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94화 (194/374)

〈 194화 〉 194­ 장거리 돌아볼 준비.

* * *

김준은 그날도 작업을 마치고 따사로운 햇빛 아래 캠핑카 문을 열고서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에밀리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서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멀리 나갈거야.”

“나도 갈래.”

“좀비가 좀 많을수도 있어. 신도시 쪽으로 갈 거거든.”

소사벌시에서 서해안도로 타고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곳이 동탄이었다.

그 일대에 과연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을지 짐작도 안 갔다.

하지만, 이곳에는 없는 백화점, 다이소같은 천원샵, 애들 입을만한 옷게와 대학병원, 약국까지 있는 곳이니 가서 제대로만 한다면 엄청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도시 가는거야?”

“한 번 봐야지. 저번에 들어보니까 애들 속옷도 없다며?”

“뭐~ 그렇지.”

“불편했겠다.”

“그래서 지금 안 입고 있어♥.”

“!?”

원피스 차림으로 치맛단을 살랑살랑 흔드는데, 그녀의 육덕한 엉덩이와 런닝머신으로 다져진 불륨감있는 맨다리가 보였다.

원한다면 좀 더 치맛단을 올리겠단 식으로 손을 이리저리 흔들 때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사실 입었지롱~”

치마를 확 올렸을 때, 안에는 레이스 팬티가 드러났다.

근데 그게 자세히 보니 지난번에 라나가 입고 다니던 거였다.

속옷 부족하다고 하더니만, 진짜 서로 돌려입나보다.

김준은 그 모습을 보고서 조용히 들춰올린 원피스를 내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루팅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좀 생활용품을 찾는 쪽으로 가 보자고.”

“찬성!”

“뭐, 있으면 좋을 게 많죠.”

김준의 루팅 계획에 모두들 동의했고, 이제는 바깥에 나가는 게 공포라기 보다는 나들이로 느끼는 애들도 있었다.

김준은 노트로 하나하나 쓰면서 가야를 불러 말했다.

“총무가 필요한것들 하나하나 적어봐. 일단 음식보다 생필품 위주로.”

“저기 일단은 가장 필요한건 속옷이요.”

“브래지어, 팬티… 일단 이건 확실히 챙겨야겠어.”

김준은 다른 건 몰라도 어제의 속옷 이야기를 듣고서 명품으로 잔뜩 채워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외에 가야는 자신이 챙긴 수첩을 가지고 리스트를 하나하나 김준에게 말해줬다.

“그리고 이건 아시겠지만, 일단 피임약이요.”

“그것만 있으면 돼?”

그러자 마리가 거들었다.

“소염제도 있으면 좋겠어요. 생리통 있을때마다 반개씩 개서 먹고 있는데 그래서 떨어져 가요.”

“그게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생리통을 웬만해선 버틴다고 해도 결국 8명이 부대끼면서 살다 보니 진짜 아픈 애들이 하나둘씩 먹던게 어떻게 바닥이 나고 있었다.

김준은 게보린이고, 타이레놀이고, 찾으면 전부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약은 필요없어?”

“음~ 일단 외상 치료하는 붕대나 타이, 장비들은 괜찮고, 포도당도 있으면 좋겠네요. 알약 형식으로 된거요.”

“오케이.”

속옷과 상비약에 대해서 적은 김준을 보고서 다른 아이들도 하나씩 눈치를 보다가 이야기를 했다.

“저기 오빠, 그 구할 수 있다면요.”

“응? 뭔데? 말해봐 나니카.”

나니카는 우물쭈물 하다가 조용히 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 구할 수 있으면요. 생리대 중에서 그걸 구할수 있을까요?”

“응, 뭐?”

“생리대 많은데?”

“아니, 패드 말고 그거요.”

“탐폰?”

에밀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눈치챘고, 나니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김준이 피식 웃었다.

“탐폰이라, 뭐가 다른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챙겨볼게.”

“그거 쓰면 편하긴 해. 나도 가끔 촬영이랑 겹치면 잘 이용했어.”

에밀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탐폰에 대해 말하자 그걸 아예 안 써본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번 써볼지에 대해 논했다.

그 외에 각자 한 명씩 이야기를 했다.

“옷은 많은데요. 활동복으로 쓸 수 있는 바지 같은거 없을까요?”

집 안에서 입고 다니기엔 조금 과한 드레스나 미니스커트 등이었다.

물론 서로 알거 다 아는사이니 딱히 입어도 상관없고, 오히려 김준을 유혹할 확률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반바지랑 츄리닝좀 찾아보자. 도경이 말 잘했고, 하나하나 신경쓰니 부족한게 많긴 하구만.”

김준은 그것을 정리하면서 이번에 갈 루트에 대해 말했다.

“여기가 예전에 라나랑 갔던 서해안 길이거든? 쭉 올라가면 동탄쪽이야.”

“오~ 신도시.”

에밀리는 회의때부터 자신이 가겠다고 노래를 불렀고, 그곳에서 챙길 리스트에 싱글벙글했다.

“백화점 갔으면 좋겠다. 거기서 막 루팅하고~ 공짜 쇼핑하고~”

“놀러가는거 아니야.”

“목숨값인데, 그래서 더 잘 챙겨야지~”

저세상 멘탈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에밀리를 데리고 가고 그 다음으로 마리가 손을 흔들었다.

“지난번에 아산 가던 거처럼 거기서 부상자 만날지 모르니까 멀리가는 길은 제가 낫지 않아요?”

“어, 마리도. 그럼 이렇게 둘이 가자.”

마리와 에밀리라는 조합을 두고서 둘의 케미는 과연 어떨지 기대가 됐다.

둘 다 김준 없이도 새총이나 석궁 등의 무기로 좀비를 잡는 것에 대해 능숙했고, 기술이 있는 마리와 두려움 없이 물건 챙겨 들어가는 멘탈의 에밀리가 있으니 단기간에 루팅은 문제 없을 거다.

“장거리로 갈 거니까 며칠 걸릴지 몰라. 모두 감안해 주고, 특히 은지랑 가야가 고생좀 해 줘라.”

“집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랑 가야 언니가 잘 볼게요. 다른 애들도 있고요.”

이제는 김준 부재시 안주인 역할을 확실히 해 주는 은지의 말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장거리 떠나기 전에 차에 물자 넉넉하게 채우자!”

“오케이!”

차 상태를 체크하고, 물자를 넉넉하게 챙기면서 이번에도 문제없는 출정이 되기를 기대하는 김준이었다.

***

그렇게 에밀리와 마리를 데리고 출발한 김준은 오전부터 후끈후끈한 날에 에어컨을 켰다.

“이제 슬슬 더워지네.”

“이제 진짜 1주년 기념이라도 해야되나봐요.”

“아, 벌써….”

조수석에 있던 마리의 말에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는 말에 생각이 많아진 김준이었다.

그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세상이 완전 망한거 같으면서도 여기저기에 생존자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원시적이지만 물물교환을 통해서 서로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번에 신도시까지 가면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혹시 알아? 서울이나 위에는 벌써 좀비랑 싸우면서 필드가 만들어져있을지 말이야.”

“그랬으면 좋겠다.”

에밀리와 마리의 말에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때 되면 너희는 소속사 사람들이 구하러 올까?”

“…아.”

“혹시 알아? 너희들 각자의 멤버들은 잘 살아있을지도.”

“….”

김준의 말에 진짜 윗동네는 어떤 상황일가 궁금해하면서도, 만약 좀비 사태가 끝나 이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살지 생각하는 두 아가씨였다.

김준이야 8명의 톱스타와 그동안의 인연은 그냥 숙박비와 추억값이라 생각하면서 손 흔들고 쿨하게 보내줄 것이다.

“돌아가면… 으으음.”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혹시 좀비가 사라져도… 여기 남을 수 있어요?”

마리가 세상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내린 말에 김준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마리야.”

“네, 오빠.”

“앞에 좀비 나오는데 뭔 소리니?”

“?!”

진지하게 답변을 기다렸는데, 그 무드가 좀비가 나와서 깨져버렸다.

거기에 맞춰 뒤에 있던 에밀리가 여기저기 창문을 보다 말했다.

“뒤에는 없어. 옆에도 없고!”

“그럼 앞에 막는 저것들이 전부야?”

철컥­

김준은 거리도 어느정도 있는 상황에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두 좀비를 보고는 침착하게 공기총을 꺼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뛰는 좀비라도 단숨에 맞춰 잡을 수 있었다.

차를 돌리고 창문을 살짝 열어 총구가 나왔을대, 김준은 스코프를 통해 좀비를 확인하고서 정확히 미간을 노렸다.

오랜만에 쏘는 공기총의 감각은 좋았으며, 연지탄 역시도 넉넉한 상황이었다.

‘하나, 둘… 셋!’

찰칵­

띵!

압축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새끼 손톱만한 연지탄은 강선 없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그대로 좀비 한 마리의 미간을 꿰뚫었다.

이걸로 50m 앞에 고라니도 한 방에 눈 쏴서 잡았던 실력이 어디 안 간다.

찰칵­

김준은 다음 탄을 두고서 바로 두 번째 좀비를 향해 날렸다.

띵­ 찰칵­ 띠잉­

총 소리 치고는 상당히 귀여웠지만, 위력은 안 귀여운 공기총의 연지탄 네 발로 좀비 둘이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김준은 총을 집어넣은다음 슬며시 사이드 미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는데.”

부우우웅­

김준은 차선을 넘어서 좀비 둘이 쓰러진 자리를 지나치고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어느정도 달렸을 때, 초록색 표지판이 보였고, 동탄 20km 서울 57k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농담이 아니라 1시간만 빡세게 달리면 바로 서울로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도시 까지 가기도 전에 점점 목적지에 다가올수록 보이는 상황에 모두가 경계했다.

“오, 쉣! 저거 봐. 건물이 싸그리 타 버렸어.”

“어머, 저건….”

도로 방음벽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들과 오피스 빌딩들이 처참한 상황으로 방치되어있었다.

몇몇은 유리창이 전부 깨지고 검은 그을음의 흔적으로 불이난 상태에서 방치됐다는 것을 알렸다.

또 일부 건물들은 콘크리트가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잡초가 무성히 자라면서 간판등이 떨어져 나간게 보였다.

누가 봐도 사람의 흔적 따위는 없는 폐허의 현장이었다.

“어째… 안에는 더 심각할 거 같은데?”

도로를 달리면서 넌지시 중얼거린 김준의 한 마디.

그리고 마리와 에밀리 역시 더 이상 노닥거리거나 감성에 빠질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손에 든 무기를 꽈악 쥐었다.

“30분 뒤 도심 들어간다.”

김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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