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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82화 (182/374)

〈 182화 〉 182­ 산 자의 풍족함.

* * *

신릉면 제일빌딩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주변 일대는 군대 바리케이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촘촘하게 막혀있었고, 중간중간 사냥당한 좀비들의 시체가 썩어가는게 보였다.

“하, 많이도 잡으셨네.”

“어여 들어오슈.”

양팔에 도깨비와 잉어문신이 가득한 제일파 똘마니들은 트럭 행상인을 안으로 불렀다.

“어디보자. 뭐 쓸만한 거 좀 가져왔나?”

“쌀하고, 휴지 많이 챙겼지.”

“뭐야? 행상인 왔어?”

“오셨습니까, 형님!”

한때는 소사벌 일대의 가장 큰 나이트클럽 사장이었던 제일파 간부 김 부장이 나오자 똘마니 둘이 90도로 인사했다.

행상인은 볼때마다 얼굴에 상처가 늘어나는 그를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흐음, 이거저거 많이도 가져왔구만.”

그러면서 트럭에 있는 식칼 하나를 뽑더니 날 상태를 보고 허공에 이리저리 휘둘렀다.

“이거랑 장대 좀 주고, 본드 좀 있나?”

“네, 몇 개 챙겨놨죠.”

행상인이 물건을 하나하나 챙기자 김 부장은 대가로 턱짓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제일빌딩 안에는 전문의 의사가 있었고, 그 옆에는 약국도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 때, 안에서는 영혼이 빠진 얼굴의 약사가 막사발로 뭔가를 계속 갈아내 흰 가루를 만들고 있었다.

“아, 왔어요?”

“건강검진좀 받읍시다.”

의사와 약사를 통해서 진단받은 행상인은 이후 물물교환 용품으로 이것저것 챙겼다.

감기약, 진통제, 포도당 등의 의약품을 손에 넣을 때, 그는 문득 발견한 필을 보고는 집어들었다.

“그건 피임약인데요?”

“아, 혹시 몰라서 좀 챙겨도 되겠소?”

“뭐, 상관이야 없지만….”

머쉬룸이라고 써진 경구피임약을 챙기는 것을 보고 뒤에 있던 제일파 건달들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어디 기지배들이라도 숨겨놓나?”

“뭐, 남자만 살아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디 여자들 있는데가 있나보구만, 어디요? 알려주면 더 좋은 거 드리지.”

조폭 둘이 은근슬쩍 감추고 있던 담배 한 갑과 따지 않은 위스키를 창고에서 꺼내려고 하자 행상인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는 물건을 받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누가 어디 사는지 아무한테도 안 말합니다. 전부 내 고객인데, 그런 짓 하면 장사 못 하죠.”

“아~ 이 양반 거 깐깐하게 구네? 다 같이 여기에 있으면 더 편한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지 말고 좀 알려주쇼.”

하지만 행상인은 말없이 웃으면서 돌아갔고, 조직폭력배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거래를 끝낸 이를 보고서 똘마니 둘이 김 부장에게 말했다.

“새끼, 비싼 척 하기는….”

“형님, 저 노인네 후다 까서 이쁜 년 있으면 잡아올까요?”

곧바로 차를 꺼내 뒤를 쫒을까 생각했지만, 김 부장은 두 부하를 다그쳤다.

“미친, 지랄 같은 소리 하지말고 회장님 드실 쌀이나 날라.”

“아, 형님. 예전에 꽃마차 년들 놓치고서 쓸 년이 없잖습니까?”

“좆까지 말고, 빨랑 들어가!”

김 부장이 고함치자 두 깡패들이 바로 받은 물자를 챙겼고, 그는 자기 얼굴에 난 찢어진 상처들을 보이며, 분노의 재떨이 샷을 맞은 기억에 고개를 돌렸다.

“씨발….”

생각 같아선 자신도 그러고 싶었지만, 식구 몇 놈 뒈진 거 생각하면 보스 박 회장이 절대 넘어가지 않을거다.

결국 터지는 건 자기 대가리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고 움직이기로 했다.

***

짠­

그날 밤에는 김준이 잠에 들었을 때, 여자들끼리 술자리가 있었다.

“자~ 안주가 왔어요.”

“크으­ 이거 진짜 맛 있다니까.”

인아와 은지가 만들어온 얼음 띄운 비빔면에 남은 족발을 가지고 파썰어 버무려 내자 너나할 것 없이 젓가락이 오갔다.

거기에 에밀리가 소주를 까고, 가야가 어느정도 익은 김치를 꺼내서 먹으면서 4인의 술자리는 계속 됐다.

“요새 살만 찌는거 같아. 이 뱃살좀 봐.”

에밀리가 장난스럽게 자기 배를 잡아당겼을 때, 아이돌 시절 그렇게 탄탄한 몸이 살짝 늘어나 있었다.

“원래 하체 비만 아니었나?”

“아니거든!”

은지가 피식 웃으면서 한 말에 순간적으로 인아나 가야도 에밀리의 엉덩이로 눈이 향했다.

레깅스에 빵빵하게 찬 엉덩이와 허벅지가 특히 도드라졌는데, 김준을 포함해서 애들이 하도 꼬집고 두들겨대는 공공재였다.

“오늘까지만 먹고 살 빼.”

“런닝머신 조져야지.”

“풉­”

순간, 인아가 웃음이 터졌고, 다른 세 명의 시선이 몰렸다.

“생각해보면 웃기네요. 우리 벌써 이렇게 산 지가 1년이 되는데….”

“시간 빠르네.”

가야가 고개를 끄덕일 때, 인아는 지금 상황에 대해 말했다.

“바깥에 전기 없고, 수도 끊기고, 좀비들은 잔뜩 있는데… 우린 집 안에서 엄청 호화롭게 살잖아요?”

“고기도 잔뜩 먹고, 술도 잔뜩 먹고 말이야~”

“인정!”

은지와 에밀리 역시도 그 말에 엄청나게 공감했다.

특히 그녀들은 다른 생존자를 보고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만 하더라도, 그녀들 역시 종합운동장 대기실에 갇혀 있으면서 수돗물로 배 채우고, 먹을게 없어서 자기 명품 립스틱까지 씹어먹었었다.

그리고 김준에게 구출받은 뒤로, 처음에는 가루 스프, 그 뒤로 묽은 된장국, 이후 밥하고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사냥을 하거나, 도축한 고기를 교환해서 이렇게 먹고 있었다.

“가끔은 저도 헷갈려요. 내가 아이돌이었던가, 농부였던가….”

“나도 하는 일이 주방장이지 뭐.”

“나는 총무고.”

아이돌 시절에는 싱글가수, 센터, 비주얼, 안무 담당인 애들이 지금은 농사담당, 요리담당, 물자총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난 섹스담당.”

“….”

대놓고 직구로 나온 에밀리의 말에 뜨악하는 인물은 인아 하나였다.

고개를 돌리면서 헛기침을 하는 가야나, 어디 계속 섹무새처럼 말해보라고 지긋이 지켜보는 은지였다.

“농사도 중요하고, 요리도 중요하고, 먹고사는 거 다 중요하지. 근데 그래도 역시… 이거야.”

에밀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가장 큰 무기인 커다란 가슴을 붙잡고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알파벳 뒷자리의 나올 컵 사이즈에, 모양도 딱 모여있어서 같은 여자들이 봐도 부러운 크기긴 했다.

순간 인아가 반사적으로 자기 가슴에 손이 갔다.

다른 애들에 비해서 사이즈에 대해서는 유독 자신이 없는 그녀였다.

비슷한 사이즈로 마리나 인아 등도 있었고, 빈유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옆에 있는 언니들 덕분에 신경이 쓰였다.

“준이 오빠는 진짜 주물거리는 거 좋아하니까.”

“솔직히… 인정.”

가야가 눈을 감고 지난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을 엄청 만지더라고,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꼬고 당기고….”

“가끔 나도 이거 만지고 싶어. 푸들같아.”

“야, 하지마!”

에밀리가 장난으로 가야의 곱슬거리는 포니테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자, 그녀는 바로 손을 뻗어서 엉덩이를 꼬집어줬다.

“컴플렉스라고….”

“언니 매력 포인트가 아니라? 젖은 머리가 그렇게 섹시어필 포인트라며?”

“은지야….”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이런 자리에 어울리면서, 간간이 드립도 치는 은지를 보고서 모두가 웃었다.

소주잔이 점점 비워지고, 얼굴에 홍조가 뜰 때, 글래스로 잔을 채운 에밀리가 말했다.

“편하기는 진짜 편해.”

“편하기만 하겠지. 너도 집안 일좀 해.”

“하고 있어. 오빠 성욕 해소.”

“아, 미친 년 진짜~”

가야가 나무젓가락을 집어던졌지만, 빠르게 피하는 에밀리.

그리고 인아가 그 상황에서 조용히 물었다.

“이런 자리 됐으니까 물어 볼게요.”

“응?”

“그… 첫 경험이라는 건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랑 해야….”

인아의 말에 말을 잃은 세 명의 언니들.

하지만 그 속에서 에밀리가 먼저 묘한 미소를 짓고는 인아의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았다.

“그래, 우리 샤인은 아직 ‘그거’ 구나?”

“어, 언니!”

인아가 빨리 이 섹무새 떨어트려 달라고 눈짓했지만, 오히려 은지가 그 반대편에 앉았다.

“남 일 같지가 않네. 나도 여기서 첫 경험이었으니까.”

“으, 은지 언니!?”

은지는 인아 옆에서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에 말했지? 그냥 노리개처럼 쓰이느니 이 집 떠난다고….”

“….”

“사람 일 모르더라, 내가 안길 줄은 몰랐어.”

“은지는 진짜 의외였지.”

“뭐~ 그것만 문제겠어? 언제고 싸움 나서 우리랑 거리두기 할 줄 알았는데.”

에밀리의 깐죽거림에도 은지는 쿨하게 인정했다.

“그래~ 내가 좀 까칠하긴 했어.”

그리고 잔을 따를 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네 명의 여성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다가 불이 켜진 것을 보고 걸어오는 김준이 있었다.

“어우, 술냄새. 안 자?”

“아, 아하하하!”

가야가 멋쩍게 웃을 때, 에밀리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헤이~ 준~ 마이 러버~♥”

“웃, 야­ 야!”

커다란 가슴 두 개가 부드럽게 몸에 닿자 잠이 확 깰 정도였다.

김준은 그녀를 토닥여주고는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은지는 그 모습에 말 없이 젓가락을 내밀었고, 인아는 추가로 안주를 준비하러 거실로 달려갔다.

***

“흐아암­”

다음날 숙취 가득한 머리를 붙잡으며 인아가 씻고 나와서 해장용 김치찌개를 준비할때였다.

끼이이­

“어머, 벌써?”

어제 다들 진탕 먹어서 뒷정리 하고 겨우 잠들었는데, 안방 문이 열렸다.

그런데 김준 혼자만 나오는게 아니라 그 옆에서 목을 잡고 매달리면서 연인처럼 나오는 에밀리가 있었다.

“!!!”

어제의 그 술자리 이후, 그 와중에 또 한 명이 픽이 돼서 진짜 그녀가 말한대로 ‘성욕처리 담당’일을 또 했나보다.

순간, 인아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냄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러면서 어제 이후로 아랫배를 계속 문지르면서 쿵쿵 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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