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39화 (139/374)

〈 139화 〉 139­ 한 번 기다려 보자.

* * *

“만물상이라….”

김준은 식사를 마치고서 은지의 바 테이블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은지 역시도 오늘의 일에 대해 김준과 같이 상의를 하면서 칵테일을 만들어줬다.

“트럭 타고 이 일대를 계속 돌았대요. 아마 혼자 살아가는 것 같네요.”

“그렇구나.”

“뭐, 그 이상은 초면에 신경 쓰여서 뭘 묻지도 못했지만….”

그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사실 김준의 부재 때 좀비도 아니고 생존자인 사람이 클락션을 누르면서 불렀다는데 솔직히 겁내서 아무것도 못하면 바로 사냥감이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집 안에는 은지가 있었고, 그녀가 용기있게 다가가서 그 사람에 대한 존재를 알고서 이렇게 성과라도 거둔 거였다.

“식겁했는데, 잘 해결돼서 다행이지.”

“근데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또 오겠죠?”

“그래서 말이지. 당분간 루팅 안 하려고.”

“오우….”

“오늘 다녀온 곳에서 2주 있다 온다고 했거든? 일단은 기다려보고, 또 올 때 기다려 보려고. 솔직히 지금은 2­3일 차이 나도 그러려니 할걸?”

명국이네 약속은 해서 가긴 가겠다만, 그 전에 한 번 더 그 물물교환상이 와서 누구인지 확실히 얼굴도장 찍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김준.

은지 역시도 괜찮을 거 같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 말고도 별별 게 다 있더군요. 필요한 거 있으면 다 가져올 수 있대요. 시간만 주면 말이죠.”

“그래? 아예 지금 상황에서 좀비 치료제라도 가져오면 좋겠네.”

“뭐, 그건 무리겠지만….”

이러다가 1년이고, 2년이고 이렇게 사는 상황이 될 수 있어서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은지는 김준의 얼굴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생선 다음으로 가져온게 이거에요.”

“뭐야? 이거.”

“홉이래요.”

솔방울 같이 생긴 말린 식물을 보고서 이리저리 보던 김준은 홉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올려놨다.

“홉하고, 사카린, 미원, 그리고 말린 대추도 있어요.”

“이거저거 챙겼구나.”

“그냥 우리한테 없는 거 뭐뭐 있나 묻다가 가져왔어요.”

“잘 했어.”

김준은 그래도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은지에게 물었다.

“흐음, 어떻게 봐야 하나?”

“뭐가요?”

“그 사람하고 계속 거래하는 거.”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죽일 거예요?”

“야, 사람 두고 그런 말을….”

“그냥 물어봤어요.”

손사래를 치며 넘어갔지만, 은지의 말은 뼈가 있었다.

진짜로 소사벌시 이곳저곳에서 생존자들을 찾아다나니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의 정보도 다른 쪽에 알려질 수 있었다.

특히 김준이 알고 있는 생존자 3대 쉘터인 정토사, 명국부부네, 황여사 일행을 만나고 그들의 위치를 가지고 다른 생존자들에게 알린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정말 장담 못했다.

최악의 경우 그 인간이 제일파 본거지가 있는 신릉면까지 가서 다른 생존자 쉘터에 대해 말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그쪽과 인연이 있었다면 진짜로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입을 막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좀비도 아니고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제일파 깡패도 아닌데 죽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좀비도 아니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이야. 아무리 그래도 선 넘는 말은 꺼내면 안 돼지.”

“네, 맞아요. 혹시나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싶었어요.”

김준은 은지를 보고 슬며시 손을 들어올렸다.

은지를 달래주려고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아직도 손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좀 남았는지 그녀가 슬며시 머리를 피했다.

“홉은 생각도 못했는데, 가지게 됐네요. 이걸로 그 재료는 다 갖춰졌어요.”

“음?”

“그거…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거라니? 뭘 만들 건데?”

“맥주요.”

“!!!”

김준은 아까 그 상인에게 홉을 받았다는 말에 맥주를 만들겠다는 은지의 말에 넌지시 물었다.

“맥주 만들 줄 알아?”

은지는 대답 대신 빙긋 웃어보였다.

***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한 번 그 상인이 올때까지 당분간은 자택근무라고 선언한 김준은 식사 이후 분주히 움직이는 은지를 바라봤다.

진짜로 맥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뒤로 그녀가 방에서 뒤적거리며 꺼낸건 서점에서 루팅했던 [집에서 맥주 만들기.] 라는 수제 맥주 제조법에 관한 책이었다.

“맥주! 진짜로 만드는거에요?”

“재료는 다 갖췄으니 한번 해 보자고.”

은지가 맥주 재료로 방앗간에서 가져온 밀과 보리, 제과점에서 챙겼던 효모, 그리고 어제 받은 효모와 물을 가지고 맥주 제조에 들어갔다.

실시간으로 책을 보면서 만드는 레시피를 알아갈 때, 가장 눈을 반짝이고 있는건 도경, 마리, 라나였다.

“진짜 시원한 맥주에 치킨 먹고 싶다.”

“냉동실에 닭 있잖아? 맥주 만든다음에 치맥 한 번 해보자!”

“인아야, 오븐 치킨 될까? 손 거들게.”

넷이 모여서 맥주를 만들 때 다른 아이들도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기네스 먹고 싶다. 역시 흑맥주가 최고인데~”

“너는 등부터 낫고 보자.”

“거의 다 났어. 봐바! 딱쟁이 떨어지고 있잖아?”

에밀리는 자신의 등을 보이면서 의기양양했다.

칼에 맞고, 감염으로 썩어들어가던 그 끔찍했던 상처가 도려내진 뒤로는 새 살이 돋아서 흉터는 크게 졌어도 빠르게 낫고 있어 개의치 않는 에밀리였다.

“맥주…제조법…효모, 홉….”

가야는 일일이 그것을 적으면서 은지가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나니카와 같이 분류했다.

김준 역시도 받아왔다는 솔방울 모양의 홉을 보고서 피식 웃었다.

“이거 어디서 구했나 했더니만, 이제 알겠네.”

“네?”

“이 동네 외곽에 큰 호프집 하나 큰 거 있었거든. 거기 흑맥주가 진짜 기가 막혔는데….”

대중교통이 없어 차로 겨우 가서, 돌아올 때는 대리기사들이 전부 가게 앞에서 대기할 정도로 규모 있는 수제맥주집이 있었다.

김준 역시도 맥주가 땡길 때 그곳을 떠올렸으나, 거리가 너무 멀고 그 가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차마 갈 생각을 안 했었다.

“흐음~ 그런 곳이 있었구나.”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으로 맥주 한 잔 쭉 들이키는 시늉을 했다.

“치킨하고 같이 먹고 싶다. 이거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려?”

“1주일 정도는 걸릴 거야. 처음 만드는 거니까 실패할 거 따지면 한 열흘?”

“흐음~ 그 정도면 이거 다 낫겠다.”

팔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사실 지금 상태로도 90% 이상은 컨디션을 되찾은 에밀리가 좀이 쑤시는지 이리저리 움직였다.

김준은 조용히 어제 받아왔다는 담금주 통을 들어 욕실로 가져가 깔끔하게 씻어 왔다.

은지의 리드 아래 책에 나온 대로 홈브루잉에 대해서 이해한 톱스타들은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통에 맥주 원액을 만들어 가득 채웠다.

“발효 3일 걸리고, 탄산 만들어내는데 5일에서 6일 정도.”

“잘 됐으면 좋겠네? 그때 맞춰서 치킨 만들면 딱이겠다!”

다들 설레하는 얼굴이었고, 김준 역시도 반년간 먹어보지 못한 맥주의 맛을 떠올리면서 점점 침이 고였다.

그렇게 맥주를 기다리는 동안 김준은 한가롭게 집 안에서 개인정비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집밖에서는 아이들이 새총과 석궁으로 사격 연습.

집 안에서는 요리와 뜨개질을 하면서 가내수공업으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아이들.

김준은 안팍을 오가면서 작업을 하다가 좀이 쑤셔서 평소라면 1­2시간이면 끝났을 파이프 누수를 가지고 주변을 깎고, 철판을 덧대 용접까지 하는 등 육체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후우­”

오늘 하루 업무를 마치고 밖에 있는 캠핑카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입은 김준.

그때 밖에서 노크가 들렸다.

“네~ 끝났어요.”

덜컥­

“오!”

은지가 바구니에 각종 목용용품과 갈아입을 속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먼저 씻었어요?”

“이제 다른 욕실 써도 되잖아?”

“그냥, 여기가 편해서요.”

은지는 가져온 목욕바구니를 테이블에 올려놓고서 김준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저번에 한 번 자른 뒤로 목을 휘감던 긴 땋은 머리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트레이드 마크는 살아있었다.

“역시 땋은 머리가 잘 어울려.”

목을 조금 덮을 정도의 중단발 상태인데, 그걸 한 번 땋자, 손바닥 정도의 짧은 길이의 꼬리가 만들어졌다.

김준이 은지의 뒷머리를 잡고 조물거리자 그녀는 고개를 확 돌렸다.

“자꾸 만지지 마요….”

그러면서 가벼운 나시티에 핫팬츠로 굴곡있는 뒤태가 드러났을 때, 김준은 본능적으로 은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꺄앗­ 하지마요! 이 나쁜 손!”

“은지야! 진짜 네가 최고야.”

“으읏, 응­”

김준이 강아지나 고양이 다루듯이 끌어안고 부비대자 은지는 예전같이 극혐하면서 떨어지진 않아도 그의 손을 잡으면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만해요. 이거 추행이야!”

“은지야, 진짜 오늘 안 될까?”

“네~ 오늘은 진짜 안 돼요. 분위기도 안 나고, 몸도 안 좋아요.”

“그래~”

김준은 할 수 없이 두 팔을 벌려 은지를 놔 줬고,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천천히 바지를 내렸다.

김준 앞에서 핫팬츠를 내리면서 검은색 레이스 팬티가 드러났지만, 오늘 성행위는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이만 캠핑카에서 나가기로 했다.

“분위기 날 때 다시!”

등 뒤에서 은지가 하는 말에 김준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래, 무드 있게….”

이전까지 그냥 눈에 띄는 애 붙잡아서 뒤에서 끌어안거나 엉덩이를 주물거리면서 데려가서 하곤 했다.

하지만, 은지의 무드 이야기를 하니 앞으로 여자애들하고 자리 맞춰 주는 자리를 한 번 가져보기로 했다.

“좋아~ 그럼 오늘은 건전하게….”

안방 문을 열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그곳에 누가 있었다.

“어?!”

“어머, 캠핑카 오래 있던 거 아니었어?”

에밀리였다.

아직도 다 아물지 않은 흉터가 있는데, 웃옷을 슬슬 벗으면서 다이너마이트의 가슴이 출렁였다.

“내 방에서 뭐하냐?”

“여기 욕실 좀 쓰려고 했지. 등 밀고 싶어.”

“야, 그 상처….”

“마리가 그러는데, 씻고 소독하면 된대.”

김준은 한숨을 쉬며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에밀리는 흥얼거리면서 옷을 훌렁훌렁 벗다가 김준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몸을 드러냈다.

“그동안 나 없어서 심심했지? 어?”

다이너마이트 가슴에 잘록한 허리, 풍만한 골반을 드러낸 에밀리가 김준 앞에 다가와 손가락을 그의 턱 밑에 가져다댔다.

“오랜만이잖아. 이런 분위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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