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185 빗속의 여인.
* * *
겨우 차를 고치고 다시 루팅을 위해 움직이는 길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인아는 연신 아까의 일에 대해 두리번 거리면서 초조해 했다.
혹시라도 그 행상인이 자신들의 뒤를 밟아서 쫒아오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건 라나도 똑같아 보였다.
“뒤에 아무것도 안 보여~ 비가 너무 온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뒷좌석을 향해 손으로 툭툭 쳤다.
“그런거 보다도 주변을 살펴봐! 좀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할게 아니야?”
“아, 네~네!!”
라나는 뒤를 보던 것을 멈추고서 뿌연 빗길 속에서 양 옆도 살펴봤다.
김준 역시도 앞이 잘 안보여서 최대한 천천히 가면서 길을 찾아나갔다.
그때, 그 앞으로 좀비가 보였다.
“오빠! 저기!”
“봤어.”
인아가 가리킨 곳에는 반대쪽 차선에 있는 좀비들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세찬 비를 맞으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다가오기는커녕, 당장에 발도 못 떼는 상태로 몸에 있는 피와 썩은 살이 씻겨내려가고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에 잔해물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냥 가도 상관없겠구만.”
김준은 혀를 차면서 웬만한 좀비들은 움직이기도 힘든 좀비들을 그냥 지나쳤다.
경제속도 60km로 달리면서 가끔씩 차가 덜커덩거렸지만, 결국은 공단면 안으로 들어온 김준의 차량이었다.
지난번처럼 저수지를 지나치면서 갔는데, 그 일대는 완전 물바다가 돼 있었다.
“어우씨, 이거 어떻게 가냐?”
“오빠! 저기 봐요!”
인아가 가리킨 곳에는 물이 범람해 도로에 깔린 뒤로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펄떡이고 있었다.
“….”
예전에 홍수나 태풍같은 거 있으면 물고기들이 땅으로 넘어온다고 하더니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인 것 같았다.
“라나야! 뒤에서 양동이 챙겨!”
“네? 아, 네!!!”
라나는 짐을 뒤적거리면서 양동이를 몇 개 꺼냈고, 김준은 뒤에 걸린 우의를 다시 챙겨입고서 밖으로 나갔다.
쏴아 쏴아아아
그래도 아까의 그 지옥같은 물폭탄보다는 어느정도 줄어든 빗줄기였다.
인아도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우비를 챙겨입었고, 라나도 양동이를 들고 나왔을 때, 김준은 팔을 걷었다.
“바닥에 깔린 이것들 전부 잡자!”
“오~ 고기잡이!”
라나가 흥얼거리면서 양동이를 집었고, 지난번에 징그럽다고 질색하던것과 다르게 아스팔트위에서 펄떡이는 붕어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았다.
“이걸 이렇게…꺄앗!”
푸드덕
미끌거리는 몸에 꼬리로 힘껏 몸부림을 치는 붕어를 라나가 놓친 순간, 인아가 옆에서 잡아 바로 양동이에 넣었다.
양동이에 물을 채우고서 바닥에 널브러진 고기들만 잡아도 오늘 먹을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
김준은 양말까지 푹 젖은 빗속에서 양동이 두 개 분의 물고기들을 잡았다.
손바닥 크기를 넘는 붕어, 미꾸라지, 피라미, 버들치 등이 잔뜩 잡혔다.
너무 작은 것들은 집어다가 연못이 있는 곳으로 던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동이 두 개분으로 가득 잡힌 물고기들을 보고 라나가 낑낑거리면서 겨우 들었다.
“어우, 이거 엄청 무겁네.”
“이리 줘. 같이 들자.”
인아와 라나가 같이 양동이를 들고서 차 안으로 들어갔다.
꽃순이 미소녀 아이돌들이 홀딱 젖은 몸으로 비린내 가득 나는 민물고기를 잡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뭔가 귀여우면서도 처량했다.
“곧 도착하니까 몸 좀 씻고 있어! 갈아입을게 있나?”
“웃옷은 있는데, 바지는 핫팬츠밖에 없네요.”
“이건 입고다니기 그렇지?”
라나가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엉밑살이 보이는 타이트한 돌핀팬츠를 입고 바깥에 돌아다닐 순 없었다.
결국 좀 축축하긴 해도 일단은 긴바지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이 황여사 빌딩에 도착했을 때, 김준이 클락션을 울렸다.
빵 빵빠아아앙
김준이 클락션을 울리고, 기다리고 있을 때, 바깥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동남아 아가씨 한 명이 보였다.
그녀는 김준의 트럭을 보고는 후다닥 내려왔고, 잠시 후에 바리케이트를 치우려고 온 아가씨들이 있었다.
“아, 준이 왔어?”
“누나, 별 일 없었지?”
김준은 물건을 치우러 온 은별과 반갑게 인사하면서, 자신도 바리케이트를 하나하나 치웠다.
비가 쏟아지는 통에 안에 틀어박혀 있던 아가씨들과 같이 올라왔을 때, 안에서는 다들 김준 일행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얼굴을 보고서 김준이 멈칫했다.
“중사삼촌, 왔어?”
“사, 사장님. 얼굴이….”
“으, 으응? 그래? 요새 좀 부었지?”
황 여사는 예전과 달리 울퉁불퉁해진 얼굴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황 여사 뿐만 아니라 다른 아가씨들도 상태가 안 좋았다.
“마미, 또 입에서 피나.”
“양치 잘 하라니까.”
“양치 하는데 이래.”
베트남 아가씨 하나가 치아를 보여주자, 잇몸에서 피가 줄줄 나오고 있었다.
단순 치은염이라고 볼 순 없는게, 잇몸 안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양치를 한게 보였다.
김준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사장님, 이거…”
“응? 몸이 좀 안좋아서 그런 건데.”
“괴혈병이잖아요!”
“!?”
김준의 괴혈병 진단에 인아와 라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오빠, 여기도 야채 기르지 않나요?”
“그래, 풋고추랑 깻잎이 보이던데.”
“사장님, 생으로 먹은 적 없고, 전부 끓여먹었죠?”
“!!!”
김준의 말에 황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는 거였나? 우리 먹고 사는건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후우… 인아야.”
“네, 오빠!”
“가서 아이스티 가루 가져와.”
“제가 갈게요. 제가!”
라나가 손을 들고 후다닥 달려갔다.
김준은 오늘 가져온 양동이에 붕어 두 개를 놓고서 황 여사 일행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먹으려고 했지.”
그렇게 일단 라나가 가져온 아이스티 가루를 물에 풀어다가 비타민 보충부터 하고 좀 쉬게 했다.
“부엌 좀 쓸게요.”
“미안해. 중사 삼촌.”
“대신에, 애들 옷 좀 챙겨주실래요? 있으려나?”
“옷? 아, 그건 많이 있어. 은별아! 저기 아가씨 둘 입을 만한것좀 챙겨줘라.”
황 여사가 애들 입을 옷을 챙겨주는 동안 김준은 양동이를 들고서 잡아온 생선들을 손질하기 위해 부엌에 갔다.
탕 탕
득득 그으윽
칼등으로 잡은 붕어 머리를 내리치고 비늘을 벗겨내면서 배를 따서 내장까지 쭉 빼냈다.
비린내가 가득한 것을 테이블에 식초를 물에 풀어다 담가놨다.
민물고기 손질은 지난번에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제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때 냄비와 같이 야채를 가지고 온 노래방 아가씨들이 다가왔다.
“아조씨, 도울게요!”
“어, 그래…”
약간 어색한 한국어를 쓰는 태국인과 베트남인 아가씨들은 능숙하다는 듯 옆에서 무를 씻고 쑥을 손질했다.
칼로 무를 썰어서 냄비 위에 올려놓고 그 뒤로 김준이 손질해서 식초로 씻어낸 붕어들을 하나하나 올려놨다.
그리고는 마늘을 다지고, 양념장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김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입 안은 괜찮아?”
“네, 신거 먹으니 더 이상 피가 안나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먹거리가 많은데 괴혈병이라니….”
“괴혈병이 근데 뭐에요?”
김준은 그것부터 설명해줘야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비타민 부족한 병. 앞으로는 생 야채를 꾸준히 먹어. 특히 풋고추랑 깻잎!”
김준은 다른건 몰라도 그건 진짜로 중요한 거라고 일러뒀다.
그렇게 냄비 두 개 분으로 붕어찜을 끓이는 동안 두 동남아 아가씨는 지난 번에 루팅해온 밀가루를 꺼내다가 반죽을 하고 있었다.
뭘 하나 싶었는데, 밥 대신에 수제비를 끓이고 있었고, 그렇게 열 명이 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만들어졌다.
“오빠~”
“응?”
김준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왔다.
“어….”
“이런거 밖에 없대요.”
“크, 크흠.”
김준은 라나와 인아가 입고 온 옷을 보고서 뺨을 긁적였다.
그녀들의 옷은 어깨라인이 보이며, 가슴골이 모이는 홀복이었다.
홀터넥이라고 불리는 나시 원피스에 검은 면 스타킹을 입은 모습은 딱 모던바 바텐더 같았고, 라나는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옷맵시를 확인했지만, 인아는 이런 걸 입으니 무척이나 부끄러워 했다.
‘다른 애가 왔으면 진짜 장난 아니겠지.’
특히 도경이나 은지 같은애들이 저거 입으라고 하면, 차라리 이걸 말리고서 버티겠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런 홀복 차림으로 나와서 김준이 끓인 붕어찜을 서빙하는 모습에 그 갭이 무척이나 웃겼다.
어쨌건 다들 모여서 식사가 이어졌다.
지난번에 이어 붕어찜에 맛들린 라나는 젓가락을 이리저리 해서 잔가시를 하나하나 발라낸 다음 작은 조각이 된 생선살을 입에 넣었다.
“으으음~ 이거 너무 좋아.”
라나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 인아도 한 입 먹더니 나쁘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고기는 이렇게 먹고, 수제비랑 칼국수만 만들어 먹었거든.”
“사장님… 아까 아가씨들에게도 말했는데요. 생야채 꼭 드세요. 어떻게 이렇게 재배해놓고 비타민 부족으로 다들 골골거려요?”
“미안, 다음부터는 신경을 써야겠어.”
“그러게, 괴혈병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들었다.”
황 여사나 은별, 나미 등은 괴혈병에 대한 위험성을 알아서 비타민C 가득한 과일주스를 잔뜩 마시고 휴식을 푹 취한 뒤에 푹 쪄낸 물고기를 먹었다.
“뭐, 있지도 않겠지만 딱딱한 음식은 절대 금물. 이 빠지면, 답도 없어요.”
“그거야 뭐… 당연하지.”
주의사항을 몇 개 일러준 뒤로 식사는 계속 이어졌고, 수제비와 붕어찜 두 그릇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남은 물고기들은 내장을 빼내고 냉장고 안에 넣었고, 포식한 뒤로 식후 연초를 하는 김준은 총을 들고서 바깥을 바라봤다.
비는 거세지고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 상황에서 김준은 바깥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 사장님, 오늘 여기서 좀 묵을 수 있을까요?”
“응, 응! 그래. 중사 삼촌이 있으면 든든하지.”
“방이야 많아. 다 노래방 룸이지만.”
은별이 인아랑 라나가 묵을 수 있는 방을 하나 잡아주고 모포를 줬을 때, 홀복 차림의 두 소녀는 김준에게 착 달라붙어 옥상으로 갔다.
“원래 오늘은 물건 챙긴다음에, 주유소 루팅을 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차가 멈춰서 어쩔 수 없죠. 여기서 묵고 가는 건 가요?”
“그래야지. 수고스럽겠지만, 오늘은 이쯤 묵고 내일 루팅 한 다음에 돌아가자.”
“네!”
두 소녀는 김준의 말에 잘 따라줬고, 그 역시 바깥을 보면서 오늘 하루는 천천히 경계를 서 보기로 했다.
비가 이렇게 와서 과연 좀비가 이걸 헤치고 여기까지 올 수는 있겠냐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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