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210 그래도 잘 해결됐다.
* * *
“주은지!!”
“!”
은지는 자신이 멋대로 움직인 것에 대해 김준이 분노한 것에 대해 이해했다.
아무리 이번 일이 다급하다고는 했어도, 타인에게 거처를 노출했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행상인 차를 빌려서 여기까지 왔다.
묻고 넘어갈 일도 아니었고, 뺨 한 대 맞는다 하더라도 그냥 내밀 셈이었다.
하지만 김준은 손을 들면서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
“너어는 진짜… 왜 그렇게 무모하냐?”
“…언니를 살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이번 일은 진짜… 후”
그때 이 일에 엮여있는 핵심 인물인 행상인 양근태가 헛기침을 하면서 다가왔다.
“크흠~ 큼! 젊은 사람들이 청춘이구만.”
“…아!”
김준은 양근태를 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야기 좀 하시죠?”
“그러지. 담배나 한 대 피자고.”
김준은 양근태와 같이 나가 절 바깥에서 담배 한 대를 태웠다.
그리고는 연기를 뿜으면서 넌지시 옆에 있는 양근태에게 물었다.
“여기 알고 계셨어요?”
“처음이야.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 활쏘고 닭키우는 쪽하고, 자네, 그리고….”
“제일파쪽도 있고요?”
“그건 말 못 하지!”
“….”
김준은 순간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권총으로 손이 갔다.
이 자리에서 입막음으로 죽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생존자들끼리 사는 세상에서 그걸 떠올렸다는 것에 쓴웃음이 나왔다.
“걱정하덜 말어. 설마 내가 젊은 친구들 사는데를 누구한테 꼰지를까?”
“믿어도 되겠습니까?”
“허어, 이 사람. 그럼 자네가 궁금해 하는 거 말해줄까? 담배 한 갑만 주게.”
김준은 담배야 넘치는 물자니 품에서 한 갑 꺼내서 건넸다.
멘솔 장대라서 피기 힘들겠다고 피식 웃던 양근태는 김준에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말해줬다.
“신릉면 넘어서 유흥타운 있잖아? 자네도 알지? 노래방 협회라고 20개 룸이 붙어있는곳.”
“…거기 제일파 나와바리잖아요?”
“그렇지. 특히 거기에 큰 빌딩이 하나 있어. 거기 의사하고 약사가 엄청 많이 있다고.”
지난번에 당뇨가 있어서 거기에 치료 받으러 간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그게 뭐가 제가 궁금할 이야기입니까? 이미 전에 했던 말이잖아요?”
“제일파가 왜 이쪽으로 안 넘어오는 지 알아?”
“!”
양근태는 담배 한 모금을 뻐끔거리고는 그 쪽에 대한 진실에 대해 말했다.
“제일파 두목 박 사장이 좀비 사태 터지고, 파출소를 털었어. 권총 두 자루 손에 넣었는데, 하나는 날아갔지.”
“흐음.”
“꽃마차 하는 황여사 일행 여자들 데려가려고 했다가 몇 놈 뒈졌다고 하더라고. 이후에 시내쪽 나왔다가도 또 뒈진 놈들 나오고.”
그거 김준이 한 일이었다.
양근태는 그것을 안다는 듯이 말하면서, 진짜 궁금해야 할 그것에 대해 말해줬다.
“그래서 박 사장이 그러더라고, 앞으로 신릉면 중앙도로 이후로 고가 넘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깡패 두목이 하는 말인데, 언제든지 넘어올 수 있다는 건데요.”
“그 양반 총은 있는데 총알은 없어.”
“!”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솔직히 우리나라 짭새가 권총을 쏘면 얼마나 쏘겠나? 실탄 두 발 좀비 잡는데 쓰고, 공포탄만 세 발 남았다더구만, 그것 때문에 밑에놈들 위협용으로만 쓰고 있어. 그 놈들은 당연히 모르고.”
이건 진짜 뜻밖의 정보였다.
언제든 튀어나올지 몰라 신릉면 일대에는 아예 발도 못 붙이는데, 역으로 그쪽도 실질적인 원거리 무기가 없어서 자기 나와바리에서만 존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나야 계속 산 사람들 동네 오가면서 물물교환하고 다닐거야. 하지만, 장담하지. 제일파는 더 이상 고가 너머로 못 와.”
“흐으음….”
“소사벌 동쪽 일대는 전부 자네 땅이라 이거지. 서쪽 끝에서 안 나가려고 하니까 말이야.”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맞다면 진짜 황 여사네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서쪽 일대의 길만 피해서 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경계를 늦출수 없는 김준을 두고서 양근태는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했다.
“난 다른쪽에 또 가야 하니 짐좀 챙겨야겠구만, 아 맞다! 제일파 들릴 일 있으면 의료도구나 약 같은거 좀 챙겨줄게.”
“가신다고요?”
“그럼 가야지. 나도 아지트 있는 사람이야? 알잖나?”
김준은 먼저 떠나겠다고 말한 양근태를 두고서 막아섰다.
“내일 가실 때 같이 가시죠? 오늘 수술 받은 애들 데리고 갈 거니까요.”
“이 사람, 그렇게 의심이 많나? 뭐, 그럼 나 잘곳이나 마련해줄수 있나?”
“이곳이 방이 많다더군요.”
“허, 참. 뭐 그러지.”
어차피 창고에 들어가서 자나 이곳에서 자나 똑같다는 생각인지 그냥 여기서 머물겠다고 했다.
“다음에 만나면 더 특급 정보 하나 주지.”
“뭔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근데 자네….”
“네?”
“혹시 두족류 좋아하나?”
“!?”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절 안의 스님과 인사를 하고 주지스님을 찾는 양근태.
그 와중에 절에서 빚은 소면과 떡까지 받는 것이 은근히 챙길건 다 챙겨서 실리만 취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딱 보였다.
“시주께서도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아, 스님.”
“허허허, 인연이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어려운 자를 살렸으니 시주께서 복을 받으신 겁니다.”
“괜히 이곳에서 하루 묵는게 죄송하군요.”
“개의치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친구분이 기다리십니다.”
“아, 네!”
김준은 절에서 머무는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준아!”
“잘 있었냐?”
지난번 구해줬던 친구 은기가 딸 소율이를 데리고 와서 반갑게 인사했다.
“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승복 차림에 산발이었던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자 무슨 예술 하는 사람이나 도인 같은 이미지를 보이는 친구 녀석이었다.
그 옆에서 방방 뛰면서 있는 아이를 보고 김준은 뒤늦게 웃으면서 볼을 당겨줬다.
“지낼만 하냐?”
“나야 뭐 가족들이 다 있으니까 괜찮지.”
“그렇구만.”
“그나저나 능력 좋다? 저번에 있던 애들도 아이돌 같던데, 대체 몇 명을 데리고 사는 거야?”
“결혼한 녀석이 그거는 왜 신경써?”
“아니, 그냥….”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지금 사는 이야기에 대해 했다.
“저 치과의사 아저씨가 그 중학생하고, 우리 딸 공부 가르쳐 주더라.”
“그래? 하긴 뭐… 애들 가리키는 건 문제 없으시겠지.”
“뭐라도 계속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도 여기 스님들 밭일 하는 거 돕는다. 와이프도 많이 좋아져서 여기 있던 다른 아줌마들하고 음식도 만들고 말이야.”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절의 분위기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늘 수술한 애… 샌드걸스에 가야 맞지?”
“맞아.”
“후, 어쩌다가 이 상황에서 맹장이 터져서는… 와이프가 보조한다고 들어갔는데, 배에 흉터가 이렇게 크게 났다더라.”
아랫배 한 곳을 칼로 쨌다는 손짓을 하자 김준은 더 한숨이 나왔다.
“깨어나는 대로 데리고 가야겠어. 오래 있을순 없지.”
이미 다른 애들도 기다리고 있을텐데, 김준은 밤이 될 때 한 번 다녀오기로 했다.
***
철컥
그날 밤.
저녁 식사 이후로 역시나 밤에 보초를 서고 있는 동안 조용히 나오는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오빠~”
“어, 나니카도 나왔네? 괜찮아?”
“네~ 그냥 헌혈인데요. 뭐.”
팔에 반창고가 붙어있는 것을 소매를 걷어서 가리고는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는 나니카.
O형이라고 김준때의 수술이나, 이번 가야의 충수염때도 직접 피를 뽑아서 수혈하는데 썼다.
김준은 가까이 다가오라고 한 다음에, 초롱초롱한 얼굴을 하는 나니카를 안아주며 토닥였다.
“고생했어.”
“아니에요.”
김준이 한번 안아주고 토닥이자, 바로 기분이 풀려서 헤벌래해진 나니카.
게다가 마리나 도경같이 동행했던 아이들도 한 번 씩 안아주고, 마지막으로 은지를 향해 다가가자, 그녀가 살짝 뒷걸음질 쳤다 머뭇거렸다.
“….”
“미안해요.”
반사적으로 피했다가 먼저 다가와서 김준을 역으로 안아주는 은지.
밤새 경계를 선 뒤로 아침이 되었을 때, 오늘의 정토사는 그 어떤 날보다도 북적거렸다.
“자, 드시지요.”
“잘 먹겠습니다.”
누워있는 가야를 제외하고, 김준일행 다섯명, 행상인 양근태, 그리고 은기 일가 3명과, 같이 딸려왔던 여중생 1명.
하준엄마 내외에 치과의사 부녀, 그리고 스님 넷이 모이니 스무명이 모였다.
그리고 김준은 이 자리에서 밀가루와 살 한푸대씩, 그리고 된장 한 통과 소금을 선뜻 풀어줬다.
8명의 아이돌 중 올때마다 입맛을 들인 정토사표 사찰국수가 올라오고, 아이들을 위해서 김준은 계란을 시주해 어린아이들에게 먹여줬다.
“가야는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식사 마치고 내 한 번 가 보려고 합니다.”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마리가 치과의사랑 같이 가서 상태를 보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가야가 드디어 눈을 떴다.
“음, 으으으….”
“언니, 정신이 들어?”
“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너머로 눈이 점점 떠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리가 수술 자국을 확인하면서 드레싱을 해 줬다.
다행히 가야는 깨어났고, 손을 움직이거나 말을 하는데 문제도 없었다.
다만 지금 당장 뭘 먹을 수는 없어서 물에 적신 거즈만 입에 물린채로 견뎠다.
그리고 점심이 되어서야 짐을 챙기는 김준 일행이었고, 세 명으로 나갔는데 여섯명이 되어서 떠나게 됐다.
“다음에 또 봅세!”
김준과 같이 나온 양근태가 손을 흔들면서 고가쪽으로 빠졌고, 뒷좌석에서는 도경과 마리가 침대에 누워있는 가야와 나니카를 살폈다.
“가는 길까지 탐색은 제가 할게요.”
조수석에 탄 은지는 주변을 살피면서 돌아가는 길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때마침 걷는 좀비 셋 정도를 발견했고, 김준과 은지가 동시에 새총과 엽총으로 잡은 다음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겨우 9명이 다시 모이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