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52화 (152/374)

〈 152화 〉 152­ 밤에 쓰는 전리품.

* * *

김준은 이틀간 털은 집의 물건들을 분배하면서 루팅의 성과에 만족했다.

시간이 좀 늦긴 했어도 안 썩는 물건들은 충분히 챙길 수 있었고, 에밀리가 쓸 수도 없는 남의 집 예금 통장이랑 장신구 빼간 것은 쫌 그랬지만, 그 외 다른 건 아주 유용했다.

“오, 잘 된다!”

분해에서 싹 세척한 다음 재조립한 에어프라이어를 테스트 삼아 돌려본 인아는 갓 구워진 고구마 스틱을 보고는 다른 애들에게 한 조각씩 돌리면서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앞으로 음식 더 다양하게 나오겠네요.”

“먹는 거에는 진심이구나.”

김준은 에어프라이어로 만든 고구마말랭이 한 조각을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3층으로 올라갔다.

“그나저나 오늘 분위기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때 욕실에서 은지가 갓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왔다.

핫팬츠에 나시티 차림이었고, 등의 흉터가 드러나도 이제는 신경쓰지 않았다.

“에밀리는?”

“걔도 피곤하다고 바로 잔대요.”

“흐음, 그렇구만.”

김준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는 바 테이블에 앉아 고구마말랭이를 먹으면서 은지에게도 하나 건넸다.

은지는 그것을 받아 한 입 깨물고는 김준을 보면서 선반에 보관된 위스키와 주스와 얼음을 꺼내 가져왔다.

세팅을 마치고서 유리컵 두 개로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은지를 보고 이제는 말 안해도 손발이 착착 맞았다.

“은지야.”

“네?”

김준은 촉촉한 머릿결을 찰랑이는 은지를 보고서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는 거실 서랍장으로 달려가서 옷 한 벌을 꺼냈다.

오늘 낮에 반지하에서 발견한 여성용 의류는 전부 세탁기에 들어가서 옥상에서 말리고 있었지만,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게 정장 셔츠였다.

그리고 셔츠야 원래 집에도 하나 있으니 자신이 입던 것을 하나 꺼내서 은지에게 보여줬다.

“이거 한 번 입어줘라.”

“…?”

“흰 셔츠, 어울릴 것 같아서.”

“하…”

은지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좀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제안한 건데 단호하게 거절할 각이었다.

“주세요.”

“여기!”

조금 구깃구깃하긴 했지만, 냄새 안 나는 새하얀 와이셔츠를 걸치자 105 사이즈의 큰 사이즈를 걸친 은지의 모습에 심장이 뛰었다.

“흐음~”

은지는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면서 소매가 조금 길어서 걷은 다음 칵테일을 세팅했다.

“이런 자리도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예전에는 간간이 있었지만.”

김준은 오랜만에 열린 은지의 바에서 그녀가 세팅해준 칵테일을 한 잔 들이켰다.

“몸은 좀 괜찮아?”

“어제는 진짜 두통이 심했는데, 오늘은 견딜만 해요.”

“두 번 갔으니 다음은 다른 애들을 시키면 될 거야.”

“뭐, 집 근처라면 계속해도 되겠지만요.”

냄새 조금 나는 것 빼고는 돌입해서 물건 빼가는 것에 문제가 없으니 그냥 자신이 계쏙 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은지.

김준은 그런 그녀가 믿을만 해서 이번엔 자신이 직접 한 잔 따라줬다.

“슬슬 다른 지역도 한 번 가봐야 하는데 말이지. 한 번씩 돌아봐야 해서.”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 어떻게 하실건가요?”

“응? 그 사람이라면… 아, 만물상!”

“오빠가 멀리 나가서 하루 묵고 올 때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이 오면요?”

“확실히 그건 있지. 신경이 쓰이기는 하는데… 일단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거든?”

자신들하고만 거래한 것이 아니라 명국 부부네도 닭모이용으로 가루로 낸 과자들을 가지고 물물교환했다는 말에 그냥 언제든 등장할 수 있는 존재였다.

“지금 그 사람은 나하고 은지 너의 존재만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맞아요. 두 번 와서 딱 저랑 오빠를 봤으니까요.”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생각하다가 담배를 물었다.

순간 은지의 얼굴을 봤지만, 그녀는 별 상관하지 않았고 김준이 불을 붙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컵에 물에 적신 휴지를 넣어서 테이블 앞에 내밀었다.

김준이 한 대 태우자 은지는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말이죠. 이건 저번에 다녀온 마리한테 들은건데요.”

“어.”

“그 닭 키우는 부부들 말이죠. 저희가 돌아가면서 갔잖아요.”

“그렇지?”

“그쪽도 그 트럭상인이 거래하러 왔다고 해서 물물교환했다고 하는데, 혹시 거기서 여기 집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나요?”

“!”

생각해보니 그랬다.

트럭 행상인이 이쪽에 왔을때는 안에 있는 애들 전부 숨고서 김준과 은지만 나왔지만 절이나 명국 부부네, 그리고 황 여사 일행등을 통해서 이 집에 많은 여자들이 있다는 걸 알면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본인이야 단 한 명이 혼자 다니는 거겠지만, 만약 그걸 다른 사악한 생존자에게 알려서 이곳이 습격의 자리가 타겟이 된다면… 그건 진짜로 답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 말 하니까 괜히 신경쓰이네.”

“….”

“역시 그냥 입막음으로 죽여?”

“!!!”

은지의 눈이 커지면서 눈썹이 꿈틀거리자, 김준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농담이야. 오빠 그렇게 무지막지한 놈 아니다.”

이미 이 상황에서 서로 볼 거 안 볼거 본 사이라지만 대놓고 사람 죽인다는 짓을 쉽게 할 김준이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은 도덕심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거슬리긴 해도 없앤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이렇게 하자.”

“네?”

“일단은 너한테 부담이 크겠지만, 당분간은 장거리 루팅 나가는데 은지 너는 빼줄게.”

눈치빠른 은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나가는 동안 집은 제가 지키는 거군요.”

“힘들겠지만, 부탁할게.”

“아니요.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다른 애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요.”

그렇게 해서 집안조와 루팅조를 또 나누게 돼서 김준이 나갈 때마다 그 자리에 은지는 꼭 집 안을 지키게 했다.

물론 그건 장거리로 나갈 때의 일이고, 은지가 루팅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어서 쉘터 근처의 빈집털이는 은지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룰을 정하고 이건 내일 모두 앞에서 다시 한 번 말하기로 했다.

다시 술자리가 이어졌고, 한 잔 두잔 마실 때마다 그동안 악취와 두통에 시달려서 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취하는 두 남녀였다.

“오랜만에 이렇게 마시니까 정말 좋네?”

“하~ 슬슬 저는 좀 올라오네요.”

은지가 슬슬 테이블 정리를 하려고 할 때, 헐거운 와이셔츠 너머로 그녀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갓 목욕으로 하고 와서 바디클렌저 향이 풀풀 나올 때, 김준은 그녀를 향해 반사적으로 손이 갔다.

“!?”

테이블을 치우려던 은지의 새하얀 손을 붙잡은 김준.

그리고는 오늘은 정말 날인 것 같다고 그녀에게 넌지시 말했다.

“오늘은 괜찮은 날일까?”

“….”

은지는 무슨 뜻인지 잘 안다면서 빙긋 웃고는 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이번에도 거절하는 은지를 보고서 김준은 멋쩍게 웃었다.

일전에도 한 번 샤워하고 나온 은지를 보고서 바로 뒤에서 끌어안았는데, 격하게 저항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냥 관둔 적이 있었다.

“미안해요. 글쎄 아직 연인까지는….”

은지가 조용히 일어나서 아까 김준이 입으라고 한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는 벗어서 의자에 걸어놨다.

그리고는 아쉬워하는 김준을 보고서 미소 지은 얼굴로 조용히 뺨에 입을 맞췄다.

쪽­

“다음 기회에.”

드르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서 안에서 먼저 자고 있는 멤버와 같이 잠자리에 든 은지였다.

김준은 그 자리에서 머물고 있다가 다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그리고는 까짓거 바람 맞았는데 그냥 혼자 몇 잔 더 마시고 들어갈 셈이었다.

내친김에 냉장고를 열어서 스팸 몇 개와 달걀을 꺼내 프라이팬에 구워 술안주를 추가해서 즐겼다.

얼음도 꺼내와서 컵에 담아 위스키를 따른 채 아포칼립스에서 가지는 고급스러운 술자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음악 한 곡,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도 없고 순수하게 술만 마시는 자리에서 고요한 적막감이 집 안을 메웠다.

“마지막으로 했던게… 어우, 그거였지.”

옥탑방에 올라가서 4명의 초 미녀들과 함께 밤새도록 했던 난교.

그날 진짜 코피 쏟으면서 못 일어나는 줄 알았다.

근데 또 며칠 지나니까 다시 몸에 양기가 쌓이고, 슬슬 다른 여자애들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역시 남자의 본능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이럴 때, 딱 누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나 보고서 혼자 먹냐고 슬쩍 물어보면서 앉아….”

덜컥­

“…?”

여기 어디에 무전기가 있는건지, 양반이 못되는 애였는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부스스한 머리에 졸린 눈을 한 가야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 오빠.”

“으음~”

“안 주무셨네요.”

냉장고로 가서 보리차 한 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 가야는 김준의 술자리를 보더니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왜 지금 일어났어?”

“도저히 잠이 안와서요. 두 시간을 뒤척거렸어요.”

오늘따라 한쪽 눈에만 있는 저 쌍커풀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저도 한 잔 주실래요?”

“응, 그래.”

김준은 아까 은지가 마시던 잔을 치우고서 새걸 꺼내와 가야에게 따라줬다.

그리고는 맞은편 의자에 걸린 와이셔츠를 보고서 피식 웃고는 가야에게 말했다.

“가야야.”

“네?”

“저거 입어줄래?”

그녀는 은지가 걸어놓은 와이셔츠를 보더니 뺨을 긁적이다가 손을 뻗어 그 옷을 집었다.

셔츠 입은 술자리 여사친의 변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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