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74화 (174/374)

〈 174화 〉 174­ 밤이 참 길었습니다.

* * *

김준은 차 안으로 소녀를 데려와 살폈다.

두 눈을 플래시로 비춰 실핏줄 하나 터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고,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자~”

“고맙습니다.”

물하고 비스킷을 주자 그것을 허겁지겁 먹고는 볼을 부풀어진 소율을 보고 아빠미소가 생긴 김준이었다.

“아저씨 누군지 알아?”

“으으음, 네!”

“진짜?”

“아빠 친구! 군인 아저씨!”

“오~ 진짜 아네?”

김준을 기억하는 소율은 물 한병을 다 마시고는 두리번 거렸다.

“차 안에서 사는 거에요?”

“가끔씩은, 근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여섯 살짜리 애가 어떻게 좀비가 넘치는 곳에서 살아있는지 궁금했던 김준의 물음.

그러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처음에는요. 엄마가 가방에 과자하고 물을 많이 넣어줬거든요. 바깥에 막 물어뜯는 괴물이 있다고 해서 가르쳐준대로 숨어 다녔어요.”

“장하네. 근데 어쩌다가 엄마아빠 빠져서 나왔어?”

“자다가요. 화장실 급해서 나왔는데, 아빠 차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막 울었어요.”

“그리고는?”

“여기서 좀만 더 가면 할머니 사는 집인데요. 그래서 거기 가려고 기다리다가 어떤 언니가 구해줬어요.”

“어떤 언니?”

“네~ 떡볶이도 만들어줬어요.”

생존자가 또 있다는 말에 김준의 눈이 떠졌다.

“그 언니 어디에 있어?”

“음~ 몰라요. 오늘 그 언니가요. 이제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다른데로 가라고 했어요.”

“하….”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바깥에서 헤메는 아이를 구해준 건 고마운데, 그 뒤로 쫒아냈다고 하니 더 알 수 없게된 김준이었다.

아무튼 이 안에 또 다른 생존자가 있고, 음식까지 만들어준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지만, 일단은 할 일을 마저 하기로 했다.

“자, 그럼 돌아가자.”

“아저씨 우리 엄마랑 아빠 어디에 있는 줄 알아요?”

“응, 알아. 절에 계셔.”

“절이요? 나 교회 다니는데.”

김준은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운전석으로 가서 바로 앞에 있는 미군부대 용품점으로 향했다.

“어?! 여기 할아버지 가게!”

“소율아.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아저씨가 저기서 물건만 가져오고 다시 갈게.”

은기 부부에게 애 돌려주기 전에, 대가로 그 녀석 아버지 가게의 물건 좀 루팅할 생각이었다.

김준은 차에서 내려 차 뒷문을 열고 플래시를 비추면서 바깥에 나와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모포 챙기고, 가방, 마스크, 모자, ARMY 티셔츠 등 다양한 제품이 1년간 방치된채로 있었는데, 먼지가 좀 쌓여서 그렇지 가져다가 빨아 쓰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반합에, 각종 스테인레스 식기, 포카락 등도 알차게 챙겼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안에 쌓여있는 것들이 드러났다.

“오­”

찌익­ 찍찍­

플래시를 비추자 쥐 한 마리가 황급히 도망쳤고, 그 안에서 파먹은 나무 가구들이 보였다.

김준은 안에 까지 갈 필요는 없고 가까운 곳에 있는 전투식량 박스부터 챙겼다.

MRE 12개짜리의 박스를 한 번에 세 개씩 들어서 차 뒷문에 차곡차곡 담았고, 그것을 차 안에서 신기하게 보고 있는 소율이가 있었다.

김준이 계속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게에서 물건을 계속 담았고, 마지막으로 C레이션 통조림과 스팸과 콘비프 캔들을 잔뜩 챙겼을때였다.

으으으­ 크으으으­

“어?!”

헤드라이트에 비친 뭔가를 본 소율의 눈이 확 커지면서 깜빡거렸다.

좀비를 발견했는데, 그 좀비가 뭔가 낮이 익어서였다.

몸이 부패했고, 얼굴형이 약간 바뀌긴 했지만 확실했다.

덜컥­

“하부지!”

“어, 야! 안 돼!”

김준은 좀비를 보고서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차에서 내린 순간 황급히 달려들었고, 눈앞에서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

순간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얼굴을 봐 버렸다.

이 가게의 주인이자, 은기 아버지였다.

눈이 새 하얗게 떠 있었고, 피부는 부패했으며, 이빨을 앞세운채 흐느적거렸지만 확실했다.

한때 김준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 분이었는데, 아이가 뭣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달려갔고, 그대로 물리려는 순간…

탕­

촤아악.

김준이 권총을 뽑아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소율의 눈 앞에서 머리에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간 친구 아버지를 확인 사살로 몇 방 더 쐈다.

탕­ 탕­

“!!!”

그리고는 바로 달려가 소율을 뒤에서 안고 바로 차에 태운 뒤로 쌍욕 내뱉을 뻔 했다가 울먹이는 아이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으아아아아앙!!!!”

오열하는 아이를 향해 조용히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바닥에 떨어진 C레이션과 통조림 깡통을 다시 챙기고는 바로 출발했다.

***

“어떻게 된 거에요? 새벽에 나가다니!”

“….”

도경이 따지듯이 말했지만, 묵언 수행중인 명진스님은 그저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니, 김준이 걔가 밤에 혼자 나갔다고요?”

“….”

오랜만에 좋은 방에서 편히 자고 일어난 은기 역시도 김준이 사라졌다는 말에 놀랐다.

“허허, 아무래도 그 불자께서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 같군요.”

영기 스님이 수습하려고 했지만, 어두운 밤에 좀비가 가득한 곳을 향해 혼자 나갔다는 것은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을 모두 구해준 김준이니 설마 그가 밖에서 당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모두가 마찬 가지였다.

“아니, 대체 무슨 일로 혼자 나가신 거야.”

인아는 김준이 사라진 자리를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고, 새벽이 되어 해가 뜰 때, 그가 주차했던 자리를 우두커니 바라봤다.

그러다가 점점 초조해지는 지 10분이고, 20분이고 김준의 차가 있던 자리를 보며 엄지손톱을 짓씹으며, 계속 기다렸다.

“인아야. 아침은 먹어야지?”

아침 공양을 준비한다는 스님들의 말에 일을 거들면서 일단 밥부터 먹자는 도경의 말에 인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 이따가요.”

“괜찮아. 금방 오실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어!?”

그 순간 저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리더니, 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 왔다!”

“준이 오빠!!!”

피에 젖은 캠핑카가 서서히 다가와 멈췄고, 차에서 내린 김준은 달려오는 인아와 도경을 보고서 엄지를 올렸다.

“어디 갔다 오신거에요?”

“밤산책.”

“말도 안 돼! 그 위험한 밤에요?”

“자~ 얘 좀 챙겨줘라.”

“어머!?”

조수석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든 어린아이를 안아서 도경에게 넘겨주자, 그녀는 아이를 안고서는 멍하니 보다가 설마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이를 안아서 절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은기는 죽은 줄 알았던 딸아이를 보고 바로 달려와 살폈고,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은기 와이프도 바로 뛰쳐나와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소율아! 소율아!”

“엄마~”

“어디 있었어? 으흐흐흐흑!!!”

감격의 가족 상봉이었다.

김준은 가져온 티셔츠와 통조림 상자를 가져오면서 은기에게 말했다.

“네 딸이니까 네가 좀 씻겨라. 옷은 대충 이거 입히고.”

“…고마워. 진짜 고맙다!”

은기는 김준의 손을 붙잡다가 와락 끌어안아 오열했고, 김준은 사내자식의 포옹에 일단 등을 토닥여준다음에 티셔츠를 건네줬다.

“꺄아아! 꺄아!!”

엄마의 손길에 깨끗이 씻고, 여름불교학교때 동자승들에게 입혔다는 승복을 입혀주자 좋다고 방방 뛰는 소율이.

김준은 그 트라우마 속에서도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다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기보다 어린 하준을 보고도 웃으면서 쓰다듬어줬다.

하준엄마 역시도 새로 들어온 가족과 인사를 나누면서 식사 준비를 했고, 김준은 조용히 옆에 있는 주지 스님에게 말했다.

“여기다가 계속 입을 늘려서 죄송하게 됐네요.”

“허허허, 개의치 마십시오. 부처님의 은덕으로 산 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통조림 좀 놓고 가겠습니다. 스님들은 못 드시겠지만, 애들은 먹여야겠죠?”

“그렇게 하시지요. 이따가 어제 캐 놓은 봄나물이 있으니 가져가시지요.”

“아, 여기 음식 부족하면 안 주셔도 됩니다.”

“가져가십시오.”

주지 스님은 인자한 미소로 김준에게 사람을 구한 대가로 이것저것 챙겨주려 했고, 그런 제안에 더 거절하지 않고 받기로 했다.

“후우­”

그리고 잠시 은기를 불러 담배 타임을 가지는 김준은 어제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제 네 딸 구하면서 있었던 일인데….”

“그래,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내가 진짜 안 잊을게.”

“근데 거기서… 음… 아무래도 너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

김준은 어제 자신이 쏜 좀비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 아버지 가게에서 물건 챙기고 있었는데… 애가 막 뛰어나오더라고, 그래서 봤는데 그 좀비가… 아무래도 네 아버….”

“스톱!”

그 말을 칼같이 잘라버린 은기는 정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준아, 더 이상 말 안해도 돼.”

“음, 그래. 하지만….”

“됐어. 우리 아버지는 이미… 작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

김준은 그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는 일어났다.

“읏­ 차! 그럼 뭐, 일단은 여기 거주하면서 잘 지내봐. 간간이 놀러올게.”

“그래,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

김준은 친구와의 이야기를 마치고서 사찰에서 준비한 아침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는 한숨 잠든 후에 점심이 되어서 인아와 도경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가는 길에는 절 안에 있는 모든 스님들과 가족들이 나와서 인사했는데, 특히 아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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