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159 로드무비(4)
* * *
김준은 불을 당긴 이후로 수많은 좀비들이 나오는 것을 하나하나 잡았다.
정말 단순한 게, 김준이 불을 지르자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해서 불나방처럼 하나둘씩 다가오는 것을 머리에 겨누고 바로 쏘면 끝이었다.
띵
장거리에서 산탄보다는 공기총으로 잡아나가면서 비틀거릴때는 권총을 준비하면서 침착하게 한 발 더 갈겼다.
“후우~”
“오빠, 라면이요.”
마리가 쟁반에 컵라면하고 단무지, 김치를 해서 만화방 스타일로 가져오자 김준은 잠시 총을 내려놓고서 컵라면을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캠핑카 바깥에 나와서 늦은 밤 야식을 먹고 있는 김준과 아이돌 두 명.
방금 전까지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놈들을 숱하게 총으로 쏴죽인다음 먹는데, 아무도 말이 없었다.
“치울게요.”
“음.”
김준이 빈 그릇을 주자 조용히 치우는 마리와 나니카.
그리고 다시 사냥의 시간이 됐다.
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어 좀비를 잡는데 벌써 열 마리는 넘은 것 같았다.
거기에 맞춰 불길도 꺼질만 하면 쓰러진 좀비가 불씨가 되어서 맹렬하게 타올랐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시간을 보낸 뒤로 불길이 점점 사라질 때 조용히 야투경을 꺼냈다.
이제부터는 밤의 싸움이었다.
이미 차 근처로 체인과 줄을 잔뜩 깔아서 좀비가 이리로 접근도 못하게 만든 상황에서 김준은 밤새 보초를 섰다.
“오빠, 도울게요.”
마리가 나섰을 때, 김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됐어. 이따 새벽에 깨울테니까 지금 먼저 자 둬.”
“그러면 교대할게요.”
“그러니까 먼저 자. 나니카도.”
김준의 손이 엉덩이로 가서 토닥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조용히 들어가서 이불을 폈다.
그녀들이 일찍 잠들었을 때, 김준은 자정이 되가는 시간까지 홀로 보초를 섰다.
“생존자가 더 있으려나?”
일단 휴게소에서 안에 있는 좀비들을 대충 잡아낸 다음에 혹시라도 안에 숨어있던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꽝인 것 같았다.
대대적인 탐색을 위해서 준비한 것인데, 아무래도 첫 날은 이렇게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새벽까지 보초를 서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준.
스마트폰도 하다못해 mp3 플레이어 하나 없는 상황에서 그냥 멀찌감치 휴게소를 지키는게 옛날 초병이 생각났다.
그렇게 홀로 다니다가 간간이 바깥에서 오줌을 갈기거나, 담배 몇 대를 태우면서 지루한 하루를 보낼때였다.
똑똑
“!?”
김준은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문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조심스럽게 안에서 나니카가 나왔다.
“깼어?”
“으으음, 네.”
그녀는 쟁반에 음식을 담아 가져왔는데, 끓인 쌀국수였다.
“햐~”
“같이 먹어요.”
밤샘 초병에 전자기기 하나 없는 상태에서 야식으로 컵라면 쌀국수를 끓여먹으니 자신이 진짜 현역때로 돌아온 것 같은 김준이었다.
그래도 끓는 물에 푹 삶은 멸치 쌀국수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고, 다 먹은 다음애 식후 끽연을 즐겼다.
치익
김준은 한 모금 빤 다음에 나니카의 입에 물려줬고, 그녀도 뻐끔거리면서 물었다.
“아예 한 갑 줄까?”
“아, 아니에요.”
“애도 아니고, 난 담배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 아니야.”
8명 중에 유일하게 흡연자였는데, 딱히 다른 애들도 그거가지고 뭐라고 하는 애는 없다.
“그래도 조용하고 자유롭다~ 자유로와~”
“네~”
나니카가 슬며시 김준의 어깨에 기댔다.
김준은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점점 등으로 손이 갔다.
언제나 그랬다.
머리를 쓰다듬는 건 자연스러웠고, 등을 만지거나, 엉덩이를 토닥이고, 배를 주물럭거리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눈 맞아서 섹스 각이 보이면 강아지나 갓난아기처럼 번쩍 들어올려서 품에 안고 들어가 침대로 직행하는 상남자스러운 짓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걸 추행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은 없었고, 오히려 그런 스킨십 속에서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계속 이렇게 계시는데, 안피곤해요?”
“한 두 번도 아닌데 뭐….”
자다가 깬 나니카는 조용히 김준의 옆에 있었다.
“노래라도 하나 불러 줘.”
“네?”
“잔잔한 걸로….”
걸그룹 소녀에게 한 제안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언제나 기다려왔어~ 너 역시 나를 기다렸니~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바로~♪]
“아, 이거…”
그녀의 걸그룹 헥사코어의 싱글곡 [다시 시작해!]의 곡이었다.
그때는 순수함을 컨셉으로 한 소녀들의 멜로디가 정감 가는 노래였는데, 어쿠스틱스럽게 부르니까 뭔가 처량하면서도 절절했다.
김준은 mp3 플레이어는 없어도, 원곡 가수가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흥얼거렸고, 노래가 끝났을 때 박수를 쳐줬다.
“오랜만에 들으니 좋네.”
“아, 감사합니다.”
“근데, 그거 컨셉은 좀 그랬어.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는 뮤비였던가?”
“그때 작사가 언니가 실제로 헤어진 남친하고 재결합하고 삘받아 만들었다고 해요. 사장님이 말해줬어요.”
“흐음.”
“지금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한 곡 더?”
“으음~ 네.”
그렇게 밤새 졸음이 오다가 나니카가 불러주는 노래에 기운을 낸 김준은 새벽 해가 뜰 때,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지듯 뻗었을 때, 황급히 일어난 마리였지만, 나갈 필요 없이 그냥 안에 있으라면서 차 안에 있던 휴대용 미니 DVD 플레이어를 넘겨줬다.
***
“오빠! 오빠!”
“으으음….”
김준은 자신을 흔들어깨우는 손길에 바로 눈을 떴고, 마리와 나니카를 보고는 바로 일어났다.
“아으 몇 시간이나 잤지?”
“다섯 시간 정도요. 점심 드시라고요.”
“어, 그래. MRE꺼내.”
김준은 오늘의 첫 끼로 미군 전투식량을 준비했고, 발열팩에 물을 붓자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끓는 것을 신기해하는 나니카였다.
“우와~ 진짜 이거 원리가 뭐에요?”
“마그네슘하고, 물이 충돌해서 생기는 발열 원리야.”
“오오~”
마리의 설명을 들은 나니카는 고개를 끄덕였고, 보글보글 끓던 발열팩 안으로 잘 익은 용기를 뜯었다.
안에 있는 내용물은 케찹콩, 크래커, 햄, 미트 볼 등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줘도 안 먹는 다는 맛대가리 없는 전투식량이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진짜 엄청나게 중요한 물자였다.
최대 5년까지도 보관할 수 있으면서, 영양분은 충분했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거 먹고, 밖에 나가볼 거야.”
“아, 준비할게요.”
“그… 휴게소 안에 들어가는 건가요?”
“그렇지.”
김준은 플라스틱 수저로 안에 있는 미트볼을 먹고는 빠른 식사 이후로 그녀들이 정리할 때 장비를 채웠다.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세 명이 풀 무장 한 상태로 나왔고, 김준은 어제 채워둔 줄을 하나하나 풀면서 같이 나왔다.
어제 불을 붙인 곳은 바닥에 그을음이 가득한채로, 군데군데 타다 남은 뼛조각이 보였다.
저게 사람의 뼈지만 마리나 나니카 모두 인상만 조금 찌푸릴 뿐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일단 바깥에는 더 이상 없는 것 같고, 한 번 둘러보자.”
김준이 앞장서고 두 명의 소녀들은 근처에 있는 가게부터 살폈다.
동전 넣고 돌리는 장난감들이 몇 개 보였는데, 깨부숴서 꺼낼까 싶었지만 딱히 필요는 없을 거다.
맨 처음 찾은 곳은 버터구이 오징어 집이었다.
물론 1년이 지난 뒤로 안에는 썩다 못해 이제는 흔적도 안 남은 새카만 덩어리들만 보였다.
“어우, 냄새~”
안에는 오징어와 버터 썩는 냄새가 강했고, 더 찾아봤자 뭐가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옆에 있는 핫바 역시도 유리창 안에서 벌레가 그득그득 끼어 있었고, 풀빵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 오빠! 저거요.”
“흐음.”
그나마 챙길만한 물건이 있는건 휴게소에 자주 있는 만물상이었다.
“오, 담자~”
마리는 가장 먼저 앞에 있는 선글라스들을 하나하나 집더니 직접 한번 써 보고 브이자를 그렸다.
선글라스, 지팡이, 효자손, 칼, 도끼, 톱, 모자, 장갑, 담요, 장갑 등등 있는대로 다 챙겼다.
금세 더블백 하나가 꽉 차자 그것을 내려놓은 김준은 내친김에 옆에 가게도 셔터를 강제로 뜯어서 올렸다.
“호오~”
이곳은 차량용품이 가득했다.
워셔액, 엔진오일, 워셔액, 코팅액 등이 있으면서 트럭용 타이어도 보이자 김준의 눈이 웃고 있었다.
“이것만 다 챙겨도 대박이지.”
먹을 것은 못 구해도, 이 정도면 차량 정비에다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전부 구했다.
“어머, 저거 봐!”
“꺄하~ 저게 뭐야?”
두 소녀가 발견한 것은 옷가게였다.
물론 휴게소 옷가게가 다 그렇듯이 대부분은 등산복, 혹은 원피스였는데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지러 갈까요?”
“야! 잠깐만!”
김준은 순간 휴게소 안을 보고서는 황급히 그녀들을 제지했다.
“뒤로 물러나!”
“힉?!”
마리 역시도 문 안에 있는 좀비를 발견하고는 순간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다.
지금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석궁이나 새총 가지고는 유리 장벽을 뚫기 힘들어 보였다.
철컥
김준은 바로 권총을 꺼내서 주저없이 당겼다.
탕 탕 탕
쨍그랑!!!!
복합유리에 세 발의 총탄이 발사되고, 그 안에 있던 좀비가 머리를 맞고서 바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였다.
으어어어
으어 어어어어
크어어어
안에 아직 남아있던 좀비들이 튀어나왔고, 김준은 그녀들을 데리고 바로 물러나서 엽총을 들었다.
타앙 철컥 탕!!!!!
김준의 무기들은 사정없이 불을 뿜었고, 매캐한 화약 연기가 코를 찌르면서 눈 앞의 좀비들을 하나하나 잡아 나갔다.
“허억… 허억….”
찌이이이이잉
수없이 발사한 총에 귓속이 얼얼할 정도였다.
김준은 좀비를 잡는 상황 때문에 귀마개를 못 낀다는 게 정말로 힘들었다.
“얼추 잡은 것 같기는 한데….”
“전부 다가 아니라 얼추야. 더 있을지 몰라.”
마리의 중얼거리는 말에 김준이 다시 다가가면서 내부를 슬며시 살펴봤다.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휴게소 식당은 피바다였고, 쓰러진 좀비들이 난장을 까놔서 제대로 된 물건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게다가 안에 있는 식자재 역시도 전부 썩어서 뭘 건질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젠장할….”
“오빠, 저기는 어때요?”
나니카의 말에 돌아보니 샛길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휴게소 직영 편의점이었는데, 다른 곳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피가 적어보였다.
“골목… 협소한데….”
“아쉽지만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야. 가 보자! 그 대신….”
김준은 지금 짐을 질질 끌고가면서 옷가게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밖에 널린 것들을 모두 챙기라고 명령했다.
마리와 나니카가 한가득 챙긴 겉옷과 속옷들을 두고 김준은 그걸 카트 없이 힘으로 들고 가면서 차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안에 있는 짐들을 차곡차곡 챙겨가면서 아예 캐리어 위까지 향했다.
넉넉하게 담은 뒤로 옷가지 몇 개만 챙기라고 한 다음 등산용 바람막이를 몇벌 쥔 김준은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조각과 좀비의 핏덩이들에 옷을 던지고 천천히 건너가봤다.
안에는 다행이도 좀비가 없었다.
다만 이 안에도 챙길만한 한 것은 물과 소주, 담배와 통조림 정도였다.
“자, 챙기자!”
“네!”
두 소녀가 바로 달려가서 침착하게 각자의 자리를 잡고 물건을 챙겼다.
마리가 안에 있는 스팸과 참치, 식용유와 꽁치, 골뱅이 등의 통조림과 기름, 꿀 등을 챙겼고, 나니카는 생수와 소주를 챙겼다.
휴게소 편의점이어서 음식보다는 생활용품이 많았고, 그래도 여기 있는것만 탈탈 털어도 몇 주는 버틸수 있을 것이다.
“흐으음~ 그건 없네.”
“뭐 찾는데?”
“약이요. 해열제랑 소염제, 감기약, 알콜 등은 있는데… 피임약은 없어요.”
“….”
진짜 섹스에 진심인지 약 종류중에서 피임약부터 찾는 마리.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편의점에 있는 카트를 여러번 움직여 탈탈 털어서 차 안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챙긴 것은 휴게소 근처에 있는 휘발유와 경유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차 안이 아주 꽉 찾네요?”
이번엔 자리를 바꿔서 나니카가 조수석에 앉고 마리가 뒤에 있었다.
“마리야. 어떻게 공간이 돼?”
“네. 침대위에 올려놓으니까 대충 움직일 정도는 돼요.”
“창문 가려지면 안 된다.”
“신경쓰고 있어요.”
그렇게 이틀차의 타 지역 탐험은 계속 됐다.
김준은 오늘은 또 뭘 볼 수 있을까 생각했고, 처음 진입했을때와 다르게 휴게소에 모든 차량들이 다 깔려서인지 상대적으로 한산한 길이었다.
내친김에 액셀을 밟아 속도를 높인 김준은 처음으로 100km를 찍고서 힘껏 달렸다.
그리고 그때…
“어?! 오빠! 저거….”
“뭐야? 좀비야?”
“아뇨! 좀비가 아니라… 소, 소!”
“미친, 소가 아직까지 살아있을리… 음?!”
김준도 봤다.
도로 밑으로 있는 드넓은 풀밭, 그리고 저수지.
거기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있었다.
젖소에 황소에 다양하게도 있는 곳.
“야, 저기 내려가 보자!”
김준은 샛길을 찾으면서 나니카에게 네비를 찍어보라고 말했다.
[띠링 경로를 안내하겠습니다.]
목장에서 탈출한건지, 버려진 동물인지는 몰라도 잘하면 소 사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