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118 자택근무.
* * *
아침이 밝고도 비는 사정없이 쏟아졌다.
그동안 이 정도의 호우를 못 느낀 아이돌들은 막연히 바깥을 보면서 혹시나 다른 좀비가 보이지 않을까 찾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부엌에서는 매콤한 냄새를 풍기면서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후룹”
“어때요?”
“잘 끓였네. 맛있다.”
은지는 인아가 끓인 김치찌개를 맛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칭찬을 받은 소녀는 계속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다들 주목! 일단 상부터 펴고 아침 식사 준비하자.”
“가야 언니! 준 오빠 아직 안왔….”
덜컹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우비를 입고도 흠뻑 젖은 김준이 머리를 털면서 들어왔다.
“시발, 비 한번 존나게 많이 오네.”
“아! 오빠!”
현관에 들어온 목소리를 듣고서 우루루 달려오는 톱스타들, 그리고 김준이 신발을 벗고 뒤집자 빗물이 쭉 쏟아졌다.
“가야야. 신발빨래 되냐?”
“아, 네! 제가 할게요.”
푹 젖어서 흐물거리는 김준의 운동화를 든 가야는 바로 세탁실로 달려가 대야에 표백제를 풀고 신발을 담가놨다.
김준이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 거실에서는 이미 오늘의 아침상을 다 차려놓은 상태였다.
멧돼지 살코기가 둥둥 떠 있는 김치찌개를 본 김준은 앉자마자 국자로 한 그릇 넉넉히 펐다.
“자, 먹자!”
김준의 말이 끝나자 각각 수저와 젓가락을 들고서 아침 식사의 시간이 됐다.
새벽에 갑작스럽게 일어나 공포에 질렸다가, 김준이 해결해준 다음에 먹는 식사.
잠결에 일어나 총을 챙기고 나와 좀비를 잡고 온 김준은 거리낄 것 없이 찌개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그렇게 원한 매콤한 맛을 즐겼고, 다른 아이들도 하나씩 반찬을 들고 밥을 먹었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는 상황이 계속 됐고, 이전과는 다른 싸늘한 분위기일 때 은지가 조용히 말했다.
“인아가 찌개는 잘 끓이죠?”
“그러게~ 인아가 언니들보다 요리는 정말 잘해.”
가야가 은지의 말에 거들어 주자 인아는 요리 잘한다는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이 만든 반찬과 국을 떴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새벽부터 패닉에 빠졌던 아이돌들은 조금씩 이성을 찾았다.
“역시 좀비 잡고 먹는 밥이 제일 맛있지!”
에밀리의 한 마디, 그리고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한입 물자 다들 한 마디씩 했다.
“후우, 아까는 진짜 식겁했어요.”
마리도 한 마디 하자 김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비가 진짜 많이 오네. 저거 탱크 다 채우는 거 아니야?”
도경의 물음에 김준은 밥을 먹으면서 그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호스 교체하면 돼.”
“네? 호스요?”
“양수기 있잖아? 물 끊겼을 때, 빗물 탱크 물 끌어 올려서 옥탑방에 올린 기계.”
“…아! 그거요?”
“어, 지금 2층하고 3층에 관정 파이프 양수기에다 꽂아 쓰면 돼.”
그렇게 되면 관정은 잠시 코드를 뽑아놓고, 빗물만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물론 밥에 대해서는 생수를 쓰고 있기에 크게 문제될 건 없을거다.
“오빠, 그러면 그것도 준비하죠.”
“무슨 준비?”
“박스 정수기 만들어 놓은거요. 그거 대 놓고 차 끓이죠.”
마리의 제안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자. 밥먹고 준비해.”
아무래도 비가 그칠때까지는 자택근무를 해야 될 것 같았다.
***
“자~ 물 새로 왔어.”
“이것도 끓인다?”
부엌에서는 수많은 인덕션과 부루스타가 널려 집 안을 후끈후끈하게 만들었다.
집안에 있는 냄비와 주전자를 죄 쓸어 모아서 지금 내리고 있는 빗물을 바케스로 한 번 걸러내고 바로 티백을 넣어 끓였다.
티백도 여러 번 끓여내서 아예 차 색깔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려냈고, 다 끓은 것을 식혀 그동안 먹고 비웠던 플라스틱 병에 하나하나 담아냈다.
“당분간은 보리차랑 녹차만 마셔야겠어.”
김준은 거실에 점점 쌓이고 있는 빗물 차를 두고서 하나하나 챙겼다.
이것들은 모두 옥탑방에 있는 냉장고로 갈 것이며, 남은 것들은 일단 창고 등에 놓고서 빠르게 처리해야했다.
지금 이 끓인 차들은 향후 물물교환용으로도 쓸 수 있겠다며, 일단 만들 수 있는대로 계속 준비했다.
***
쏴아아아아아
아침에 잔뜩 맞은 비를 다시 나와서 맞고 있는 김준.
그는 호스 끝에 추를 달아서 꽉 차들어가는 빗물 탱크에 집어넣었다.
첨벙!
안에 들어간 호스가 바닥에 닿은 것을 확인한 김준은 마지막으로 체크해본 다음 우산을 쓴 채 양수기를 든 도경과 인아를 향해 말했다.
“스위치 올려!”
“네!”
덜컥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도경이 스위치를 켜자 양수기가 돌면서 바로 2층과 3층으로 물이 올라갔다.
인아는 지금도 쏟아지는 빗속에서 도경을 우산으로 보호해줬고, 물 수급에 대해서 해결을 한 셋은 안쪽 상황을 살펴봤다.
[치직 물 잘 나와! 지금 욕조에 채우고 있어!]
[치직 캠핑카도 오케이! 꽉 차간다!]
가야와 에밀리가 각각 자리에서 물을 받아내면서 채워나가고 있을 때, 김준은 점점 내려가는 기온에 지붕 아래에서 담배 한 대를 태웠다.
“오빠….”
“됐어. 우산 필요없으니까 둘이 쓰고 있어.”
김준은 거리를 벌리면서 축축한 담배 한 대의 연기를 폭우 속에서 뿜어냈다.
아무래도 이 비는 금방 그칠게 아니었다.
***
저녁이 되어서 빗줄기가 좀 약해지긴 했지만, 이미 집 안에 있는 도구들로 물이란 물은 잔뜩 채워놓은 상태였다.
톤 단위 빗물탱크가 꽉 차서 당분간 그것을 쓸 때, 김준은 내친김에 안에 있는 톱스타들에게 말했다.
“아예, 목욕 한 번 쭉 하는게 어때?”
“어제도 했는데?”
“물 같이 쓰면서 샤워하는 거 말고 각자 욕조에 몸 담그고 쫙 밀어도 돼.”
“진짜?!”
“오늘은 기름보일러 돌려서 더운물 계속 나올거다.”
“와씨! 나 지금 할래!”
에밀리의 눈이 반짝였고,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관정 물에 씻은 물을 공유하고 그걸 변기에 넣는 최소한의 위생으로 살아왔던 아이들은 물이 넘쳐나는 상황이니 이참에 맘껏 더운 물을 쓰라고 허락했다.
“나 그럼 욕조에 몸 담글래!”
“같이 해! 나도 들어갈래.”
“자~ 자~ 김준 오빠가 말했으니 움직이자. 새 옷하고 각자 씻을 도구 준비해.”
가야가 손뼉을 치면서 욕조가 있는 2층, 그리고 옥탑방에 3층 욕실을 두고 샤워물 공유제가 아닌 오늘 하루는 때까지 밀 수 있을거다.
그렇게 2층에는 에밀리, 도경, 가야, 마리같이 욕조 거품 목욕 좋아하는 애들이, 나니카와 인아는 둘이서 더운 물이 준비됐다는 말에 타월과 바디워시, 로션까지 가지고 올라갔다.
딱 한 명을 빼고 말이다.
“넌 왜 안 가?”
다른 아이들 더운물로 씻고 있는데 은지는 조용히 머리만 푼 채, 들어가지 않았다.
언제나 단정하게 땋던 머리가 풀리자 그때의 기억이 떠 올라서 갑자기 설레는 김준.
은지는 머리끈 여러개를 옷에 담고서 머리를 찰랑이고는 거실의 옷가지들을 챙겼다.
“전 이따 하죠. 혼자 씻는게 좋아요.”
“그렇게 좋으면, 내 방가서 씻어.”
“…?”
“거기 1인용 쓰기 딱 좋을거다. 아무도 없어.”
“오빠 방에 들어가서… 씻으라고요?”
“난 캠핑카 갈거니까.”
말 나온김에 자신도 씻을거라면서 지금 변기 물 비워내고, 밸브 열어서 빗물탱크를 받고 있는 차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먼저 보여주겠다는 듯 김준은 반바지에 쪼리 차림으로 먼저 나갔고, 거실에는 은지 하나만 남았다.
“….”
은지는 조용히 겉옷을 벗고는 상반신을 휘감은 래쉬가드 안쪽을 살짝 당겼다.
새하얀 피부, 그 속에 살짝 보이는 검붉은 흉터 자국이 드러났을 때, 은지는 결심한 듯 일어나 김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 있는 비누와 타월을 집고서 천천히 옷을 벗었다.
***
“푸하~ 개운하다.”
“응~ 응~♥”
욕조 안의 더운물에 장미 향 바디워시를 풀어 푹 담그고 온 에밀리는 새 속옷에 목욕가운 차림으로 김준 옆에 걸터앉았다.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고, 은은한 비누향이 거실에 가득 쌓였다.
다른 아이들도 평소보다 다르게 몸을 푹 담가서 보송보송해진 얼굴로 행복해했다.
그녀들은 마치 고급 사우나를 다녀온 것처럼 행복해했고, 오늘 수십 리터를 쓴 물은 지금도 내리는 비로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비도 오는데, 특급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까 계속 비올 때 생각해서 만들었어.”
“와~ 대박!”
은지는 누구보다 먼저 목욕을 마치고서 조용히 요리를 해 왔다.
통조림 꽁치들을 튀기고, 1층에서 재배한 파, 양파, 고추, 호박 등에 골뱅이를 잘게 썰어 만든 파전, 그리고 묵은지와 다진 멧돼지 고기를 섞은 김치부침개까지 만들어 비오는날 최적화 음식을 만들어온 것이다.
비록 막걸리가 없는게 아쉬웠지만, 그거 대신 와인을 가져다가 밥그릇에 담아줬다.
“크 좋다!”
탄산기가 있는 화이트 와인을 그릇에 담아 한 모금 마시고는 은지가 만들어준 파전을 간장에 찍어 한 입 넣은 순간 김준은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음~ 좋다~”
비록 새벽에는 모두가 날카로워진 상태로 좀비와 생사를 가르는 전투를 벌였지만, 이후 비가 쏟아지면서 작업을 마치고 더운물에 쫙 씻은 다음 부침개 해서 먹는 지금의 회식은 아포칼립스에 굉장한 호사였다.
“크으~ 한 게임 할래?”
“오케이~ 패 돌려.”
한 곳에서는 마리랑 가야랑 인아가 화투를 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에밀리와 도경이 뿅 간 얼굴로 와인과 파전을 먹다가 은근슬쩍 젓가락으로 집어 김준의 입에다 대고 먹여줬다.
“자, 아~ 하세요.”
김준은 피식 웃으며 주는 대로 받아먹었고, 라나와 나니카 같은 동생들은 눈치를 보면서 다음 자리를 노리려고 은근슬쩍 언니들 옆에서 움찔거렸다.
그리고 은지는 거실에서 다 같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 요리를 준비했다.
“골뱅이 소면 만들건데 먹을 사람?”
“나, 나!”
그때 김준이 은지를 가리키고서 말했다.
“맵게!”
“네~”
은지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집주인의 주문을 접수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