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51화 (151/374)

〈 151화 〉 151­ 털이는 계속된다.

* * *

김준은 다음날 아침 겨우 풀린 코를 이리저리 만져봤다.

“다시는 겪기 싫지만, 오늘도 또 해야지….”

그래도 어제 성과가 제법 있었다.

잔잔바리지만 한 집을 털어서 챙긴 라면과 통조림, 그리고 바깥에 널어놓고 쓸 그릇과 화분 등을 생각하면 근처 집을 계속 터는 데 문제가 없을 거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 생각했던 방독면을 창고 안에서 꺼냈다.

먼지가 가득 쌓인 군용 방독면은 훗날 어디 불이나거나 가스 누출을 염두해두고 구해놨지만, 너무 오래된 거라 효과가 있을지 몰랐다.

“게다가 딱 하나밖에 없고….”

여러모로 사용하긴 애매해서 안 쓴 건데, 오늘 나갈때는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오늘의 아침은 어제 가져온 통조림등을 가지고 스팸이랑 멧돼지 고기를 구워서 만든 육식계 밥상이었다.

“어우­ 어제는 진짜 코 떨어지는 줄 알았어.”

“은지 언니, 코가 빨개요.”

“계속 손으로 붙잡았거든.”

나니카의 말에 오똑하면서 크게 솟은 은지의 코끝이 새빨갛게 달아오른게 김준의 눈에도 보였다.

“후~ 그래도 난 좀 견딜만 해졌어.”

에밀리 역시도 어제 코를 부여잡았는지 살짝 빨갰는데, 그래도 빠르게 적응해서 어제 못 먹었던 밥까지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김준은 그녀들이 고생이 많다면서 달래주고는 가야에게 말했다.

“가야야. 오늘 우리가 또 옆집을 루팅해볼건데, 다른 애들 일 좀 해야겠다.”

“네, 오빠. 어떤 걸 하면 될까요?”

“어제 너랑 라나가 2층이랑 3층에서 살폈잖아? 그거 계속 하고, 남은 애들은 어제 가져온 화분 가지고 야채 좀 따로 심자.”

“아, 그러면 되겠네요.”

가야가 인아를 보자 그녀는 밥을 먹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팅조 빼고 남은 4명을 둘러봤다.

마리, 나니카, 도경… 이 셋이라면 화분 몇 개 가지고 각각 심을 것은 문제 없어 보였다.

“토마토랑 쪽파를 심어야겠네요. 상추랑 콩도 슬슬 떨어지고.”

“편한대로 해. 그리고 그릇 같은 것도 정 못쓰겠으면 그냥 화분으로 써도 돼.”

아무래도 오랫동안 썩은 시체냄새가 뱄을수 있는 그릇을 그냥 식기로 쓰기에는 찝찝했다.

김준은 인아에게 재량것 맡기고, 그거 시킬 때 가야에게 작업일지를 쓰도록 맡겼다.

“확실히 각자 전담이 있으니까 편하긴 해.”

“뭐, 그렇게 됐네요?”

총무 가야, 리더 은지, 루팅 에밀리, 농사와 요리 인아, 의사 마리, 작업 도경, 보조 라나, 청소 나니카.

거기서 각각 공동 작업 할때만 딱 보조로 다른 애들 데리고 움직이니까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애가 없다.

김준은 식사를 마치고서 방독면 청소를 한 다음에, 가장 후각이 민감해 보이는 은지에게 건네줬다.

“써 봐.”

“아, 이건 오빠가 하셔야 할 텐데….”

“아니야. 은지 네가 써.”

김준도 시취에 어질어질 했지만, 그래도 가장 필요한건 은지로 보였다.

은지는 김준이 가르쳐 준대로 방독면을 써보고 공기통에 손을 대서 호흡 확인을 해 봤다.

그리고 에밀리에게는 면 마스크 안쪽에 아로마 오일을 물에 풀어 스포이드로 한 방울 떨어트렸다.

덕분에 끝이 약간 축축하면서도 아로마 향으로 악취를 가릴 수 있게 만들어줬다.

어제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김준은 많은 준비를 했다.

특히 한동안 안 쓰던 물에 푼 락스를 가득 채운 소화기를 은지의 등에 채워줘서 돌입 방식을 다시 만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잘 마친 뒤로 김준은 바깥을 살펴본다음에, 다시 루팅에 들어갔다.

오늘은 앞집의 바로 옆에 있는 3층 단독주택을 털어보기로 했다.

끼이이이­

이곳은 특이하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김준이 슬며시 들어왔을 때, 안쪽 문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새카맣게 말라붙은 피의 손바닥 자국이 가득했다.

“휘유~”

마당은 완전히 난장판이었고, 여기저기 유리창 깨진게 보였다.

“안 좋은데 이거….”

“준 오빠, 어디부터 갈 거야?”

뒤에서 에밀리가 묻자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아래를 가리켰다.

“저쪽에 반지하부터 먼저 가자.”

“흐으음.”

김준의 말에 은지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소화기 호스를 어루만졌다.

생각해보면 어디 내려가서 들어가는 건물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을 열자마자 좀비가 나오면 다급히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김준 역시도 그걸 알고 있어 먼저 반지하로 된 발치에 있는 창문부터 열었다.

끼릭­ 끼이이익­

빡빡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을 때, 안에는 의외로 냄새가 별로 없었다.

“흐음….”

김준은 직접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 보다 반지하 창문을 열고 창살 너머로 에밀리를 불렀다.

“알람 켜.”

“오케이!”

에밀리가 바로 품 안에서 시계를 설치하고 알람을 틀었다.

바로 고막을 때리는 소음이 울리고 김준 일행이 전부 뒤로 물러날 때였다.

와장창! 쨍그랑!!!

크어어어­ 크어­ 크어어어­

“오빠! 위에!”

“어우 씨, 저기서 나왔네!”

철컥­

반지하를 노리고 창가에 알람시계를 크게 틀었을 때, 뜻밖에도 2층 유리창이 깨지면서 좀비가 튀어나왔다.

새카만 피를 뚝뚝 떨어트리며 비틀거리는 좀비를 보고 김준은 주저없이 샷건을 겨눴다.

오늘을 위해서 멧돼지 잡는 벅샷을 잔뜩 장전한 상태였고, 펌프를 당긴 다음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파각­

근거리에서 한 방 갈긴 순간 사방으로 흩어진 산탄이 좀비의 몸을 찢어나갔다.

크어어어어­

산탄 한 방을 맞고 비틀거리던 좀비가 풀썩 쓰러졌고, 김준이 재빨리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에밀리와 은지 역시도 뒤따라갔다.

특히 은지는 품 안에서 미리 챙겨둔 신나가 가득 든 드링크 병을 들어서 좀비를 향해 던졌다.

파각­

“말 하고 던지지.”

김준은 자기 발치까지 튄 신나를 보고서 쓴 웃음을 지었고, 방독면을 쓴 상태에서 표정은 안 보였지만 손을 들면서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은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르륵­

김준은 바로 불을 당겨서 콘크리트 복도에 썩은 피를 뱉어내고 쓰러진 좀비를 태워나갔다.

주변에 추가로 불이 붙을 인화성 물질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 엽총을 든 채로 겨눴을 때 10분동안 시체가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매캐한 냄새에 세 명의 얼굴이 찌푸러들었다.

그때 갑자기 품 안에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치직­ 오빠! 김준 오빠!!!]

라나였다.

“어, 라나야. 왜?”

[치직­ 오빠! 지금 거기 집 3층에도 좀비 나왔어요!]

철컥­

3층 옥탑방에서 보고 있던 라나가 황급히 그 위에 좀비가 또 있다고 알렸고, 김준은 좋은 정보를 얻었다며 무전을 마쳤다.

“오케이, 확인! 잘했어. 차나라.”

[치직­ 둘이에요. 조심하세요.]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

김준은 불길 속에서 새카맣게 타들어간 좀비를 보고 생수병을 들어 주변의 잔불을 꺼낸 다음 곧바로 총을 들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좀비가 있다는 무전을 들은 에밀리와 은지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내려가서 시계 챙겨.”

“내가 갔다올게!”

에밀리는 후다닥 내려거서 반지하 창문에 걸쳐 놓은 시계 알람을 끄고 챙겨서 올라왔다.

그 뒤로 김준은 좁은 계단을 타고 천천히 올라가면서 아까 에밀리가 챙긴 시계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올라가기 전 슬쩍 두세계단 위에다가 알람을 맞추고서 시계를 설치했다.

따르르르르르르르릉!!!!

옥상에서 다시 한 번 시계가 울리자 그 위에서 어디쯤에 있을지 모르는 좀비들의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 캬아! 캬아아아아악!!!”

“시발, 뛰는 놈인가 보….”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계단 앞으로 달려와 시계를 집어 든 좀비를 보고서 김준은 바로 샷건을 갈겼다.

철컥­ 탕!!! 철컥­ 탕!!!!

두 발의 산탄이 발사되며 시계를 든 뛰는 좀비의 몸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다가 바로 벽에 기대 몸이 기울어졌다가 이내 그 몸이 넘어갔다.

“어? 떨어졌다!”

쿠우우웅!

뒤이어 지금 이 집과 옆집 담벼락 사이로 떨어진 좀비의 상태를 가늠한 김준은 재빨리 위로 올라가서 총을 겨눴다.

철컥­

“으어어­ 으어어어어어­”

다행히도 둘 중에 하나는 걷는 좀비여서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김준은 침착하게 그 앞에서 엽총으로 그 좀비까지 잡았다.

타앙­

옥상의 두 좀비까지 쓰러트린 뒤로 김준은 좀비의 피로 젖은 바닥을 두고 은지를 불렀다.

“은지야 뿌려!”

은지가 방독면을 쓴 채 고개를 끄덕이며, 그 위에서 레버를 당겼다.

취이이이이익­

썩은 좀비의 피가 락스와 섞여 바닥에서 씻겨나갔고, 내친김에 쓰러져 있는 걷는 좀비를 향해서도 락스를 뿌려댔다.

바닥이 좀 미끌거렸지만, 덕분에 옥탑방에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후우­ 좋아. 돌입!”

김준이 먼저 들어가 안을 둘러봤을 때, 두 좀비를 잡은 뒤로 빈집에서 루팅을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는 좀비가 나온 뒤로 그렇게 악취가 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바닥 여기저기에 피에 젖은 발자국에 시취는 똑같았지만, 어제의 사례를 두고 대비를 해서인지 피로가 상대적으로 덜했고, 냉장고까지 열었다.

치이이이익­

게다가 어제 수많은 벌레와 쥐가 다니는 것을 보고 살충제를 가지고 여기저기 뿌려대면서 해충들을 털어내면서 찬장부터 뒤졌다.

“여기도 캔이랑 라면이… 오, 이건 괜찮네요.”

은지가 꺼낸 것은 수십개의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수저 다발이었다.

김준은 다 챙기라고 손짓했고, 에밀리는 방 마다 돌아다니면서 장롱을 열고 TV의 서랍장도 뒤졌다.

“저기 준 오빠.”

“왜?”

“이건 챙겨야 돼?”

“!?”

에밀리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집문서, 그리고 예금 통장이었다.

그것도 비닐갑에 인감도장까지 있는 상황이었고, 에밀리는 그걸 꺼내서 내용물을 펼쳤다.

“오~ 1억이나 들어있어.”

“그걸 나중에 어떻게 뽑는다고….”

“그럼 이건 내꺼.”

에밀리는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남의 집 예금 통장을 쓱싹했고, 어차피 이것의 주인들은 좀비가 되어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뒤로 뒤적거리면서 화장대에 있는 향수를 두고 킁킁 거리더니 있는대로 다 챙겼다.

“로션이랑 립스틱은 아쉽다.”

“남이 쓰던거잖아. 치워.”

“알아.”

에밀리는 뿌리는 향수 몇 개와 예금통장, 그리고 장신구 등을 챙기면서 방의 루팅을 끝냈다.

그리고 은지는 부엌에서 음식을 넉넉하게 챙기고, 창고에서 세제와 섬유유연제, 락스 등을 챙겼다.

3층은 넉넉한 분위기였고, 다시 2층으로 내려갔을 때, 불에 탄 좀비를 제외하고 안은 난장판이었지만, 먹을게 많았다.

툭­ 투두둑­

“어머, 이건….”

2층집 베란다에서 감자와 고구마가 잔뜩 들어있는데, 이미 몇 개월이 지나서 싹이 튼 상태에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아직 싹은 살아있는데… 흐음, 이거 심어봐야겠네요.”

“적당히 챙겨, 적당히.”

“네, 인아한테 줘 보고 심을 수 있는지 볼게요.”

그것 외에 현관 서랍장에 있는 우산, 다른 신발보다도 슬리퍼, 그리고 구두주걱이나 못, 망치 등의 공구도 하나하나 챙겼다.

“예스! 또 찾았다!”

“야! 그런 거 말고 먹을거를 찾으라고!”

안방에서 또 남의 예금 통장이랑 인감을 챙겨온 에밀리를 두고 한마디 하자,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금액 확인을 하고, 장롱을 열었다.

원앙금침 이불이나, 제사용 병풍 같은 건 어디 쓸데도 없었고, 2층에서도 넉넉하게 짐을 챙긴 일행은 드디어 마지막으로 원래 처음 목표였던 반지하로 향했다.

끼이이이­

“….”

잔뜩 긴장한채로 들어왔을 때, 의외로 안은 깔끔했다.

“여긴 아무것도… 없네?”

좀비는 물론이고, 사람의 흔적도 예전에 사라졌는지 거미줄 빼고는 냄새도 없었다.

시취가 없는 집은 처음 본다는 듯 숨을 크게 내쉰 에밀리와 은지는 1.5룸으로 이뤄진 반지하 방을 뒤적거렸다.

“이 방은 여자가 살았나보네?”

방 안에 화장대와 각종 거울, 그리고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이 보였다.

“어! 잠깐만, 이거….”

에밀리는 여성이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방 안에서 뭔가 보물을 발견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 진짜네?”

“핸드백?”

“루이비통이야.”

에밀리는 그것을 들고서 안에 있는 내용물도 마스카라와 파우더, 팬티라이너와 베이비로션, 카드 등을 보고는 그것도 담았다.

그리고 옷장을 열었을 때,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와이셔츠와 여성용 정장, 그리고 넥타이와 스타킹, 팬티 등을 보고는 그것을 집어 거울 앞에서 대 봤다.

“사이즈는 좀 평범하네.”

브래지어를 들어서 자기 몸에 채워봤다가 한참 작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져가면 누가 쓸 거라고 생각하고 잔뜩 챙겼다.

오늘의 루팅은 어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챙긴 물건도 많았는데, 특히 에밀리는 오늘이 최고의 성과라면서 애들 앞에서 루이비통 가방과 예금통장을 팔랑이면서 그걸 자기꺼라고 선언했다.

“휘유~”

오늘의 루팅을 마치고 담배 한 대를 태운 김준은 눈 앞 보이는 오늘 털은 집을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틀동안 많이 챙기긴 했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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