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7 지금 바깥에선?
* * *
띵
파각!!!
김준의 공기총이 발사된 순간 10m 밖에 있던 좀비가 머리에 피가 터지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후우….”
이것으로 루팅에 나온지 다섯 마리째 잡는 좀비였다.
“뒤에 문제 없어요!”
“옆에도… 괜찮은거 같아요.”
한때는 동네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갔던 아파트 단지였지만 지금은 유령의 집, 혹은 좀비가 계속 스폰되는 흉지인 소사벌 일대.
김준은 명국의 집이 있는 시골길 까지 가는데, 이 일대는 정말 까다롭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이 동네는….”
“그래도 이 동네가 제일 나은 것 같은데요?”
“뭐?”
뒤에서 마리가 한 말에 김준이 눈을 돌렸다.
그녀는 가장 많이 왔던 동네인 이곳을 두고서 말했다.
“여기는 사각이 없어요. 아파트면 아파트, 상가면 상가, 그냥 패턴이 똑같잖아요? 가게나 단지만 보다가 튀어나오면 쏘면 되는….”
이제는 웬만큼 이 일대의 길을 알다보니 같이 루팅 파트너가 되면서 주변 지리를 잘 알게 된 톱스타들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긴장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동안 잡아왔던 좀비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게 나은 것 같았다.
“그래도 이 동네는 많이 줄었어. 나 말고 명국이도 잡아서 그런가?”
“맞아요. 그 사람도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좀비 잡고 다닌다고 하지 않았나요?”
김준과 마리가 이야기를 할 동안 가야는 그 옆에서 어떤사람인지 모르니 머리를 긁적였다.
정토사와 황 여사 일행의 길은 가 봤어도 또 다른 생존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은지나 마리가 거기서 멧돼지 습격으로 큰일 날 뻔 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 될 때, 어느새 골목을 지나 시골에 있는 명국의 집에 도착했다.
김준은 언제나와 같이 클락션을 세 번 울렸고, 천천히 기다렸다.
잠시 후 명국이 나오면서 김준의 차를 확인하고는 천천히 철문을 열어줬고, 창문이 열리면서 서로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형님!”
“별일 없었지?”
“저희야 뭐 잘 지냈죠!”
명국이 철문을 열어주고 안에 들어온 김준 일행은 천천히 내렸다.
“안녕하세요?”
“아, 네! 근데 그…”
명국은 가야의 인사를 받고서 분명 전에 봤던 라나, 에밀리, 은지 등을 떠올렸다가 몇 번 신세 진 마리를 보고서 저절로 시선이 김준으로 갔다.
“수영씨도 인사드려야지~ 둘 다 건강하죠?”
“아, 네. 한 번 봐주시겠어요?”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한 명국은 김준에게 슬며시 물었다.
“형님.”
“왜?”
“대체… 몇 명 데리고 사시는 거예요?”
만날 때마다 계속 파트너가 바뀌고 그것도 TV에서나 볼 법한 엄청난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가야를 보고서도 익숙함을 느낀 명국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담배를 물었다.
“그게 뭐 중요해? 있는대로 사는 거지.”
“다음에는 또 여자분 바뀌는거 아니죠?”
“아, 시끄럽고. 저번에 멧돼지 잡은 이후로 별일 없었어?”
김준이 화제를 돌리자 명국은 주변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저 멀리 있는 들판을 가리켰다.
“멧돼지 다음에는 고라니에 들개에 별별게 다 나오더라고요.”
“흐음.”
“특히 야생 고양이들이 닭이나 오리를 노리고 들어왔는데, 철망 때문에 들어오진 못하고, 화살 쏴서 쫒아냈어요.”
동네의 귀여운 새끼고양이가 아니라 야생 삵을 방불케 하는 축산물 작살내는 녀석들이니 보이는대로 그건 쳐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사육장이 튼튼해서 좋네?”
“비 엄청 올 때 슬레이트 쳐놨는데, 그 뒤로 물 수급은 잘 됐네요. 저번에 주신 쌀 덕분에 애들도 빨리 크고요.”
“그럼 닭이랑 계란은 이따가 챙기기로 하고, 오늘 바로 같이 루팅좀 될까?”
“네?”
김준은 마리가 안에서 명국의 아내를 돌보는 동안 오늘 이곳에 온 이유를 말했다.
“제일파 조폭 새끼들한테 칼 맞은 애가 하나 있었어.”
“조… 조폭이요? 이런 세상에서 그런 놈들이 또 있어요?”
“제일파 몰라?”
“제일파… 아, 그 학교에서 운동부 애들 스카웃 해간다고 하던 나이트클럽 사장?”
“그거 하나만 있는 애들이 아니긴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살아서 다녀요? 게다가 칼 맞았다니? 그 아가씨는 괜찮고요?”
“어, 다행이도.”
명국은 조폭이 살아 날뛴다는 말에 식겁했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바리케이트를 더 채워야겠다고 여겼다.
김준은 그렇게 되었으니 본론으로 공동 루팅을 요청했다.
“여기 신작로 쪽으로 나가서 오토바이 센터 있지? 거기 프로텍터하고, 헬멧 좀 구하려고.”
“아, 저도 거기 가보긴 해야 하는데… 거기가 좀 문제가 있을 거에요.”
“뭐? 무슨 문제?”
“그… 몇 번 가보려고 했다가 좀비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거든요.”
“그럼 차라리 잘 됐네.”
김준은 샷건을 준비하면서 몇 놈이 나오건 차 안에서 저격으로 전부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명국은 혼자로는 도저히 무리겠지만, 김준과 같이 동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 일단 아내에게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김준과 명국이 같이 움직이면서 공동 루팅을 준비했다.
일단 혼자 있을 수 없는 임산부를 위해 의사인 마리가 같이 집 안에 있는다.
그리고 김준과 가야가 같이 가면서, 명국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명국아!”
“네, 형님!”
“네가 이거 입어라.”
김준은 가야가 입고 있던 두꺼운 경찰방검복을 던져줬다.
이게 뭔가 싶어 이리저리 보다가 경찰용 방검복이라는 말에 좀비의 이빨과 발톱은 막을 수 있겠다며 바로 입었고, 대신 가야는 마리의 스웨터를 받아다가 입었다.
셋이 같이 가서 양 옆이 모두 수로와 경작되지 않은 논밭이 가득한 곳에서 아무 말 없이 신작로 상가까지 쭉 달렸다.
10분 정도 차로 왔을 때 명국이 멈춰섰다.
그리고 김준은 바로 공기총을 꺼내 스코프로 상황을 살펴봤고, 좀비 서넛이 먹잇감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 바로 잡을 준비를 했다.
“저게 사기 쳤네.”
“네?”
조수석에 있던 가야가 물을 때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첫 방아쇠를 당겼다.
띵
파각!
“무슨 수십마리야? 일대 다 따져도 다섯도 안되겠는데.”
가게 같은데 숨어있거나 서성이는거 합쳐도 아예 못 갈 정도는 아니었다.
김준은 능숙하게 공기총 만으로 연지탄을 발사해 좀비들을 하나하나 잡아나갔고, 뒤에있던 명국은 주변을 둘러보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화살을 꺼냈다.
잠시 후 앞에 보이는 좀비들은 처리하고,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데 끈적끈적한 피바다에 좀비의 흔적이 보이는지라 아무래도 저긴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아쉽지만, 생필품들 자체가 원인을 알수 없는 굳은 피로 오염돼있으니 누구도 손댈수 없었고 대신 철물점이나 시계방 이런 곳들에서는 잔잔바리로 물건들을 수급할 수 있었다.
명국은 철물점에서 철조망과 용접기, 배터리, 피스, 낫 등을 챙기면서 나름 만족했고, 바로 옆에서 김준이 오토바이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효성스즈키, 대림혼다…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고, 달력에 각종 오토바이 카달로그가 있는 곳에서 내부에는 각종 헬멧과 수리공구들이 있었다.
“자~ 가야야?”
“네, 오빠.”
“너희들 사이즈 맞을만한거 찾아보자.”
가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벽 한곳에 있는 헬멧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직접 써보면서 시야확보가 잘 되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헬멧으로 얼굴이 가려진 상태에서 두리번거리는게 꼭 게임 캐릭터 같은 모습이었다.
“흐음, 이거도 나쁘지 않은데?”
아예 한 몸으로 입을 수 있는 전신레이싱 슈트.
사이즈가 김준한테는 조금 작았고, 도경이나 에밀리같은 체구의 애들이라면 소매만 조금 손질해서 입고 다닐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저거 입고 다니면 엄청나게 안이 덥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
“어머, 이거….”
가야가 내부에서 오토바이 용품을 찾고 있을 때 꺼낸 건 프로텍트가 붙은 장갑과 정강이 보호대, 그리고 아메리칸 바이크를 탈 때 쓸 수 있을 것 같은 가죽 자켓이었다.
“괜찮네? 한 번 입어봐.”
김준의 말에 가야가 그 자리에서 가죽 자켓을 걸치고서 이리저리 움직여볼 때, 사고방지용인지라 상당히 질긴 재질로 만들어져 두 팔을 휘둘러도 자연스러웠다.
“애들 데리고 입혀보면 재밌겠다.”
“네~ 이거 작은 사이즈라면 못 입을 애들은 없을거에요.”
김준은 집에 돌아가는대로 애들 불러서 한번씩 입어보라고 오토바이 용품으로 패션쇼를 해 볼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
그리고 같은 시각.
김준의 집.
빵 빠아아아아앙
“엄맛!!!”
집 밖에 있는 트럭이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다가 바로 클락션을 울렸다.
김준 외에 외지인이 트럭을 가지고 계속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는 상황에 은지는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건 상황에 대해 멘탈이 흔들리는 아이들.
게다가 하필 김준이 오늘 데려간 파트너들이 마리와 가야라는 가장 차분하고 연장자인 언니들이었다.
은지는 그 상황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빠르게 판단을 해야 했다.
“모두 주목! 침착해!”
그러면서 보이는대로 하나하나 오더를 내렸다.
“에밀리는 무전기 들고 준이 오빠 쪽으로 연락해봐. 그리고 뒤쪽으로 내려가서 전기철망 스위치 올리는거… 누가 할래?”
“제, 제가 할게요!”
인아가 손을 들었고, 은지는 부탁한다면서 어깨를 토닥여줬다.
“밖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가 나가 볼 테니까 바로 문 잠가.”
“언니!”
“인아는 스위치 올리고 바로 옥탑방으로 올라가. 그리고 바로 잠가!”
“언니는요?”
은지는 대답 대신 현관 서랍장에서 김준이 입고 다니던 판초우의를 꺼내 그걸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용접용 하이캡을 머리에 쓰고서 손을 내밀었다.
“전기충격기… 누가 가지고 있어?”
“그거 두 자루 옥탑방에 넣었는데 제가 갔다 올게요!”
나니카가 3층으로 올라간다는 말에 은지는 손가락을 흔들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대신 분재 가위를 들고서 그걸 무기 삼아 나갔다.
“다녀올게.”
“은지 언….”
덜컹!
은지는 바로 문을 닫아버린다음 잠그라고 선언했다.
“후우”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하이캡으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한 다음 천천히 나온 은지.
그리고 철문 밖에서는 집에서 누가 나온 것을 보고는 바로 비상깜빡이를 틀다가 바로 이쪽으로 플래시 라이트를 켰다.
“으읏!”
은지 역시도 손에 들고서 맞대응하자 갑자기 불이 꺼졌다.
마음을 굳게 먹고서 다가왔을 때, 그 밖에서 목소리가 천천히 들렸다.
“그… 안에 생존자 맞아요?”
“!”
“아까 불 켜진 거 봤어요! 사람 맞죠?”
걸걸한 사투리가 섞여있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은지는 그 말에 헛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맞아요.”
“아이고마! 그래도 또 사람 사는 곳이 있구만, 안에 몇이나 있어요?”
“…그걸 왜 묻죠?”
“혼자는 아니죠?”
그러면서 트럭을 탄 인물이 뭔가를 찾는 듯이 덜컹거렸을 때, 은지는 귓가에 들리는 스위치 올라간 전기 철망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품 안에 손을 넣어 분재 가위를 꽉 집어 들었다.
만약 바깥의 괴인이 차 안에서 무기를 꺼낸 순간 은지는 자기 하나 희생으로 달려들어 동귀어진할 각오가 돼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