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5 놈들이 몰려옵니다.
* * *
“아아아 악!”
“어우, 많이 아프죠? 조금만 참으세요.”
나이든 치과 의사는 탐침과 익스플로러, 핀셋의 수동으로 보충재 떨어진 치아 일대를 긁어냈다.
극극득득 소리가 그대로 나면서, 전동드릴만 있으면 금방 끝날 것을 일일이 손으로 하니 아픈건 똑같은데 시간만 걸린다.
“음, 일단 본을 떠야 하는데, 지금 그 재료가 없거든요? 그래서 밀가루로 해야겠어요.”
“으으, 에….”
도경은 입을 벌린 상태로 계속 치아 치료를 받으며 돌아가면 하루 세 번 꼼꼼히 양치했지만, 앞으로 그 시간을 더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
끼익
“웃차!”
한편 김준은 가야와 성정스님을 데리고 차 앞에서 카트에 쌀과 밀가루를 담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집안에 쌓아봤자 쥐만 꼬이죠.”
이미 쌀과 밀가루는 김준의 집에 넘쳐날 만큼 있어서 명국의 집이나 정토사 같은 곳에 물물 교환용으로 쓰기 충분했다.
카트에 담긴 쌀과 밀로 인해, 오늘의 식사로 죽을 끓이던 정토사는 바로 퍼낸 다음 새로 냄비로 밥을 했다.
“허허, 불자께서 또 시주를 해주셨군요.”
주지스님이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숙이자, 김준과 가야 역시 조용히 합장했다.
“저기….”
“네?”
“잠깐 같이 가시겠어요?”
하준 엄마가 김준과 가야에게 잠깐만 같이 와 달라고 하면서 그들을 데리고 갔다.
그 안에는 많이 자란 하준이가 방방 뛰고 있었고, 가야에게 다가올 때 그녀는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이고, 이 녀석 많이 컸네?”
가야가 아기가 달려드는 모습에 슬금슬금 피하자 자신이 안아서 데리고 있었다.
“요새 밥도 잘먹고 유치도 자라요.”
“이제 세 살이던가요?”
“아, 네.”
김준은 아기를 안고서 계속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가야는 그 모습에 미소는 지어도 자기가 안기는 싫은 듯이 그냥 바라봤다.
“저기 아가씨. 이거 어때요?”
“어머, 이게 뭐에요?”
방 안의 장롱에서 꺼낸 것들은 털실로 짠 스웨터와 양말, 장갑에 모자까지 있었다.
“우와, 이거 예쁘다.”
“그렇죠? 아가씨같이 젊은 사람들이 입기 좋고요.”
“이걸 다 직접 만드신거에요?”
“아, 네… 제가 원래 수제 아동복 가게를 했었거든요.”
하준 엄마는 자신이 직접 털실로 뜨개질을 한 물건들을 가야에게 보여주며 건네줬다.
집에서도 은지가 뜨개질을 전문적으로 해서, 옆에서 같이 만든 적은 있었지만 양말 한 벌 만드는데도 시간이 걸리던 뜨개질이었다.
“맘에 들면 전부 가져가세요.”
“네? 아니, 힘들게 만드셨을텐데….”
“쌀이랑 밀가루도 주셨는데, 이 정도는 드려야죠.”
“어머, 정말 감사합니다.”
김준은 그래도 절 안에서 물물교환 할 거리가 생긴다며 피식 웃었다.
덕분에 가야는 집에 가서 입을 옷들을 잔뜩 챙길수 있었다.
그 뒤로 김준은 밖으로 나왔고, 절 한 곳에서 도끼로 나무질을 하는 스님들이 보였다.
“흐읍!”
딱
정확하게 도끼를 내리쳐 장작을 쪼개는 성정.
그리고 그 옆에는 조용히 나무토박을 올리는 이가 있었다.
“명진스님. 영기스님은 아직 안 오십니까?”
따악
성정은 곧바로 나무를 쪼갠 뒤로 다른 스님에 대해 물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수확물을 캐신다고 합니다.”
“아직도 농사 지으세요?”
“하하, 날씨가 전혀 춥지 않으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물이 잘 자랍니다.”
“그렇군요.”
김준은 나무를 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그 옆에서 총기 수입을 했다.
내부를 분해하고, 그리스 칠을 하면서 강선 부분을 싹싹 닦아나갔고, 재조립해나갔다.
그 사이 도경이 치과 치료를 끝냈는지 부은 얼굴을 부여잡으면서 나왔다.
“오, 끝났어?”
“아으, 이 아파.”
도경은 김준 앞에서 입을 쩍 벌렸고, 충전재를 다 뜯어내고, 썩은 부분을 깎아낸 다음 임시 충전재를 붙여놓은 상태였다.
“이주일 뒤에 다시 오래요. 오빠가 준 반지랑 은으로 보충재 만든다고요.”
“금이빨 하게 생겼네.”
“어흐, 아파.”
그 뒤로 다음 차례는 가야였다.
그녀는 스케일링과 위쪽 어금니 살짝 썩은 것을 두고 조마조마한 모습이었고, 나이든 치과의사는 빙긋 웃으면서 입을 벌려보라고 했다.
“아”
“흐음, 살짝 썩었네요? 이 정도면 그냥 임시 충전재로 쓰면 되요.”
“에….”
“그 전에 스케일링부터 먼저 하죠.”
치과의사는 옆에 간호사와 같이 탐침을 들었다.
***
딱
“잘 하시는군요?”
“저도 나무 좀 했죠.”
김준은 도끼를 들고서 장작을 수월하게 패냈다.
과거 지금의 집이 보수공사하기 전에는 목탄 보일러를 가져다가 땠는데, 할아버지가 나무를 베어오시면 그걸 장작으로 패는건 김준의 몫이었었다.
군 시절에도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를 위해 미리 장작을 다 패놓고 갔었는데, 그것도 다 추억이었다.
김준은 치과 치료가 끝나는 대로 오늘의 업무는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왔다.
“스님!! 스님들!!!!”
“!?”
“아니, 이건…”
“영기스님 목소리가 아닙니까?”
명진과 성정 두 승려는 농작물을 캐러 갔던 영기가 바구니를 든 채 죽을 힘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인상이 찌푸러졌다.
김준 역시 반사적으로 엽총을 들고 무기들을 챙겼다.
“영기 스님! 무슨 일입니까?”
“그, 그 악귀들이 산을 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악귀라면…?!”
“그 녀석들입니다!”
“이런, 좀비가 나타났나보군요.”
김준은 엽총을 장전하고, 두 자루의 권총을 든 채 나설 준비를 했다.
“어느쪽입니까?”
“한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정문 쪽입니다!”
“그렇다면 소승들이 가지요!”
“영기스님은 큰 스님과 안의 보살님들을 대피시키십시오.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네, 넷!”
성정과 명진, 두 승려는 각각 길다란 괭이와 쇠스랑을 들었다.
불자가 살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좀비를 상대로 악귀라고 정한 그들의 최소한의 방어책이었다.
“목책으로 가십시다!”
“저도 따라가지요.”
“그러실 필요 없….”
철컥
김준은 대답 대신 엽총 펌프를 당기면서 미소를 지었다.
“…같이 가시지요.”
그들은 좀비를 막기 위해 만든 목책으로 향했다.
다행히 차는 목책 근처에 있었고, 김준이 먼저 차를 열고서 안에서 도구를 꺼냈다.
“스님들! 이거 쓰십시요!”
“아닙니다.”
“쓰시라니까!”
김준은 원래 가야랑 도경이 써야 하는 하이바 두 개를 두 스님에게 던져줬다.
승복에 오토바이 헬멧, 거기에 괭이와 쇠스랑을 든 스님들의 모습은 우스꽝 스럽지만 나름대로 살기 위한 무장이었다.
“정면에서 나타난다라….”
김준이 대기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좀비들의 모습이 보였다.
“캬아아아아아!!!”
“온다!”
김준은 피거품을 물면서 빠른 속도로 산을 타고 올라오는 뛰는 좀비를 발견했다.
타앙
엽총 슬러그탄의 발사.
달려오던 좀비는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가면서 풀썩 쓰러졌고, 두 번째 탄을 장전했을 때, 숲 속에서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계속됐다.
[으웨아으!!! 캬아아아아악!!!]
“불자님! 왼쪽!”
“!?”
김준이 총구를 돌린 순간,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이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고, 재수없게도 전부 뛰는 놈들이었다.
철컥 타앙! 철컥 탕!
세 발을 모두 발사한 뒤로, 좀비 두 마리가 머리를 맞아 쓰러졌지만, 아직도 뒤따라오는 좀비들이 있었다.
장전할 시간도 없이 바로 무기를 교체했고, 허릿춤에 있는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탕 탕
원샷 원킬.
기계에 가까운 사격 솜씨로 엽총에 이어 리볼버로도 좀비의 머리만 깔끔하게 박살냈다.
“스님! 좀 더 가서 잡아야겠습니다.”
“불자님! 위험합니다!”
하지만 김준은 이제껏 상대했던 것처럼 권총을 제대로 파지한채 다가가 다가오는 좀비들을 쏴 죽였다.
여섯 발을 전부 쐈을 때, 널브러진 좀비들은 뇌를 관통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생각같아서는 불이라도 놓아서 태우고 싶었지만, 여긴 산이다.
“후우”
이쯤되면 손해보는 교환이라 생각하고, 자신도 치과 치료나 추가로 받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또 다른 좀비의 기습이 있었다.
“우우욱!!”
[캬아아아아!]
“이, 이 녀석! 떨어져라!”
“!?”
김준이 고개를 돌린 순간 좀비 하나가 달려와 스님들을 덮쳤다.
“젠장!”
철컥
“!”
바로 쏴서 잡으려고 했지만, 총알이 떨어졌다.
황급히 김준이 허리춤에 다른 권총을 꺼내 쏜 순간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탕!
콰드득
김준은 머리를 날려버린 다음 그대로 걷어차 좀비를 떨어트려놨다.
“스님, 성정스님!”
“….”
장심이 좀비의 피에 젖었고, 습격으로 비틀거리는 스님의 모습.
김준은 그 상황을 살펴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
“크으으….”
“하이바 안 썼으면 어쩔 뻔?”
김준이 건네준 오토바이 헬멧 위로 좀비가 깨물려고 했던 이빨자국 흔적이 보였고, 만약 저걸 안 썼다면 오늘 스님 한 분 다비식 했을거다.
김준은 차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고, 그것으로 성정의 몸에 뿌려 피를 씻어냈다.
“아~ 스님은 술 냄새도 맡으면 안되나?”
“…아닙니다.”
하마터면 뛰는 좀비들의 기습으로 인해 정토사가 잡아먹힐뻔 했지만, 기적적으로 김준의 개입에 의해 막아낼 수 있었다.
***
“스님 괜찮으시죠?”
“네… 아직은 괜찮습니다.”
좀비 습격을 막아낸 뒤로 절에서 만든 목책으로 철저하게 막아낸 김준은 성정이 1평 크기의 수행방에 들어간 뒤로 바깥에서 문을 잠그면서 경계를 섰다.
헬멧을 써서 좀비에게 물리지는 않았으나 피를 뒤집어 썼으니 혹시라도 감염을 방지 하기 위해 절간의 수행방에 들어가 하룻밤동안 참선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감염된다면 그 끝은 김준이 처리해 주기로 했다.
다른 스님들도, 보살들도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주지 스님 역시도 ‘부처님의 뜻일뿐…’ 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성정과 다른 자리에서 참선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절 안의 승려들 모두가 성정을 위한 기도를 하며 같이 밤을 샐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몸 아프다 싶으면 이야기 해요.”
“시주께 또 폐를 끼쳤습니다.”
스님이 감염되면 바로 죽여달라는 상황을 부탁한다.
하지만 김준은 이제까지의 상황을 보며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아, 치과선생님?”
치과의사가 김준에게 다가와 차와 함께 책을 내밀었다.
“아가씨 둘은 치과 치료 끝났어요. 2주 정도 있다가 본을 뜨면 그때 새로 끼워드리죠.”
“네, 한번 더 와야겠네요. 근데 이 책은?”
“제가 딸아이와 같이 이 녀석들에 대해 작성한 겁니다.”
“그래요?”
치과의사와 간호사가 같이 다니면서 봐 왔던 좀비들에 대한 연구라고 하니 흥미가 생긴 김준이었다.
“원한다면 가져가시지요.”
“감사합니다. 오늘 밤 이걸 봐야겠군요.”
치과의사는 조용히 인사하며 돌아갔고, 김준은 이번에는 절에서 건네주는 차를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는 차를 마시면서 HD등으로 책을 비추고 달빛 아래 독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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