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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09화 (209/374)

〈 209화 〉 209­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 *

김준은 이 상황이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루팅을 나갔다 올 동안, 다른 아이들은 집을 지키면서 그를 기다렸었다.

하지만, 이야기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생존자들의 구역에서 만난 은지, 게다가 왜인지 몸에 피도 가득 묻어있었고, 여기에 또 다른 생존자 일행이 여럿 있었다.

“너 혼자 온거야?”

“아뇨, 안에….”

“봐바, 누구누구 왔는지.”

“안 돼요! 지금 들어가시면 큰일나요.”

“왜?”

“그 아가씨 말이 맞아요. 들어오지 마세요.”

“?!”

안에서 나온 것은 피에 젖은 마스크와 수술용 장갑을 벗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늙은 치과의사, 그리고 그 딸인 보건소 간호사였다.

“큰일 날 뻔 했어요. 젊은 아가씨가 어쩌다가….”

“아니, 대체 뭡니까? 누가 다쳤는데요?”

그때 은지가 마리가 건네준 손수건을 받고는 손을 슥슥­ 닦아내면서 말했다.

“안에 가야 언니랑 나니카 누워있어요.”

“뭐?”

“제가 다~ 설명드릴게요.”

은지는 김준이 루팅 나간 기간 동안 집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했다.

***

그것은 김준이 떠난지 얼마 안 돼서 였다.

우당탕탕­ 쿵쾅­

“뭐야?!”

“꺄아앗! 언니!”

3층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뜨개질을 하고 있던 은지가 화들짝 놀라서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어, 언니!? 괜찮아요?”

“크으윽! 아으….”

3층 창고 서랍 정리하다가 박스가 떨어져서 정통으로 맞은 가야가 배를 부여잡고, 나니카가 황급히 그걸 들어서 꺼내줬다.

“언니! 왜 그래요?”

“짐 정리하다가 선반 떨어졌어.”

“괜찮아요? 어디 다쳤어요?”

“그냥 배 맞았어. 아야야….”

가야는 연신 복부를 부여잡고서 거칠게 심호흡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이 오빠 오면, 이거 좀 고쳐 달라고 해야겠다.”

“옷장이 예전부터 좀 과적이긴 했어요.”

은지는 나니카랑 같이 정리하자고 하면서, 무너진 선반 대신 겨울 옷들을 따로 빼다가 놨고, 그날은 무척 더워서 애들끼리 얼음물에 담근 소주를 마시면서 잠들었다고 한다.

문제는 다음 날 터졌다.

숙취로 여기저기서 배가 아프다는 애들이 있었고, 가야도 그 중 하나였다.

해장으로 라면을 잔뜩 끓여서 먹은 다음, 김준이 오늘 올지, 내일 올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남은 시간동안 밀린 빨래를 하는 나니카, 에밀리, 라나. 갈비찜 만드려고 고기 해동하는 은지, 인아, 가야가 있을때였다.

“윽, 크윽!”

“왜 그래?”

“언니 오늘 화장실만 세 번 가지 않았어요? 또 나와?”

라나가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곱슬거리는 머리가 축축해질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아픈걸 어금니를 악 물면서 버텨내는 가야.

“언니, 진짜 왜 그래?”

“괜찮아… 진짜 배탈 난 것 같… 흐아아악!!!”

결국 참다 못해 비명을 지르면서 고꾸라진 가야.

화들짝 놀라는 라나와 재빨리 일으켜서 침대로 데려간 은지가 위에 있는 애들을 불렀다.

원인도 모른채 배를 부여잡고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야.

“언니! 은야 언니!”

“괜찮아? 이 식은땀 봐!”

“언니! 일어나요!”

“흐으윽, 으윽….”

동생들이 걱정스럽게 흔드는데 침대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상황.

급기야는 입술이 점점 보라색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몇몇 애들은 눈물까지 보였다.

그때 은지는 반사적으로 미닫이 방 삼단 옷장 가장 밑을 열었다.

그리고 옷 안에 담겨 있는 노트와 책을 급하게 펼쳤다.

“복통… 복통… 입술이 파래지고… 못 움직이고, 식은땀….”

은지는 바로 비켜보라고 한 다음에 가야를 반듯하게 눕히고 명치를 중심으로 손가락으로 찔러봤다.

“언니, 한 번 눌러볼게! 여기야?”

“흐으윽….”

“그럼 여기?”

“어억, 몰라… 흐흐흑….”

“여기, 여기….”

명치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누르다가 오른쪽 하복부 쪽으로 닿았을 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자, 잠깐만! 그럼 오른쪽 다리를 들어보면….”

“아악, 그만해….”

그 순간 은지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다.

“야, 이거 맹장이야! 맹장!”

“뭐?!”

맹장, 전문용어로는 급성 충수염.

맹장이 터진 상태에서 다리도 움직일수 없으며, 골반이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강제로 뜯어지는 것처럼 통증이 올라온다.

“후­ 후욱­ 하….”

급기야는 숨도 가빠지면서, 점점 의식이 사라지자, 은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패닉 상태에서 몇 시간을 버텨냈고, 급한대로 가야에게 진통제라도 먹였지만, 이게 먹힐 리가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빵­ 빵­ 빠아아아아앙­

“어?!”

“오빠 왔나보다!”

“!!!”

반사적으로 은지와 라나가 뛰쳐나가 문 앞에 달려왔지만, 그 경적 소리는 김준의 차가 아니었다.

검은색 픽업트럭에서 창문이 열리면서 손을 흔드는 중년의 남성.

행상인 양근태였다.

“?!”

“어이구~ 이 집은 아가씨가 진짜 많이 사네? 그 덩치 큰 남자는 어디 갔어?”

그 순간 은지는 모아니면 도 식으로 바로 외쳤다.

“아저씨!!!”

“왓, 뭐야?!”

“차 좀 써요! 빨리요!!!”

“어, 어어?”

그녀가 가야를 부축하고, 나갈 때 은지는 바로 나니카를 불렀다.

“나니카!”

“네, 네엣?!”

“같이 타!”

“네? 제가요?”

“너 O형이라며?”

“그렇긴 한데… 우웃?!”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모아니면 도 식으로 도박을 걸어 차를 타고 달렸다.

“빨리 출발해요!”

“그… 얼마나 아픈데? 아니, 그 전에 어디로 가라고?”

“여기서 직진! 네 블록 가서, 좌회전! 길은 제가 안내할게요.”

“어, 어? 알았어! 그럼 아가씨가 길 알려줘봐!”

그렇게 졸지에 거래 하러 온 행상인 양근태는 은지가 가리키는 대로 차를 몰았고, 맹장이 터진 가야가 급하게 간 것은 정토사였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구, 뭐를요. 오히려 제가 수술해서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은지가 양 사장 차를 타고 정토사에 가자마자 바로 치과의사와 간호사를 불렀고, 맹장이 터진 사실을 알린 다음에, 치과의사에게 해부도와 의학서적, 그리고 마리의 구급상자를 건네줬다고 한다.

“진짜… 아오, 저거 진짜…”

뭐라 말을 하고 싶어도 차마 못할 상황이었다.

“뭐, 내가 안면외과 일도 했어서, 째고, 뼈 깎고 이런건 해 봤지만 복부 개복은….”

안면외과는 치과와 같이 얼굴 내의 뼈를 잘라내거나 붙이고, 턱관절 등의 힘줄도 접합하는 쪽이라고 한다.

“다른 아가씨도 고생했어요. 자기 피 O형이라고 주사기로 뽑아서 소독약 병에다가 잔뜩 담아서 수혈로 쓰라는 거 있죠?”

“하….”

덕분에 수술을 마친 가야와 나니카는 탈진해서 잠든 상황이라고 한다.

“마취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것도 저 아가씨가 재료를 가져오더라고.”

그러면서 치과의사가 꺼낸 것은 작은 유리병 안에 담겨있는 마취액을 꺼냈다.

“후우­”

뒤늦게 상황을 살피고 온 마리는 혀를 차면서 나왔다.

“마리야? 어때?”

“어르신이 엄청 잘 해주셨어요. 타이도 훨씬 저보다 잘하시고요.”

마리는 둘 다 상태는 괜찮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경 역시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다가 가야가 맹장 터졌을 때, 마침 행상인이 왔다길래 그거 타고 여기서 수술받았다는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했다.

저 얼굴은 ‘저 상황에서 나였으면 그랬을까?’ 하는 공포와 경외심이 섞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없을 때 이런일이 생겼네요.”

“아이고, 뭘~ 그쪽 의사 아가씨도 생존물건 구하러 여기저기 다니셨다며?”

“아, 네….”

그때 마리는 치과의사가 든 약병을 보고서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 저기 그거….”

“응? 아, 이거 그 머리 땋은 아가씨가 주던데?”

“맙소사… 저걸 진짜 썼구나?”

“뭔데? 저게 뭐냐고?”

김준이 묻자 마리는 일단 나와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제대로 이 일을 복기 하자며 절간의 다른 방에 모두 들어가자고 했다.

대략적인 상황은 알았으니, 이제 제대로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이거, 제가 만든거에요. 다이메틸 에터.”

“후우~ 요새는 그렇게 부르나? 그거 디메칠에이터잖아?”

Dimethylether.

독일어로 부르건, 영어로 부르건 일단은 유기화합물로 마취약의 주 재료였다.

“이거 오빠가 준 의학서적에서 급박한 상황에서 마취약 만드는 방법이라고 써먹은 건데.”

“어떻게 만든건데?”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중탕으로 끓여내서 농축액 만들어서요.”

“!?”

“전에 오빠가 보드카 루팅할 때 그걸로 만들었다가 보관 한거였어요.”

어찌됐건 그걸로 만들었다는 말에 김준은 눈 앞이 캄캄했다.

“수술은 잘 됐고, 수혈도 하는데 문제는 언제 깨어나냐는거지.”

“얼마나 걸립니까?”

“한 달은 넘게 걸리지. 뭐, 움직인다면 집에 데려가도 되겠고.”

“후우­ 괜찮을까요?”

김준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공백 기간때, 딱 이런일이 벌어진 것도 지랄같았지만, 더 슬픈 것은 하필 마리를 데려갔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만약 그녀라도 남아있다면 은지가 그 위험천만한 짓을 했을 리가 없다.

그녀 딴에는 가야 살려보겠다고, 나선거였지만, 몇 시간 동안 진통제만 먹이다가 급히 이곳에 왔다니 상태가 어떨지도 불안했다.

“너무 늦게 수술 한 건 아닌가요?”

“오빠, 맹장은 최대 48시간 이내에도 수술은 할 수 있어요. 물론, 복막염으로 번지는 건… 아니, 아니에요! 거기까진 안 갈거에요. 퉤퉤퉤!”

자기가 한 말을 급하게 뱉어내면서 내일 마취가 풀리는 대로 가야가 깨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마리.

김준은 더 듣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절간의 주방에서 스님들에게 우물물을 받고서 그걸로 손을 씻어내는 은지가 보였다.

“주은지!”

“….”

그녀는 감당하고 있는 지 예전과 같은 핏기 없는 미소로 조용히 김준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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