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72화 (172/374)

〈 172화 〉 172­ 산 자의 운명.

* * *

“오빠, 별 일 없겠죠?”

맞은 편의 인아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을 때,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릿춤에 손이 갔다.

“됐어, 이런 경우 한 두 번이냐?”

“그렇긴 하지만….”

다른 애도 아니고 인아는 눈 앞에서 김준이 제일파 조폭들하고 싸우면서 생사를 오가던 광경을 본지라 콩닥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었다.

“걱정 하지마. 좀비도 아니고, 죽다 살아난 양반들 같은데, 내가 설마 당하겠니?”

자신감 가득한 상황에서 김준은 품 안에서 망원경 스코프를 꺼내 살펴봤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산발이 된 여자를 데리고 어기적거리면서 오고 있었다.

둘 다 사나흘 피죽도 못 먹은 앙상한 몰골이었고, 김준은 뒤에 있는 도경을 향해 바깥 풍경 한 번 보라고 한 다음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다음에 총을 챙기고 내렸다.

“오빠!”

“괜찮아. 확실하게 각 잡았어.”

주변을 살펴보고, 스코프로 먼저 어떤 사람인지 상태를 봤으며, 기습에 대비할 수 있게 옷 안에 프로텍터와 방검 조끼를 채웠고, 허릿춤에 쌍권총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손도끼를 들고서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김준은 차 안의 두 소녀에게 엄지를 올리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차에서 사람이 나오자 두 남녀가 흠칫했지만, 이미 도망칠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이 상황에서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라는 듯이 그대로 풀썩 주저앉은 두 남녀.

김준은 직접 그들에게 다가갔다.

“생존자 분이신가? 오래도 계셨네?”

“후우우….”

가까이서 보니 완전 원시인이 따로 없었다.

양복차림인 남자의 옷은 원래의 색깔을 찾을 수 없게 새카만 때가 줄줄 흘렀고, 머리는 광인처럼 산발에 수염도 덥수룩한 게, 웃통 벗고 돌도끼를 들면 어디 동굴에서 거주할 사람 같아보였다.

옆에 있는 여자도 상황은 다를 바 없어서, 퀭한 눈은 초점을 잃고서 완전 떡진머리로 밧줄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거지꼴의 두 남녀를 본 김준은 그저 쓴 웃음이 나왔다.

그때 남자 쪽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저, 저기… 혹시 먹을 게 좀 있다면….”

“먹으쇼.”

품 안에서 전투식량에서 빼낸 젤리와 크래커를 꺼내 던져주자, 남자 쪽에서 황급히 봉지를 뜯어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바삭한 크래커를 씹으면서 목이 막히지 말라고 물병도 하나 던져주자 벌컥벌컥 들이켜고, 옆에 있는 여성에게도 건네줬다.

“저기… 좀 먹어봐.”

“….”

그녀는 남자가 건네주는 음식은 먹지 않고, 물만 조용히 몇 모금 마셨다.

“에휴~ 고생이 많으셨겠네.”

김준이 혀를 차면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을 때,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는 그를 유심히 바라봤다.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쳐다보는 통에 눈이 마주쳤고, 그는 조용히 김준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응? 뭐요?”

“그… 신광중 나오지 않았어요?”

“!”

김준은 옛날 학교 이야기를 하길래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신광공고 나왔고요.”

“어~ 나 졸업할 때는 신광마이스터니 뭐니 바뀌었지만, 암튼 맞아요.”

“김준! 준이 맞지?”

“!”

그 남자의 눈에 총기가 돌아오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보니 산발이 된 머리와 수염만 밀어버린다면 김준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긴 했다.

“준아! 나 은기야!”

“?”

“장은기!!!”

“…어, 어?!”

김준은 자세히 보고서 그 얼굴을 확인하고는 뒷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은거 같았다.

“이 새끼! 너 살아 있었냐?!”

얼마만에 만나는 학창시절 친구인지 몰랐다.

게다가 맨 처음 바깥에 좀비 사태가 터졌다면서 빠르게 전화가 내려갔을 때, 스마트폰에 분명 메시지를 받은 친구 중 하나였다.

김준은 곧바로 손을 뻗어 세상이 멸망한 뒤에 다시 만난 친구와 반갑게 악수했다.

오랜 기간 방치되어 악취가 좀 나긴 했어도 그런 건 이 상황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야~ 씨, 살아있는 거 봐서 다행이다.”

“너는 진짜… 잘 지내는구나?”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거기서 깔끔한 모습으로 나오는 김준을 보고서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은기였다.

“혹시 둘 말고 다른 가족은….”

“….”

“미안, 괜한 말을 했구나. 옆에는 제수씨 맞지?”

그 순간 멍하니 있던 그 여성이 눈이 부릅 떠지면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 으으… 꺄아아악! 꺄악!!!”

“!?!”

순간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 권총을 꺼낸 김준.

그리고 은기가 황급히 자신의 아내를 감쌌다.

“준이야, 이거 아니야!”

“…!”

“감염… 그런거 아니야… 지금 와이프가… 다른 쪽으로 아파….”

“…뭐?”

“우리 딸이….”

“….”

그러면서 이미 다 헤진 옷 여기저기 팔을 걷어 소매를 보여주고, 다리를 보여줬을 때, 땟국물이 흐른 자국은 있어도 물리거나 어디 다친 흔적은 하나도 안 보였다.

김준은 한숨을 내 쉬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담배를 마저 치면서 은기에게 물었다.

“어디 갈 데는 있고?”

“…차 가지고 돌아다녔는데, 저거 멈추고 이젠 없어.”

“앞으로 둘이서 어디로 가려고?”

그 순간 넋이 나가있던 은기 와이프가 멍하니 허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소율이… 소율이 찾아야 해… 우리 딸 지금 어디 간 지 몰라… 빨리 찾아야… 꺄아아아아악!!!!”

“지, 진정해! 제발 진정하라고!”

몸부림치는 아내를 애써 막는 은기.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한 젊은 여성을 두고서 힘겹게 제압당하는 그녀를 보고 김준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럼 지금 어디 갈 데 없는거지?”

“어디… 쉴 만한 곳이라도 있어? 부탁좀 할게. 나는 괜찮아도 얘 쉴 곳만.”

“쯧, 일단 따라와봐.”

김준은 손짓하면서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는 바로 도경한테 말했다.

“도경아, 안에 아까 챙긴 남녀 속옷 챙기고, 수건 꺼내 놔.”

“아, 네…”

“그리고 좀 불편하겠지만, 내려서 조수석에 좀 낑겨 앉자.”

“….”

도경은 일단 김준이 말한 대로 물건을 셋팅한 다음에 천천히 나왔다.

그리고 원시인처럼 있는 둘을 보고 멈칫했다가 이내 조용히 인사하고는 조수석에 탔다.

“안쪽에 타라. 샤워실 있으니까 좀 씻고.”

“…고맙다. 진짜 고마워….”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김준은 캠핑카 자리에 둘을 태웠고, 운전석에 가서 다시 시동을 켰을 때, 인아와 도경에게 말했다.

“정토사 지금 가자. 차라리 내일 루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 네.”

“근데… 아는 분이에요?”

“학교 동창.”

“아….”

“쟤 원래 동네 공무원이었는데… 내가 쟤 딸 돌잔치도 갔었고….”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서 유독 일찍 결혼한 녀석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아까 딸을 찾겠다고 절규하면서 반쯤 정신이 나간 제수씨 이야기를 들으니 그 이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에휴~”

김준은 한숨을 내쉬면서 바로 차를 돌렸다.

가는 길에 아까 잡았던 좀비들이 보였는데, 운전석 뒤에서 샤워기 물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서 그냥 지나가 주길 바랬다.

***

“언제나 폐를 끼치는군요.”

“허허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불자께서는 정말 부처님의 복을 받으실 겁니다.”

정토사의 주지 스님은 이번에도 생존자를 구해와 이곳에 데려왔을 때, 개의치 않고 자리를 만들어줬다.

“스님, 여기 옷 가져왔습니다.”

절 안에서 스님들이 입는 회색의 승복을 가져왔을 때, 김준은 성정에게 그것을 받아서 인사했다.

그리고는 문을 두들기면서 조용히 문앞에 놨다.

“은기야! 일단 옷 여기 놓는다.”

“어, 어! 내가 챙길게!”

잠시 후 몇 달만에 하는 지 모를 목욕을 하고서 젖은 수건을 머리로 말린 채, 승복 차림으로 나온 두 남녀가 나왔다.

걸레짝이 된 옷은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고, 절에서 준 고무신과 슬리퍼를 신고 나온 은기.

오랫동안 떡져서 굳은 머리카락을 박박 감아서 겨우 기름기를 긁어내고, 산발이 된 머리를 묶었고, 수염을 면도기로 싹 미니 딱 옛날에 그 친구의 얼굴이 그대로 나왔다.

“지혜야. 괜찮아?”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제수씨 역시도 싹 씻은 다음에 머리를 묶자 아까의 광인 같은 모습은 조금 사라지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허허, 갈 곳이 없으시다면, 여기 계속 묵으셔도 됩니다. 고기를 드시기는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묵을 자리를 주신 것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녀석 원래 집안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런 것을 따질 게 아니었다.

그렇게 절간에 새 손님이 왔을 때 넋이 나간 채로 있는 지혜를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분도… 고생 많으셨겠네.”

하준 엄마와 간호사 보살이 승복 차림으로 조용히 인사하면서 그녀를 안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안에서 셋이 이야기 할 때, 한쪽이 그동안 쌓아뒀던 슬픔을 터트리며 펑펑 우는 소리가 절간에 울렸고, 스님들은 조용히 염불을 외우며 다 이해한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늦은 점심으로 정토사의 특제 메뉴인 사찰국수와 봄나물 무침이 올라오자 모두가 허겁지겁 먹었고, 교리에 따라 과식을 금하는 공양으로 급히 먹다가 배탈을 막기 위해 딱 이정도만 먹고 쉬게 한다.

이후 치과 의사에게 도경과 인아를 맡기고, 그분은 임시 충전재가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틀을 만들어 놓은 것에 김준이 준 금반지와 은을 녹여서 바로 충전재를 만들었다.

원시적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치과의 존재였다.

“김 보살께서 오신 김에 저희와 같이 비닐하우스로 가시겠습니까?”

“네?”

성정 스님은 호미와 광주리를 들고서 김준에게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자들께서 오시면 드리려고, 봄나물과 토마토 수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건 가야죠.”

김준은 남은 시간 절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오늘자 물물 교환을 위한 작물을 직접 캐기로 했다.

특히 집 안에서 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사찰표 봄나물을 좀 많이 챙길 셈이었다.

그렇게 좀비들을 잡고, 편의점을 하나 털고, 물자 넉넉한 상황에서 고향 친구까지 구하고, 애들 치아 치료까지 받게 했다.

거기에 내일 가져갈 토마토와 봄나물들을 가득 받은 김준은 저녁이 되었을 때, 조용히 자리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있었다.

“저기, 준이야?”

“어, 그래.”

은기는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승복 잘 어울린다.”

“야이씨~ 내가 이걸 입을 줄은 몰랐네? 절은 한 번도 와 본적 없는데.”

이제야 좀 긴장이 풀려서 서로를 보고 웃으면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기억나? 너, 썸녀라고 했으면서 나한테 바로 결혼한다고 한거.”

“썸이였어… 그때는….”

대학 시절 졸지에 애아빠가 되 버려서 황급히 한 결혼, 그리고 군대도 상근으로 나와서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살림을 차린 친구였다.

“내가 그때 보너스 받은거 컴퓨터 바꾸려다가… 시발, 니 이야기 듣고 세탁기 사 줬잖아?”

“그때 진짜 눈물나더라.”

김준이 말없이 담배를 건네주자, 한 대 집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은기였다.

“너희 아버지가 계속 미군부대 용품 가게 하셨지?”

“그래, 배미리 거기.”

“배미리… 진짜 여기서 얼마 안되는 거리인데.”

김준은 한숨을 내 쉬면서 다들 가족을 잃고서 헤메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정말 죽어라고 고생했지. 처음엔 부부싸움인줄 알고 말리려다가 어머니가 아버지 목을 물어뜯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

“차로 도망쳐서 셋이서 지냈어. 차에서 숙식하고, 처음에는 노점상 같은데 과자나 물을 마시다가, 나중에는 하천에서 물푸고, 민들레다 쑥이다 그냥 생으로 씹어먹고….”

“1년 동안 산 게 용하네.”

진짜 생 거지꼴로 필사적으로 살아왔던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서로 의존하며 살아왔던 것은 단숨에 깨져버렸다.

“소율이는 어쩌다….”

“….”

“아, 미안해.”

“차에서… 애가 있는 줄 알고… 먹을 것 찾으려고 출발했어. 근데, 뒷좌석에 이불 쌓인 걸 보고 들췄는데… 애가 없었어.”

“!?”

“문단속도 잘 했는데! 그걸 애가… 그 녀석이… 열고 나간 걸 아무도 몰랐어! 찾으려고 뒤늦게 왔어도 어디에도 없었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바깥에는 좀비가 득실거려 차를 몰고 찾으려고 해도 끝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 부주의로 인해서 1주일 전에 소중한 딸을 잃어버리고서, 그 일대에서 미친 듯이 찾아나섰다고 한다.

그 사이 멘탈이 나간 아내는 연신 울어대기만 하고, 이제는 포기한 상황에서 어디든 가서 살 곳을 찾으려고 할 때, 김준을 본 것이다.

“1주일 전이라고 했지? 소율이가 지금 몇 살이지? 돌 때 한 번 봤는데.”

“이제 여섯 살….”

“후우….”

젊은 나이에 친구의 상황을 듣고서 자신도 한숨이 따라 나오는 김준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담배를 태우며 흐느끼다가 어떻게 아내라도 케어하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은기를 보고 김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그날 밤.

김준은 지도책 하나와 네비게이션 충전을 하고, 차 안을 깔끔하게 치웠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시각, 조용히 움직일 때, 호롱불을 들고 다가오는 스님이 한 분 계셨다.

“….”

“아, 저기….”

말 없이 미소만 짓고 계신 것이 지난 번 그 ‘묵언수행’을 한다는 그 분이었다.

김준은 어떻게 말을 할 수 없으니 그냥 머리를 긁적이다가 들고 있는 무전기를 건네줬다.

“같이 온 애들 있는 곳에 놔 주시겠습니까? 금방 오겠지만, 혹시나 해서요.”

“….”

빙긋 웃으면서 무전기를 받고 조용히 인사하는 스님을 두고, 김준은 차에 올라탔다.

산 속부터 그 아래까지 이미 어둠이 깔린 상태에서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1주일, 그리고… 배미리….”

진짜 2~3km 남짓한 거리였고, 그 상황에서 김준이 즉흥적으로 움직인 행동이었다.

“뭐, 어차피 거기 미군부대 식료품점도 있으니까….”

야간 루팅이 누구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지역은 눈감고도 갈 수 있었다.

김준은 그저 차 안에서 안전하게 한 바퀴 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동을 걸었다.

묵언 수행중인 스님 한 분만이 유일한 목격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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