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130 피바람이 몰아친 다음.
* * *
신릉면 안쪽에 있는 소사벌 유흥가.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었다.
지하에는 룸살롱.
1층에는 편의점과 약국과 내과.
2층에는 오락실과 모던바.
3층은 당구장.
그리고 4층은 안마시술소가 있었다.
그 안에서도 단 한명만이 4층을 쓸 수 있었다.
[스윽 스으윽]
마사지 배드에 엎드려 있는 거구의 사내는 오밀조밀한 손으로 정성껏 마사지하는 여성은 혹시라도 그분의 심기를 거스를까 덜덜 떨고 있었다.
등에 그려진 눈을 부릅뜬 용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아서 겁내 하던 안마시술소 매니저의 손길이 느려졌을 때, 누워있던 사내가 말했다.
“됐어. 옷 준비해.”
“네… 넷! 회장님!”
그녀는 황급히 내려와서 큰 수건을 가져와 그분의 몸을 닦아드리고, 새 속옷과 양말, 갓 다림질한 와이셔츠와 바지를 들고 하나하나 입혀줬다.
50대 초중반에 흰머리가 살짝 보이고,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특히 얼굴 한쪽은 통째로 뜯겨나갔다가 살이 올라온 흉터가 있는데 표정을 지을때마다 씰룩거렸다.
그의 정체는 제일파 보스 박제혁.
소사벌 밤거리의 제왕이라 불렸던 인물이었다.
정장을 입고 나온 순간 복도에는 홀복을 입은 안마시술소 아가씨들과, 단정하게 나온 제일파 조직원들이 일제로 90도 인사를 했다,
“나오셨습니까! 회장님!!!”
복도가 떠나가라 우렁차게 외치는 인사를 받고 온 박 회장은 바로 복도를 건너 테이블에 앉았다.
칙 치익
간부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였을 때, 한 모금 뱉어낸 박 회장은 천천히 그를 노려봤다.
쳐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순간이었다.
“김 부장.”
“네, 넷! 회장님.”
“이틀 전에 보낸 애들 아직도 안 들어왔다고?”
“그, 그것이… 물자를 가지기 위해 시내로 보냈었는데, 조금 늦는 것 같….”
“너 때문에 우리 식구 몇이나 죽은거냐?”
“회, 회장님. 죄송합니다. 다만 저는 회장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
그 순간 박 회장은 커다란 손으로 김 부장이라는 간부의 뒷목을 잡고는 그대로 테이블에 처박았다.
콰직!
“크아악!”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씨부리지 마라. 내가 혓바닥 긴 놈을 제일 싫어하는 거 모르나?”
“쿨럭! 회, 회장님….”
박 회장은 대답대신 물고 있던 담배 한 번 빨고는 그대로 김 부장의 목에 대고 지졌다.
치이이익
“크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구르는 김 부장을 두고 박 회장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간부들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 또 돌아오지도 못할 길로 애들 보내는 놈 있으면, 그땐 담배빵으로 안 끝난다.”
“네, 넷! 회장님!”
모두가 겁에 질린 채 아포칼립스 세상에도 소사벌 왕으로 군림하는 박 회장 앞에서 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남은 간부 십여명에, 이 건물 내에서 살기 위해 제일파에 충성 맹세를 한 안마방 아가씨들과 마담, 의사, 약사, 오락실 직원들. 생존쉘터로 달려와 제일파에게 살려달라고 정통 건달 산하로 들어온동네 양아치들.
그들은 그분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건 하루를 시작했다.
***
“신릉면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
며칠 뜬눈으로 지새운 김준은 힘겹게 국을 먹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라나는 그래도 괜찮아졌는데, 에밀리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흠칫한 라나는 양 옆에 도경이랑 가야라는 든든한 언니들을 두고서 계속 눈치를 봤다.
이제껏 좋은 사람만 봐 오다가 눈앞에서 진짜 칼부림과 총성이 오가고 좀비 대신 사람을 쏴 죽인 것은 처음 본 게 너무 컸다.
“라나는 오늘 언니랑 같이 일하자.”
“네? 아, 네!”
가야는 라나의 밥 위에 군만두 하나를 올려줬고, 그녀는 한 입 베어 물면서 먹을 거로 심신을 달랬다.
그 와중에 다른 아이들은 에밀리에 대한 걱정이 컸다.
“에밀리 언니는 괜찮겠죠?”
“크게 다쳤잖아요. 어떡해 진짜….”
나니카나 인아같은 애들이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고, 담당의를 맡은 마리 역시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때 갑자기 미닫이문이 크게 열리면서 치료 중이던 금발의 아가씨가 나왔다.
드르륵
“!!!”
“쉣… 누가 죽었냐?”
에밀리는 상반신 한 곳에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로 아침에 마리가 챙겨준 아이싱 팩으로 잔뜩 부어오른 팔을 덧댔다.
그리고는 투덜거리면서 왼팔을 까딱였다.
“나니카? 언니 먹을 군만두 하나 가져와.”
“네, 네! 언니.”
나니카가 자기 앞에 있는 앞접시에 간장 살짝 찍은 군만두 두 개를 가져왔고, 그녀는 손으로 하나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면서 김준에게 다가와 슬며시 앉았다.
“진짜 괜찮은거야?”
“쪼끔 까진거 가지고 무슨.”
“에밀리! 너 지금 파상풍 걸리면 큰일 나.”
“응~ 이틀 동안 열나는 거 빼고 문제없어.”
없을 리가 없었다.
당장에 수술 이후로 고열에 시달려서 아직도 후끈거리는 상반신이고, 붕대 위로 피가 굳은 게 드러났으나 개의치 않는 에밀리의 멘탈이었다.
“마리 생일 전까지 이거 다 나으면 돼지.”
“택도 없어! 최대 6주라고 했잖아!”
마리의 말에 에밀리는 김준 옆에 있는 군만두를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먹는 건 문제 없네, 튀김 나오면 내껀 따로 빼줘.”
“네~ 네~ 그날 음식 많이많이 만들테니까 제발 빨리 나아주세요.”
인아가 두 손을 모으면서 에밀리의 쾌유를 빌자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씩 기도의 자세를 잡아줬다.
그리고 에밀리는 양 손으로 브이자를 하면서 만두 몇 점 먹다가 들어갔고, 식후 상처 드레싱도 무난하게 끝냈다.
이대로만 간다면 괜찮을 것 같다.
***
지이익
“아으, 쓰라려!”
“어머, 이걸 어떡해!?”
에밀리의 상처를 소독하러 온 마리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김준과 은지가 구급상자를 가지고 왔을 때, 그들 역시도 그 상처를 보고 멈췄다.
의료 지식은 잘 몰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칼에 찔려서 새하얀 피부에 흉한 자국.
상처가 부어오르면서 꿰맨 자리 주변이 진녹색의 역한 고름이 나오고 있었다.
김준 역시도 지난번 칼 맞아서 몇 달 골골거렸을 때, 상처의 냄새를 맡아보고 녹색 고름이 나오는 게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들었었다.
그동안 언제나 포커페이스였던 은지도 등의 상처를 보고는 순간적으로 흠칫해서 들고 있던 구급상자를 떨어트릴 뻔했다.
“이거 녹농균이에요!”
“그럼 뭐야? 치료는 가능해?”
“일단 구급상자 거기 내려놔요! 그리고 둘 다 바로 손 씻고, 여기 오는 사람은 무조건 샤워하고 마스크 쓴 사람만 들어오게 해요.”
“나을 수 있는거지?”
“빨리요!”
마리의 말에 김준과 은지는 가진 구급상자를 내려놓고 나갔다.
그리고 마리는 누우채로 끙끙 앓고 있는 에밀리를 보고 씻고 온 손에 세정제를 잔뜩 발라 수술 준비를 했다.
“저기... 나도 이거는 실습생 시절에 딱 한 번 봤거든? 외상외과 선생님 따라 다니다가 즉석에서 치료하는거 봤어.”
“흐응 어떻게 하는데? 불로 막 지져?”
“그럴 리가~ 근데 좀 아플 거야.”
마리는 밀봉된 메스를 뜯어내고 결심한 듯 집었다.
“마취 없이 녹농균 감염부위를 잘라내야 돼. 메스로 째고 핀셋으로 뜯어낼거야.”
“어우~”
“진짜 미안해. 최대한 흉터 없이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크게 남을 거야.”
“쉣… 그냥 해.”
에밀리는 고개를 돌린채로 기다렸고, 마리가 든 메스가 그녀의 등으로 향했다.
[AH!!!!!!!!!!!]
“뭐야? 에밀리 언니 왜 그래요?”
“쟤 상처 덧난거야? 하, 진짜….”
가야랑 나니카가 불안해하고, 언제나 투닥거리던 도경도 엄지손톱을 짓씹었다.
녹농균 감염되는 순간 지금 시대에 전문의도 없이 죽을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때 비명 이후로 갑자기 큰 노랫소리가 들렸다.
[The show must go on!!!
The show must go on, yeah!!!]
“!?”
그 와중에 비명을 지르면서 락 음악을 불러대는 게, 무슨 노래 연습장인줄 알았다.
“아, 저 또라이 진짜….”
어차피 소리쳐 댈 거 노래라도 한 곡 뽑겠다는 생각인지 에밀리는 자기 가수였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스완 송도 아니고 수술 중에 부르는 곡이 끝난 순간 몇 분 지난 뒤에 마리가 식은땀에 푹 젖은 채로 나왔다.
“어떻게 됐어?”
“후우 일단 감염 환부 다 떼냈고요. 항생제 먹인 다음에 냉찜질 들어갔어요.”
“그럼 괜찮은 거야?”
“폐렴만 없으면… 살 수 있어요.”
“후우”
김준은 그날 밤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방에서도 몇 번이나 침대에서 일어나 에밀리가 있는 미닫이방을 연신 돌아다니다가 거실 소파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마리가 근처 작은방에서 자고 있다는데, 새벽에라도 언제 열이 올라올지 몰라서 대기하고 있었다.
***
딱
“!?”
김준은 누군가 자신의 이마를 때린 순간,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오우! 놀래라?”
“에밀리?”
“Yes! I! Am!”
에밀리는 빵빵하게 감싸진 붕대를 보여주면서 싱긋 웃었다.
“어? 에밀리!”
그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지만, 오늘은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난 은지가 오늘자 드레싱을 위해 구급상자를 가지고 왔다.
에밀리는 은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바로 엄지를 올렸다.
***
“하아… 진짜 눈물나네.”
은지는 붕대를 풀고 에밀리의 상처를 보자 할 말을 잃었다.
겨우 타이로 꿰맨 것을 일일이 뜯어낸 다음 감염부위를 도려내 움푹 들어가 피가 배어 나오는 등의 상처.
그 모습에 언제나 차분하고 포커페이스를 가지던 은지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짓씹었다.
“좀 아플거래.”
“어제보단 덜 하겠지.”
은지가 일단 마리에게 배운대로 소독용 알코올에 푹 절여진 솜을 꺼내 파인 부분마다 올려대서 꾸욱 눌렀다.
피와 알코올이 쭉 올라올 때, 더 이상 녹색의 딱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기침했어?”
“걸쭉한거 하나 나왔는데, 그 뒤로 상쾌해.”
은지는 그 말을 적어둔 다음 마리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알코올로 닦아낸 뒤로 요오드를 바르고, 분말형 마데카솔을 뿌리고 새 거즈를 덮었다.
“상처… 빨리 나아. 흉터는… 좀 남겠지만… 기운 내고….”
은지가 붕대를 감으면서 손이 떨릴 때, 에밀리는 고개를 휙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
“원래대로 돌아가면 타투 할 건데?”
“…뭐?”
“트라이벌로 말이야. 드웨인 ‘더 락’ 존슨처럼 사모안의 심볼을 등과 어깨에 똬앟! 나중에 탱크탑 입고 새로운 에밀리아의 트레이드 마크로 똬앟!”
“….”
에밀리는 이까짓 흉측한 상처 따위, 나중에 나으면 타투로 커버 업 할 거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은지는 그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에밀리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작게 속삭였다.
“난 Scar Back이 아니야.”
“!?”
에밀리의 그 말을 듣고서 은지가 흠칫하며, 순간적으로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말에 대해 전혀 정정할 생각이 없는지 새 붕대가 감긴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숨길 게 뭐 있어? 내가 갱스터 짓 하다 생긴 흉터도 아닌데.”
“…그만해.”
“오케이~”
에밀리는 흥얼거리면서 오늘은 맛 대가리 없는 죽 말고, 꼭 고기 먹을 거 라면서 인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방 안에 남아있던 은지는 에밀리의 피고름 잔뜩 묻어있는 거즈와 붕대를 치우면서 작게 속삭였다.
“저 씨발년….”
절대 안하던 욕과 포커페이스 유지 실패.
그 뒤로 은지의 눈동자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