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80화 (180/374)

〈 180화 〉 180­ 일상은 휴식이다.

* * *

쏴아아아아­

샤워를 끝낸 마리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캠핑카 안에서 새 속옷을 찾았다.

이제는 대놓고 모텔 역할을 하는 캠핑카인지라 침대 밑에 수납장을 만들어서 그 안에다가 갈아입을 옷가지와 속옷 등을 보관했었다.

상자에는 마트에서 털었던 면 팬티가 있었고, 그것을 챙겨 입었을 때, 바깥에서 일을 하는 김준의 모습이 보였다.

대낮부터 눈이 맞아서 짐승같이 해 댄 다음, 그라인더와 톱을 들고서 생존 도구를 만들고 있는 김준을 보고서 마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옷을 갖춰입고 나오자, 김준은 지금 막 만든 나무 식기를 자랑스럽게 보였다.

“어때? 깔끔하지?”

“그새 다 만든거예요?”

“이런 건 금방이지.”

마리는 그것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고, 김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남은 작업도 정리하기로 했다.

그때 2층에 있던 나니카가 달려와 외쳤다.

“오뻐, 언니들! 식사 다 됐어요!밥 먹고 해요!!!”

“…가자.”

“아, 네.”

마리는 캠핑카 안에 드라이기로 대충 말렸지만, 아직 촉촉한 머릿결을 만지면서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

“멧돼지 다리 남은 거 삶았어요!”

“오! 겉절이에 족발 수육!”

김준은 아이돌들이 한 김장김치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삶은 족발과 함께 싸서 먹어봤다.

“어때요?”

“으으음~ 굿! 굿!!!”

젓갈도 없고, 매실액도 없이 어찌어찌 이 대신 잇몸으로 재료를 긁어모아 만든 김치는 아주 훌륭했다.

특히 절에서 잔뜩 공수해 온 배추가 아삭거리는 게 매우 맛있었고, 집에서 재배한 열무김치와 동치미도 엄청나게 맛났다.

“자, 하나씩 먹어.”

“어머….”

김준이 젓가락으로 김치로 싼 족발을 하나하나 마리와 나니카에게 올려주자 그녀들은 얼굴을 붉혔다.

“오늘, 도구 만드느라 고생했어.”

“뭐야, 나도! 나도!”

에밀리가 자신의 밥그릇을 내밀자, 김준은 그녀에게도 한 점 집어서 올려놨다.

“이렇게 먹는 것도 좋네요.”

“그러게~완전 좋아~”

큰 그릇을 가져와 겉절이에 참기름을 넣고 비빔밥으로 나눠 먹는 라나와 도경은 활짝 웃으면서 계란 프라이를 하나 없었다.

“오늘 김장한 거 김치 냉장고 있으니까 금방 익을 거예요.”

“은지나 인아나 둘 다 고생했다.”

“가야 언니도 있어요!”

“오케이! 은야도 열심히 했어.”

김준은 하나하나 칭찬을 해 주면서 기분 좋은 저녁 자리를 가졌다.

바깥의 해도 떨어지고 있었고, 오늘의 하루는 그렇게 끝날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클락션 소리가 울렸다.

빵­ 빵­ 빠아아아아앙­!!

“!?”

“어머!”

“뭐야? 밖에 누가 왔어?”

갑작스러운 클락션 소리에 은지와 김준이 동시에 일어났다.

일단 김준이 먼저 은지를 막고서 커튼을 살짝 올려서 바깥을 보자 짐을 주렁주렁 실은 트럭 한 대가 있었다.

“아, 저행상인 양반 또 왔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갓 김장을 해서 먹거리가 풍족할 때 온 행상인을 보고서 김준은 뭘 챙겨야 할지 뺨을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은지가 엄지 손가락으로 입가를 싹 닦아내고는 자신이 나서려고 했다.

“저번에하던 대로 제가 나갈까요?”

은지는 거실 서랍장에 있는 오토바이 헬멧을 꺼내 머리에 차고는 나가서 거래를 하려고 했다.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가야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 준이 오빠! 그리고 은지야!”

“?!”

“내가 한 번 해 볼게.”

“응?”

“네? 가야언니가요?”

“헐….”

가야는 외눈 쌍커플이 도드라지는 눈을 연신 깜빡이면서, 결의에 찬 얼굴로 김준에게 말했다.

“어차피 내가 총무하는데, 그래서 필요한 물건 물물교환 한 번 해 볼게요.”

“위험할 텐데… 나랑 은지가 사는 건 아는데, 거기서 다른 애가 나오면….”

“하지만, 저도 알아야 거래가 되지 않을까요?”

“흐음.”

김준은 바깥을 슬쩍 보다가 차 문이 열리며 담배 한 대를 태우는 트럭 행상인을 보면서 결심했다.

“좋아,그럼 이렇게 하자.”

“!”

김준의 말에 가야와 은지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섯 모두가 이목을 집중했다.

***

빵­ 빵­

덜컥­

문이 열리면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스크를 쓴 가야가 조용히 내려왔다.

행상인은 사람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으면서 피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면서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잘 계셨구만.”

“어떻게 오셨죠?”

“응? 그때 그 아가씨가… 맞나? 긴가민가 하네?”

“언니에요.”

“그렇구만, 그 덩치 좋은 총각은 어디 갔수?”

“그건 왜… 물으시죠?”

당황하는 기색 없이 역으로 물어보는 가야를 보고서 행상인은 헛기침하고는 차 뒤를 열어주면서 물건들을 보여줬다.

“그래, 뭐 그런 거 신경 쓸 게 아니지.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닌 트럭 행상 물건 좀 사 주쇼.”

“…오.”

가야는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빠르게 두 눈으로 스캔했다.

이 행상인이 찾아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처음 왔을 때는 은지가 말린 생선하고 교환했고, 그 다음으로는 김준이 막힌 배수구 뚫는다고 락스와 세정제를 구매했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차례일때,가야는 트럭에 적재된 다양한 물건 중에서 현재 필요한 것이 뭘까 빠르게 판단해야했고, 저쪽에서도 뭘 원하는 지 알아야 했다.

“돈으로 이걸 사는 건 아닐테고… 뭐를 가져올까요?”

“우선순위는 물, 쌀, 휴지. 이게 제일 비싸죠. 아, 배터리도 있으면 다 가져가고.”

“흐으음, 저희가 필요한 게….”

“아가씨, 집에 먹을 거 많아요?”

“뭐, 어느 정도는 있어요.”

“이건 어떠려나? 이거 다른 곳에서 가져온 거거든?”

행상인은 안에서 차량용 전기 냉장고를 열고는 안에 담긴 것을 가야에게 보여줬다.

“이거 말린 바지락하고, 홍합인데… 딱 지금 먹기 좋아요.”

“해산물… 이요?”

생각해보면 지난번에 내장과 아가미를 따내면서 말린 생선을 맛나게 먹었어서 해산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뢰가 있었다.

가야는 조용히 밀봉되서 건조된 조개와 홍합을 확인했고, 냄새를 맡아본 다음에, 은지가 그랬던 것 처럼 하나 먹어보라고 말린 홍합을 하나 건네 그가 씹어먹는 것을 확인하고서 구매하기로 했다.

“흐으음.”

“찌개 끓여 먹으면 기가 막히지~ 된장이랑 쑥도 있는데, 줄까?”

“일단 조개만요. 그리고 저거… 공구 좀 볼 수 있나요?”

“공구? 뭐, 그러쇼.”

가야는 총무를 맡으면서 그동안 안에 물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필요한 리스트를 생각하고서 조갯살 외에 공구도 하나씩 살폈다.

“못이 좀 필요해요. 얼마나 있죠?”

“콘크리트 못으로 다섯 갑 까지는 팔 수 있지. 근데 조개랑 해서 그거 가져가려면 쌀 좀 많이 주쇼.”

“5kg면 돼요?”

“어이구~ 그 정도나 있어?”

가야는 순간 실수인가 싶었지만, 마스크로 가린 얼굴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눈일 깜빡였다.

그리고는조용히 창고로 달려가 편의점에서 가져온 5kg짜리 쌀을 가져왔고, 그걸 확인한 행상인은 활짝 웃으면서 못하고, 말린 조갯살을 건넸다.

“이거 말고도 필요한 게 더 있어요.”

“말해봐요. 내가 못 구하는 게 없거든.”

“납 있나요?”

“…납?”

행상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공구통을 뒤적거리면서 찾아낸 것을 가야에게 건네줬다.

“이거면 되려나?”

“아, 이거….”

가야가 받은 것은 인두로 지져 땜질하는데 쓰는 납줄이었다.

김준이 예전부터 ‘인두는 있으니 납만 있으면, 공기총 총알은 직접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으니 이 참에 챙겨볼 셈이었다.

“이건 얼마죠?”

“교환 물건이 뭔지 말해주면 그만큼 쳐 주죠.”

“물티슈 어떤가요? 200장 짜리 두 개.”

편의점 가면 개당 2천원, 공판장 같은 마트에서는 천원 밑으로도 살 수 있는 물건.

하지만 이런 아포칼립스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었고, 물티슈 두 통이라는 말에 행상인은 바로 뒤적거리면서 새 물건을 꺼냈다.

“아가씨,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구 몇 개 더 드릴게. 못하고, 납줄하고, 에이! 기분이다 망치 두 자루 덤으로 드릴게.”

하나는 녹이 좀 슨 장도리, 다른 하나는 구리로 된 동망치였다.

둘 다 중고지만, 김준에게 가져다주면 손질해서 어떻게 잘 쓸 수 있을 거다.

“그럼 이렇게 거래를 끝내죠.”

“좋아요~ 아가씨 장사 할 줄 아네?”

행상인은 쌀 한가마와 생수 한 통, 물티슈 두 팩을 가지고 못과 구리선, 망치 두 자루와 말린 조갯살을 받아 거래를 끝냈고, 그가가야에게 손을 흔들면서 돌아갈 때, 그녀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캠핑카로 향했다.

그리고는 뒷문을 열고서 걸터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긴장되는 첫 거래였지만, 얼추 밸런스는 맞춘 것 같았다.

잠시 이 곳에서 숨 좀 돌리려고 할 때, 문이 열리면서 김준이 나왔다.

“안에서 봤어. 우리 은야, 진짜 수고했다.”

“아, 네….”

김준은 가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와락 끌어안아 토닥였고, 그녀는 흠칫하면서도 그 감촉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포옹 속에서 지금 앉아있는 캠핑카에서 느낀 것은…

‘정액냄새….’

또 언제 한 건지는 몰라도 차 안에서 나는 찐한 수컷의 냄새가 그녀의 오똑한 콧대를 간질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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