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123 환상의 콤비.
* * *
김준 일행과 황 여사 일행 모두가 각자의 필요 물자를 위해 비오는 날에 움직였다.
철컥
김준이 엽총을 장전하면서 슬러그탄을 꽉꽉 채웠다.
일전에 스페어 탄으로 돼지탄이나 꿩탄을 잔뜩 챙긴지라 당분간의 총알 부족은 없을 거다.
“역시 총이 있어야 하는데.”
“쏠 수는 있고요?”
“그게 뭐가 중요해? 살려면 들어야지.”
“그러다 사고나요.”
김준이 총을 채웠을 때, 황 여사를 대신해서 두 바텐더가 나왔다.
그들의 무장은 황여사가 말한 수백만원짜리 두꺼운 밍크코트, 그리고 걸레질 할때쓰는 밀대였다.
“그건 또 뭐야?”
“새총보다 이게 낫더라.”
“!”
은별은 나무자루로 된 대걸레에 앞에는 철판을 붙인 밀대를 보며 말했다.
“옛날에 가게에서 싸움나면 오빠들이 쓰던거였어. 술취한 놈들이 유리병 깨고, 어떤 미친놈들은 칼까지 뽑으니까 청소도구함에서 이거 꺼내다가 걸레 부분 뜯어내고 확 밀쳐버리면 바로 자빠지더라고.”
“직접 생각한거였어?”
“응, 저번에 다방에서 지팡이에다 자전거 안장 가르쳐 준것도 있잖아.”
김준은 그 말에 엄지를 올렸고, 가야와 라나는 그녀들을 보고서 뭔가를 느낀 얼굴이었다.
잘 다녀오라는 배웅을 받으면서 차에 탔을 때, 아직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방앗간이면, 여기서 어디로 가지?”
“직진해서 두 블록 간 다음에 우회전, 그러면 슈퍼 하나 있는데 그 옆에 [형제방앗간]이라고 있어.”
“오케이 가 볼게.”
뒷좌석에서 은별의 설명을 들은 김준은 사방을 살펴보면서 천천히 움직일 때 빗속에서 좀비가 나타났다.
“오빠!”
“봤어.”
가야가 정면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좀비를 보고서 당황하다가 대쉬보드의 너트를 집었고, 김준은 차를 돌려서 천천히 샷건을 들었다.
좀비의 수는 딱 둘.
비를 맞으면서 추적추적 다가오는 것이 여기저기 썩은 몸이 퉁퉁 불어있어 평소보다도 느릿거렸지만, 방심 할 수 없었다.
김준은 2연발 엽총을 들고서 창틈으로 총구를 내민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멧돼지 잡는 벅샷의 쇠구슬이 좀비 두 마리의 전신을 꿰뚫었다.
철컥
김준은 탄피 두 발을 받아낸 뒤로 다시 장전했고,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는 좀비를 보고서 그대로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드드드득
사람의 형상을 한 좀비들을 그냥 트럭으로 깔아뭉개고 갔지만,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김준은 그 뒤로 끊임없이 주변을 수색하면서 은별이 말한 두블럭 지나 우회전을 하고 가게를 찾았다.
“저기네.”
형제방앗간이라는 간판을 발견하자 김준은 그 앞에서 천천히 차를 댔다.
그때 은별이 뒤에서 말했다.
“뭐 있을지 모르니까 좀 기다려보자.”
“누나, 그거 아주 좋은 태도야.”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자리에서 클락션을 세게 눌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변을 소음으로 뒤흔들었을 때, 차 안에 있는 인물들은 긴장한 얼굴로 기다렸다.
“아, 저기! 뒤에!”
“!?”
“오빠, 저기 있어요. 저기!”
은별과 라나가 동시에 뒤에서 나오는 좀비를 보고서 외치자 김준은 차를 다시 돌려 그 존재를 확인했다.
[으어어어]
[어어 흐어어어]
두 손을 뻗은 채로 서서히 나오는 좀비들을 보고서 그 수를 세 본 김준은 캐리어에 있는 산탄을 챙긴 다음 바로 엽총을 준비했다.
탕 탕 철컥 탕 탕
굉장히 빠른 2연발 산탄총의 장전과 발사.
비가 오는 날에 연기가 뿜어졌지만, 기침 하나 하는 이가 없었다.
김준은 조금도 쉬지 않고 걸어다니는 좀비들이 땅바닥에 붙을때까지 샷건을 쏴 댔다.
“….”
전부 쓰러진 좀비들을 확인한 김준은 잠시 동안의 시간으로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확실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좀비를 확인하고 그놈들의 피가 빗물에 흘러내리면서 씻겨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차에서 나왔다.
“뒤에서부터 천천히!”
“네!”
라나가 재빨리 더블백을 메고서 내려왔고, 은별과 나미도 천천히 나와 주변을 살폈다.
“가야야. 너도.”
“네? 아, 네!”
뒤에서 다들 나오자 조수석에 있던 가야도 천천히 내렸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먼저 셀로판지가 붇은 유리 미닫이 문을 보고서 천천히 안을 살펴봤다.
“안에 좀비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바로 들어갈 수 있지 않아요?”
가야의 물음에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앗간이잖아. 다른게 있을수 있지.”
“!?”
쾅!
김준이 바로 문을 연 순간 그 안에서 수많은 벌레가 튀어나왔다.
“꺄앗!”
“팅커벨 오랜만에 본다 진짜….”
문을 연 순간 날개에 수상한 가루가 잔뜩 묻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전부 쌀이랑 밀 갉아먹은 벌레들이 고치 치고 자라난 것들이었다.
방앗간 안에 고소한 냄새 속에서 천장부터 벽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나방과 집게벌레들이 있었다.
“꺄앗! 벌레!”
김준은 괜스레 집 안에서 쥐가 나왔을때가 떠올랐다.
뒤에 있는 은별과 나미를 보고서 이 상황인데 가져가겠냐고 슬쩍 눈짓했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같아서는 에프킬라 두 통 들고 안에 싹 다 뿌리고 싶었지만, 이 안을 생각하면 자살행위였다.
“이건 챙겨도 될거야.”
“음….”
은별이 가리킨 것은 소주병에 고무 마개로 단단히 밀봉된 기름들이었다.
“참기름, 들기름… 잔뜩도 있네?”
김준은 그것을 한 번 들고 안에 혹시 벌레라도 들어갔는지 유심히 보다가 밀봉 상태가 괜찮은 것을 보고서 라나를 불렀다.
“라나가 이거 전부 담아.”
“네, 오빠!”
“참고로 난 참기름이 좋아.”
“…아, 네.”
유리병에 [참기름], [들기름]이라고 새겨져 있으니 분류하는 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나미 쪽도 같이 가방을 들고서 기름들을 챙길 때 김준은 가야와 은별을 데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탈곡기와 곡식분쇄기가 있었지만, 손이 끊긴지 옛날이라 몇몇 개는 거미줄이 쳐 지고, 거기에 나방과 바구미가 잔뜩 걸려 있었다.
가야는 그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이런 위생상태에서 먹을 걸 챙길 수 있을까 싶었다.
“누나, 한 가지 말하는데 쥐 꼬였으면 난 못 챙겨.”
“쥐는 없을거야. 여기 가게 사장님 말로는 위생 엄청 철저하대.”
“별로 안 그래 보이는데….”
방앗간 하면 떠오르는 떡국용 썰어놓은 흰떡과 가래떡, 면 등이 있었지만, 곰팡이 꽃이 가득해서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다 썩은 떡이랑 면들 있는 곳을 지나 은별이 안쪽의 철문을 가리키자 그 안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스테인레스 문이 있었다.
라벨도 제대로 뜯지 않아 [만도냉동]이라는 상표까지 붙어있는 탱크였다.
김준은 모두 비켜보라고 한 다음, 허릿춤에 손도끼를 꺼내서 자물통을 만지더니 그대로 내리쳤다.
쾅 쾅 덜그럭 쾅!!!
동네 철물점에서 몇 천원 주면 사는 자물쇠는 도끼로 몇 번 내리치자 경첩 부분의 나사가 빠지며 덜렁거렸고, 김준은 힘을 줘서 마저 뜯어냈다.
쾅!!!
끼이이이이
창고 문을 연 순간 그 안에는 새까맸다.
김준이 HD등을 틀어서 비추자 그 안에는 합성섬유 포대로 잔뜩 쌓여있는 곡물들이 있었다.
“와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의 엄청난 양.
하지만 김준은 그 상황에서 연신 비춰보면서 정말로 쥐가 없는지를 살폈다.
“내가 알아볼까?”
“음?”
“하나 들어보면 돼.”
은별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밀가루 포대 하나를 손으로 집어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쥐가 파먹었다면 쏟아졌거나, 포대 위에 쥐똥같은거라도 보였겠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흐음.”
“여기 아예 밀봉된 상태였어. 밀, 쌀, 고추, 찹쌀 죄다 여깄어.”
김준은 그것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꺼낼 준비를 했다.
“가야야 카트 가져와.”
“네, 오빠.”
“우리도 챙겼어. 내껏도 가져올게.”
이미 나오기 전에 전부 준비한 은별은 가야랑 같이 나가서 차 안에 손수레를 가지러 갔다.
김준은 어쨌든 찹쌀이건, 밀가루건, 쌀가루건 방앗간에서 잔뜩 빻아놓은거 챙기게 생겼다며 피식 웃었다.
오늘의 성과에 승리의 담배라도 태우고 싶었지만, 분진 풀풀 날렸는데 라이터 들었다간 전부 뒤지자는 뜻이니 참기로 했다.
두 카트에서 안에 있는 식량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끄으응!”
“언니 같이 들어요.”
“괜찮아.”
가야가 40kg 밀포대 하나 들고서 힘겨워하자 라나가 도와주려 했지만, 그녀는 직접 들어 카트에 떨어트렸다.
팡 팡
“오케이!”
“….”
반면 은별과 나미는 둘이서 호흡을 맞춰서 손쉽게 쌓아올린다음에 둘이서 카트를 밀고 당기면서 차로 갔다.
가야는 손발이 척척 맞는 둘을 보고서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방앗간 가루들을 잔뜩 채우고 혹시 모르니 다음을 위해서 문을 닫고 앞에다가 농기계 하나를 괴어서 아무것도 못 들어가게 막은 김준.
방앗간 털이는 대성공이었고, 차에 탔을 때 은별이 말했다.
“준이 너도 필요한 거 있다며?”
“우린 흙하고 농기계.”
“안내해줄게. 여기서 쭉 가면 꽃집 하나 있어.”
“오케이!”
“거기 할머니가 밤만 되면 장미꽃 다발 들고다니면서 바같은데 들려서 팔곤 했는데, 한 송이 2천원씩.”
“….”
공단 유흥가의 로망으로 바텐더 아가씨들이 손님들에게 제법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김준은 옛날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누나도 엄청 받지 않았어?”
“그랬지. 홀복입고 가만히만 있어도 아재들이 사와서 테이블에 팁 주는 유리병을 꽃병으로 만들었잖아.”
은별이 김준과 대화를 하면서 파밍 상황에 유쾌하게 움직이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루팅 장소로 꽃집을 발견하자 김준은 똑같이 상황을 살핀다음 협소한 공간의 가게를 천천히 열어봤다.
안에는 죄다 시든 꽃들과 화분이 가득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죽음의 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 하나 살아있는 식물이 없었다.
“쯧.”
김준은 안을 둘러보면서 멀쩡한거라고는 장식용 조화밖에 없는 꽃집 안에서 꽃씨와 야채 씨를 챙겼다.
“화분용 흙이라고 했지? 내가 찾아줄게.”
“어어, 어딨는지 알아?”
“여기 사장님 화분 영양제 사는걸로 자주 왔었어.”
은별은 그렇게 말하면서 동생 나미를 데리고 찬장 한 곳을 열어서 배양토를 찾았다.
“됐다. 이거 싯자!”
5리터와 10리터짜리 포장된 흙을 찾은 은별은 자기들 카트로 하나하나 담았다.
라나는 조용히 보고 있다가 재빨리 다른 물건을 찾았고, 가야는 뒤늦게 술집 아가씨들이 움직일 때 따라서 거들었다.
“오빠! 여기 찾았어요.”
“오케이.”
원예도구 셋트로 갖춰진 호미, 갈퀴, 꽃삽 작은게 박스에 담겨있자 그걸 통째로 들어서 나르는 라나였다.
김준은 비어있는 중소형 화분들도 언젠간 쓰일거라면서 잔뜩 챙겼고, 캠핑카는 각종 재료로 넉넉하게 쌓였다.
두 번째 루팅까지 마쳤을 때, 김준은 느긋한 얼굴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나도 줘.”
은별의 말에 김준은 한 대 건네줬고, 같이 담배를 피던 둘이 이야기했다.
“일단 우리 집에다가 내려주고, 추가로 뭐 나를거 있어?”
“글쎄… 냉장고 나르는 거 빼고는 공간이 꽉 차가거든?”
“그럼 아예 날짜 잡고 다음에 올래? 사냥 좀 해줘. 잡아오면 다 손질할게.”
“뭐?”
사냥이라는 말에 김준의 귀가 쫑긋했다.
“사장님이 운영하던 옻닭집이랑, 영양탕집 있잖아. 거기 사육장에 있는 애들 다 도망가고 공단 야산에 있어.”
“어우~ 난리도 아니겠다.”
“닭이랑 토끼 막 다니니까 잡으면 고기거든? 어떻게 될까?”
김준은 사냥이라면 마다할게 없다면서 다음에 한 번 거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누나네가 손발이 잘 맞네?”
“우리가 남자 분위기밥을 몇 년이나 먹고 산 애들인데….”
은별의 말에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담배 꽁초를 던지고 차에 올라탔다.
오늘 하루 루팅은 대접도 잘 받았고, 필요한 것도 전부 챙긴 최고의 성과였다.
하지만 오늘 동행했던 아이돌의 얼굴은 좋아함 속에서도 어딘가 묘한 감정이 계속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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