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197 콘크리트 캐슬.
* * *
김준은 드럭스토어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뛰는 좀비의 비중이 워낙 많아서 총알 소비도 심한 상황이라 하나하나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아무래도….”
물론 집으로 돌아가면 탄은 아직도 충분했지만, 잘못하면 루팅 나와서 총알이 덜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신경이 쓰이던 김준이었다.
그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좀비들이 다가왔다.
“!”
큭 크르르륵 쿠웨에에에엑!!!
비틀거리면서 다가오더니 별안간 바닥에 시커먼 썩은 피를 바닥에 토해내는 좀비가 보였다.
“오빠 거의 다 챙겼….”
뒤에서 들리는 마리의 목소리를 못 듣고 김준은 미친 듯이 샷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철컥 탕!!!
캬아아악!!!!
마치 클레이 사격의 날아다니는 접시를 맞추듯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을 총구를 돌려가며 하나하나 잡아내는 김준.
찰커덕 치익!
레버를 당겨 열자 안에 있는 빈 탄피를 꺼내고 바로 새 탄을 장전한 다음 총구를 겨누는 김준.
그 순간 다시 차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이 있었다.
캬아아아아!!!
탕 철컥! 철컥!
“!?!?!!”
김준은 갑자기 발사 안 되는 탄을 두고서 당황하다가 바로 바닥에 엽총을 내던지고,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탕 탕 탕 탕!!!!
뒤로 점점 물러나면서 권총으로 좀비들을 잡았을 때, 김준은 갑작스럽게 발 뒤꿈치가 찌릿하면서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사라졌다.
“!!!”
순간 중심을 잃고 쓰러진 몸이지만,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좀비는 확실하게 처리했다.
“큭… 크으윽!!!”
갑자기 통증이 올라오는 오른쪽 다리에 김준은 주저앉은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어?! 준 오빠? 왜 그래!”
뒤늦게 고개를 내밀었던 에밀리가 황급히 달려왔고, 마리 역시도 김준의 몸 상태에 이상을 감지하고, 일어났다.
“오빠, 왜 그래요?”
“아, 씨발 다리가… 크윽.”
“어느쪽이요? 무릎? 허벅지?”
“종아리….”
이 급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다리를 못 움직이는 김준을 보고 마리는 황급히 통증 부위를 손댔다.
그리고 의학 지식이 없는 에밀리도 저 상황을 보고 눈이 커졌다.
“지져스… 다리가 왜 이래? 막 꾸물거리고 튀어나온거 뭐야? 근육 터졌어?”
김준의 종아리가 꿈틀거리면서 파르르 떨리는게 옷을 갖춰입은 상태에서도 보였다.
마리는 그 상황에서 바로 김준의 다리 아대를 벗겨낸 다음 바로 발목을 잡아 다리를 폈다.
“편히 누우세요.”
“그게 될 리가….”
“빨리요!!!”
“!?”
이번엔 마리가 김준에게 소리치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다그쳤고, 김준은 좀비의 핏자국이 없는 바닥으로 몸을 돌려 겨우 등을 붙였다.
뚜둑 뚜둑
마리가 쭉 뻗은 김준의 다리를 만지면서 발목을 이리저리 돌릴 때 각기를 하는 것처럼 소리가 났다.
“쥐네요. 바로 풀어드릴게요.”
“쥐라니? 마우스?”
“머슬 클램프.”
“…오!”
에밀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증상을 말해준 마리는 집중해서 급하게 올라온 쥐를 풀기 위해 계속 주물렀다.
한편 루팅 중에 주저앉은 상태에서 권총을 든 채 입구를 바라보는 김준과 석궁을 겨누고 있는 에밀리.
그 순간 다시 한 번 좀비의 음성이 울렸다.
“돼, 됐어! 빨리 풀고 일으켜… 크윽!”
“오빠 갑자기 움직이면!”
겨우 풀려고 했던 쥐가 다시 올라와서 종아리가 터질 것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김준이었다.
“크르르르”
입구 쪽에 보이는 좀비.
하반신을 못 움직여서 누운 김준, 그리고 5m도 안되서 마주친 좀비.
탕!
파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에밀리와 김준이 동시에 총과 석궁 화살을 발사했다.
5분이 지나서야 겨우 다리를 다시 움직일수 있게 된 김준은 근방에서 쓰러트려 바닥에 피가 흐르는 것을 겨우 피했다.
계속 누워있으면 자연스럽게 바닥에 흩뿌려지는 좀비의 피에 몸이 닿았을 것이다.
“후우 후”
“괜찮아? 그냥 집에 갈까?”
“일단 차로 가자….”
에밀리와 마리의 부축을 받으면서 겨우 드럭스토어를 나온 김준.
그리고 두 여성은 밖에서 김준이 잡은 좀비들이 몸 여기저기가 찢어진 채로 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가게 안에서 안전하게 루팅하는 동안 벌어진 싸움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덜컥
“끄으응!”
겨우 차 위로 올라온 김준은 운전석에 앉아서 무릎과 종아리를 주먹으로 연신 두들기면서 쥐가 난 다리를 풀어냈다.
“어떻게 운전 할 수 있겠어요?”
“왼발로 해 봐야지.”
마리는 김준의 말에 안쓰러워 하면서 계속 지켜봤다.
그 와중에 에밀리가 뒤에서 마리를 뒷좌석으로 보냈고, 자신이 직접 조수석에 타면서 물었다.
“그냥 차 안에서 쉴까?”
“….”
김준은 말 없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고, 에밀리나 마리 모두 재촉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수익이 나쁘지는 않아요. 의약품에 통조림에, 건면에, 밀가루, 쌀, 담배, 술….”
편의점 하나 털어서 넉넉한 양의 물자를 챙긴 뒤로 지금 바로 돌아가도 확실히 이득인 일이었다.
김준 역시도 그 말을 듣고는 이쯤에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자 이전에 너무 많은 적, 그리고 몸 상태도 최악인지라 더 깊숙이 들어갔다간 뭔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후우 일단 가 보자.”
“어디로?”
“큰길로 한 바퀴 돈 다음에 아니면 그냥 묵을 필요 없이 집으로 갈 거야.”
“흐음, 오케이!”
에밀리가 옆에서 손가락을 말았고, 마리 역시 동의 하면서 마치 드라이브를 하듯이 폐허가 된 동탄 일대를 돌면서 움직였다.
간간이 좀비들이 튀어나왔지만, 40km로만 달려도 빽점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앞을 막지 않고서는 근처에 보이는 녀석들은 그냥 지나쳤다.
그 와중에 보이는 곳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아, 저기 더메이크 샵.”
“옆에는 스타벅스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화장품 샵, 토마호크 스테이크 레스토랑등 좋은 곳이 많았다.
하지만 그 근처에 방치된 차 근처로 다니는 좀비들이 움직이는 캠핑카를 보자마자 달려들려고 하는 통에 그저 그림의 떡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김준은 동탄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면서 도로의 장애물과 같은 폐차들을 피해 조용히 달렸다.
시큰거리는 다리 상태는 똑같았고, 간간이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깔려 백골화가 된 시체들을 보니 1년 전에 이 일대가 얼마나 지옥이었는지만 각인될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인간의 존재가 없는 상황에서 하늘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너무도 파래서 피크닉 가기 딱 좋은 날씨를 1년내내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1번국도로 빠질거야.”
“그럼 크게 한 바퀴 돈 건가?”
“1번국토 타고 바로 내려가면 소사벌이고, 지난번에… 에밀리 너랑 처음 갔던 곳 기억하지?”
“아, 골목길 카섹스 한 곳?”
당당하게 말하지만, 김준은 그냥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로 내려가면서 옷은 의류상가 쪽으로 가 보자.”
“좋아! 거기 래쉬가드나 레깅스 많아서 입을 거 많을 거야.”
그렇게 정해진 자리에서 마리와 에밀리 모두 다음 루팅을 위해서 준비하며 바깥을 살피며 좀비에 대비했다.
그때 길을 가던 중 거대한 종합운동장과 60층이 넘는 대형 주상복합이 저 멀리 보였다.
“마스터 팰리스다.”
“아, 저기… 연예인 선배님들 많이 살던 곳인데.”
“우리 사장도 제작년까진 저기 살았어.”
63빌딩보다도 더 높은 거대한 철고의 탑과 같은 곳이었다.
최고급 주상복합이라 연예계나 법조계, 기업 등등 부자들이 잔뜩 사는 곳이라고만 들었는데, 마리와 에밀리가 언급하니 저 안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김준이 지나가면서 그 곳을 봤을 때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차를 멈췃다.
“응? 준 오빠, 왜?”
“뭐가 있어요?”
“저 아파트….”
김준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엽총을 들고서 스코프로 멀리서 보이는 주상복합 건물을 유심히 살펴봤다.
“…뭐가 있어? 생존자야?”
“저 건물.”
“응?”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
“!?”
김준은 스코프 너머로 보이는 주상복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저런 고급 단지의 경우 담벼락이 높고, 차가 진입하는 입구도 무슨 유럽의 성이나 대리석 공예품 같은 디자인으로 장식하고 아파트 단지 이름을 영어로 새기곤 했다.
근데 그 고풍스런 입구가 바리케이트로 막혀있었다.
각종 의자, 가구, 전자제품등으로 막혀 있는 곳에서 그 근처로 좀비들이 걸어다녔지만, 차마 타고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단단한 장벽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그 안을 봤을 때, 유리창은 사생활보호로 필름이 붙어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껏 오랬동안 방치되서 콘크리트 벽에 잡초가 자라는 다른 아파트와 달리 저기는 뭔가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가 볼거야?”
“좀비가 너무 많아. 무리야….”
김준은 콘크리트로 덮인 요새와도 같은 주상복합을 보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에 다시 와서 제대로 수색하면 몰라도 지금은 자살행위지.”
그에게 있어선 처음으로 바깥 루팅 수색을 중단하고 떠나는 길이었다.
이제껏 재배해서 물물교환하는 농가와 다르게 도심 속의 최고급 주상복합은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리로 보이는 거대한 성.
그는 생존자 존재여부도 미지수인 그 콘크리트 캐슬을 뒤로 한 채 바로 1번 국도로 향했다.
짧았던 신도시 탐험은 여기까지 했지만, 아직 루팅은 끝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