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175 사람과 시체 사이.
* * *
“후우 피곤해 미치겠네.”
“그냥… 집으로 갔다가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않을까요?”
절에서 쪽잠을 잔 뒤로, 몸 여기저기를 두들기면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김준을 보고 조수석의 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됐어. 온 김에 뽕을 뽑아야지.”
김준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졸음을 참아낸 채, 다시 배미리로 왔다.
지나가는 길에 그녀들은 화마가 덮쳐서 일대가 새카맣게 타 버린 것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어머, 어머머머! 저기 왜 저래요?”
“벼락을 맞았나? 집 몇 채가 불탄거야?”
뒤에 있던 도경도 동네 하나가 불바다가 된 것을 보고서 뜨악한 얼굴로 바라봤다.
김준은 뺨을 긁적이면서 어제의 현장에 대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한 거야.”
“!?”
“골목에 앞뒤로 좀비들이 꼬이잖아. 차 위로 올라가서 화염병 던지고, 불질러가지고 완전 불바다 만들었지.”
그 뒤로는 뭐, 불씨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옮기다가 싹 다 타버린 것이었고, 그게 하루가 지나서 완전 초토화가 돼 있었다.
“나중에 재개발 할 때, 편하긴 하네요.”
“사람은… 없었겠죠?”
“있었으면 진작에 나 보고 구해달라고 했겠지.”
김준은 이미 인간은 남아있지 않고, 시체만 가득해 텅 비어버린 거리를 천천히 지나가면서 어제의 그 미군부대 상가에 차를 멈췄다.
그리고 낮이 되어서 확실하게 ‘그 시체’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하아….”
얼굴에 두 방을 맞아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어제 그 캄캄한 곳에서 플래시를 비췄을 때, 본 게 맞을 거다.
“얘들아 잠시만….”
“?”
김준은 둘에게 차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한 다음에 상가 앞에 널브러진 모포 하나를 꺼내 그 좀비의 시체를 덮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품 안에서 신나가 담긴 드링크 병을 꺼내 뿌렸고, 주저없이 불을 당겼다.
화르륵
모포에 붙은 불이 타들어갈 때, 김준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나오라고 했다.
그동안 수없이 좀비들을 사냥하면서 저런 적이 간혹 있었지만, 시체에 대고 인사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은 둘이었다.
모포가 빠르게 타들어가고 안에 있는 시체의 썩은 살이 한 줌의 재가 되어 휘날릴 때, 김준은 이제야 나오라고 손을 까딱였다.
끼이이
탁
도경과 인아가 나올 때, 김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하루로 다 못 털 가게였어. 그러니까 남은거 싹 훑어 나가자.”
“네, 오빠!”
일단 사정은 사정이고, 일은 일이다.
인아가 재빨리 움직이면서 김준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고, 그중에서도 파카와 야전삽, 곡괭이, 도끼, 망치, 랜턴등을 챙겼다.
“확실히 좋은 거 많이 있네요.”
컴뱃 나이프를 들고서 이리저리 살피던 인아는 그것들 모두 더블백에 담았다.
“여기 널린게 더블백이야. 그냥 다 챙겨서 하나하나 담으면 될거야.”
“네~ 네~”
인아는 야무지게 필요한 물건들만 쏙쏙 빼서 더블백에 담았다.
쇠붙이가 대다수여서 무겁기는 했지만, 그래도 근처에 카트가 있어서 나르기는 수월했다.
“도경아~ 안으로 들어와봐.”
“네~”
도경은 팔을 빙빙 돌리면서 석궁을 든 채 들어왔고, 김준은 가장 핵심인 우드박스들을 들어서 넘겨줬다.
“이거 좀 같이 나르자.”
“어우, 이거 뭔데 이렇게 무거워요?”
“햄이랑 콘비프. 개당 1.8kg짜리.”
“끄으응!”
쌀 한 가마니 이상의 무게를 가지고서 도경은 힘으로 들어서 그걸 차 안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절대 동년배 여성에게 나올수 없는 피지컬이었고, 카트를 쓸 필요도 없었다.
“콘비프 이거… 부대찌개에 넣은게 진짜 존맛인데.”
인아의 말에 김준도 갑자기 생각나서 말했다.
“부대찌개에 콩나물 집어넣은게 제일 극혐이지.”
“맞아요! 김치, 소세지, 햄, 치즈! 딱 이렇게만 넣어야 해!”
“마지막엔 라면사리?”
“그것도 신라면으로!”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둘이었고, 그 와중에 도경이 인아가 챙긴 더블백 두 개를 멜 때, 김준은 남은 물건을 전부 들어서 같이 들어갔다.
그렇게 안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챙기고, 생필품까지 쓸어담은 뒤로 김준이 다시 차를 몰고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소사벌 문고 가고 끝내자.”
“흐음~ 만화책하고, 로코좀 챙겨야겠다.”
“아, 은지 언니가 그랬는데 서점 안에 mp3 하고, 레트로 게임기 많이 있대요.”
“그래, 다 챙기자.”
김준은 차를 타고서 바로 소사벌대 인근의 서점으로 향했고, 지난날 라나와 은지와 같이 파트너를 한 뒤로 오랜만에 온 대학가 일대에서 주변을 살폈다.
“어, 저기!”
“걷는 좀비구만.”
대로변을 고라니처럼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좀비를 보고서 김준은 바로 총을 준비했다.
그때 조수석에 있던 인아가 조용히 만류했다.
“오빠, 제가 할게요.”
“뭐?”
“총알… 많이 썼죠?”
“그걸 신경썼어?”
조수석에 앉으면서 도경에게 석궁을 인계 받은 뒤로 인아가 직접 나서서 좀비를 잡겠다고 했다.
“거리 좀 있는데, 괜찮겠어?”
“해 볼게요. 어제 보니 도경 언니가 혼자 다 잡았잖아요.”
인아는 자신도 할 수 있다면서 차 문을 열고 석궁을 겨눴고, 도경이 뒤에서 주변을 살폈다.
“딱 세 방.”
“…?!”
“그 안에 처리 못하면 내가 할게.”
일단은 기회를 줘 보기로 했다.
좀비는 총 세 마리 정도였으니, 그 안에 맞추지 못한다면 김준이 개입해서 잡아야 했다.
인아는 그 말을 듣고서 긴장한 얼굴로 석궁을 겨눴다.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촉이 번득였고, 좀비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피유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좀비 하나를 맞췄다.
“어깨야! 머리를 맞춰야 쓰러트릴 수 있어.”
“우… 네!”
일단 첫발에 즉사는 실패.
그 상황에서 좀비들이 공격을 눈치채고 천천히 다가왔다.
인아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두 번째 석궁 화살을 날렸고, 힘껏 날아간 화살은 좀비의 목을 꿰뚫었다.
파각
어깨에 이어 목을 맞은 좀비가 힘없이 버르적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완벽하게 숨통을 끊지 못해서 바둥거리는게 보였다.
인아가 세 번째 화살을 날렸지만, 이번엔 머리를 확실히 맞춰도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좀비였다.
“아, 씨….”
“됐어! 내가 할게.”
“아, 아니에요! 꼭 제가 맞춰서….”
“괜찮아. 총알 아직 충분해.”
“….”
인아는 자신 있게 나서겠다고 했지만, 시원치 않은 성과에 자책하듯 석궁을 쥔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에이~ 내가 조수석에 앉을 걸 그랬다.”
도경이 너스레를 떨면서 말할 때, 김준은 바로 차를 돌려서 엽총을 들고 남은 좀비 하나를 상대로 원샷 원킬로 쓰러트렸고, 기어다니는 좀비들을 보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
“제압했으면 됐어. 저것들이 천년만년 기어서 여기까지 올리도 없고.”
딱 한 마리만 잡아 버린다음에 바로 대학가를 넘어 서점에 오랜만에 돌아온 김준 일행.
이곳은 새 책이 가득한 곳이었고, 여기저기에 쥐와 벌레가 간간이 보였지만, 인기척이 나오자 잽싸게 도망쳤다.
“자~ 각자 챙겨볼까? 도경이는 놀 거리, 인아는 책, 그리고 내가 바깥에서 경계 설게.”
“네!”
여기는 이미 한 번 턴 적이 있어서 내부는 잘 알고 있었다.
김준이 크게 한 바퀴 돈 다음에 바깥에서 총을 들고 보초를 섰고, 그 주변에 지난 좀비를 잡은 흔적이 드러났다.
바닥에 녹아내렸는지 악취가 좀 났지만, 견딜만 했다.
안에서 뒤적거리면서 책이 한 가득 나오면서 각종 문화시설 거리가 카트에 실려왔다.
“뭐뭐 챙겼어?”
“이건 뱅이라고 보드게임, 이건 우노, 그리고 이건 휴대용 게임기랑 헤드셋인데….”
도경이 가져온 전자제품을 보고서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담으라고 차 문을 열어줬다.
“게임은 딱 30분.”
“네~ 네~”
도경이 한가득 실은 것을 안에 넣고, 그다음으로 인아가 완결까지 한 셋트로 나온 애장판 만화책과 소설책 등을 챙겼다.
그 외에 인아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각종 참고서와, 노트, 샤프등을 잔뜩 챙겼다.
“이건 뭐하려고? 공부하게?”
“저희야 상관없지만… 그 절에 애들은 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
확실히 할 것도 없는 아이들 속에서 뭐라도 시켜야 한다는 인아의 말에 김준은 가는 길에 한 번 더 들리기로 하고, 인아가 챙긴 책들을 담았다.
“자~ 또 챙길게 더 있나?”
“다음에 올 때 또 챙기죠. 여기 있는 책 다 가져가면, 몇날 며칠 걸릴거요?”
“추레라도 큰게 필요하고.”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책과 오락용품으로 꽉 차 있는 차를 두들기고는 바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가는 김에 절에다가 책 몇권 내려놓고, 집에 돌아가면 부대찌개나 얼큰하게 한 그릇 때릴 셈이었다.
묵직하게 담겨있는 차를 타고 다시 배미리로 가는 길.
이번엔 도경이 조수석에 타서 자신이 직접 좀비를 잡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석궁을 들었다.
다시 불타버린 동네, 배미리를 지나가면서 좀비들을 잡았던 흔적들을 되짚어 갈 때였다.
“어?”
“뭐야?”
“잠깐만, 저거 좀비가 아닌거 같은데?”
여기는 배미리에서 정토사로 가는 하천의 다리.
그리고 저 멀리 있는 것은 예전에 은기가 버리고 갔다는 자동차였다.
근데 그 앞에서 조용히 흐르는 하천을 보면서 쪼그려 앉아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
빵 빵 빠아아앙
김준은 그 앞에서 클락션을 울렸다.
그러자 하천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사람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여성, 그것도 앳되보이는 소녀였다.
“교복을 입은 애네? 학생인가.”
“위험하게 왜 저런데 있어?”
“흐으음.”
김준은 계속 클락션을 누르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고,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용히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진짜 어려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헤진 교복 차림에 다 떨어진 실내화, 머리는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위이이잉
“뭐야, 사람 맞는거지?”
“….”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혼자야? 아니면, 다른 생존자가 있니?”
“….”
김준의 말에 아무 말도 없는 소녀를 보고 맞은편의 도경이 아크릴판 너머로 톡톡 치면서 손을 흔들었다.
“저기,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거든? 혹시 크러쉬 걸이라고 들어봤….”
“…저기.”
“응?”
그 소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
“집에요… 좀비가 있는데… 잡아 주실 수 있나요?”
“허어어….”
좀비라고 말을 하면서, 집 안에 있는 걸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소녀.
김준은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물었다.
“어디에 있니?”
“저 하천가에 있는 상가요. 아저씨, 어제 그 빌라촌에 불지르신 분 맞죠?”
“….”
그 와중에 그걸 봤던 생존자가 있다는 생각에 김준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물을게. 너 혹시….”
“꼬마 애 봤냐고요? 제가 데리고 있었어요.”
“너, 그럼…?”
소율이를 데리고 다녔다는 ‘그 언니’의 정체가 바로 이 여학생인 것 같았다.
“자세히…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집 안에 좀비… 잡아 줄 수 있어요?”
“어, 그래. 그게 먼저겠구나. 근데 수가 얼마나 되니?”
“몰라요. 많을 거예요. 그래서 물렸거든요.”
“…누가?”
“우리 할머니가요.”
“하….”
“그래서 같이 도망쳤어요. 혹시 몰라 저는 따로 숨어있었고….”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는 뒤에 있는 인아에게 말해 문을 열게 했다.
“타라. 안내 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