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196 도시 좀비는 좀 더 위험하다.
* * *
“하아”
에밀리는 생각했던것과 다른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김준이 힐끗 바라봤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일단 물건부터 하나하나 챙겼다.
“여기 편의점엔 스포츠 브라가 다 있네?”
소사벌 동네 편의점과 다르게, 기능성 속옷이나 면이나 나일론등 종류별로 있는 작은 박스에 담긴 것들을 에밀리가 하나하나 더블백에 담았다.
그 옆으로 보이는 로션이나 헤어젤, 스프레이와 고데기 빗, 머리핀 등도 하나하나 챙기면서 원래라면 ‘콘돔 찾았다.’ 라고 당당하게 외치겠지만, 지금은 눈치껏 자제했다.
한편 김준은 카운터에 있는 담배와 의약품부터 챙겨서 담았다.
“마리야. 혹시라도 뭐가 보이면 바로 말해.”
“네, 넷!”
마리가 에밀리한테 석궁 받고서 주변을 돌았는데, 진짜 뭐가 나올지 몰라서 잔뜩 긴장한 상황이었다.
“못하겠으면 바꿔줄게.”
“아니에요! 몇 번 해 봤으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경계를 서겠다는 마리를 믿고서 김준은 카운터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챙기면서 눈은 계속 마리쪽으로 향했다.
안쪽 창고에 좀비 피로 얼룩진 것은 손 못댄다는게 정말 아쉬웠지만, 일단 있는 거부터 챙겨야 했다.
스틱 커피, 생수, 티백, 가루수프, 밀가루 등을 챙겼다.
“준 오빠, 이거 어떡해?”
“뭔데?”
“라면인데 유통기한 이제 지났어. 한 달 정도?”
라면의 보관기한 10개월이 지난 상태.
밀봉된 건면이지만, 먹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에밀리가 들고 있는 컵라면과 봉지라면을 보고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정했다.
“챙겨.”
“먹을 수 있겠어?”
“면은 몰라도, 라면스프는 챙겨야지. 정 안 되면, 닭 키우는데다가 교환용으로 쓰면 돼.”
“오케이.”
에밀리는 그 말을 듣고서 일단 하나하나 담았다.
단, 김준은 거기서 비율에 대해 명했다.
“라면보다는 쌀국수나 파스타, 소면 같은 걸 챙겨. 그건 아직 유통기한 충분할거다.”
“어디… 어, 정말 그렇네? 오케이!”
김준의 말을 들은 에밀리는 하나하나 챙기면서 더블백 두 개 분으로 넉넉히 담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완전 빈손은 아닌 상황이니 어느정도 체면치레는 할 수 있었다.
“얼른 챙길 거 챙기고, 다른 곳도 한 번 돌아 보….”
“오빠! 오빠!!! 좀비!”
“!!!”
바깥에서 마리의 외침에 김준은 황급히 엽총을 장전하고 달려갔다.
캬아아아아
“이런 씨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좀비 한 마리가 피거품을 물고서 맹렬하게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육상선수같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중에 마리가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석궁을 들었다.
“마리야, 뒤로 물러….”
파아아앙
콰직
10m 앞까지 달려왔을 때, 마리가 발사한 석궁 화살이 직각으로 날아가 좀비의 머리를 꿰뚫어버렸다.
캬악 캬아아아
타앙!!!!!
머리에 화살이 꿰뚫린 상황에서 비틀거리던 좀비를 향해 확인사살로 엽총이 당겨졌다.
수많은 쇠구슬이 들어간 멧돼지 탄은 10m 안의 거리에서 좀비의 몸을 갈가리 찢어발기고는 뒤로 넘어트렸다.
“후우우….”
“허억… 허억….”
자신이 쏴서 좀비를 잡은 뒤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마리.
이 정도로 근거리에서 잡아본 적은 없어 두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입술이 점점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찰싹
“진정! 진정! 심호흡 하고, 안으로 들어가 있어!”
“으, 으으으….”
호흡 곤란까지 오려는 마리를 김준이 진정시키면서 일단 조수석 문을 열고 밀어넣었다.
그 뒤로 에밀리가 짐을 가져올때까지 김준이 직접 경계를 섰다.
뚝 뚝
“!?”
김준은 편의점 입구에서 떨어지는 핏자국을 보고 설마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1층 상가에 있는 편의점 위에는 2층 선술집이 있었다.
난간까지 갖춰 있어 감성 포차로 쓰기 딱 좋은 그곳에… 몸이 걸터앉은채로 이쪽으로 보고 뛰어내리려는 좀비가 보였다.
캬아아아아악!!!!
타앙 철컥 타앙!!!!
촤아악
바로 2층 난간을 겨누면서 엽총에 불이 뿜어졌다.
난간을 타고 뛰어내리려던 좀비는 산탄 두 방을 맞고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만약 저걸 발견하지 못하고 에밀리나 김준이 그냥 나왔다가 그 위로 좀비가 떨어졌다면… 혹은 바로 저 근처에서 경계를 서던 마리의 몸 위로 좀비의 오염된 피가 떨어졌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었다.
“에밀리!”
“히익!? 이거 뭐야? 어디서 피가 떨어지는 거야?”
아직 나오지 않고 총 소리를 들어서 식겁한 에밀리를 향해 김준은 편의점 입구 근처에 있는 우산을 총구로 가리켰다.
“우산 쓰고 나와!”
“으으… 알았어.”
양 어깨에 꽉 찬 더블백을 메고서 여러개 꽃혀있는 우산 하나를 뽑았다가 내친김에 전부 챙겨서 옆구리에 잔뜩 메고 온 에밀리였다.
김준은 우산 쓰고 나온 에밀리를 안아주면서 그녀의 양 어깨에 있는 더블백들을 빼서 자신이 직접 날랐다.
그 사이 투명한 비닐로 만들어진 우산 위로 좀비의 핏자국 떨어지는게 몇 개 보이자 얼굴색이 점점 변하는 에밀리였다.
“쉐엣!”
“위험했어.”
올라가는 에밀리를 향해 수고했다고 등을 팡팡 쳐준 김준은 좀비 피가 묻은 우산을 받아 집어던지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에 탄 뒤로 마리는 겨우 진정한 상태로 김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오빠.”
“아니야 여기 진짜… 나도 개 빡세.”
시골 좀비와는 다른, 신도시 좀비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빠르기는 또 엄청나게 빨랐다.
그동안 걷는 좀비 위주로만 상대를 했었는데, 뛰는 좀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동탄신도시.
일단 편의점 하나를 털고서 차를 타고 출발했을 때, 주변에 보이는 건 원룸촌 일대의 부동산과 커피숍, 식당 등이 자주 나왔다.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준은 다른 편의점을 찾으면서 두 일행에게 말했다.
“이번에 다른 곳 찾으면 자리 바꿀래?”
“오케이! 나는 상관없어.”
“네, 잠깐만 뒤로 빠질게요.”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한 마리를 보고서 김준은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있는 아크릴 판을 손으로 톡톡 치면서 그녀를 달랬다.
“너무 신경쓰지 마. 그래도 네가 달려오는 좀비 잡은 거야.”
“…네.”
“이따가 개인병원 찾으면 수술도구 같은거 있나 찾아보자. 약국 발견하면 필요하고.”
“그건 제가 꼭 분류할게요.”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장소를 찾았다.
그렇게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하나하나 잡아나갈 때, 두 번째로 발견한 곳이 있었다.
“마리야!”
“네?”
“저기 어떠냐?”
“…아!”
김준이 가리킨 곳은 랄라블라라고 쓰여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었다.
“드럭스토어?!”
“저기 약 좀 있겠지?”
일반 약국이 아닌 팬시용품과 화장품과 일반 의약품이 있는 드럭스토어.
김준은 그곳을 2차 루팅 장소로 정했다.
뒷자리에 있는 에밀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각이 보이지 않게 좀비가 어디서 튀어나올지를 살폈다.
김준 역시도 주변 경계를 하면서 클락션을 한 번 눌러봤고, 그 순간 좀비들이 튀어나왔다.
쨍강!!!
크아아아!!!
“문 좀 열고 나와라, 새끼들아!”
드럭스토어 유리창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흩뿌리며 튀어나오는 좀비를 향해 김준은 차 안에서 총을 뽑아들었다.
탕 탕 탕!!!!!
***
탁 탁 치익
“후우~”
차 안에서 30분 간 대치하면서 좀비들을 다 처리한 뒤로 담배 한 대를 피는 김준.
이걸 다 핀 다음 안으로 돌입할 것이다.
“에밀리!”
“응, 준비 됐어.”
“신발 벗고, 서랍장에 장화 있어! 그걸로 갈아신어.”
“아, 오케이!”
“그리고 샤워장 옆에 커브 밀대 있어, 아무래도 그걸로 바닥 한번 쓸고 들어가야 될거다.”
“오케이!”
좀비들이 깨고 나온 유리 조각들이 널려있는걸 그냥 들어가긴 그랬다.
김준은 에밀리를 통해 밀대와 희석 락스, 장화를 준비하라고 한 다음에 담배를 끄고 천천히 내렸다.
어디서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일단 에밀 리가 꺼내온 밀대와 락스를 받고 차 근처에 널브러진 좀비들에게 뿌렸다.
치이익
썩은 살에 뿌린 락스 향이 시취를 빠르게 삼켜가면서 부글부글 끓는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마리까지 나왔을 때, 이번에는 김준이 문 앞을 지키면서 두 여성이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 있다!”
드럭스토어 안에 [처방전 제조]라고 쓰인 작은 약국을 발견한 에밀리.
마리 역시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까의 꼴사나운 모습을 잊고 자기 밥값을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좀비가 서성인 피 묻은 발자국들이 가득한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헤드캡으로 얼굴을 가린 두 톱스타는 천천히 안에 물건들을 챙겼다.
“필 있어? 필?!”
“그것도 챙길테니까 다른 거 알아봐 줘.”
“오케이!”
에밀리는 근처에 있는 다른 물건들을 챙겼다.
드럭스토어다 보니 단순 의약품 외에 화장품과 위생용품이 더 많았다.
“흐음, 탐폰이… 여기 있네?”
탐폰과 면 생리대, 그 옆에 있는 팬티라이너와 의약솜, 위생물티슈 등을 발견한 에밀리가 하나하나 담아갔다.
마리는 안에 들어와서 의약품들을 보고 자신이 아는 의학지식을 총 동원해서 하나하나 분류했다.
“아세트아미노펜… 이게 제일 중요하고, 항생제, 메디폼, 에탄올, 드레싱거즈, 근육이완제….”
침착하게 의약품을 챙기면서, 막사발과 핀셋, 수술가위와 실크 타이까지 발견한 마리는 금광을 찾은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백팩에 담았을 때, 마리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애들이 부르던 것을 손에 넣었다.
“피임약… 종류별로 다 있네.”
경구피임약과 사후 피임약 둘다 확인한 마리는 그것들도 하나하나 담았다.
“준 오빠~ 바깥은 괜찮….”
타앙 탕!!!!
그 순간 바깥에서 김준이 미친 듯이 총을 난사해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놀란 에밀리와 마리는 스토어 안에 약국 카운터로 몸을 숙이면서 각자 새총과 석궁이라는 무기를 준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