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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38화 (138/374)

〈 138화 〉 138­ 오빠 왔다, 별일 없었…지?

* * *

은지는 품 안에 담긴 가위를 쥔 채로 기다렸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공교롭게도 지난번에 김준에게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모두에게 상처를 보인 일이 떠올랐다.

“자, 그럼 이게 필요하겠구만.”

“!?”

트럭에 타고 있던 괴인은 별안간 뭔가를 꺼내서 은지 앞에 내밀었다.

“문 열어서 한 번 보시겠수?”

“이건 대체….”

헤드캡 너머의 은지의 두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

“명국아.”

“네, 형님.”

“차라리 네가 그거 쓸래?”

“아, 이건….”

오토바이 샵, 철물점, 지물포, 약국까지 다녀와 잔뜩 챙긴 뒤로 집에서 물건을 나누고 있을 때, 김준은 명국이 지금 입고 있는 경찰 방검복을 차라리 쓰라고 건넸다.

“우리쪽은 사이즈 때문에 애매했거든, 줄인다고 수선한게 계속 덜그럭거리고.”

“이런 방검복이면 큰 도움이지만… 형님네는요?”

“이거.”

레이싱슈트, 프로텍터, 가죽자켓, 각종 헬멧까지 풀무장 할 수 있는 장비를 차에 차곡차곡 담아놓은 것을 보고 명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다면 잘 쓸게요. 대신에 야채 좀 드리죠.”

“감자랑 고구마 빼고는 나머진 이쪽에서 드시는 게 좋을거에요.”

“네?”

오늘 일행이 챙겨온 약들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있던 마리는 명국을 부르고 옆에 있는 산모 수영을 위해 말했다.

“일단 비타민하고, 타이레놀, 영양제 좀 분류해놨어요. 진짜 몸이 아플 경우에 타이레놀은 임신 중에 먹어도 돼요.”

“그… 괜찮은건가요?”

“예전에 저 가르쳐준 교수님도 둘째 가진 상태에서 타이레놀은 잘 드셨어요.”

마리는 그러면서 산모를 편하게 앉으라고 한 다음 퉁퉁 부은 발을 보고 말했다.

“이게 혈액순환 문제거든요? 깨끗한 물 많이 드시고 입덧 심할수록 칼륨이 부족하단 거에요. 신선한 채소류 많이 드세요.”

지금에야 장비도 없고, 전문의 지식도 부족해서 진짜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해줄 수 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약이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만 지켜도 일단 순산까지는 문제없을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닭하고 오리 좀 잡아 올게요.”

“오~ 많이 자랐어?”

“저번에 약병아리라고 한 애들이 이제 알 낳아요.”

확실히 고기에 대한 자급자족은 여기가 제일이었다.

명국은 팔을 걷어붙이고 오늘의 물물교환 품목을 위해 나갔다.

잠시 후 바깥에서 닭과 오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가야는 화들짝 놀라면서 진짜 손으로 잡냐면서 슬그머니 창가를 봤다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씨, 봤어… 닭 목을 이렇게…”

가야는 시늉만으로도 끔찍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김준은 그러려니 하면서 나머지 짐을 챙겼다.

“비타민 남은 건 교환용으로 써도 되겠는데?”

“필요한 생존자 일행이 많겠죠. 지금은 각기병 괴혈병이 다시 올 수도 있으니.”

마리가 나머지 약을 분류했고, 그 와중에 명국은 피에 젖은 자루를 들고서 마당에 올려놨다.

“형님, 이번엔 좀 많이 잡았어요.”

“히익!?”

가야는 피 묻은 자루 안에 들려 있는 것을 보고서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수첩을 들어서 오늘 루팅 리스트와 교환 목록을 적기 위해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차마 자루를 열어 내용물을 보는 건 께림칙 했고, 대신 명국에게 묻기로 했다.

“저기….”

“네?”

“안에 든거 몇 마리 잡은거죠?”

“흠, 그냥 보이는대로 잡았는데, 잠시만요. 확인해볼게요.”

“흐븝!?!”

명국이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자루를 연 순간 안에서 털이 여기저기 뽑히고, 목이 꺾인채 피를 다 뺀 닭과 오리 시체를 본 가야는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걸 본 마리는 뒤에서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좀비도 석궁으로 마빡 맞추시는 분이 뭘 그렇게 무서워 해요?”

“그, 그거랑 달라!”

“저번에 멧돼지 잡았을 때 보셨으면 어쩔~ 도끼 맞고 살아있는 멧돼지 멱을 칼 한 방으로 쑥­”

“그만해!”

가야가 귀를 막자 키득거리다가 김준한테 제지당한 마리.

오늘의 물물교환은 훈훈하게 진행 됐고, 각자의 물건을 가진 뒤로 김준은 차에 올라탔다.

“다음에 말이야. 언제 온다고 정해야겠다.”

“아, 형님. 그러면 2주 뒤에 와 주시겠어요?”

“2주?”

“그때가 지금 부화하는 병아리 나올때고, 추가로 달걀 수급해서 모일때에요. 그리고….”

“그리고?”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사육장을 좀 늘이려고 하는데, 혼자는 힘들 것 같아서 그런데 같이 좀 도와주실수 있나요?”

“뭐, 그러자.”

김준은 2주 뒤 기록해 놓으라면서 뒤에 있는 가야에게 일러뒀고, 손을 흔들면서 명국부부네 집에서 나왔다.

“자~ 오늘 가져온 거 가지고 오리로스나 해 볼까?”

“아직 돼지고기 좀 남았으니 같이 구울까요?”

“그러자. 어차피 오늘 잡은 것들은 다시 한번 손질하긴 해야 돼.”

조수석에 앉은 마리는 벌써 고기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도나보다.

돌아가는 길에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밤에 앞을 막는 존재가 없으니 그냥 여기저기 널브러진 불에탄 폐차들만 슬슬 피해가면서 집으로 향하는 김준 일행이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왔을 때, 멀리서도 켜진 불이 확 보였다.

“응? 왜 저렇게 환하게 했대?”

“아~ 은지 있으니까 커튼 쳤을 줄 알았는데.”

평소와 다르게 무방비한 상태로 불이 켜진 것을 본 김준이 어리둥절했고, 가야는 뒤에서 안에 있는 무전기를 찾아서 바로 알렸다.

“아, 아! 얘들아! 지금 우리 오고 있어. 들리니? 들리면 말해 오바!”

[지직­ 지지지직­]

“응? 안 들려. 다시 말해봐 오바!”

[지지지지직­]

“안 들리네? 잡음만 심해요.”

“뭐야, 또….”

김준은 바로 차를 몰아서 집 골목으로 들어왔고, 혹시 몰라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좀비가 있었나 싶어 살폈다.

하지만 주변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고, 바닥에 새겨진 새카만 핏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였다.

“계속 안 돼?”

“네, 이게 고장난 것도 아니고.”

“별 수 없지. 그냥 내가 내려서 문 열게.”

김준은 차 앞에서 내려 주변을 살핀 다음 조용히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재빨리 차에 탄 뒤로 안에 들어와 시동을 끈 다음 문을 닫았다.

“얘들 왜 안나와?”

빵­ 빠아아아앙­

클락션을 울린 다음에 안에서 주섬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김준은 혹시 무슨일이 있나 싶어서 엽총을 들고 내렸고, 잠시 후 2층에서 문이 열렸다.

“아! 오셨다!”

라나가 먼저 발견하고 쪼르르 내려왔고, 그 뒤로 도경이나 나니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같이 내려와 가야와 마리가 꺼낸 물자를 가지고 같이 날랐다.

“무슨 일 있었어? 다들 왜 그래?”

“오빠, 저 그게요….”

“뭔데? 뭐냐고?”

“아까 낮에 사람이 집 주변을 맴돌았어요.”

“뭐?!”

“안에 은지 언니가 만났는데….”

“예이­ 씨!”

김준은 라나의 말을 듣고 황급히 위로 올라갔고, 황급히 애들을 불렀다.

“은지야! 은지야!”

김준이 다른 애들 중에서도 은지를 찾았을 때, 거실에서 뭔가 비릿한 냄새가 확 풍겼다.

“아, 오빠?”

치이이이익­

“오, 잘 익었어!”

김준은 에밀리, 인아, 은지가 전기그릴을 꺼내다가 뭔가를 굽고 있는 것을 보고서 멍한 얼굴로 물었다.

“니들… 그거 뭐냐?”

“생선이요. 오늘 구했어요.”

김준은 천천히 그녀들에게 다가가 앉았고, 자세히 보니 그릴 옆에 노끈으로 묶인 말린 생선이 가득했다.

전갱이하고, 숭어, 우럭 등이 반으로 갈라져 내장을 다 빼내고 반건조 상태로 있었다.

은지와 인아가 그릴을 꺼내 그것들을 밀가루 바르고 기름에 살짝 구워봤고, 익은 걸 에밀리가 한 점 뜯어 먹고서 맛있다며 엄지를 올렸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건 다 어디서 난 거고?”

“밥은 드셨어요?”

“인아야, 밥을 먹은게 중요한 게… 아니다, 먹자. 잠깐만 기다려.”

김준은 오늘 가져온 닭하고 오리를 손질하고 딱 두 마리만 꺼내다 탕을 만들었다.

덕분에 오늘은 닭도리탕에 생선구이라는 호화스러운 식단이 차려졌고, 모두가 먹으면서 아까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저녁에 차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놀래서 바로 커튼을 쳤는데, 불빛을 봤나봐요.”

“하씨, 큰일 날 뻔 했네.”

은지의 말을 들은 김준은 그 동안 자신의 부재시 좀비 습격 이야기는 들었어도, 생존자들이 차 타고 돌아다녔다는 말에 식겁했다.

“애들 전부 들어가게 한 다음에 하이바 쓰고 나가서 확인했어요. 트럭타고 다닌다는 생존자 아저씨더라고요.”

“뭐하는 사람인데?”

“살아서 물물교환 하고 다닌다나?”

은지는 그러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가야와 김준에게 알렸다.

“처음에 몇 명 사냐고 물어봐서 신경쓰지 말라니, 먹을 거 안 필요하냐면서 말린 생선들을 보여주더라고요. 서해안에서 가져온 거래요.”

“그래서?”

“우리 쪽에서도 고추장하고, 컵라면, 냄비하고, 햄하고, 자동차 배터리 필요하다고 해서 넘겼어요.”

“배터리? 몇 개?”

“두 개요. 창고에 있던 거요.”

“그건 뭐… 많이 있으니 상관 없긴 한데….”

김준은 물물교환으로 준비했다는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줄 알았는데, 게임에 나오는 밀거래상인도 아니고, 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물물 교환을 한다니?

게다가 서해안에서 가져온 말린 고기라고 하는데, 이 상태라면 적어도 서해안 내에서 이걸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생존자 무리가 또 있다는 거다.

‘혹시 황 여사네는… 아니야, 거긴 바다도 멀고 잡은것도 전부다 호숫가에 붕어 정도지.’

김준은 구운 생선 한 점을 집고는 넌지시 중얼거렸다.

“근데 이거… 먹어도 괜찮은게 확실하겠지?”

그것에 대한 답변은 은지가 해 줬다.

“제가 고추장 가져올 때, 맛 보라고 생선 중에 하나 떼서 찍어 먹어보라고 했어요. 눈 앞에서 먹는거 보니 문제는 없을 거에요.”

“머리 좋네?”

“혹시나 했죠.”

김준은 은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장에 찍어 한 점 먹어봤다.

짭짜름한게 통조림에서 튀기던 청어나 고등어보다 훨씬 나았다.

“은지야. 그리고 오늘 집안에 다른 애들도.”

“네?”

“응?”

“왜애~?”

은지, 인아, 에밀리.

그리고 3층에 있던 라나, 도경, 나니카 까지 해서 여섯명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김준은 혹시라도 잘못됐으면 어쩌나 하면서 안도하고는 그녀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욕 봤다. 고생 했어.”

“….”

그 말에 은지도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오늘 다녀온 셋을 보고 말했다.

“수고했어요. 오늘도 물자 구하러 밖에 나가셔서….”

서로 칭찬해주고, 남은 것은 진수성찬의 밥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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