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73화 (173/374)

〈 173화 〉 173­ 밤이 아주 깁니다.

* * *

부우웅­

밤중에 적막한 자동차 소리.

[띠링­]

네비게이션에서 [배미리]가 표시 되자 김준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미친 짓이라고 들어도 할 말 없었다.

아니, 진짜 미친 짓이 맞기는 했다.

1년 만에 만난 학교 동창 고향 친구.

그리고 좀비가 퍼진 아포칼립스의 세상에서 재회의 기쁨 이후, 딸아이를 잃어버려 상실감에 빠진 것을 보고 무심코 나와버렸다.

“1주일이라고 했지?”

여섯 살짜리 애가 어떻게 여기서 살아있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릴 때 봤던 애여서 선물도 많이 사줬고, 얼굴도 잘 알았다.

물론 애 하나 구하자고 나온 것도 있지만, 그 외에도 찾을 게 많았다.

“그때 은기네 아버지 가게가 여기서 좀 더 가면 나왔는데….”

겸사겸사 생존식량으론 최고인 미군부대 상점에서 전투식량도 털고, 모포다, 반합이다, 야전삽이다 이거저거 다 털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김준은 그렇게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기대 서행으로 주변을 살펴봤고, 혹시나 싶어서 가지고 있는 총들을 모두 장전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여지없이 밤에 불빛을 보고 불나방같이 좀비들이 달려왔다.

캬아아아아­

“!”

쿵­ 쿵­

뒤에서부터 달려와서 차를 마구 두들겨대는 좀비들.

김준은 백미러를 통해 상황을 본 다음 침착하게 R기어로 넘기고서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쾅­ 콰드드드득­

“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쿨하게 후방충돌로 좀비 몇 마리를 깔아 뭉개는 걸 시작으로 사방이 적인 상황에서 사냥이 시작됐다.

김준이 콘솔박스 안에 있는 등산용 야투경을 꺼내 썼을 때, 주변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움직임들이 여럿 있었다.

뛰는 좀비는 아까 그 둘이 전부 인 것 같았지만, 다른 움직임을 보이 거대한 웨이브가 생길 것 같았다.

“후­”

야투경으로 확인을 끝낸 김준은 바로 벗어서 차를 몰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빌라와 원룸촌이 가득한 배미리는 샛길이 많아서 차가 움직일 곳이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좀비들 역시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우우웅­

김준이 몰려드는 좀비들을 벽에 두고 싸우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앞에도 수많은 좀비들이 눈에 보였다.

“아, 씨발….”

이 순간 김준은 지금 이시간에 나온 것을 두고서 살짝 후회가 들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아까 뛰는 좀비 몇 놈 달려든거 차바퀴로 깔아 뭉갠 뒤로 안 보였다.

으어어­ 어어어어­

우워­ 으으으으­

1차선 골목 하나에 앞뒤로 포위된 상태.

전후방 모두 15m 남짓의 거리에서 느리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좀비들.

김준은 그 상황에서 결심한 듯 무기를 챙기고 차 문을 열었다.

덜컥­

그리고는 황급히 캠핑카 옆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후다닥 올라갔다.

어깨에 맨 두 자루의 엽총과 허릿춤의 권총이 걸려서 출렁거렸지만, 그런 거 거슬려 할 때가 아니었다.

우워어어어어­

“후우­”

캠핑카 위로 올라와 캐리어 박스에 걸친 채로 플래시로 비춰보니 정말 징그럽게도 많은 수의 좀비가 보였다.

아마 이 골목 배미리 사람들이 전부 감염된 것 같은 수였고, 전부 합쳐 200명은 넘을 것 같은 좀비 인파에 김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 상황에서 자신은 풀 무장 상태라는 거였다.

딸깍­ 딱­ 끼이이­

캐리어박스 한 곳을 열자 그 안에 있는 금속 박스, 그리고 각종 기름과 수상한 액체가 든 유리병 등의 인화성 물질이 가득했다.

김준은 그것을 하나 들고는 물고 있던 담배로 뚜껑을 열고 심지를 넣어 불을 붙였다.

치이이익­ 화륵!

순식간에 심지에 불이 붙자 김준은 그것을 들고서 뒤에 몰린 좀비들을 향해 던졌다.

“꽃병 받아라!”

파각­ 화르르르르르륵­

효과는 굉장했다.

소주병 사이즈에 각종 화학 물질이 가득한 화염병이 터지면서 사방에 불이 붙었지만, 좀비들은 그 상황에서 김준을 향해 달려들려 하다가 자기들끼리 몸이 타 들어가고 그러면서 하나가 쓰러지자 발이 꼬이는 등으로 계속 장작이 돼 줬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또 한 병의 신나가 담긴 병을 들고 이번엔 심지 없이 차 앞쪽에 있는 좀비들에게 연달아 던졌다.

쨍강­ 파각­

쨍그랑!!!

두 병의 유리병이 좀비들의 머리를 맞고 깨져서 기름냄새가 진동할 때,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인다음 길게 연기 한 모금을 빨고는 그대로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장초를 던졌다.

화르르르륵­

앞뒤로 좀비가 연료가 되어 아주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다음은 화약의 시간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쿵!

안에 걸쇠가 복잡하게 잠겨있던 금속 박스를 열자 그 안에 강화 플라스틱으로 밀봉된 산탄들이 들어왔다.

여기 있는 것들은 슬러그 탄 보다는 흩뿌리는 산탄 위주였고, 그 중에서도 주머니에 돼지탄을 담은 김준이 2연발 샷건부터 장전하고 바로 불타는 몸으로 걸어오는 좀비들을 향해 겨눴다.

탕­!!! 탕!!!

철컥­

두 발이 일제히 발사되면서, 멧돼지 잡는 수백 발의 쇠구슬이 터져나오며 좀비들의 몸을 사정없이 찢어나갔다.

사거리가 짧고, 저격에는 적절치 않아 애용하지 못했지만, 근접에서 몰려있는 좀비 상대로는 이게 제일이었다.

화르르륵­

크어어어어­

한참 앞에 있는 좀비들이 전방 5m 이상 떨어지라며 엽총을 쏴 댈 때, 뒤에서 또 소리가 들리자 바로 화염병 하나 들고서 뒤로 향해 집어 던진 김준.

그리고는 급하게 심지를 못 꽂아 앞에 깨진 화염병을 향해 티슈를 뽑아 불을 붙이고 던졌다.

하지만 바람에 나풀거리는 휴지가 아무리 힘껏 던져도 거기 닿을 리가 없었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자 김준은 이를 악 물면서 다시 캐리어 박스로 달려가 새 화염병을 들었다.

좀비가 계속 다가오는데도, 침착하게 직접 심지를 꽂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불길이 오른 것을 확인 하고는 다시 달려가 좀비들 앞에 힘껏 던졌다.

파각­

화르르르륵­

아까 뿌린 신나에 이어 힘차게 불길이 치솟으며,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불길이 좀비들을 불태워갔다.

좀비는 본능만 있지 지성이 없는 존재들이다.

김준이 계속해서 화염병을 던져 앞뒤로 불의 장벽을 만들고 산탄총을 난사해대는데, 그 상황에서도 주저없이 달려들었고, 결국은 앞에 있던 좀비들이 쓰러지면서 자신의 한 몸을 장작으로 만들며 타들어가자 뒤에있는 좀비들이 거기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뒹굴면서 벽에 낀채로 산채로 타들어갔다.

***

탁­ 탁­ 치익­

“후우­”

오늘 정말 술도 안 먹었는데 줄담배를 태우게 된 김준이었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주변에 땀을 뻘뻘 흘리고, 사방에 시체 타는 냄새가 가득한 현장에서 김준은 결국 그 많은 좀비들을 다 처리 했다.

“죽어서 천국 갈 수 있으려나?”

한두명도 아니고 사람의 형상을 한 좀비를 잡은게 이제 수백명은 될 것이다.

진짜 이러다가 혼자서 좀비 1천마리는 잡은 ‘레전드 슬레이어’ 칭호라도 생기는게 아닌지 쓴웃음이 나왔고, 원래 목적을 두고서 불 장난이나 시원하게 한 바탕 한 순간이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매캐한 연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뿌옇게 올라왔을 때, 김준은 천천히 내려와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한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에어컨을 풀로 틀어서 어떻게든 숨 쉴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자­ 이제 다시 가 보자.”

시동을 켜고 헤드라이트를 비추자, 검은 연기 속에서 빛이 다시 들어왔다.

김준은 골목길을 지나 반쯤 타들어간 좀비의 소사체들을 자근자근 짓밟으며 앞으로 나갔고, 그 뒤로 여기저기 탄내 가득한 자리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본연의 업무를 위해서 아이가 어디 있을지 한 번 찾아봤다.

“분명 배미리 근처에 있을거야.”

김준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아이가 이 근처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간간이 집에 놀러가서 본 은기의 딸은 굉장히 똑똑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엄마한테 혼나서 나가라는 말을 들으니 자기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서 할머니집 간다고 나갔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정말 뿜었다.

정말로 인근 지리를 알고 있었고, 한번은 애가 없어졌다고 찾으러 다닌다고 했는데, 산책 삼아 아빠랑 간 공원을 가서 멍멍이 보고 싶다고 거기서 반려견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찾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집에 아무도 없고, 근처에 살아서 애가 할머니, 할아버지 사는 동네 지리를 안 다면… 그냥 막연히 여기 왔겠지….”

일단 살아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김준은 그것을 위해 계속 이리저리 돌고서 주변을 계속 살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괜히 자신이 온 것이 뻘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간간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조카 구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차를 통해서 골목 구석구석을 돌고, 좀비가 나오면 총으로 쏴서 잡고, 길이 막혀 있으면 돌아서 다녔다.

마침내 빌라촌에 상가까지 왔을 때, 김준은 눈 앞에 비춘 가게 하나에 순간 숙연해졌다.

[US국제상가]

“하….”

저기가 바로 은기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미군부대 가게였다.

저기로 쭉 가면 그 녀석의 비극의 가족사 흔적을 보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산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물건은 챙겨야 했다.

“후우….”

김준이 한숨을 쉬면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이 주변 한 바퀴만 돌고 저 곳으로 가서 루팅을 하려고 할 때였다.

탕­ 탕­탕­

“!?”

누가 또 차를 두들기고 있었다.

김준은 순간 좀비가 또 나왔나 싶어서 바로 R기어를 돌리고 엑셀을 밟으려고 했다.

이번에도 단숨에 깔아뭉개려는 순간…

탁­ 탕­ 팍­

“아저씨! 문열어주세요! 아저씨!”

“!?”

사람의 목소리.

김준이 좀비 신경쓸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차에서 내려 달려가 플래시를 비춘 순간 그을음과 좀비의 피가 가득한 자리에서 어린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정성껏 입혀준 하늘거리는 겨울왕국 원피스는 잔뜩 헤져 있었고, 자그마한 손과 얼굴이 시커매질 정도로 오랜기간 방치되어 있는 아동.

“하, 하하….”

진짜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