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164 알차게 써야지.
* * *
김준은 오랜만에 자기 집 안방 침대에서 푹 쉰 다음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으으으아아! 잘 잤다.”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풀면서 배를 긁적이며 나온 김준은 아침부터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미소를 지었다.
“아, 오빠! 일어나셨어요?”
“어제 고기 재워놓은 거 아침에 구울 거에요.”
인아와 은지가 아침 일찍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얇게 썰은 고기를 은지가 하루 동안 양념을 만들어 재워놨는데, 그걸 프라이팬에 넣고 볶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인아가 맑은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국자로 살짝 펐다.
“간 한 번 봐 주실래요?”
“어디, 후르릅.”
한 숫갈 먹어보니 맑은 국물맛이 인상적이었다.
“오~ 좋아. 고기 안 넣고 이렇게 먹는 게 더 낫다.”
“금방 준비할게요.”
간장 불고기가 구워질 때, 그 냄새에 깨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고기~ 소고기~”
“으음~ 불고기다!”
도경이나 라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불고기 냄새에 바로 씻고서 상을 펴고 아침상 준비를 했다.
3층에 있는 아이들도 하나둘씩 내려오고 오늘은 불고기가 산더미처럼 푸짐하게 쌓인 모습이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자 먹자!”
김준의 한 마디에 곧바로 16개의 젓가락이 사정없이 식탁 위를 오갔고, 마치 무협지의 초식이 오가는 것처럼 여기저기 부딪혔다.
“아, 쫌! 따로 퍼먹으라고!”
“젓가락으로 휘휘 젓지 마!”
“난 당근이랑 양파 섞인거 싫어!”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은지와 가야가 바로 진압했다.
“자~ 자~ 그만, 어차피 프라이팬에 고기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들 먹고!”
“그래, 니들 이렇게 투닥거리지 않아도 냉장고에 고기 쌓였잖아?”
이렇게 보면 완전 애들이었다.
하긴 많아봤자 스물 일곱인 애들인데, 대다수를 집 안에서만 보내다가 1년 만에 보는 소고기를 보고 눈이 뒤집히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애들을 흐뭇하게 보던 김준이었다.
그때 은지가 조용히 밥을 먹다 말했다.
“오늘은 하루종일 고기 손질로 바쁠 것 같아요.”
“아, 그렇지. 특히 곱창이랑, 양지, 선지 이런건 진짜 손질 잘 해야 돼.”
“인아랑 같이 만들어 볼게요. 해장국 만들려고 하는데 괜찮으시죠?”
“난 다 잘 먹어.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소고기 구워서 회식하자.”
“안에서요? 흐으음.”
김준은 은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손뼉을 쳤다.
“얘들아? 잠깐 주목!”
“??”
열심히 불고기를 먹던 아이들은 김준의 부름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간장 양념이 가득 묻은 에밀리, 잔뜩 집어서 고기랑 당근이랑 파를 골라내고 있는 도경, 젓가락이 안되니 포크로 찝어먹는 마리와 나라나, 규동처럼 밥 위에 얹어먹는 나니카.
모두가 한 곳으로 몰렸을 때, 김준은 오늘 계획을 말했다.
“소고기 회식할건데, 밖에서 한 번 먹어보는거 어떨까?”
“밖에서요?”
“저녁에 말이야. 테이블 세팅하고, 부루스타 바깥에 꺼내서 옥탑방 마당에서 먹어보자.”
“어머, 좋아요!”
“진짜! 완전 대박이겠다.”
“안심 구워주는거죠?”
옥탑방에서 도란도란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는 다는 말에 모두들 설레 했다.
그리고 은지도 가야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리더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오늘 곱 청소하고, 대창이랑 천엽 다 씻어야 하거든? 선지국 끓일거니까 요리하는 애들 나누고, 오늘 준이 오빠가 회식 자리 만들 때, 만드는 거 돕기로요.”
“어! 그래, 그러자.”
이렇게 회식과 함께 작업 모드를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목공을 할 때 돕겠다고 나선 애들은 라나와 도경, 에밀리였고, 나머지는 내장 손질에 며칠 먹을 양평해장국 스타일로 요리조가 나온다.
***
“오빠 세팅 다 했어요.”
“오케이~”
이제는 작업에 익숙해서 바닥에 천을 깔고, 톱이랑 그라인더를 꽃고 공구통을 나열한 아이들이었다.
특히 에밀리는 그라인더가지고 장난 치면서 맥가이버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거 하지 말라니까.”
“응, 코드 안 꽂았어. 슉 슈슉”
김준은 에밀리 손에서 그라인더를 뺏어내고는 가져온 나무를 가지고 하나하나 썰어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사인펜으로 표시한 곳을 나무로 하나하나 썰어내고, 그것을 건네주자 라나랑 에밀 리가 사포를 사지고 천천히 갈아댔다.
다 썰은 나무를 가지고 높이를 맞춘 김준은 도경을 불러서 망치를 건네줬다.
“자, 한 번 해봐.”
“잠깐만요. 이걸 이렇게 대고….”
딱 딱
“앗! 죄송해요!”
“이렇게 두들기면 못 삐져나온다니까….”
망치질을 하다가 나무 옆쪽으로 못 끝이 튀어나오자 바로 뽑아내고는 다시 맞춰보라고 못을 잡았다.
“자, 천천히.”
“으, 으으으….”
“절~ 대 내 손가락 안 다치니까 걱정하지마!”
아예 손으로 못을 잡아 고정을 시켜놓고서 망치로 두들기라고 하자 도경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망치를 대고 두들겼다.
딱 딱
“더 세게!”
딱
김준의 손가락 마디 하나 수준으로 들어가자 남은 걸 박아넣으라고 대 줬고, 겨우 못질 하나 마쳤다.
“준~ 이거 사포 다 끝냈어.”
“여기다 놔.”
김준은 에밀리와 라나가 가져온 사포질 한 목재에다가 못질을 할 곳을 사인펜으로 ‘x’자를 그리고 도경에게 건네줬다.
전기 공사에 이어 목수질과 못질을 배우게 된 도경은 옆에서 김준의 서포트를 받으면서 겨우 나무 의자 하나를 만들었다.
“으으음. 나쁘지 않아.”
김준은 만든 의자를 세워놓고 자신이 한 번 앉아봤다.
그리고 몸을 흔들어봤을 때, 덜그럭거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못질 때문에 어디 망가진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라나야.”
“네, 오빠~”
“이거 가져가서 니스칠 하자.”
“네~”
“마스크랑 헤드캡 꼭 쓰고!”
“네~”
그래도 여기서 일머리가 좋은게 라나였다.
일단 시키면, 옆에서 뭐 하는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얼추 따라는 해 보고 그러면서 김준이 틀린 것을 지적하며 가르쳐 주면 금방 익혔다.
다만 중노동에 대한 일머리가 있어도 몸이 안 따라줘서 직접 하는거 보다는 역시 보조가 어울리지만 말이다.
미리 썰어놓은 나무를 가지고 못질하고, 조립하고, 니스칠까지 해서 말린 다음에 다섯 개 정도를 만들었다.
창고에 접이식 의자랑 테이블도 있으니 이걸 가지고 세팅을 하는데는 문제 없었다.
“자, 가지고 올라가자.”
“네~”
“예스~”
각자가 하나씩 만든 의자를 가지고 올라갔고, 옥탑방에는 인아가 화분을 치우고 있었다.
“아, 오빠!”
“그거 다 치운거야?”
“네, 그리고 이거요.”
갓 자란 풋고추와 깻잎 화분을 보여준 인아는 그것을 가지고 의자 옆에 놨다.
“이거를요. 고기굽고 옆에서 바로 따서 먹을 수 있어요.”
“안 씻어도 되나?”
에밀리의 물음에는 김준이 답해줬다.
“뭔 걱정이야? 지금 여기에 미세먼지가 있냐, 아니면 인아가 농약을 쳤냐?”
“흐으음~”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어서 에밀리가 수긍했다.
“아래는 어때?”
“핏물 쭉 빼내고 은지 언니가 국 끓이고 있어요. 선지국 다들 좋아하시려나?”
“으~ 블랙 푸딩.”
다른 애들은 몰라도 에밀리는 그 말에 질색했지만, 그 모습에 김준은 웃음이 나왔다.
“선지국 안 먹어봤어?”
“먹어는 봤지! 근데 난 그 흐물거리는 피 수프 별로야.”
“언제는 고기는 핏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살짝만 익힌 게 좋냐며?”
“어….”
김준은 자기모순에 빠져 혼란이 온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한 번 먹으러 가 보자고 내려갔다.
그리고 에밀리는 그 날 두 그릇 먹고 이따가 회식할 때 기본 반찬으로 세팅하자고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
딱 따악
“우와~”
지지직 띵 띵띵… 띵!
초크다마가 채워진 전등을 개조해 벽에 설치했고, 라이타를 켜서 여기저기에 유리컵 안에 캔들을 피우자 어둠이 깔린 바깥에 빛이 들어왔다.
“분위기 좋다….”
“난 아직도 적응 안 돼.”
옥탑방 마당에서 불을 켜고 있을 때, 다른 곳을 둘러보자 진짜 아무것도 없는 어둠에 소름이 돋는 아이도 있었다.
마치 모두가 사라지고, 자신들만 남은 것 같은 적막감이었다.
치이이이익
“와아아아아!!!”
가장 먼저 굽는건 부채살과 목심이었다.
새빨간 소고기가 핏물과 같이 구워질 때 자글자글 거품이 끓어올랐고, 인아가 재배하는 양송이 버섯을 썰어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고기는 잘 익고, 마리와 나니카가 가서 구해온 휴게소표 전통주 소곡주도 따서 냄새를 맡자 증류소주 향이 확 올라왔다.
“자~ 한잔씩들 받고.”
“네~ 네~”
“향 좋다.”
가장 먼저 술을 받은 에밀리랑 마리가 한모금 쭉 들이켜봤고, 다른 아이들도 어울리면서 어둠 속에서 웃으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1년만에 여기까지 왔어.”
“그러게? 이제 다음은 회라도 한 접시 뜰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통조림 하나로 싸우고, 텃밭 가꿔서 깻잎이랑 파, 고추 재배해서 풀때기로 강제 채식주의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옥탑방의 로망인 고기굽는 회식까지 왔다.
김준은 조용히 술잔을 비우면서 자신이 아까 만든 의자를 기울였다.
튼튼한 제품이어서 잘 견디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가위랑 집게를 들고 음식 만드는데 분주하던 은지가 가위를 인아에게 넘기고 옆에 앉았다.
“후우”
“고생이네.”
“진짜 수고하셨어요. 당분간은 쉬셔도 될 거 같아요.”
“….”
처음 타 지역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밤에 와서 불같은 하룻밤을 보낸 뒤로 돌아왔을 때, 다시 어깨에 슬며시 기대는 은지.
김준은 그녀를 토닥이면서 지금의 분위기를 즐겼고, 너나할 것 없이 깔깔대며 웃음꽃이 피워질 때, 당분간은 우울 바이러스 없이 잘 진행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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