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60 생존자입니까?
* * *
부우웅 우우웅
소가 있는 시골집으로 향할 때, 김준은 그 주변을 보며 일부러 비포장도로 길을 거칠게 달리면서 소리를 알렸다.
“세상에, 무슨 소가 저렇게 많아?”
얼룩소, 황소가 다양하게 있었고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김준 일행의 차량을 발견해도 그저 멀뚱멀뚱 바라봤다.
소 뿐만이 아니었다.
“오빠, 저기 집 위에요.”
집 위에 수탉 한 마리가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걸 보고, 김준은 금광을 찾은 느낌이었다.
“전부 버려진거면 진짜 대박인데?”
“어, 저기!”
그 순간 인기척이 울렸고, 김준이 긴장한 얼굴로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체격이 건장한 남성이었다.
나이는 한 40대 초반 정도 돼 보였고, 날카로운 쇠스랑을 들고 겨누는 모습에 김준은 조용히 손을 뻗어 흔들었다.
빵 빵
“안녕하십니까? 생존자 맞으시죠?”
“씨발! 뭐야? 당신들 어디에서 왔어?”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잔뜩 경계하는 남성을 보고서 김준은 느긋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모든게 다 경계할 상황이었고, 저런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투였다.
“빨랑 말해! 어디서 왔냐니까?”
“이리저리 다니다 여기까지 왔어요. 안에 몇 명이나 있어요?”
“그걸 왜 물어?”
“여기도 세 명 정도 있는데 필요한 물건 있으면 서로 공유 좀 합시다.”
김준이 넉살좋게 말할 때, 그 뒤에서 따로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아빠! 아빠!”
한 67살쯤 되 보이는 내복차림의 아이와 황급히 달려온 노부인이 있었다.
“뭐야? 세상에… 우리 말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어?”
“어머니! 빨리 들어가세요. 이 놈들 뭔 짓 할지는 몰라요.”
“거 무슨 의심을 그렇게.”
김준은 가지고 있던 엽총의 총알을 빼고는 창 밖으로 던졌다.
어차피 저거 없어도 품 안에 리볼버 두 자루에 공기권총까지 있으니 상대를 안심시키는데는 문제 없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파악한 노부인은 바로 중재를 했다.
“자~ 자~ 사람들끼리 이러지 맙시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어머니!”
“아범도 됐다. 빨리 민규 데리고 들어가 있어.”
그래도 중년 남성의 어머니라고 하는 노부인 덕분에 경계는 어느 정도 풀어졌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밥은 드셨수?”
“아직입니다.”
“나오시우.”
김준은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땅에 떨어진 엽총을 주워다가 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니카와 마리도 천천히 나오자 노부인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아이구, 혼자가 아니셨구만. 다 큰 처녀들이 둘이나 있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마리와 나니카는 조용히 인사를 했고, 노부인은 전부 들어오라면서 직접 안내했다.
“어머, 사람이….”
“인사 드립니다. 김준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에는 대가족이 있었다.
40대 남성에 그 부인,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 갈 나이는 안 된 아들에 할머니까지 있었다.
“영감이 지금 아파서 그러니 인사만 하시우.”
“어머, 어디가 아프신가요?”
마리의 물음에 중년 남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리를 다쳤는데, 그건 왜 물어요?”
“저기… 저 의사거든요?”
“!?”
마리가 의사라고 소개하자 순간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바라봤다.
“의사라고? 아가씨가?”
“네, 전공은 없는 일반의지만….”
“어머니! 잠깐만! 아버지 다리 고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그래! 의사선생님이 좀 도와줘요. 우리 남편 다리 잘라야 될지도 몰라요.”
얼마나 심각하길래 다리를 잘라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말이 가족들한테 나왔다.
김준은 마리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일단 한 번 보겠다면서 안 방으로 들어갔다.
덜컥
“웁!”
안에 들어오자 마자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 안에는 침대에 누운채 얼굴이 누렇게 뜬 노인이 있었다.
“쿨럭, 쿨럭! 누구…시오?”
“지나가는 생존자요.”
“사람이… 우리 말고 더 있었구먼.”
마리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상황을 보기 위해 그 노인에게 다가갔고, 옆에 있던 노부인이 말했다.
“영주 아버지, 의사래요.”
“의사… 그러면 이거 어떻게 나을수가 있겠나?”
이불을 걷고 천으로 칭칭 묶은 오른 다리를 보여주는 순간 마리의 얼굴이 한층 더 찡그러졌다.
그리고 안에 있는 것을 풀자 나온 것은 훨씬 심각했다.
“우욱!?”
“이거 계속 썩어가요.”
생각보다 심각한 상처에 김준도 인상을 찌푸렸다.
정강이에 피부가 벗겨지고, 피고름이 뚝뚝 떨어졌다.
확실한건 물린 상처는 아니어서 좀 더 살펴볼 수는 있었다.
“어, 어쩌다 이러신거예요?”
“소한테 들이받혔어요. 몇 번 구르고 겨우 살아났는데, 갈빗대는 피 기침 몇 번 하다가 나은거 같은데, 다리는….”
“소독 같은거 한거 없어요?”
“처음에는 집에 있는 소금물로 씻긴다음에 소주를….”
“어머! 그러시면 안 돼요! 상처에 소주 부으면 더 악화돼요!”
보통 영화 같은데 많이 나오지만, 알코올이라고 상처에 소주를 뿌리는 게 있었지만, 그건 엄청나게 위험한 행동이었다.
“술로 상처 씻는건 도수 높은 보드카… 그것도 진짜 급할 때 쓰는거죠. 게다가 살균도 안 되고 늘어붙어서 덧나요!”
“1주일동안 계속 소주 발랐는데….”
마리는 그 상황에서 바로 나니카를 불렀다.
“나니카, 가서 가방에 있는 의료상자 가져와. 여기서 바로 상처 치료할게요.”
“네, 언니!”
나니카가 후다닥 달려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물었다.
“나니카? 일본 사람이에요?”
“아, 네. 어쩌다 보니 데리고 있죠.”
잠시 후 나니카가 구급상자를 가져왔을 때, 마리는 일단 에탄올과 아이오딘, 그리고 과산화수소를 꺼냈다.
“지금부터 상처 씻을게요! 아플수 있어요.”
“그냥 하쇼….”
마리가 치료를 시작하고, 옆에서 나니카가 보조를 맡았다.
김준은 지켜보다 조용히 나왔고, 그 앞에서 똘망똘망하게 생긴 아이가 김준에게 매달렸다.
“아저씨 어디에서 오셨어요?”
“우리집에서 왔지.”
“어, 사는 집이요.”
“소사벌.”
“어머, 거기서 여기까지 오신 거에요?”
아이 엄마가 깜짝 놀라 물을 때, 김준은 품 안에서 MRE 먹다가 남긴 사탕과 과자를 건네줬다.
“와! 초콜렛!”
“민규야. 감사합니다. 해야지!”
“감사합니다.”
김준은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푸른 풀밭에 자유롭게 노니는 소와 닭을 보고 있자니 진짜 어디 대관령 목장에 온 느낌이었다.
“저기….”
“네?”
“담배 한 대 주시겠습니까?”
“여기요.”
김준이 한 대 건네자 그는 바로 불을 붙이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미안했소. 우리 식구들 지키는데, 누가 와서….”
“아닙니다. 서로 경계할 수도 있는거죠.”
“이영주라고 합니다.”
“김준이에요.”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이 집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원래는 이 동네에도 100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고, 소규모로 젖소와 닭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좀비 사태가 터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고… 겨우 살아남은 영주 일가는 그 참극 속에서 좀비들을 몰아내고 겨우 이곳에서 버티고 있다고 한다.
“원래 저기 황소들은 옆집 거였어요. 축사 열어버리고 그냥 풀어놨죠.”
“좀비가 안 뜯어먹던가요?”
“모르겠수. 한 마리 잡아먹어봤는데, 우리가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어우~ 소를 잡아먹는다라….”
그때 영주는 피식 웃으면서 소 한 마리를 가리켰다.
“아까 보니까, 총을 가진 것 같은데 한 마리 잡아가겠소?”
“네? 정말 됩니까?”
“다른 건 몰라도 저기 저 놈. 뿔 달린 얼룩소 있죠? 저게 우리 아버지 들이받은 놈이에요.”
“아….”
아버지를 들이받아 중상을 입게 한 저 소 녀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 먹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영주의 말에 김준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시는데 전기나 물은 쓰십니까?”
“혼다 발전기가 있는데, 중요할때만 써요. 조명은 후레쉬 매달아다 건전지 떨어지면 쓰고… 물은 저수지가 있어서 끌어다 쓰고 있죠.”
“냉장고도 없는데, 보관은요?”
영주는 그러자 집 한 곳에 있는 합판을 올렸다.
그러자 안에는 거대한 토굴이 있었다.
“오….”
“이거 파다가 안에 장하고, 염장고기같은거 넣어놨소. 야채 필요하면 좀 드릴까?”
“저거 소 한 마리면 됩니다. 이쪽에서 필요한거는요?”
“일단 아버지만 나으시면 되고… 약하고, 쌀이 좀 필요해요. 무기도 있으면 좋고.”
“새총이랑 전기충격기라도 드려요?”
“오, 그거면 땡큐지.”
어차피 전기충격기야 많이 있고, 새총은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바깥에서 물물 교환을 하고 있을 때, 안에서 노부인이 나와 김준을 불렀다.
“어여들 들어와요. 차린 건 없지만한 술 떠야지.”
***
“후우~”
마리는 새로 상처를 소독하고, 위생붕대로 감은 다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고름 째내고, 썩은 부분만 긁어내서 최대한 치료해 봤어요. 약 놓을테니까 매일 발라주시면 돼요.”
“아이구, 고마워라.”
“감사합니다.”
영주 아저씨 내외와 아이까지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할머니도 마리의 손을 잡았다.
“의사 처녀. 고마워요. 그리고 옆에 그 일본 아가씨도 수고했어요.”
“아, 아니에요.”
이곳의 식사는 상당히 푸짐했다.
일단 커다란 냄비에 담긴 소고기 무국이 인상적이었고, 그 옆으로 통조림이 아닌 직접 담근 장조림, 스튜 식으로 끓인 고기죽, 고사리에 쑥 무침까지 아주 다채로웠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으니…
“미안해요. 우리가 쌀이나 밀가루가 없어서.”
“옥수수죽….”
옥수수랑 콩을 넣고 대충 간을 맞춰 끓인 것을 보면서 김준도 이건 처음본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일단 먹읍시다.”
식사를 하는 중에 영주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 이 사람들 총 가져왔으니까 그 씨벌 것 그냥 잡아버립시다.”
“아이고, 소를 잡는다고? 위험하지 않아?”
“벌써 새끼 친 것들도 있던데 그거 한 마리 없어도 수소는 많아요. 나 그놈 볼때마다 아부지 그 꼴로 만든거 속이 다 끓었어.”
“손질은… 어떻게 될까요?”
부인의 물음에 그는 자신만만했다.
“공방에 도끼랑 칼 벼려놓은거 많아. 이 사람 보니까 힘 좀 쓰게 생겼는데 소머리는 줘야겠어.”
“아하하하….”
김준과 마리, 나니카는 대접받은 음식을 먹은 뒤로 바로 물물교환을 위해 차 안에서 물건을 꺼냈다.
공교롭게도 출발 때 미리 챙겨놓은 것들과 편의점에서 턴 탄수화물이 가득했다.
“이것들 받으세요.”
“어이구, 세상에! 밀가루랑 쌀이 이렇게 많아요?”
“오다가 가게 하나 털었죠 싹 비워있더군요.”
몇 달만에 보는지 모를 밀가루와 쌀을 보자 할머니와 아이 엄마가 애들 먹일 수 있을 거 생겼다면서 안도했고, 거기에 도정 안된 쌀도 주니 흡족해하는 영주였다.
“이렇게 받았는데, 우리도 뭐 준비해야지. 에미야! 가서 말린 고사리하고, 쑥 좀 가져와.”
“네, 어머니!”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일 때, 김준은 아까 챙긴 엽총을 가지고 그 소를 잡으러 갔다.
“여기 귀때기에 노란 표찰 붙은 놈인데, 뿔이 특이하게 생긴 놈이거든요?”
“아, 저건가 보네.”
김준이 가리키자 아까 그 놈이 맞다면서 빨리 잡으라고 재촉했다.
아버지의 원수라고 하더니 사람 들이받고도 태연하게 그들을 보고 씩씩거리는게, 로데오에 나오는 놈 같았다.
철컥
김준은 머리를 노리고 멧돼지탄이 장전된 엽총 펌프를 당겼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당분간은 신선한 소고기 파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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