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119 가장 털털한 애가 야하게 나오면?
* * *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바깥에는 좀비들이 있지만, 안에서는 특별한 음식을 먹으면서, 고급 술까지 까서 서로 먹고 마시면서 깔깔거리는 상황 말이다.
김준은 비 오는 날에 와인과 술안주를 먹으면서 서로 간의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가 할 말 안 할 말이 나왔다.
“그러니까요~ 갑자기 기자들이 오는 거야. 걔하고 사귀냐고요. 아, 근데 난 아니거든? 걔들 소속사 사장하고, 우리 사장님하고 친하대서 콜라보 공연 조율한다고 얼굴 보라고 한 거였어!”
“아, 진짜? 난 그거 뉴스 보고 진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그것도 다 거짓말이야!”
김준은 술을 먹다 아이돌들에게 지난날의 루머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인아가 보이그룹 GTS의 리더와 열애설이 났다고 사진 찍힌 거 이야기를 하자, 그때 그거 아니라고 다른 아이돌들이 전부 이야기했다.
“GTS에 찬영이, 걔 제가 아는 동생인데, 그때 딴 애 사귀었어요. 아마 같은 소속사에 연습생...”
가야가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준은 와인을 쭉 비우면서 남은 애들을 바라봤다.
가야, 에밀리, 인아, 라나.
가장 먼저 들어간 게 은지였고, 오늘은 술 안 받는다고 마리도 같이 들어갔다.
나니카는 술 취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도경이 데려갔는데, 걔도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만 안 돌아온다.
“가끔 니들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
“뭔가요?”
“무대때 입었던 옷.”
“…아!”
여기 있는 아이돌 전부 각각의 코디가 맞춰준 무대의상을 입고서 무대 위에 섰을 때 여신 포스를 냈던 애들이다.
“샌드걸스였나? 연말 시상식때 란제리룩 입고서 공연했던거.”
“아, 그거…”
가야는 그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와인부터 들이켰다.
“사장님이 오늘 주인공은 우리라고 그걸 강행했어요. 나중에 기자들에게 다 이야기했다고 했는데, 죄다 무대 밑에서 플래시 터트렸는데….”
덕분에 그때 앨범이 기록적으로 많이 팔리고, 란제리 브로마이드가 엄청나게 히트쳤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방통위가 뭐라 하느라 수수한 옷만 입고 나왔다는 뒷이야기도 들었다.
“옷 하니까 생각난다.”
“음?”
인아도 떠오르는게 있는지 취한 상태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1년 내내 밀짚모자에 드레스 차림으로만 다녔어요.”
“아, 2집 때였나?”
“네, 컨트리걸… 그거 알고보니까 일본에서 쓰던 아이돌 컨셉이라던데….”
한때 인아가 샤인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할 때, 사시사철 밀짚모자에 흰 원피스 차림으로만 공연을 했고, 그 뒤로 해바라기꽃 모양의 마이크를 든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그 컨셉도 한 철 장사였다.
“난 그래도 그거 다시 입고 싶어. 치어리더 복.”
“스피넬은 진짜 아메리칸 스타일이더라.”
“나 아메리칸 맞아. 절반은.”
지난번 교복점 털어서 코디 맞췄던 배꼽티 블라우스에 찰랑이는 치마는 다국적 걸그룹 스피넬의 트레이드 마크, 혹은 미국 치어리더 복장이나, 할리퀸 펑크 풍으로 입은 모습들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그럼 뭐해? 지금은 사시사철 츄리닝에 티셔츠인데.”
에밀리의 말에 순간적으로 각자의 옷을 바라보는 여자애들.
몇몇은 김준이 입던 티셔츠을 원피스처럼 걸치고 다녔고, 또 누구는 그의 바지를 밑단 줄여서 입고 다녔다.
그래도 속옷은 어느 정도 수요를 채웠지만, 겉옷은 언제 가져와도 부족했고, 대부분은 시골 동네의 아줌마들이 입는 의상점 옷들이라 20대 젊은 소녀들이 입기에는 촌스러워 보였다.
김준은 언제 한 번 다시 옷가게를 한 번 털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저번에 가야 언니 받아온 스웨터 예쁘던데요?”
“그치? 나 그거 보고 뜨개질 다시 하고 싶더라.”
“저도요! 같이 만들어요!”
인아와 가야가 의기투합해서 내일 다시 뜨개질로 직접 옷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흐아암.”
에밀리는 오늘 분위기에서 섹스 각 잡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빨개진 얼굴로 꾸벅꾸벅 졸다가 라나의 어깨에 기댔다.
언제봐도 피부색이 신기했는데, 창백할 정도로 하얗다가 술만 들어가면 완전 홍당무가 됐다.
“슬슬 정리할까?”
김준의 말에 인아와 라나가 슬며시 일어났고, 기대고 있던 에밀리가 풀썩 쓰러졌다.
“아오~ 진짜 이 년 술버릇은….”
“으응~ 응!”
가야는 에밀리의 몸을 일으키고서 데리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남은 그릇은 싱크대에 바로 담은 두 소녀로 인해 정리가 빠르게 됐다.
그리고 김준은 담배를 들고서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방에서 빼고는 밖에 나가서 담배를 태우곤 했다.
옛날엔 집 여기저기서 막 피웠는데, 같이 사는 애들이 많아지다보니 계속 인식이 됐다.
“아직도 비가 오냐?”
그래도 낮에 비하면 빗줄기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이러다간 진짜 장마철처럼 기후가 바뀔 것 같았다.
김준은 조용히 캠핑카 안에 들어가서 차 상태 체크하려고 문을 열었다.
그때 어째서인지 불이 켜진 차 안에서 장신의 미녀와 눈을 마주쳤다.
덜컥
“으읏!?”
“음?”
안에 도경이가 있었다.
“여기서 뭐하… 어우!”
“그, 그게요!”
오싹오싹거리면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부끄러워하는 도경.
그녀는 분명 아까 나니카 데리고 들어갔었다.
그런데 옥탑방이 아니라 캠핑카에 있었고, 게다가 옷차림과 얼굴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언제나 부스스한 머리에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은 고데기로 말아 스타일링을 했고, 얼굴엔 옅은 화장을 해서 입술과 볼에 포인트를 줬다.
그리고 옷차림도 이전의 도경이와는 전혀 달랐다.
타이즈 숏팬츠 차림에 헐거운 티셔츠 한 장, 안에는 스포츠 브라가 드러나도 별 신경 안쓰던 애였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에 검스까지 갖춰 입어 잔뜩 꾸민 상황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도경의 풀메이크업+꾸민 옷에 김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그게요! 이건…”
“앉아봐.”
“아흣, 네!”
연신 부끄러워하면서 치맛단을 잡을 때, 그녀의 큰 키에 대비되게 짧은 원피스는 간간이 스타킹으로 채워진 엉덩잇살을 드러냈다.
이미 한 번 벗은 몸도 봤는데, 이걸 더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김준은 냉장고에 있는 물물교환용 와인을 들고, 도경을 앉혔다.
예전같이 양반다리도 아니고 다리를 모아서 조신하게 앉고는 연신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김준은 코르크 마개를 따면서 말했다.
“편히 앉지 왜 그렇게 불편하게 앉아?”
“저기, 그러니까….”
갑자기 밤에 꾸민 모습도 신기했는데, 안 그러던 애가 부끄러워 하니까 진짜 색다른 맛이 있었다.
“밤 중에 패션쇼?”
“그런 거 아니… 맞아요!”
도경은 새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김준은 더 해보라는 투로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부끄러움 속에서 움찔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서운했다고요.”
“뭐가?”
“저도 꾸미질 않아서 그렇지 엄연히 아이돌인데, 맨날 무거운거 나를때만 부르고, 못질이나 톱질할 때 시키고….”
“…아.”
“난 처음도 오빠하고 했는데.”
도경은 그동안의 일로 굉장히 쌓인게 많아 보였다.
김준이 생각해도 확실히 도경이는 예전부터 우월한 피지컬을 앞세워 작업하는데 주로 시켰다.
처음 시킨게 전기 만지는 일이고, 그 뒤로 톱질, 못질, 물건 나르는 거 역시 그녀가 말한대로였다.
“오빠, 제가 라나나 나니카같이 귀엽지가 않아서 그런거죠?”
“아니야~ 너는 그래도 키도 크면서 몸매 좋잖아? 모델 같다고.”
“칫, 한 번 쳐다도 안 봤으면서.”
“한 잔 해.”
김준이 와인을 따라주자 마지못해 한 잔 받고는 건배를 하며 쭉 들이키는 도경.
그리고는 그녀를 천천히 보면서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눈에 담았다.
크러쉬 걸의 센터, 압도적인 피지컬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여성팬들을 구름떼처럼 모았던 그녀였는데 여자 취급 못 받는 것에 대해 얼마나 슬펐을까?
나름 자기도 여자이고, 아이돌인데 노가다 일만 시키니 토라진 것은 당연, 그래서 혼자 나와서 여기저기 꾸며보고서 거울을 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뭐?”
“오빠는 꼭 회식하면 새벽에 여기 들어오더라고요.”
“….”
“오늘도 올 것 같았지. 다른 애들 데리고 오면 모르겠지만.”
아예 작정하고 꾸민 다음에 기다린 것이었다.
김준은 와인잔을 쭉 비운다음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부끄부끄 하면서 자기 몸보다 짧은 원피스 치맛단을 매만진채 앉아있는 그녀를 보고서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불편하겠다. 다리 이쪽으로 뻗어 봐.”
“다리요?”
“응~”
도경이 조용히 다리를 펴자 저린 상황에서 스타킹에 쌓인 허벅지를 몇 번 두들겼다.
덩치에 비해 평범한 발과 발목이 상당히 가늘었다.
김준은 도경의 두 다리를 무릎 위에 올리고서는 그 발을 조물거렸다.
“읏! 응~”
김준이 스타킹 발가락을 조물거리자 부끄러운 듯이 더욱 얼굴이 새빨개진 도경.
“그렇게 서운했어?”
“…몰라요.”
새삼스럽지만, 배구선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다리가 굉장히 길었고, 스타킹까지 신으니 그 각선미가 남자를 미치게 했다.
특히 오밀조밀한 발을 만질때마다 계속 움찔움찔 거리는데, 그 반응이 좋아서 계속 주물거렸다.
발 마사지 이후로 도경은 달아오른 상태로 슬며시 김준에게 다가왔고, 은은한 향수 냄새가 코를 간질겼다.
그때 김준은 장난스럽게 스타킹 발을 조물거렸던 손을 코 끝에 댔다.
“목욕하고 지금 신은거라고요!”
“흐음~ 킁킁!”
“냄새 안 나!”
다리를 부르르 떨고 있던 도경을 보고 김준은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휘감았다.
“으읏?!”
한 팔로 확 끌어안은 김준은 샤워를 하고 온 뒤 은은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이마에 키스를 해줬다.
순간 설레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도경.
“입 벌려봐.”
“으에”
김준이 턱 끝을 잡고 말하자 립스틱을 발라 촉촉한 빨간 입술이 열렸고, 혀가 드러났을 때, 그 역시 참지 못하고 얼굴을 맞닿았다.
이렇게까지 꾸미고 와줬는데, 오늘 그녀의 소원 제대로 풀어줄 셈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