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9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 * *
김준과 라나가 헌책방 안에 들어가서 물자를 챙기고 있을 때, 에밀리는 석궁을 들고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달그락
“응?”
에밀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들린 소리에 석궁을 겨누면서 옆의 슈퍼 쪽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아서 계속 석궁을 겨누면서 긴장하고 있을 때, 5분 정도의 대치 끝에서 천천히 다가갔을 때 다시 슈퍼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끼이이이이
찌익 찍
그 순간 손가락 만한 작은 생쥐 하나가 후다닥 도망가면서, 하수구로 들어간 것을 본 에밀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 그렇지.”
설마 좀비가 튀어나왔겠냐면서 쥐가 도망간 곳으로 화살을 겨누다가 이내 석궁을 내려놓고 김준이 책 가지고 나오면 그거 나르려고 헌책방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작스런 기습이 있었다.
쿵 쿵
“!?”
에밀리가 고개를 돌린 순간 눈 앞에서 번득이는 식칼을 들고 달려드는 그림자가 있었다.
“왓 더….”
에밀리가 재빨리 석궁을 겨눠 그 놈들을 잡으려고 했을 때, 그들은 힘으로 그녀를 찍어누르고 석궁을 떨어트렸다.
쿠당탕탕!
“우웁!!”
“아이 씨발년이!”
짝
자신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에밀리는 고개를 틀면서 깨물었고, 뒤에있던 다른 그림자가 에밀리의 뺨을 후려치면서 확실히 제압했다.
“잡았다 요년.”
“어이구, 이거 한국년이 아니네? 양키야?”
에밀리의 찰랑이는 금발을 확 잡아당긴 제일파 조폭들은 곧바로 그녀의 하얀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주변을 살폈다.
“안에 몇 놈 더 있어. 조용히 있다가 한 번에 잡자.”
“으븝!”
“이 년은 데려가야겠지? 씨발. 신릉면때 그년들 없어져서 찾았는데 말이야.”
그들은 김준과 라나가 나올때까지 기다렸고, 그 상황에서 두 세력이 결국 마주쳤다.
***
“한 년 더 있네?”
“씨발새끼, 능력 좋다? 두 년 데리고 다니냐?”
“….”
김준은 엽총을 든 채로 계속 조폭들과 대치했다.
“제일파 새끼들이지?”
“나 아냐?”
“소사벌에서 사시미 들고 다니는게 니들 밖에 더 있냐?”
“시끄럽고 총이나 내려놔. 안 그러면 이년 죽는다.”
탁
에밀리의 목에 칼이 점점 가까워졌고, 그 중 한 명은 김준을 제압하기 위해 서서히 다가왔다.
철컥
“어 어 진짜 이 백마 년 모가지 뚫어줄까?”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필 들고 있는 것도 엽총, 그것도 멧돼지 탄이라 쏘는 순간 산탄이 사방으로 퍼져 제일파 둘은 물론이고, 에밀리까지 맞게 된다.
그렇다고 내려놓는 순간 두 놈 중 하나가 달려들 텐데, 그러면 이 거리에서 칼 맞으면 진짜로 죽을 수 있다.
제일파 칼잡이 놈들과 싸운지도 벌써 세 번째.
김준은 그 상황에서 계속 대치하다가 칼끝이 에밀리의 목을 찔러 들어가자 일단 총을 천천히 내려놨다.
“그래, 천천히 내려 놔. 그년은 두고, 우린 이 년만 데려간다.”
에밀리를 제일파 본진으로 끌고가려는 제일파를 보고서 이러다간 정말로 당할 수 있다는 상황.
그때 라나가 뒤에서 크게 외쳤다.
“어! 오빠 저기 좀비!!!”
라나의 외침에 에밀리를 잡은 조폭들은 코웃음을 쳤다.
“미친년 이빨을 까려면 좀 그럴 듯한….”
“어?! 씨발 철희야! 뒤에?”
“!?”
순간 두 조폭 중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가 서서히 이리로 다가오는 좀비를 발견했다.
“뭐야? 씨… 아악!”
그 순간 붙잡혀있던 에밀리가 손으로 자신을 붙잡고 있던 조폭의 허벅다리를 꼬집고는 움찔 거릴 때 확 튀어나왔다.
“이 썅년 진짜!”
촤아아악
“!!!”
순간 에밀리의 등을 향해 기다란 사시미 칼이 휘둘러졌고, 가죽 재킷이 찢어지며 그녀가 김준 앞에서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야이 새끼야!!!”
탕 탕 탕
김준은 허릿춤에 있는 권총을 뽑아들고, 두 쓰레기들을 향해 갈겨댔다.
엽총만 생각하고, 김준이 떨어트린 것을 잡으려고 하다가 에밀리의 등을 칼로 내리친 놈의 머리통이 권총탄에 꿰뚫렸다.
“이런 미친!”
탕
“크억!!!”
근거리에서 총을 맞고서 쇄골과 가슴팍이 뚫린 두 번째 조폭은 비틀거리다가 후다닥 달아났다.
“개새끼! 넌 내가 죽인다!”
김준은 바로 권총을 들고서 달아나는 제일파 조폭을 쫒았다.
“나라야! 에밀리 상태 봐줘!”
“언니! 에밀리 언니!!!”
라나는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울먹이며 에밀리의 상태를 살폈다.
칼에 찢긴 가죽재킷과 스웨터 너머로 점점 피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김준은 바로 쫒아가서 골목에서 비틀거린채 피투성이로 차 앞에 손을 댄 제일파 조폭을 발견했다.
소형 라보에 여기저기서 긁어온 파밍 물자가 가득한 차를 보고서 김준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히, 히익….”
탕
촤아아악
총알이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고, 뒤이어 차 유리창까지 깨트렸다.
뇌수가 사방에 튀면서 서서히 쓰러져간 제일파를 두고, 김준은 허릿춤의 총알을 꺼내 리볼버 실린더를 열고 천천히 장전했다.
“후….”
으어어 으어어어
그때 라나가 발견했던 좀비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걷는 좀비들이어서 김준이 이 자리에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탕 탕 탕!!!
김준은 다가오는 두세마리의 좀비까지 확실하게 처리한 다음, 심호흡을 하면서 라보에 담긴 제일파의 루팅 물품 박스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뭐가 얼마나 들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훑은다음에 바로 돌아갈 것이다.
박스 네 개를 한 번에 들고 달려올 때, 라나는 울상으로 에밀리의 등을 누르고 있었다.
“나라야! 에밀리 어때?”
“안… 죽었어.”
에밀리는 김준의 말을 듣고서 엎드린 상태로 손을 슬쩍 들어올려 흔들었다.
“오빠, 언니 피 계속 나요.”
“안으로 들여. 가자!”
김준은 짐을 전부 씻고서 바로 차에 올라타 준비했다.
그리고는 집 근처로 갈 때 바로 무전기로 마리에게 상황에 대해 말했다.
칼 맞아서 다친 사람이 있으니 당장 수술 준비해달라는 것이었고, 마리는 급히 준비하겠다고 답장했다.
“으흑, 흐에엥 에밀리 언니 진짜 어떡해?”
“나 안 죽는다니까. 봐바, 팔 움직이는 것도 문제없잖아.”
“피 너무 난다고요!!!”
“눌러.”
저세상 멘탈이라는 거 여러 번 보여줬지만, 칼 맞은 상태에서도 걱정하는 라나 앞에서 태연했다.
“에밀리 너 진짜 수술받고 푹 쉬어라! 내가 진짜… 미안하다.”
“응~ 문제 없어. 살짝 까진거야.”
오히려 에밀 리가 김준과 라나의 멘탈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김준은 은지가 만들어준 스웨터를 벗은 채 상반신이 피로 젖은 에밀리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는 바로 계단을 타고 올라왔고, 이미 이야기를 들었어도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린 그녀를 보고서 모두들 경악했다.
“세상에 뭐야? 얼마나 다친거야?”
“에밀리 언니! 괜찮아요?”
“어머, 어떡해!!!”
다들 놀라고, 몇몇은 울먹이고 있을 때 마리는 깨끗이 씻은 손에 새 옷과 마스크를 쓴 채로 미닫이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차차 흐르고 있을 때, 김준은 밖에서 담배를 연달아 태워대고 있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중 집에서 은지가 천천히 나왔다.
주변에 담배연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손으로 휘휘 흔든 다음 그의 옆에 앉아 음료수를 건넸다.
“박스에 있는 거 별의별 게 다 있더군요.”
“후”
은지는 그 와중에도 무섭도록 침착했다.
에밀리가 지금 마리한테 치료 받고 있는 동안, 은지는 나니카에게 수술 보조를 맡기고, 남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각자의 일을 맡겼다.
에밀리랑 같이 나갔다가 멘탈이 나가서 펑펑 울고 있는 라나를 맏언니 가야에게 맡겨서 위로해주라고 방에 보냈고, 인아, 도경, 나니카와 같이 차 안에 있는 물자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책은 뭐 이것저것 있었고, 박스 까보니까 소주에 양주에 통조림도 잔뜩 있더라고요. 그것도 동원참치.”
“후우, 챙겨오길 잘 했네.”
“오징어랑 쥐포도 있어서 잘 보관하다가 다음에 먹으려고요.”
“그래.”
“그리고 마지막 상자는… 좀 말하기 그러네요.”
“음?”
“분명히 말하지만… 전 필요없어요.”
“갑자기?”
은지는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끝내고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때 마리가 나오면서 피와 요오드 용액이 잔뜩 묻은 장갑을 벗어내면서 비틀거렸다.
“마리야!”
“어떻게 됐어?”
“휴우우”
마리는 피투성이의 수술 장갑을 벗으면서 상황에 대에 말했다.
“조금만 비껴나갔으면 경동맥이 끊어졌고, 안에 스웨터 아니었으면 폐가 뚫렸을 것에요.”
“그렇게 심각해?”
“다행히 지금은 상처 소독하고 봉합해서 수술 잘 됐어요. 한 5~6주 정도 덧나지만 않게하면 다 나을거에요.”
“고맙다. 진짜….”
김준이 마리의 손을 잡고서 연신 감사를 표할 때, 그의 죄책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리나 은지나 길게 한숨을 쉬는 김준을 보고서 이번 일은 정말로 위험했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밀리가 수술 받으면서 한 말인데, 살아있는 인간들한테 습격당한거라면서요?”
“그렇지.”
“역시… 그때 일은….”
“!”
마리가 ‘그때 일’이라고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려고 하자 김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는 그 정신적 충격 속에서 영원히 기억을 봉인하고, 입을 맞춰서 서로 없던 일로 하자고 했지만,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니 마리에게 있어서 이건 자신도 잘못한 일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때 일?”
“내가 처음 루팅 나갔을….”
그 순간 은지는 손가락을 펼쳐 마리의 입을 막았다.
“됐어. 그럼 한참 전 일이네.”
“아니, 저기 은지야?”
김준도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은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지금은 에밀리 낫는거랑 라나 멘탈나간거 애 돌볼 생각하자고요.”
은지는 처음부터 둘이 그때 뭔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지금 까지 숨긴거면 이제 와서 꺼내지 말라면서 2층에 있는 에밀리와 라나의 상태를 보러 올라갔다.
그리고 김준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쨌건 이제부터는 에밀리가 낫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로 인해 당분간은 루팅 없이 집 안에서 모두가 그녀를 돌보기로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