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83화 (183/374)

〈 183화 〉 183­ 바깥구경 할 때.

* * *

김준은 집 안에서 라나와 같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오케이!”

“아, 반칙! 건드렸잖아요!”

“그럼 무릎 위에서 나와.”

라나는 침대에 앉은 김준의 무릎위에 앉아서 작고 하얀 손으로 연달아 조이스틱을 두들겨대다가 실수해서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히잉~ 이길 수 있었는데.”

카트 레이싱 게임을 벌써 몇 판째 하고 있던 라나는 한숨을 쉬다가 김준의 위에서 핫팬츠 차림의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그의 허벅지를 짓 눌렀다.

“자꾸 움직이지마!”

“나는 가볍다면서요~”

“허벅지 아파.”

“꺄아~”

핫팬츠 사이로 빠져나온 엉밑살을 김준이 살짝 꼬집자 웃으면서 들썩이다가 바로 침대에 눕는 라나였다.

매끈한 두 다리에 짧은 덧신을 신은 발이 까딱이면서 다시 김준의 다리 위에 올라왔다.

“다시해요.”

“그럼 발 치워.”

“응~ 냄새 안 나는데.”

라나는 유연한 다리를 접어 자기 얼굴가에 대고 킁킁거리다가 다시 김준의 어깨 위에 올려놨다.

“봐바. 안 난다니…꺄아악!?”

김준은 자기 어깨 위에 올린 미소녀 아이돌의 발가락을 깨물어줬고, 침대에서 발버둥 치다가 삐져서 볼을 부풀리는 라나였다.

“오빠~ 저녁이요.”

“밥 먹자.”

“씨잉….”

라나는 침이 묻은 덧신을 보고는 투덜거리면서 김준을 따라 방에서 나섰다.

오늘의 메뉴는 그동안 얼려놨던 소고기였다.

불판 하나와, 프라이팬에 소고기가 구워지는 순간 모두의 눈에 하트가 만들어졌다.

“스테이크~ 스테이크~”

“고기다! 고기!”

먹는 거 앞에서는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에밀리와 도경을 두고서 각자 움직였다.

옆에서 긴 젓가락으로 새빨간 고기를 집어서 천천히 굽고 있는 나니카, 상추와 밑반찬 세팅하는 가야, 주방에서 해동한 고기 썰고 있는 은지와 인아, 마리.

그리고 아까 일로 계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갓 익은 소고기 한 점을 낼름 집어서 입에 넣은 라나.

“자~ 찌개도 왔어요.”

“와! 고깃집 스타일!”

차돌박이로 얇게 포를 뜬 고기를 넣고, 고추장이랑 된장, 집에서 재배한 양파와 고추 넣고 팔팔 끓인 찌개를 보고 모두가 수저로 향했다.

원래 한 그릇에 이렇게 덜어먹는거 위생문제 때문에 못 하는 행동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걸 따지는 이는 마리 하나밖에 없었다.

고기를 먹으면서 회식 분위기를 이끌어낼 때, 탄산이 없어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가루 주스가 나왔다.

김준은 은지가 주스를 소주에 탄 칵테일을 받아들고는 마시면서 요새 물자에 대해 물었다.

“뭐, 부족한 거 없지?”

“신경 써야 할 건 있어요. 기름이요.”

“흐으음.”

가야의 말에 김준이 뺨을 긁적였다.

“오빠, 같은 발전기지만, 디젤은 유독 빨리 소모되네요? 게다가 요새 연기도 막 나고 탄내도 심해요.”

“너무 돌려댔나. 한 번 손질 해보고 돌아가면서 전기 써야겠다.”

요새 좀 풍족하다고, TV 틀어서 영화도 보고, 게임기 설치하고, 음악도 듣다 보니까 전기 소모가 많아졌다.

“내일 한 번 볼게. 뭐, 다른 건 없으려나?”

“장이 좀 부족해요.”

인아의 말에 김준이 찌개 한술 뜨다가 물어봤다.

“뭐? 무슨 장?”

“간장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털어온거 많지만, 고추장이나 된장, 쌈장 같은건 슬슬 떨어져 가요.”

“벌써?”

“국 끓이는데, 지난번에 항아리로 하나 받은 거 얼마 안남았거든요.”

“흐으음.”

확실히 먹는 입이 많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먹는 것들이 줄어들었다.

쌀이나 밀가루, 소금, 이런 것들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콩류가 줄어든다는 말에 김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다음에는 기름하고, 장류좀 챙겨야 하려나? 식용유는 어때?”

“그건 그 깡통으로 된거 잔뜩 있어서 아직 여유가 있지만….”

“두부도 없지?”

“두부 만들정도로 콩이 많지가 않아요. 있어도 대부분 숙주나물이나 콩나물 만들고요.”

“흐으음.”

김준은 지난 번에 루팅하면서 생각했던 논 밭의 빈 땅에 씨를 잔뜩 뿌려서 알아서 채취하는 방식을 다시 한 번 고민했다.

물론 현실성은 없었다.

가만히 놔두는 상황에서 알아서 크기도 힘들뿐더러, 좀비가 지나가서 썩은 피를 잔뜩 뿌리면 거름도 아니고 그냥 부패된 상태에서 그거 먹고 감염이라도 되면 큰일 아닌가?

김준은 좋은 음식을 놔두고 밥을 먹다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저기… 오빠?”

“음?”

“이번에 또 나가신다면, 제가 다시 갈께요.”

인아의 말에 김준은 뺨을 긁적였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다른 애 데리고 가도 돼.”

“다른 건 몰라도, 장 같은거는 제가 잘 봐요.”

“아니, 그냥 편의점 찾다가 털면 돼…아!”

그 순간 김준은 떠오른 곳이 있었다.

요새 안 간지 좀 됐는데, 서해안 공단면 일대에 살고 있는 아가씨들.

지금 끓여먹는 찌개의 된장과 고추장을 바로 거기서 받아오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니 황 사장님네 안 간지도 오래됐네.”

“아~ 그 붕어찜 만들어줬던 곳?”

라나가 그때를 떠올리면서 묻자 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완~전 생존왕들이던데. 막 아파트 공원으로 조성한 연못에서 고기 잡아다가 매운탕이나 찜 끓여먹고, 근처에 식당도 많아서 장류도 수급한대.”

“가야 언니한테 들었어. 그 조폭 같은 인간들에게 피한 가게 사람들 말이지?”

“응, 맞아.”

황 여사 일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가야는 자신이 총무 하기전에 김준에게 몸으로 신세 한탄했던 일이 떠올라서 얼굴이 붉어진 채 시선을 회피했다.

“좋아, 그럼 일정 잡아놓고, 누가 가는게 좋으려나….”

“저요.”

인아가 다시 한 번 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김준.

그때 입에다가 고기 몇 점은 넣고서 우걱우걱 씹어대던 라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오빠­”

“입에 있는거 다 삼키고!”

“으븝! 읍!”

입 안이 꽉 차서 급하게 삼키려고 하는데 목을 탁탁 쳐대다가 옆에서 나니카가 물을 주니 겨우 마시면서 삼킨 라나가 다시 말했다.

“나 데려가 줘! 그 생선찜 또 먹고 싶어.”

“너어는 진짜~ 나갈때마다 뭐 먹으러 갈 생각만 하고.”

“아, 오빠~”

절에서는 국수 몇 그릇 비우고, 명국이네에서는 갓 잡은 닭도리탕과 계란찜을 그렇게 먹어대던 소녀가 저번에 한 번 먹었던 붕어찜이 그렇게 땡기나 보다.

“아무튼 저요, 저!”

“후우~ 그래. 그럼 나라랑 인아랑 가자.”

“예스!”

신나서 주먹을 불끈 쥐더니 다시 고기로 젓가락 든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잘 먹는 소녀였다.

그 모습에 에밀리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호오~ 샤인하고 라나의 콜라보야? 최고의 라이벌이 의기투합했네?”

“!?”

그러자 마리도 거들었다.

“어머, 그렇네요? 나 학교 다니던 시절에 엄청 심했던 두 솔로 가수들이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

옆에서 도경도 뺨을 긁적일 때, 가야와 은지는 말없이 웃으면서 엄지를 올렸다.

***

그날 밤.

식사를 마친 김준은 창고에서 막 사용한 발전기 하나를 가져왔다.

가동 멈춘지 얼마 안 돼서 아직도 후끈후끈 거리는 기계를 좀 식힌다음 공구를 꺼내서 신문지를 깔았다.

“어머, 뭐하는거에요?”

“정비.”

아까 가야가 말한대로 안에 코일이 살짝 타 있었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한 김준은 드라이버로 하나하나 풀면서 발전기를 해체했다.

“라나야. 가서 보루 좀 가져와.”

“네~”

“WD도 한 통.”

“네에~”

라나가 후다닥 달려가서 3층으로 공구를 가지러 갔고, 김준은 안을 해체한 다음에 그을음이 묻어난 것들을 보고 신문지로 문질렀다.

잠시후 라나가 가져온 보루로 내부의 그을음을 닦아내고, 연료필터를 교환하고, 안에 윤활제를 뿌린다음 찌꺼기를 닦아냈다.

오버홀을 해서 내부를 싹 청소한 김준은 기름 잔뜩 묻은 손을 닦으러 갔고, 다음날부터 발전기들을 한 번씩 손 보는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루팅의 시간이 되었을 때, 김준은 인아와 라나를 데리고서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는 장비 챙기는데 익숙한 두 소녀가 차에 타고, 조수석에 누가 앉는 것을 묻다가 라나가 이겼다.

“자~ 가지요, 가~”

“너, 너무 긴장감이 없어.”

“흐으응~ 그만큼 경험이 쌓였잖아요?”

해맑게 웃는 라나를 보면서 김준은 피식 웃었다.

횟집 거리에서 좀비 튀어나온거 클락션 울려대고 창문 두들기다가 눈물 콧물 질질 짜던 아가씨는 어디가고 생존의 스페셜리스트가 납셨다.

“자, 가자!”

마치 피크닉을 가는 것처럼 좋아하는 라나를 보고서, 김준은 바로 다음에는 인아를 옆에 태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차 앞유리에 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응?”

툭, 투툭­ 툭­

“어… 비 오나?”

바깥으로 어느정도 나왔을 때, 갑자기 비가 스멀스멀 오자 김준은 집에 애들이 생각났다.

이제는 돌리는 법도 알고, 특히 도경이나 은지가 있으니 공구 쓰는 것도 문제 없을 거다.

‘잘 하겠지….’

비 온 다음에 물이야 문제가 없으니 집 안에 있는 그녀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

쏴아아­ 쏴아아아아­

두두두두두두두두­

공단면에 겨우 진입했을 때, 빗줄기가 엄청나게 세져서,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5분 전 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동남아 스콜이냐면서 낄낄거리며 운전하던 셋은 갑자기 멈춘 차에 당황했고, 김준이 다급하게 키박스를 건드리며 시동을 걸려고 했다.

쾅­ 쾅­

“아, 시발 것. 지랄났네!”

김준은 아무리 열쇠를 돌려도 시동이 안 걸리는 차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분노의 담배를 물고서 한 대 피고 있을 때, 라나가 아까의 기세는 어디가고 토끼눈으로 기웃기웃 거렸고, 뒤에 있던 인아는 조용히 김준에게 물었다.

“원인… 찾으셨어요?”

“이거 피고 나가서 봐야겠다. 후­ 인아는 거기 밑에 우비 좀 꺼내줘.”

“아, 네!”

인아가 우의를 찾기 위해 차 안을 뒤질 때, 침대 밑에 있는 박스를 꺼내 하나하나 열어봤다.

하지만 거기서 나온건 우의가 아니라 진동 바이브 에그부터, 딜도에 각종 돌기형 콘돔이었고, 순간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가 그걸 걷어차고 다른 박스를 찾았다.

‘저, 저걸 왜 아직도 가지고 다니는 건데?’

설마 저 흉악한 성인기구들을 다른 언니들이 쓰나 싶은 나쁜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렇게 뒤적거려서 겨우 판초우의를 찾은 인아는 뒤에서 문을 두들기는 김준을 향해 내밀었다.

쏴아아아­

“썅, 다 젖었다.”

“오, 오빠! 저도 나갈까요?”

“아니야. 기다리고 있어.”

김준은 어차피 상의 전체가 젖은 상태에서 우의를 대충 걸치고는 앞도 안보이는 물폭탄 속에서 우산을 차 문앞에 걸쳤다.

그리고는 차 뚜껑을 열고서 확인하려는 순간, 잘못하면 엔진룸 물세차가 될 것 같아서 어떻게든 우산으로 괴고 있었다.

그 사이 우산을 타고 내려간 물이 계속 김준의 등 뒤에 떨어졌고, 답도 없는 상황에서 김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결국 여기서 뭘 지켜보는 건 무리였다.

탕­탕­

김준은 우산 하나를 가지고 라나가 있는 문을 두들겨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문을 열자 바로 한 팔로 안아서 우산을 받쳐주고, 차 안에 비상 깜빡이를 튼 채로 쉬기로 했다.

***

쏴아아아­

“아우, 팬티까지 다 젖었어.”

물폭탄을 맞아서 캠핑카 안의 샤워실에서 대충 닦은 김준은 인아도 있는 자리에서 칸막이 하나로 속옷까지 갈아입고 나왔다.

그 상황에서 뭐라고 할 인아도 아니었고, 그저 조용히 냄비를 꺼내 물을 끓이고 라면을 두어개 넣었다.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라면~”

이 상황에서 라나가 또 기분이 업 됐는데, 차라리 지금은 그게 낫다고 생각하며 집게로 라면을 휘휘 젛었다.

보글보글 끓으면서 매콤한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울 때, 김준은 바로 젓가락을 집었다.

“자, 먹자!”

김준도, 인아도, 라나도 각자 종이컵에다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퍼다가 차안에서 오붓하게 먹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김준의 캠핑카가 비상깜빡이를 켜서 불빛이 나올 때, 그것을 발견하고서 저 멀리서 다가오는 또 다른 차량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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