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03화 (203/374)

〈 203화 〉 203­ 현실 안주하기엔 아직도 부족해.

* * *

어느 한가로운 날.

김준은 안 쓰는 옷을 보로 써서 어깨와 목을 뒤덮고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깎아드려요?”

“그냥 알아서 해.”

그 뒤에선 은지가 지난날 챙긴 미용 도구를 가지고 이발을 준비했다.

은지는 여러 개의 가위를 챙겨 김준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줬다.

이전까지 대충 커팅기 하나 가지고, 대충 군대 컷으로 밀어버렸었는데, ‘나이도 젊으면서 좀 꾸며라!’ 라는 말로 직접 맡겼다.

“숱도 풍성하고, 머리 좀 꾸미셨으면 아재 같아 보인다는 말은 안 들었을 걸요?”

“예전엔 잘 꾸몄어. 지금이야 이러지.”

“네~ 네~ 그럼 지금도 꾸미죠.”

그동안 다른 아이돌들이야 김준에게 어필하려고 런닝머신이나 사이클 등을 뛰고, 짐볼을 가지고 운동을 해서 몸매를 가꾸는 데 정작 집주인은 이런 상황이었다.

은지는 거울을 가지고 이리저리 비교확인을 하면서 라인을 맞췄고, 이발이 끝난 뒤에는 스펀지로 탈탈 털면서 김준에게 보여줬다.

“자, 보세요.”

“오~”

김준은 깔끔하게 다듬고서 앞머리를 옆으로 넘긴 모습을 보고서 맘에 드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머리에 뭐 안 바르는 스타일이라.”

“그래서 편하신 대로 넘길 수 있게 만들어봤어요.”

“수고했어.”

김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털었고, 은지는 뒷정리를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머리빨이 좋네~”

미닫이방에서 뒹굴거리던 에밀리가 김준을 보고는 엄지를 올렸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살 섞는 사이라서인지 은근슬쩍 옆에 붙으면서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런 스타일이라면 10번도 되겠는데?”

“그럼 너도 잘라. 시원하게­”

“어머, 숏컷 취향이었어?”

에밀리는 순간 자신의 치렁치렁한 머리를 잡더니 김준의 마음에 든다면 목만 덮을 정도로 짧게 쳐 볼까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물로 목욕하고, 머리카락도 짧게 쳐내서 잔뜩 꾸민뒤로 김준이 하는 일은 바깥 작업이었다.

다 쓴 전구도 갈고, 상태 안 좋은 전선들도 싹 교체하고, 망가진 공구들도 한번씩 손봤다.

그리고 방 안에서 무기 점검도 이뤄졌다.

“오빠~ 마리오 카트 한 판 하… 어어?”

“뭐야? 그건?”

라나랑 에밀 리가 기분좋게 안방으로 들어왔다가 늘어진 금속 부품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철컥­ 철컥­ 끼리릭­

김준은 이제 막 손질한 리볼버를 조립하고는 실린더를 끼워 반대쪽으로 겨눴다.

“오~ 총 만지는 거야?”

에밀리가 눈을 반짝이면서 다가왔을 때, 김준은 바로 제지 했다.

“가까이 오지 마!”

“왓?!”

“언니!”

라나가 에밀리를 확 끌어 당겼고, 김준은 그녀가 밟을 뻔한 총기 부품들을 황급히 챙겼다.

“뭐 만질때는 좀 가까이 오지 마.”

“쏘리~”

에밀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고, 김준은 말해 봐야 남는게 없다며 한숨을 쉬고는 다른 총기도 싹 다듬었다.

김준은 구리스 칠까지 끝낸 총들을 거실로 가져와 전시해봤다.

권총이 네 자루에, 공기총이 두 자루, 엽총이 두 자루가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많긴 하네요?”

“그러게, 우리가 무장해도 되겠다.”

다른 아이들도 한 마디씩 했을 때, 자신들도 무장을 운운한 도경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들겼다.

“오빠가 도와만 준다면 총 쓰는 건 무리없을 거 같은데요.”

“안 돼! 큰일 나~ 나도 한 번 해 보라고 했다가 방아쇠에 손걸고 덜덜 떨렸어.”

그 옆에 마리가 지난날 김준이 여자애들에게도 한번 쏴 보라고 줬다가 머뭇거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다 쓸 정도로 총알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맞아, 그냥 하던대로 보우건이나 써!”

은지나 에밀리 역시도 총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넌지시 총기 사용 의사를 떠 봤다.

“그럼 여기 모두에게 물어볼게. 살면서 장난감 말고 진짜 총 쏴본 적 있어?”

“나, 할아버지 따라 곰 사냥 갈 때.”

샷건 정도는 써 봤다고 말하는 에밀리, 그 외에 다른 애가 뭐 있냐고 하면 조용히 드는게 가야하고, 도경이었다.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운게 있었어요. 클레이 사격이라고….”

“아, 저도 그거 해 봤어요. 엽총으로 날아다니는 접시 쏘는 거.”

“호~”

그래도 클레이 사격까지는 해 봤다는 말에 김준은 진작에 물어볼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근데 저도 마리 언니 같이 총은 진짜 못 쓸거 같아요.”

라나 역시 총을 직접 쓴다는 것은 조금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김준 앞에서 머리카락을 올리면서 귀를 보여줬다.

“그리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사실 루팅 한 번 다녀오면….”

“아, 맞아. 귀가 좀….”

라나는 자신의 왼쪽 귀를 가리키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나니카 역시도 옆에서 말하니 겨우 내색하면서 자기 귓불을 당겼다.

“총 소리 몇 번 들은 뒤로 집에 들어오면 이틀은 윙윙거려서 좀 어지러워요.”

“아, 이거….”

이건 그동안 예상 못한 것이었다.

사실 군대에서 사격 훈련만 하더라도 귀마개에다가 헤드셋을 이중으로 쓰면서 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귀마개 잘못 꼈다가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로 옆의 말도 못 들을 것이다.

그동안 조수석에 있던 아이들이 잦은 총성으로 청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두고 한숨을 내쉬는 김준.

“사실 그런걸로 치면… 준이 오빠 상태가 제일 힘들겠지.”

은지가 차를 마시면서 한 말에 다시 숙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김준은 결정했다.

“이번에 장거리 한 번 준비해보자.”

“네?”

“장거리면… 또 그 마트 가는거야?”

“아, 그 홈플러스?”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그 곳을 다시 간다고 하니 잔뜩 긴장한 마리와 고개를 끄덕이는 에밀리.

하지만, 김준은 그 상황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른 위치를 잡았다.

“마리랑 나니카가 갔던 곳. 아산으로 다시 내려갈거야.”

“응? 아산?”

“아… 그 소고기 가져온 곳?”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지한테 말해서 지도책을 가져오게 했다.

그동안 수많은 코스를 달리면서 표시했던 곳을 하나하나 체크하고는 지난번 소를 사냥한 목장주인 집 근처에서 좀 더 내려가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사격장이야.”

“군부대 사격장?”

“그건 못 가고… 충남 사격테마파크장이라고, 클레이사격장이야.”

“…!”

김준이 클레이 이야기 듣고서 클레이 사격장에 대해 말하자 그곳을 떠올린 것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과거 멧돼지나 고라니 등의 유해조수 사냥단에 의해 충남도청에서 연락을 주며 탄 수급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꿩탄하고, 돌탄 파는 총포사가 있어. 아산시청 실업 사격팀 훈련장도 있거든.”

“오~ 그럼 게임 끝났네? 가는 길이 어렵기는 해도 샷건이나 공기총은 잔뜩 구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여기까지 갈 수만 있으면….”

“흐으음.”

동탄 한 바퀴 도는데도, 서해안고속도로의 아산 초입까지만 왔는데도 보였던 그 어마무시한 길 속에서 이렇게 장거리를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보이는 여자애들이 있었다.

김준은 일단 마리를 가리켰다.

“장거리 가는데, 마리는 괜찮겠어?”

“네, 네?! 아, 뭐 저야 한 번 더 간다면 되지만, 에밀리는….”

마리가 에밀리를 보자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뭐야? 나 그러면 거기 가서 총 잡는 거야?”

“으음… 아니야, 가야랑 도경이 중에 한 명 같이 가자.”

“What?”

“클레이 사격 해 봤다길래 한 번 동행해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아, 그러면 제가….”

“내가 갈래!”

도경이 자신만만하게 손을 들어올리고, 가야는 가려다가 흠칫해서 그녀를 바라봤다.

“어차피 총만 가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장거리 가면 물건도 엄청 챙길텐데 내가 들고 가는 게 낫지 않아요?”

아주 간단한 이유, 김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 루팅에 대해서는 마리와 도경이를 루팅 픽으로 정했다.

***

“좀비다!”

“대쉬보드에 귀마개 있어. 끼고 있어라.”

“네? 그럼 저는….”

“그렇게 해.”

루팅 계획을 짜고 이틀이 지나 밖으로 나온 김준 일행.

그리고 절 근처에 있는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다시 서해안국도로 왔을 때, 보이는 좀비들을 두고서 김준이 샷건을 장전했다.

도심과 시골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신도시때 뛰어다니는 좀비들의 비율이 잔뜩 있을 때, 공포스러웠던 루팅과 다르게 지금은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편했다.

으어어­ 크어­

아산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것들은 대다수가 걷는 좀비들이었다.

김준은 창 밖으로 총구를 내밀고는 심호흡을 하며 느릿느릿 기어다니는 좀비들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철컥­ 탕­!!!!

두 발짜리 샷건이 불을 뿜으면서 사방으로 터진 꿩탄이 터지면서 수백발의 쇠구슬이 좀비들의 얼굴을 갈갈이 찢어나갔다.

오늘의 목표는 첫째도 무기, 둘째도 무기, 셋째도 무기다.

그리고 만약… 지난번 동탄에서 집까지 내려갈 때처럼 길가에 경찰차, 혹은 군용 차량과 군인 좀비라도 발견할 경우, 어쩌면 엄청난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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