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171 안 가봤던 길.
* * *
김준은 밤에 도경과 인아를 부르고 지도를 펼쳤다.
“자 여기가 정토사. 절이고 여기서 옆으로 빠져서 고가차로로 올라가면 지난번에 갔던 그 타 지역으로 빠지는 길이지.”
“오~ 이렇게 보니까 딱 이해가 되네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 지도가 없이 종이책 지도로 보는 일대의 루팅 계획.
김준은 펜을 꺼내서 표시한 다음에 쭉 올라갔다.
그리고 여기서 또 이쪽으로 빠지면, 소사벌대가 나오고 이 위로 가면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야.
“아, 여기는 알아요! 전에 갔던 곳 맞죠? 중간에 무전기로 은지 언니가 불러서 돌아간 곳.”
“맞아, 거기.”
그 이야기가 나올 때, 라나가 슬며시 나와서 김준의 옆에 앉았다.
오자마자 김준의 옆에 부비대면서 고양이처럼 그릉거리다가 지도 위치를 보고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거기죠? 제가 처음 가서 콘돔이랑 비누랑 칫솔이랑 털은 곳.”
“어, 그 여관이 이쪽이고, 이 옆이 은지가 책 털었던 곳이야.”
“흐응, 그렇군요.”
“그리고 이 위로 쭉 올라가면 전에 그 트럭 행상 아저씨가 효모랑 엿기름 가져온 수제 맥주집. 딱 외진 곳에 있어.”
“흐음, 그럼 어디까지 가는 거죠?”
“일단은 1박 2일 잡아놓고서 도경이 이빨 고치고, 인아도 스케일링 한번 하고, 그 위로 올라가서 음식보다는 생활 도구들을 좀 찾아보자고.”
“네, 그렇게 하죠.”
김준은 오늘 하루 넉넉하게 채워놓은 음식들과 교환 물품들을 가지고 내일을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 듯 다른 아이들도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내일 집 안에서 뭐 할지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에 되어 도경과 인아가 각자의 장비를 챙기고, 준비를 마친 다음에 조용히 기다렸다.
덜컥
“자, 가자!”
“네, 오빠!”
김준 역시도 잔뜩 무장한 상태로 나왔고, 아침 일찍 나왔는데도 슬슬 더위가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차를 타고 나왔을 때, 김준은 조용히 조수석에 도경에게 말했다.
“도경아.”
“네?”
“에어컨 틀까?”
“…아, 네!”
아크릴 벽으로 인해서 운전석 외에는 전부 각종 버튼이 조수석에 있었고, 도경이 에어컨을 찾아서 틀자 시원한 공기가 나왔다.
“어제 세차했으니까 시원할 거야.”
“으으음~ 그렇네요.”
“인아야! 뒤에 에어컨 잘 들어오냐?”
“네~ 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액셀을 밟았다.
“일단 절은 가장 나중에 갈 거야.”
일찍 가서 치아 치료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그 상태에서 부은 볼을 가지고 바깥에 나가 루팅을 하고 차 안에서 잔다는 건 뭔가 말이 안 되니, 전부 돈 다음 돌아오는 길에 묵을 생각이었다.
“거기 나물이랑 국수 진짜 맛있어요.”
“다음에 올 때는 참마도 준다고 했는데.”
산뜻한 사찰음식을 기대하면서 군침이 도는 인아와 도경.
김준은 야간 순찰을 돌면서 아침에 잠드는 거 말고 자신도 그냥 똑같이 먹어볼까 생각을 했다.
정토사 골목을 지나서 소사벌대로 올라가는 길에 새로운 길목에서 편의점이 보였다.
“오빠, 저기!”
“그렇지, 한 번도 안 털어본 곳.”
메이저도 아니고, 진짜 처음 들어보는 영세한 크기의 편의점.
하지만 그래서 더 다양한 물건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앞에는 다가오는 좀비들이 있었다.
으어어 크어어어
크르르르르
어기적거리면서 다가오는 걷는 좀비들.
그 수는 대략 열 구 정도였다.
“도경이 석궁 챙겨! 정면에서 친다!”
“네, 오빠!”
“인아는 뒤에 살펴봐! 혹시라도 뒤에서 또 올 수 있어!”
“네, 지금 살… 오빠! 나왔어요!”
“!!!”
김준이 사이드미러로 확인할 때 골목 여기저기에서 서서히 기어나오는 좀비들을 보고 곧바로 창문을 올렸다.
“지랄 같은!”
김준은 바로 차를 돌리고서, 앞뒤를 살폈다.
‘어디로…?’
앞에 다가오는 좀비들은 십여 구, 하지만 전부 걷는 녀석들이었다.
반면 골목 여기저기에서 하나씩 다가오면서 부패되어 새카만 피부에 피를 뿜어대며 달려드는 뛰는 좀비들.
수는 네다섯 정도였다.
앞에는 걷는 좀비.
뒤에는 뛰는 좀비.
김준은 결심했다.
“인아야! 꽉 잡아!”
“어, 어엇! 꺄앗!?”
김준은 R기어로 돌리면서 전력으로 뒤로 물러났다.
캠핑카 뒷부분의 거대한 컨테이너가 코뿔소처럼 달려들며 달려드는 좀비들을 들이받아버렸다.
파각 콰과과광
드득 드드드드득 쩌어억
“읏, 끄으윽!?”
차 안이 거칠게 들썩이면서 안에 있던 인아는 침대위로 올라가 기둥을 붙잡고 몸이 들썩이는 것을 겨우 버텨냈다.
지금 바깥에는 좀비들을 들이받으면서 차바퀴로 깔아뭉개, 다시는 사람을 물지 못하게 뼈 마디 마디를 박살내고 있었다.
김준의 차가 계속 후진하고 있을 때, 인아는 뒷창문에 피가 쫙 튀면서 그 앞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걸 확인하고 크게 외쳤다.
쾅쾅쾅!!
“오빠! 오빠! 멈춰요!!!”
“!”
끼익
김준이 멈췄을 때, 후진해서 전봇대를 들이받을 뻔한 것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들이 받을 뻔 했어요!”
“하씨, 안 다쳤지? 후방 카메라 고장나서….”
사이드미러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김준이 대형사고 칠 뻔한 것을 겨우 인아 덕분에 막았고, 도경 역시 조수석에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렇게 뛰는 좀비 셋을 들이받아 교통사고로 처리한 다음, 남은 둘이 맹렬히 달려와 차를 두들겼다.
쿵 쿵
캬아악 캬아아악
피거품을 연신 뿜어내면서, 손으로 차 벽을 두들길 때, 도경이 움찔했고, 김준은 다시 기어를 변경하며 바로 차를 돌려 옆으로 들이받았다.
기기기긱 콰드드득
캬악 캬아아아악!!!
바닥에 들이받혀 깔린 좀비들이 발버둥쳤지만, 인간의 베이스인 이빨과 손톱으로 차 바퀴를 건드려봤자 기스도 안 났다.
김준은 나머지 두 좀비도 이리저리 깔아뭉개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 다음 옆을 살폈다.
“인아야! 거기 뭐 보야?”
“살피고 있어요!”
김준과 인아가 같은 시선에서 살펴보는 가운데, 아직까지도 서서히 걸어오는 좀비가 십수 미터 거리를 둔 채로 느릿느릿했다.
“도경아, 잡을 수 있겠어?”
“해 볼게요!”
반대편에서 유일하게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의 도경.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조용히 창문을 내리면서 석궁을 밖으로 내밀었다.
너트를 깎아 날카롭게 벼린 석궁 화살이 시위에 당겨져서 팽팽하게 있을 때, 도경은 가장 가까운 좀비를 타겟으로 잡고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퓨웅
세찬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면서 빠르게 날아간 석궁이 좀비 하나의 얼굴을 완전히 꿰뚫었다.
파각!!!
뺨으로 파고 들어가 뒷목까지 박힌 화살에 비틀거리던 좀비가 풀썩 주저앉아 행동이 서서히 줄어들었을 때, 도경은 그걸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로 다음 화살을 장전해서 겨누고 당겼다.
두 번째 화살 역시도 빠르게 날아가 좀비의 턱을 꿰뚫었다.
원래라면 이마를 뚫어야 했는데 움직여서 살짝 비껴 나가 맞춘 것이었다.
“침착하게! 허둥지둥할 필요 없어. 거리 충분해.”
김준은 아크릴 벽 너머로 도경을 차분하게 달랬고,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턱에 맞고도 움직이는 좀비를 향해 침착하게 이마를 노리고 발사했다.
파가각!!!
이번엔 확실하게 이마를 꿰뚫린 좀비가 뒤로 힘없이 넘어갔고, 남은 좀비들을 보면서 김준이 차를 돌리려고 했다.
그때 도경은 다급히 외쳤다.
“오빠!”
“왜?”
“아무래도… 새총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드르륵
대쉬보드를 열어서 새총을 챙긴 도경은 그 안에 있는 30mm 사이즈의 너트 여러 개를 손에 쥐고 호두처럼 달그락거리고는 바로 새총을 당겼다.
끼기기기기긱 빠캉!!!!
힘차게 당겨서 날아간 너트는 좀비 하나의 얼굴을 박살내고, 사방으로 치아와 피가 튀면서 쓰러트렸다.
“오케이! 계속!”
김준의 응원에 도경은 우월한 피지컬로 힘껏 새총을 당겨서 좀비들의 머리와 이빨을 산산조각내버렸다.
혼자서 다섯 마리 이상을 잡은 도경을 두고 김준은 대견하게 보다가 바로 총을 들었다.
슬슬 교대해주려고 했을 때, 도경은 내친김에 자신이 다 잡겠다고 선언하면서 연달아 좀비를 쓰러트렸다.
그렇게 1년 전만 해도 좀비를 발견하면 기겁하던 걸그룹 소녀는 능숙한 자세와 우월한 피지컬로 앉은 자리에서 새총으로 좀비들을 두 자릿수나 잡는 쾌거를 이뤘다.
“아으 손이야….”
“잘해줬어. 진짜 멋졌다. 도경아.”
새빨개진 손을 후후 불어댈 때, 김준의 칭찬에 얼굴까지도 발그레해진 도경.
수차례의 전투 이후로 차를 움직여서 편의점 앞에 도착한 김준.
그는 아래에서 올라와 사방에서 참을 수 없는 찐득한 시체 썩는 냄새에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도경과 인아 역시 에어컨을 켜는게 더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서 황급히 껐다.
칙 치익
뒤에서 인아가 캠핑카 안에 있는 도구중 페브리즈를 꺼내 사방에 뿌렸고, 도경 역시 대쉬보드에 있는 물건 중 잘 쓰지 않는 향수를 양 손목에 뿌리고 코 밑과 목 뒤에 바르면서 시체 냄새를 지워갔다.
김준 역시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클락션을 울릴 때 안에는 잠잠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서 김준이 먼저 내렸을 때, 사방이 썩은 피가 흘러내리면서 콘크리트 바닥을 적셨다.
김준은 뒷문을 두들겨서 인아에게 희석 락스 소화기를 받고는 주변에 세차게 뿌려대서 피와 시체 조각들을 씻겨내고 차도 한 번씩 바라봤다.
흰색의 캠핑카가 사정없이 좀비들을 들이받아 핏물이 가득 밴 것 역시 물을 뿌려서 대충 씻어내고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후우~”
내용물이 완전히 녹아버려 개미떼가 잔뜩 낀 아이스크림 냉장고, 곰팡이가 가득 슬은 즉석식품 코너.
김준은 그것들을 뒤로 한 채 빈 더블백을 들고 하나하나 담기 시작했다.
“도경이는 바깥쪽, 인아는 경계 서고, 내가 안쪽 담을게.”
“네!”
“좋아! 시작!”
김준은 빠르게 달려가 익숙하게 카운터에 있는 담배 박스들부터 챙겼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라이터 박스, 신나, 동전 박스 등을 챙겼고, 그 옆에 있는 상비약들을 챙겼다.
“소화제, 지사제, 감기약, 그리고… 콘돔.”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 다양한 사이즈별로 있는 콘돔까지 싸그리 더블백에 담고 음료수 코너에서 생수와 소주를 하나하나 챙겼다.
그 뒤로, 생필품 코너에 있는 가위, 칼, 족집게, 펜등을 챙기다가 속옷을 보고 피식 웃었다.
“도경아.”
“네?”
“이거 입을 수 있는거냐?”
작은 사이즈로 포장된 스포츠 브래지어와 팬티를 보고 달려온 도경은 프리사이즈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으면 좋죠. 다들 편하게 입을 수 있을걸요? 에밀리… 는 모르겠지만.”
도경의 말에 속옷들을 전부 집어넣고, 내친김에 옆에 있는 95사이즈의 티셔츠들과 남성용 속옷, 비누와 샴푸도 알차게 담았다.
김준이 생필품을 챙기는 동안 도경은 햄과 옥수수, 깻잎, 김, 김치 등의 통조림을 챙겼고, 유통기한이 2년은 넘는 제품을 보고서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 뒤로 케첩과 밀가루등을 볼 때 애매하게 1달 정도 남아있는 것을 보고 고민하던 도경은 일단 그것도 담기로 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설탕과 소금, 다시다 등의 각종 조미료를 마지막으로 더블백 3개분이 꽉 찬 순간, 김준은 그것들을 안에 넣고, 또 다시 빈 가방과 편의점 내의 봉투와 쇼핑 바구니를 이용해 남은 물건들을 꼭꼭 담으면서 첫 번째 루팅을 끝냈다.
“후우~ 가자.”
“오빠! 다 담아놨어요.”
인아가 캠핑카 안의 공간을 야무지게 사용하고, 남은 것들은 지난번 소고기를 담은 뒤 각종 차량용품을 담아놓은 캐리어 박스에 물건들을 밀고 거기에 채웠다.
루팅으로 인해 한결 든든해진 김준은 자리를 바꿔서 인아를 조수석에 앉히고, 안에 있는 물건들과 함께 도경이 캠핑카로 들어갔다.
“인아야, 정찰 잘 부탁할게.”
“네, 오빠.”
마리나, 에밀리, 도경이 전투력 쪽이라면 인아, 은지, 라나는 정찰 쪽.
특히 눈썰미가 좋고 상황 판단이 빠른 아이니 앞으로 비탈길을 통해 갈 때, 김준은 남은 길을 두고 말했다.
“여기로 가면 원룸단지하고 하천 하나 있어..”
“오~ 그렇군요.”
“도경이는 알 거야. 라나랑 같이 시장 지나 고물상 갈 때 넘어갔던 하천. 거기 끝이 여기야.”
“흐으음~”
뒤에 있던 도경도 바깥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원룸과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을 보면서 쭉 달렸다.
하지만 그때, 인아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
“왜 그래?”
“지금 저거 뭐에요? 사람인가?”
“음?”
김준은 물가 근처에 있는 움직임을 보고서 반사적으로 총을 집었다.
하지만, 인아가 말한대로… 일반적인 좀비의 움직임과는 달라보였다.
“저, 저것들 뭐야!?”
멀리서 봐도 확실히 보이는 움직임.
차를 하나 두고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두 그림자.
그리고 한쪽이 유독 아래로 내려가 하천 물을 뜨고, 다른 한 명은 서성이다가 주저앉는 모습이 좀비는 확실히 아니었다.
“저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인아의 물음에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클락션을 울려다.
빵 빵 빠아아아아아앙
김준이 힘껏 누른 소리에 두 그림자가 반응했다.
그리고는 멈칫하다가 서성이던 둘 중 한 명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인아랑 도경이는 문 꽉 잠그고 있어.”
“아, 네.”
“으….”
김준은 허리춤에 있는 두 자루의 권총을 가지고서 천천히 기다렸다.
의사로 위장한 강도, 절의 스님, 아기엄마, 시골부부, 술집 사장님, 폭주족 건달들, 시골 농부 일가.
그리고 또 다른 생존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지 철저히 대비해서 지켜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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