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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36화 (136/374)

〈 136화 〉 136­ 이것으로 계속 평화가 올…

* * *

식사를 마친 뒤로 김준은 식후 연초를 즐기러 밖으로 나갔다.

집 밖으로 나왔을 때, 주방과 가까운 자리가 엄청나게 화기애애했다.

“언니, 머리스타일 바꾼 거 더 나은거 같아요.”

“그래? 난 묶는게 좋아서 계속 이런건데.”

“맞아. 은지는 원래 데뷔 때부터 땋은 것 머리했잖아?”

다른 아이들의 대화를 보고서 김준은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캠핑카 뒷문을 열고 걸터앉아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때 얼마 안 있어서 김준의 뒤를 밟으며 조심스럽게 따라온 아이돌이 있었다.

“준….”

“또 왜?”

“자꾸 내 엉덩이 괴롭히지 마.”

에밀리였다.

아직도 아픈지 꼬집혀서 시큰거리는 엉덩이를 만지면서 다가오는데 김준의 옆에 딱 앉아서는 원피스 스커트를 올려 보였다.

“보여? 손톱자국 남은 거?”

“아니었으면 너 손바닥으로 때렸다.”

“너무해!”

칭얼거리는 에밀리를 두고서 김준은 어제의 일이 생각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땐 몰랐는데, 스카백이라는 말 한 번만 더 해봐? 꼬집는 걸로 안 끝나.”

“흐응, 나는 그냥 당당해지라고 은지한테 말한 건데.”

에밀리는 그 말로 인해서 투덜거리다가 그 일에 대해 말했다.

“나는 원래 그런 거 신경 안 써!”

“너는 그래도 상대한테는 얼마나 충격이겠냐? 솔직히 말하면 너 말 막하잖아?”

“내가 뭘?”

“도경이한테 멀대니 발리볼 걸이니 말했고, 나니카한테는 일본은 지금 좀비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드립 쳤지? 그다음에 은지한테도 등의 상처 언급했다는 거 보고서 언제 한 번 면담 하려고 했어.”

생각해보면 김준이 이제껏 아메리칸 스타일 조크라고 넘기려 해도 다른 애들 긁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결국 은지의 트라우마를 건드려서 그녀가 직접 찾아와 모든 걸 털어놓게 만들었다.

“그렇다는 말은… 어제 했다는 거구나?”

“아유, 진짜 얘를 어쩌지?”

김준은 에밀리의 새하얀 뺨을 붙잡아 쭉 당겼다.

“으브브­!!!”

“자꾸 딴 애들 긁지 마.”

의외로 아기처럼 쭉 늘어난 볼때기였고, 김준이 손을 놓자 벌게진 상태로 어루만지던 에밀리는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나는 전부 다 오픈했는데!”

“응, 알아.”

“?!”

김준은 에밀리의 중단발로 자른 더티 블론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러면서 그녀의 눈가 위에 머리카락으로 덮인 흉터가 드러났다.

“에밀리 너는 언제나 당당하잖아? 근데, 다른 애들은 안 그런다고.”

“어, 이거… 알고 있었어?”

“그러라고 드러낸 거 아니었냐?”

대뜸 머리칼을 올려서 상처를 보였다가 좀 너무한 것 같아서 머리를 쓰다듬해주자 에밀리는 다시 기분이 풀려서 김준의 어깨에 기댔다.

“흐으음.”

“애들하고 너무 그러지 마.”

“예스~ 안 그럴게.”

에밀리는 김준과 나란히 앉으면서 얼굴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트레이닝 하다가 코드 밟아서 세워놓은 조명 스탠드가 떨어졌어. 머리에 직격.”

“어우….”

“여기 머리 다 밀어내고, 수술했는데 완전 괴물이 된 거 같았잖아.”

에밀리는 그때 생각을 하면서 머리의 흉터쪽을 긁적였다.

“그때 사장이 말하더라고, 나보다 더 큰 흉터 가지고서 데뷔한 애도 있는데, 코디로 금방 가려질 거라고.”

아마도 그게 은지 이야기였을테고, 에밀리네 소속사 사장이 달랜답시고 남의 이야기를 꺼내 트라우마를 들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일.

김준은 에밀리를 토닥이면서 등의 상처를 슬며시 봤다.

조만간 붕대도 풀고 드레싱만 하면서 완전히 아물때까지만 기다리면 될 거다.

“너도 빨리 나아라.”

“근질거리는게 곧 나을 거야.”

언제나 무한 긍정인 금발의 소녀를 보고, 김준은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줬다.

***

한편 같은 시간.

옥탑방에서는 한 소녀가 빨랫감을 널어놓다가 한숨을 쉬며 벽에 걸터앉았다.

“은지 언니까지… 한 거 맞겠지?”

인아였다.

이미 그녀의 눈으로 안방에서 같이 나오는 멤버들을 본 적이 있었고, 아예 밥 먹다가 오피셜로 ‘그 남자랑 잤다.’라는 걸 알렸던 선배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같이 먹고 자는 언니와 동생들을 두고서 하나씩 데리고서 섹스 상대가 된 걸 보고서 징그럽다고 생각한 게 사실이고, 지금도 꺼림칙해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중에서도 진짜 철벽을 친 은지 언니마저도 넘어갔으니 이제는 남은 게 정말 자신밖에 없다고 여긴 인아였다.

“후우­”

연애는커녕, 남자에게 몸 보인 것도 지금이 유일했고, 아직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살기 위해서 어쩔수 없다고 애써 합리화 했다.

하지만 인아의 머릿속에는 언제고 자신도 김준의 잠자리 상대가 될 거라는 공포감이 맴돌았다.

은지의 트라우마와는 또 다른 입장, 인아는 그러면서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일에 아랫배를 두 손으로 감싼채 웅크렸다.

“그래도… 강제로는 안 하겠지?”

인아는 일단 김준 앞에서 술 마시는 것부터 자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다음 날.

김준은 약속한 대로 다음 루팅을 위해서 자리를 준비했다.

“명국이네 들렸다가 그 안쪽으로 갈 거야.”

“네, 달걀하고 메추리 다 떨어져서 다시 가야 될 것 같아요.”

가야가 수첩으로 리스트를 보여주며 부족한 물자에 대해 말해주자 김준은 다른 물자를 보면서 말했다.

“챙겨야 될 게, 휴지하고 쌀, 그리고 저번에 방앗간에서 가져온 찹쌀하고 고춧가루도 좀 챙겨.”

“네? 그것까지요?”

“아끼다 똥 돼. 이거 빻은지 오래된 거라 금방금방 치워야 되는데, 이제는 좀 베풀자.”

처음 이 자리에 왔을때만 하더라도 루팅을 실패하고, 점점 동나는 냉장고와 창고의 음식들 때문에 햄 한 조각으로 예민해졌던 소녀들.

하지만 지금은 역으로 너무 물자가 풍족해서 쥐가 꼬이고, 있는 것도 추가로 계속 쌓이고 있으니 남아도는건 얼마든지 물물교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걔들한테 받아올게 계란이랑 닭 빼고 뭐가 있을까나.”

“감자…?”

“오, 그래! 걔들 싹 나온거 전부 심은다고 했지.”

비 잔뜩 온 다음에 지금 날씨에 그게 잘 자라겠냐만 일단 기대해볼 만했다.

김준은 그 뒤로 이번 루팅에서 가장 중요한 리스트를 뽑아내기로 했다.

“명국이네 집에서 목공소 지나 위로 더 들어가면 수로 옆에 신작로 있거든? 거기에 오토바이 수리점하고, 마트, 철공소가 있으니까 장비 좀 잔뜩 챙기자.”

“오, 괜찮네요? 오빠 입고다니는 프로텍터 같은거 많이 있나요?”

“찾아봐야지.”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갈 준비를 했고, 이번의 루팅은 산모가 있는 곳이고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 마리랑 가야가 같이 가기로 했다.

“안에는 걱정하지 마세요.”

“갑자기?”

은지가 집안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피식 웃은 김준.

그리고 그녀 역시도 따라 웃으면서 앞으로는 걱정 없을 거라며 손을 흔들었다.

***

“자, 가볼까?”

이번에도 장비를 잔뜩 준비한 다음 지난번 찢긴 스웨터 방검복 대신 그나마 키가 좀 되는 가야가 경찰 방검복을 입고 나갔다.

은지 이외 다른 아이들은 앞까지 배웅을 나가고 최근 좀비가 없어서 텅 빈 골목을 보고서 안도했다.

그리고 오늘의 물자를 담아오기 위해 눈앞에서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졌을 때, 은지는 문을 닫으면서 다른 아이들을 2층으로 불렀다.

짝짝짝­

“자, 잠깐만 모여봐.”

은지는 좀 더 의욕적으로 움직이면서 2대 리더로 남은 아이들을 통제했다.

“에밀리는 아직 몸 상태 안 좋지?”

“뭐, 드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어.”

“그래도 쉬어. 나니카가 옆에서 드레싱 다시 해주고.”

“아, 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도경이랑 라나가 공구 잘 다루지?”

“네? 갑자기 공구요?”

“재봉틀 고치려고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어? 그 뿌리는 거 뭐라고 하지?”

“아, 나바켐?”

“어, 그래! 그거 가지고 공구 챙겨서 같이 좀 도와줘. 그거 한 번 보게.”

은지는 도경이랑 라나를 데리고, 재봉틀 고친다고 공구를 챙겨달라고 했고, 남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니카 드레싱 끝나면 인아 만드는거 좀 도와줘.”

“저기… 저녁 준비인가요?”

“아니, 인아가 떡 한 대.”

“!?”

인아는 어제 김준이 말한대로 잔뜩 쌓여있는 쌀가루랑 찹쌀가루를 두고 떡을 만들어보겠다고 건의했다.

마침 쑥이다, 깨다, 참기름이다 있을건 다 있으니 레시피만 알면 문제 없었다.

“네, 준비할게요.”

“자~ 올때까지 작업 해보자.”

은지의 통제에 모두가 움직였고, 각자의 일을 준비했다.

조용조용한 분위기였고, 김준이 없을때는 서로간의 이야기도 하면서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때, 저녁이 되어 날이 점점 어두워질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우우웅­ 우우우우우웅­

“음?”

“이게 무슨 소리야?”

도경이 먼저 귀를 쫑긋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지 역시도 지금 바깥에서 들리는소리를 듣고는 점점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차 소리 아닌가?”

“준이 오빠가 벌써 왔나요?”

라나 역시도 차 소리라는 걸 확인하고는 옥탑방 베란다에서 차를 확인하려고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를 생각한 은지는 곧바로 외쳤다.

“지금 당장 불 다 꺼!”

“네?”

“얼른!!”

은지는 황급히 뛰쳐나가면서 현관문 스위치를 내렸고, 2층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애들에게 말하려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현관에 있는 두꺼비집을 확 내려버렸다.

“어 뭐야?!”

“언니, 불 나갔어!”

“쉐엣! 나 책 보는데!”

안에 있던 아이들이 볼멘 소리를 하지만 은지는 바로 손뼉을 크게 치고는 조용히 시켰다.

“언니, 뭐에요?”

“저기… 무슨 일 있어요?”

“쉿!”

은지는 2층의 창문에 커튼을 모두 치고는 슬쩍 바깥을 바라봤다.

차 소리는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집이 있는 골목으로 거대한 불빛이 있었고, 다가오는 것은 분명 자동차, 그것도 트럭이었다.

“음? 준이 오빠 차?”

“그거라면 무전기는 왜 안들려?”

“어, 그럼 저 차… 어?!”

뒤늦게 상황파악을 한 2층의 아이들도 이곳으로 다가오는 존재에 대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동안 김준의 부재 시에 좀비를 발견하고 그것을 막아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운전하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건 분명 사람, 그것도 불이 켜진 것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것이 확실했다.

“은지 언니, 어쩌죠?”

“….”

은지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면서 두려움에 빠진 동생들을 바라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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