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165 그녀들의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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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그럭 쿵!
옥탑방의 회식이 끝나고 전부 치우는 자리가 되었을 때, 김준은 자신이 만든 의자를 들어올리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오늘의 회식은 모두에게 도움이 돼서 정말 진탕 먹고 마시는 자리여서인지 완전 가버린 애들도 많았다.
“흐으응 아~ 조금만 더 있지~ 이히히~”
“어우~ 에밀리 얘는 진짜 맨날 이렇게 꽐라가 돼?”
“아니야~ 나 괜차느아아”
가야가 취해서 버르적거리는 에밀리를 안고서 옥탑방 집으로 들어갔고, 다른 아이들도 취기에 하나둘씩 자러갔다.
“오빠, 미안해요. 너무 먹었나봐.”
“응, 알았으면 빨랑 들어가 자.”
“흐으으 네엥!”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다가 나니카를 데리고 같이 들어갔다.
“저도 도울게… 어어어어?!”
“야이! 썅!”
“언니!”
잔뜩 취한 배구소녀 아가씨는 테이블을 들고 내려가려다가 바닥에 주저 앉고 그대로 자빠졌다.
천만다행으로 테이블이 안 넘어가 혼자 자빠진 거지만 그걸 보다 못한 은지가 나와 도경을 일으키고 내려갔다.
“으이구!!! 뭘 끝까지 남겠다고 버텨?”
은지가 투덜거리면서 그녀를 데리고 가고, 김준 역시 오늘 만든 의자를 전부 창고에 담아두고 2층으로 갈 때, 갑자기 라나가 뒤따라욌다.
“오빠~”
“왜?”
“2차 먹어요?”
이 상황에서 남은애들끼리 2차로 술을 먹자는 말에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같이 2층으로 내려갔다.
오늘의 회식에서 그나마 정신줄을 잡고 있는 애들은 은지, 인아, 그리고 라나였다.
“은지야.”
“네~ 네~ 해장국 좀 끓일게요.”
은지는 이미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인아를 데리고 점심에 다들 잘 먹은 선지해장국 냄비를 가지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김준이 바 테이블에 앉으니 라나 역시도 조용히 나가서 창고에 있던 소주를 잔뜩 가지고 왔다.
“자~ 2차에요. 2차~”
제일 어린애가 간도 어린지 소주로 가져와 셋팅 할 때, 은지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선지국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뭐, 한 그릇씩 드세요.”
“저는 그만 가볼…읍?!”
인아가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은지가 붙잡았다.
“어디 가? 같이 앉아서 먹고 가.”
“아니 저… 언니….”
그동안 김준과의 술자리를 피하던 인아였는데, 다른 멤버도 아니고 은지가 붙잡고 있으니 마지못해 참가해서 선지국 말고 다른 안주도 꺼냈다.
“와, 시발! 존나 맛있어!”
그릇에 담긴 선지해장국을 먹고 욕설이 나올 정도로 감탄하는 김준.
그 옆에서 라나도 국물을 들이키면서 속을 풀었다.
“자~ 한 잔 받으세요.”
“아, 언니. 저는 조금만요.”
“응, 그래~”
인아것은 반만 따르고, 라나와 김준에게도 채워줬을 때 바로 잔을 바꿔서 그녀에게도 따라줬다.
소주 한 잔에 얼큰한 선지국을 먹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 김준이었다.
“진짜 뼈해장국이나 선지국 하나 시키고 소주 두세 병은 깠는데.”
“저도요. 옛날 생각나네요.”
은지는 소주를 비우더니 잔을 이리저리 돌리고는 옛날 이야기를 말했다.
“지방 행사 뛰고, 새벽돼서 숙소 가기 전에 휴게소 같은데서 국밥 먹곤 했거든요.”
“아, 맞아! 저는 감자탕이요. 매니저들이랑 같이 나눠먹고 그랬어요.”
은지의 말에 인아도 거들면서 그게 또 행사 다녀오고 먹는 야식이 좋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런 것도 못 먹었어요. 소속사가 스케줄 엄청 빡빡하게 잡아서, 차 안에서 대충 샌드위치에 우유 때우고 소화하기도 전에 행사장 가서 움직이고….”
“어우, 빡셌겠다.”
“한 번은 맨날 채소 샌드위치만 줘서, 진짜 눈물나더라고요. 배고프고 지쳐서 못하겠다고….”
“흐으음.”
“먹는 거가 제일 억울할 때 많지.”
라나는 불과 몇 년 전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못 하겠다고 주저앉으니까, 매니저가 가서 엽떡하고, 싸이버거 세트 사와서 먹으라고 하더군요. 하….”
스물 한 살 소녀가 어린 시절 일을 생각하면서 우울해진 모습에 김준은 말 없이 소주 잔을 채워줬다.
어쩌다 보니 이 자리는 다들 옛날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하는 토크쇼가 되었다.
“옛날에는 인아랑 라나랑 라이벌 아니었나?”
“아….”
“맞아요. 제가 봐도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서로를 보면서 머뭇거리던 라나와 인아를 두고서 은지가 설명해줬다.
“당시에 인아가 샤인이라는 예명으로 솔로 가수로 데뷔해서 엄청나게 떴잖아요? 국민여동생 소리도 듣고.”
“딱 1년 동안이었지만요.”
“에이~ 아니죠. 인아언니는 한번도 공백기가 없었잖아요.”
“있었어. 너 때문에….”
인아가 라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당시에 인아가 솔로 가수로 성공해서, 그때 라나도 데뷔하면서 둘이 라이벌 구도 장난 아니었죠.”
“그때 음방 1위 라나한테 뺐기고, 소속사에서 말했어요. 학교에서 연기 배워서 바로 배우로 가자고.”
“음~ 저는 그때 대학교 입시 할 필요 없이 그냥 아카데미에서 배우라고 했는데요. 로코 드라마 하나 각본 괜찮은거 받으면 바로 데뷔하자고.”
덕분에 당시 아이돌계는 인아와 라나로 인해서 많은 걸그룹 멤버들 보다는 소속사에서 잘 키운 싱글가수 하나가 엄청나게 수익을 안겨주는 효녀가 되었다.
“이제와서 말하는 건데요.”
“음?”
“저 원래 KJ엔터테이먼트 데뷔조 제안 받았었어요.”
“어머, 나니카네?”
“네, 아마 거기 갔으면 나니카 언니랑 같이 헥사코어에서 활동했을걸요?”
인아의 말에 라나도 슬며시 말했다.
“사실 저도… 소속사 계약 끝나면 크러쉬 뮤직 가려고 했는데.”
“거기가 엄청 메이저지. 도경이랑 마리가 다 그쪽이잖아?”
“나는 그냥 뮤비 보고, 음악 듣는게 전부였는데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김준은 아이돌들에게 TMI를 듣는 것 같아서 신기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는 사이 은지도 그동안의 연예계 짬밥이 있어서 하나하나 말해줬다.
“옛날에 가야 언니 그거 기억 나? 음악뱅크 무대 전에.”
“어~ 맞아요! 그 인사 사건이요?”
“그건 또 뭐야?”
김준의 물음에 당시에 있었던 인아가 대답했다.
“원래 음악방송 하기전에 대기실에서 선배들에게 인사하거든요. 근데… 음, 누구라고 말은 안하겠는데 각종 심부름을 시키는 언니가 있었어요.”
“흐으음….”
사소하지만, 타 소속사 후배들도 불러서 일 시키고는 했는데, 그거에 당한 애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에비앙 사건이 터진거지.”
“에비앙 사건?”
“걔는 에비앙 생수만 먹는다고, 바로 무대 밖에 있는 편의점 가서 사오라고 하더군요. 그때 당한 애가 나니카였는데, 그거 사들고 달려올 때 가야 언니가 그걸 본거에요.”
“오….”
“가야 언니가 그거 듣고 바로 대기실 가서 뒤집어 엎었대요. 뭐, 그 언니 성격상 그냥 말로만 타이른거겠지만.”
확실히 가야가 맏언니로 책임감은 굉장했다.
“그 언니 그리고서 도경 언니한테도 군기 잡으려고 했다가 한 방에 제압당했잖아요?”
“맞아! 그 뒤로 코디 갑질이랑 멤버 왕따시킨 거 폭로 나오고 탈퇴했지?”
“진짜 인성갑이었어. 그년….”
김준은 여기까지 들으니 검색 몇 번만 하면 대충 알 것 같은 인물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군에서 7년 넘게있었던 그에게 있어서는 어린 아이돌들끼리 서로 그런 짓을 했다는 게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참, 별 일이 다 있었네.”
“많았어요. 다들 가야 언니같이 서로 배려하고 친절하면 좋을텐데….”
“어우, 가야 언니 유명하죠.”
세 명이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가야에 대해 이야기하니, 김준은 흥미가 생겨서 귀를 기울였다.
“가야가 어떻게 유명한데?”
“그 언니 같은 착한 선배 없어요. 원래 연예계에서도 어지간해선 화도 안 냈는데….”
“어, 그래?”
그때 라나는 뭔가 생각난 듯 조용히 손을 들었다.
“김준 오빠, 그 이야기 몰랐죠?”
“뭐?”
“맨 처음에 그… 저희 이 집에 왔고 처음 견딜 때 말이에요.”
“엉.”
“겨우 죽 같은 거 먹고 바깥에 나가서 물건 파밍한다고 했는데,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그냥 온 거요.”
“….”
그때는 진짜 노하우도 없고, 오히려 옆에 대동하고 다니는 애들도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무식하게 들이받은 것이었고, 거기서 트라우마 안 생긴 게 용할 정도였다.
“그래도 다들 잘 견뎌줬지.”
“맞아요. 적응하니 이런 자리도 생기고요.”
“은지 너는 어떤데?”
“어후, 전… 그냥 견딘 거예요.”
“하긴, 네가 멘탈은 세지.”
그건 인정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미디어에 나온 이미지와 다르게 독기가 가득찬 눈으로 3개월 가량 냉전이었으니 말이다.
진짜 그때의 싸늘한 기운은 절대 못 잊을 거다.
“은지 언니… 옛날에 그걸로 별명도 있었…웁!?”
“나라야. 그런 건 말하는 게 아니야.”
인아가 라나의 입을 막아 제지했지만, 은지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대충 뭐라고 부르는지는 알 것 같은데, 듣고 싶네? 내 별명이 뭐야?”
“으븝 으….”
“아니에요. 언니, 안 들으셔도 돼요.”
인아가 막으려고 했지만, 그 옆에 있는 김준도 조용히 라나의 입을 막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으읏?!”
순간 자기 손이 잡히자 화들짝 놀라는 인아는 그 손을 떼었고, 라나는 은지를 보면서 그걸 말했다.
“얼음여왕.”
“…오!”
김준은 순간 그 이야기를 듣고서 뿜을 뻔했다.
“땋은 머리에… 스모키 눈화장에… 치렁치렁한 옷차림에… 차도녀 스타일… 맞네.”
“어….”
은지는 최근에 한 번 자른 뒤로 중단발로도 한 번 땋은 뒷머리를 한 번 찰랑이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말에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언니.”
“아니야, 뭔가 내 이미지가 그러긴 했지?”
지금의 은지 옷차림은 사이즈 두 단계는 더 큰 김준의 티셔츠를 입고서 헐거운 목에 어깨선과 그 뒤의 흉터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제는 개의치 않아 하면서 밝아진 은지의 모습.
그로 인해서 확실하게 외부 루팅과 내부 집단속을 이원화해서 정말 완벽한 파트너가 돼 줬다.
“흐으응~ 이런 이야기 나오니까 진짜 시간 잘 가긴 하네요.”
라나의 말에 김준이 시간을 봤을 때, 새벽까지 시간이 지난 것을 확인했다.
식은 선짓국을 은지가 가져가 데우고, 새 국을 추가로 퍼서 전해줬다.
냉장고에 있는 소주도 새로 꺼내서 마실 때, 김준은 다른 것에 대해 물었다.
“요새는 뭐 필요한 거 있으려나?”
“흐으음~ 음악 듣고 싶긴 하네요.”
“MP3 있잖아?”
“아니요. 그냥 뭐랄까… 악기?”
“악기?”
그러자 인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니카가 진짜 악기 마스터인데.”
“오, 그래?”
“피아노도 잘 치고, 드럼에다가, 통기타도 수준급으로 칠 걸요? 작곡 배워서 직접 싱글 앨범 내겠다는 이야기도 했었어요.”
언제나 조용하고 눈치보는 내성적인 아이가 알고 보니 음악의 신이었나보다.
“흐으음, 나중에라도 어디 악기 구할 수 있으면 한번 가져와야겠네.”
어느 정도의 소음은 있겠지만, 클래식 기타나 피아노 정도라면 한 번 연주하라고 하면서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새벽 3시를 가리켰다.
“휴우우 저는 안되겠어요. 이만 일어날게요. 힉!”
“어우, 딸꾹질. 물 끓여 마셔.”
“아니요, 괜찮… 힉!”
은지가 대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였고, 인아는 연신 딸꾹질을 하면서 코를 틀어막았다.
데운 보리차를 인아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조금씩 마시면서 속을 달랬고, 욕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들어갔다.
“흐음, 은지는?”
“저도 자야죠. 피곤해요.”
“….”
뭔가 신호는 보내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 피곤하다는 제스처를 보내면서 다음 기회를 노리라는 은지의 미소였다.
분명 몇 번이나 섹스하긴 했어도, 본인이 원할때만 불같이 나누고 그 뒤로는 아무리 김준이 대쉬해도 그냥 마이웨이로 돌아가는 은지.
그래도 갈 때 모든 걸 다 치웠을 때, 조용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음?”
“난 아직 안 피곤한데?”
“…?!”
라나의 말에 김준은 나란히 손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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