넣었다.
흰색 집오리나, 초록 머리의 청둥오리가 섞인 개체들이었고, 이런 사냥이야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었다.
“일단 공기총으로 최대한 머리를 노려서….”
연지탄 장전한 공기총으로 조용히 창밖에 총구를 내밀고, 천천히 기다렸다.
쏜다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최대한 뭍 근처에 왔을 때 건져 내기 편한 곳을 찾아야 했다.
시각은 흐르고, 오리들이야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유 있게 하천의 고기나 잡아먹는다.
김준은 때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기다렸고, 마침내 흰 오리 하나가 뭍으로 올라와 깃털을 이리저리 털어내는 순간…
띵
푸드득 푸드드득
머리에 정확히 연지탄을 맞은 오리가 땅바닥에서 몸부림칠 때마다 피가 콘크리트를 적셨다.
이내 움직임이 사라졌을 때, 김준은 조용히 기다렸다.
다른 오리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은지를 불러 같이 내렸다.
“이때, 조심해야 해.”
“석궁이랑, 장대 챙겼어요.”
김준은 은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천으로 내려갔다.
오리가 닭하고 다른 점은 물 위에 있으면, 사람이 와도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면서 유유히 다닌다는 것이다.
김준이 먼저 내려가서 잡은 오리를 은지 등에 있는 가방에 채워 넣고, 아직도 상황 파악 안한 몇 마리의 오리를 보고,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을 공기총으로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띵
푸드득 첨벙!
물속에서 공기총에 맞고 몸부림치던 오리를 은지가 긴 장대를 뻗어서 그 녀석 까지 건져 올렸다.
총 두 마리 잡고서 남은 것들이 도망칠 때, 김준은 욕심 내지 않고 일단 잡은 것들만 가지고 올라왔다.
“나니카, 이것들 전부 아이스 박스에!”
“히익! 네.”
피투성이에 사냥한 오리 둘을 던져 주자 그녀는 질겁하다가도 그걸 집어서 아이스 박스에 넣었다.
뒤이어 김준은 주변 상황을 살피고는 다른 녀석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자, 다음은 저거다. 흰 오리야 잘 봐.”
김준이 겨눈 것은 청둥오리와 집오리 사이에 있는 흰 개체.
원래 수렵철에도 암컷은 잡으면 안 돼서, 수컷과 암컷의 색이 확연히 다른 청둥오리를 보면 수컷만 잡았는데, 그게 안 보이니 그냥 집오리를 노렸다.
언제 또 올 줄도 모르고, 개체 수도 있는 데다가 사냥꾼 시절의 습관이 나온 것이었다.
“맞추면, 바로 가는 거다?”
“…네.”
김준이 심호흡하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띵
이번에도 정확히 오리 눈알을 꿰뚫었고, 푸드덕 거리다가 픽 쓰러지는 흰 오리를 향해 달려가자 이미 깃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충분하고, 맘만 먹는다면 하루 50마리는 넘게 잡을 자신이 있는 김준이었다.
은지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충실히 보조를 맡으면서 잡은 오리들을 챙겼다.
김준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거하기 딱 좋은 자리에 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것을 은지가 챙기는 콤비 플레이.
전처럼 은지가 괜찮다면서 풀숲을 헤치며 들어가지도 않았고, 김준 역시 그냥 멀리서 잡은 다음 아이돌들에게 사냥개처럼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둘의 콤비플레이로 열 마리가 넘는 오리를 잡았을 때였다.
꺄아악 꺄아아아악
“!?”
철컥!
김준과 은지 주변으로 갑작스러운 비명이 울렸다.
둘 다 반사적으로 무기를 잡고 차 주변으로 서서히 걸어갈 때, 김준은 소리가 난 쪽으로 총을 겨누며, 은지에게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 했다.
꺄아아악
“!”
처음에는 사람 비명인 줄 알았는데, 계속 괴성을 내지르는 게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김준 역시 뒤로 물러나며 차에 탄 순간, 그 정체가 드러났다.
“사슴?”
“역시 고라니잖아!”
꺄아아악
흡사 아이가 우는 소리 같은 괴성을 질러대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보고 김준은 김이 샜다는 듯한숨을 내쉬었다.
“왜 안 보이나 했다.”
“전에도 저거… 많이 보지 않았나요?”
은지의 물음에 김준은 생각해 보니, 루팅 할 때마다 엄청나게 돌아다니면서, 들판을 뛰어다니다 본 고라니들을 떠올렸다.
은지 역시 많이 봤던 동물이라 조용히 석궁을 들고 김준에게 말했다.
“잡을 거예요?”
“저거는 먹을 수는 있는데, 피 냄새 장난 아닌데….”
김준이 이왕 발견한 김에 잡으려고 총을 들었을 때, 은지가 다시 말했다.
“아니! 오빠, 제가 잡아보려고요.”
“응?”
“이걸로요.”
석궁을 들고서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은지를 두고,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에 머리를 맞춰야 해. 어설프게 몸에 맞으면 막 날뛰어서 피 튀는데 그럼 절대 못 먹어.”
“즉사 시키라, 이거죠?”
이미 저걸로 좀비도 잡아본 아이돌이다.
여기까지 나온 이상, 처음으로 사냥해서 고기를 수급한다는 것을 시도하는 은지를 보고, 김준은 천천히 어드바이스를 해 줬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이돌이 직접 사냥으로 잡은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