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176 인륜을 끊은 자.
* * *
인아는 차 안에서 조용히 눈치 보고 있는 소녀를 향해 물었다.
“이름이 뭐야?”
“…은.”
“응? 은이라고?”
“시은…이요.”
“아, 그래. 이름이 시은이구나. 언니는 인아라고 해.”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인아를 뚫어지게 보면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아는 그 모습에 소녀를 안심시키면서 미소를 지었다.
“샤인 닮으셨네요.”
“…응? 으응?!”
“그 ‘I Quit’ 불렀던 샤인이요.”
“아, 아하하. 고마워….”
인아는 순간 ‘그게 나야.’라고 유쾌하게 맞받아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몇 살이야?”
“열 다섯… 그러니까 중 2이요.”
“어머, 그렇구나.”
인아가 계속 시은이를 케어하고 있었고, 뒤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둘을 본 김준은 계속 앞으로 가면서 반대쪽 원룸단지 근처로 향했다.
그것을 본 시은은 조용히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왼쪽으로 가면… 할매분식이라고… 있어요.”
“어, 그래.”
김준은 서행으로 들어가며, 할매분시이란ㄴ 곳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성인 PC방과 낡은 간판이 인상적인 해장국집 식당.
그리고 그 안쪽에 원룸 건물이 하나 있었고, 그 1층 상가에 [할매분식]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아, 아아… 흐으으….”
시은이 창 밖의 그 가게를 보고서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푹 숙였고, 인아는 그 모습에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면서 토닥였다.
“어떻게, 같이 할가요?”
도경이 석궁을 장전하려고 했을 때, 김준은 뒤의 상황과 아크릴 판을 툭툭 치면서 만류했다.
“됐어, 움직이지 마.”
“네? 오빠. 그래도 저기….”
“내가 다 할 테니까 그냥 거기 가만히 있어.”
“아… 네.”
김준은 아까의 여유있던 얼굴과 다르게 굳은 표정이었다.
게다가 눈에 살기가 가득해서 평소에 장난치던 모습이 아니라 감히 말도 붙이기 힘들 정도였다.
철컥
김준은 2연발 샷건을 들고서 조용히 산탄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차를 벽에 있는 곳에 대고는 조용히 그 상가를 바라봤다.
유리창 안으로 좀비 몇이 느릿느릿 다니는 실루엣이 보였고, 김준은 그것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안에 있는 여자애들에게 말했다.
“다들 귀 막아라.”
“!”
도경은 조수석에서 바로 귀를 막았고, 인아도 시은을 안은채 귀를 막아줬다.
그리고 김준이 힘껏 클락션을 눌렸다.
빠—앙!!!!! 빵!!! 빵!!!!!
미친 듯이 클락션을 울려댈 때, 곧바로 반응이 나왔다.
쨍그랑!!!
크어어어 으어어어
유리창 문을 깨고 좀비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깨진 유리를 그냥 몸으로 들이 받아 피가 철철 나는 상태에서도 인간의 반응을 느낀 좀비들은 이미 썩은 살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채 어기적거리며 다가왔고, 김준은 창문을 반쯤 열고서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구 두 발의 엽총이 불을 뿜었고, 먼저 다가온 좀비가 힘없이 쓰러지면서, 흩뿌려진 산탄이 남은 유리문을 산산이 박살냈다.
“….”
철컥 치이이익
김준은 곧바로 새 탄을 장전했고, 그 기간동안 안에 있는 셋은 모두 굳은 얼굴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감 속에서 다기 좀비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김준은 기다렸다가 차분하게 머리를 노려서 좀비를 잡아나갔고, 분식점 하나에서 네 마리의 좀비를 사냥했다.
아까 시은이 말한대로, 할머니와 같이 둘이서 저 곳에 살고 있었는데 좀비들이 와서 한 명이 당하고, 자신은 도망쳤다는 게 무슨 상황인지 바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괴로웠겠지.’
김준이 그러면서 뒤를 봤을 때, 인아의 품에 안겨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시은이 보였다.
‘어떻게든 살려고 했는데, 자연재해 같은 놈들 때문에….’
그 마음을 너무나도 공감해서 더 냉정하게 눈 앞의 좀비들을 잡아갔다.
네 마리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연달아서 클락션을 울렸고, 이쯤 되면 좀비가 아니라 또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 반응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로 담배 두 대를 태워도 나타나지 않는 좀비에 김준은 조용히 나갈 준비를 했다.
“잠깐 다녀올게.”
“저, 저기…”
뒤에서 겨우 눈을 뜬 시은이 같이 나가겠다고 했지만, 김준은 손을 뻗어 제지 했다.
“일단 다녀오고.”
여기서 괜히 내부를 보여줬다간 어린 소녀에게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은기 녀석 딸 때도 그랬지만, 한참 어린 애들이 눈 앞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좀비를 김준이 무참하게 머리를 박살내고, 바람구멍을 내서 쓰러트리는 건 보일게 아니었다.
특히 소율이 때, 애가 어리고 어두운 상황에서도 할아버지의 형상을 알았는데, 눈앞에서 김준이 죽인 거… 나중에 큰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지 은근히 신경 쓰였다.
덜컥
띵 띵 띵
김준은 차에서 내려서 문을 닫고는 엽총을 들고서 조용히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깨진 유리와 좀비 시체가 가득한 곳을 품 안에 락스를 뿌려서 확인 사살을 한 다음 내부를 살폈다.
퀴퀴한 피 냄새 속에서 최근에도 음식을 했는지 쓰다 남은 고추장과 물엿, 그리고 부엌에 들어가면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다.
“흐으음.”
김준은 조용히 물엿과 고추장, 간장통, 설탕 등을 챙겨서 천천히 나왔다.
그리고는 뒷문을 두들기면서 인아가 열어주자 그것들을 안에 담았다.
“아….”
“이건 좀비 처리한 대가로 가져갈게. 상관없지?”
“….”
고개는 끄덕이지만, 시은은 그게 중요한 것 같지가 않아보였다.
계속 힐끗거리면서 분식점을 연신 바라보다가 이내 그 눈이 위로 향했다.
“여기 살았다고 했지?”
“…네.”
“흐음.”
김준은 조용히 올라와서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물었다.
“자, 눈치 볼 필요 없어. 어차피 아저씨가 도와주기로 했잖아?”
“…네.”
“확실히 말해 봐. 또 뭐를 챙겨야 할까?”
“저기, 그게….”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봐.”
김준이 냉장고에서 신선한 병우유를 꺼내 건네주자, 시은은 조용히 그것을 마시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올라가면 집이에요.”
“그렇구나.”
“안에, 그냥 짐을 챙기고 싶….”
“그럼 가자.”
“!?”
김준은 손가락을 연신 튕기면서 인아에게 말했다.
“잠깐 네 프로텍터 벗어서 쟤한테 입혀줘라. 금방 다녀올게.”
“아, 그럴까요? 차라리 제가 같이 가서….”
“차라리 그럴까?”
“네, 네.”
인아는 시은의 보호자가 되어 직접 그녀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고, 김준이 엽총을 어깨에 메고, 권총과 플래시를 양 손에 쥐고 FM적인 파지법으로 안으로 잠입했다.
원래 어디 안으로 들어가는 건 잘 안했지만, 어린애고 사정이 워낙 딱해보여서 나름의 배려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2층 맞아?”
“3…층….”
“하씨, 바닥에 피 봐라.”
새카맣게 늘어붙어있는 피를 워커발로 이리저리 비벼대면서 올라간 김준.
그리고 인아가 시은을 데리고 올라갔을 때, 김준이 물었다.
“몇 호야?”
“가장 안 쪽이요. 304….”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이
“!?”
크으으 으으으으
“헉…?!”
철컥
김준은 반사적으로 권총을 들어 머리를 겨눴다.
딱 한 곳에 문이 열려있는데, 그게 시은이 말한 304호였다.
그리고 안에서 나온 좀비는 흔히 보기 힘든 노인, 그것도 할머니 좀비였다.
그것을 본 시은의 눈이 점점 커지다가 이내…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 아아…하악! 읏…크윽…흑!!!”
경기를 하듯이 배를 부여잡고서 두 눈이 풀린채로 발작하는 시은을 보고 인아가 황급히 그녀를 안고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 상황이 뭔지 너무도 잘 아는 김준은 씁쓸한 얼굴로 권총을 들었다.
“후우…”
타앙
…털썩!
“편히 가쇼. 손녀 분은 잘 챙겨드릴게.”
김준은 원샷 원킬로 머리를 꿰뚫어 쓰러트린 노인 좀비에게 나지막이 말했고, 확인 사살을 기다리며 담배 한 대를 물었다.
***
“흐으윽… 으윽….”
“침착해! 일단 심호흡 천천히 해 보자. 응?”
인아가 시은을 데리고 내려와 차 안에서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계속 발작하며 호흡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경이 그것을 보고 외쳤다.
“인아야! 비닐봉투!”
“?!”
“쟤, 얼굴에 비닐봉투 씌워! 저거 과호흡이야!”
“…아!”
인아가 황급히 차 안을 뒤적거리면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고, 숨을 제대로 못 쉬던 시은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5분쯤 지나서 겨우 진정된 상태에서 슬며시 비닐봉투를 열자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 할머니….”
“할머니랑 같이 산 거야?”
“…흑.”
그 순간 인아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시은을 꼭 안아줬다.
한때 자신도 그랬었다고, 그래서 밤새 울기만 하다가 다른 언니들이 위로해줘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라고…
덜컥
끼이이이이
“!?”
김준이 차 문을 열었다.
바짓단엔 피가 가득 묻어있었고, 연신 담배를 태워대면서 더블백에 뭔가를 잔뜩 담아왔다.
“꼬마야. 받아라.”
쿠웅
김준이 던졌을 때, 인아가 시은을 대신해서 더블백을 열자 그 안에는 각종 미술도구와 만화책, 그리고 노트와 앨범, 액자, 인형 등이 있었다.
“대충 안에서 네 걸로 보이는 건 다 넣었어. 너 그림 그리는 거 엄청 좋아하나 보구나?”
“….”
“펜이 아주… 난 무슨 메이크업 세트인줄 알았네. 이런 건 구하기도 힘들지.”
묵직한 사각의 검은 박스가 전부 마커펜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피식 웃는 김준이었다.
***
“그렇게 해서 또 데려왔습니다.”
“허허허, 언제나 환영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돌아가기 전 정토사에 들려서 시은이를 이곳에 묵게 한다고 하자, 주지 스님은 인자한 미소로 하준엄마와 은기 부인을 불러서 그 아이를 챙기게 했다.
“세상에, 어린 애가 무슨 죄라고….”
“아, 엄마! 저 언니! 나 데리고 다닌 언니!”
“소율아! 그게 진짜야?”
“응! 응!”
승복 차림에 소율이 쪼르르 달려가 시은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준은 잘 부탁한다면서, 결국 한 명을 더 절에 맡긴 뒤로 차를 타고 떠날 준비를 했다.
차 안에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 적막감 속에서 도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그래도….”
“!”
“오빠 갈 때 고맙다는 말은 좀 하지! 중학생 쯤 되면 알게 아냐? 안 그래요 오빠?”
나름 김준을 배려해서 한 말이었지만, 안의 상황을 모르고 한 말이어서 역효과를 낳았다.
“저기 도경 언니? 그 이야기는 좀….”
“응, 왜?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흠흠, 아니야! 나 가만히 있을게.”
도경은 헛기침을 하면서 안전벨트 꼭 매고, 돌아가는 길 까지 아무 말 안 하기로 했다.
김준은 퀭한 눈으로 운전을 하면서 이틀 사이에 인륜을 두 번이나 끊어버린 행위를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아야.”
“…네.”
“돌아가면, 아까 말한대로 부대찌개나 좀 칼칼하게 끓여라.”
“네?”
“치즈는 없어도 돼고, 난 맵게 한게 좋아. 소주 몇 병 차게 해서.”
“…아, 네! 한 번 얼큰하게 끓여볼게요.”
이틀 동안 기운이 쪽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살 사람은 어떻게 살렸고, 돌아가는 대로 오늘 가져온 물건으로 찌개나 얼큰하게 끓여서 소주 한 잔 때리고 싶은 김준이었다.
길었던 것은 밤 뿐만이 아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