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114 오랜만에 찾아가는 곳.
* * *
“에밀리, 일어나. 아침이야.”
“으음~ 응~”
김준은 침대에서 쿨쿨 자고있는 에밀리를 흔들어 깨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라 흔들어 깨울 때마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였다.
“일어나~”
찰싹! 찰싹!
“으응!!”
전혀 눈을 뜨지 않고 몸을 훽 돌리자 김준은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려줬고, 몸을 웅크린 에밀리는 강제로 깨어나 눈을 비벼댔다.
“이제 상관도 없으면서….”
“그래도 일어나서 먼저 씻어.”
김준은 비틀거리는 에밀리를 데리고 가서 샤워기에 물을 틀고 머리부터 부어줬다.
“쉣 차가워!”
“가만히 있어!”
마치 아이를 다루듯이 머리를 붙잡고서 물을 뿌렸고, 샴푸를 짜내서 금발의 머리를 감겨줬다.
찬물에 잠이 슬슬 깨는 에밀리는 투덜거리면서도 김준이 자신을 씻겨주는 게 싫지마는 아닌지 얌전히 섰다.
이후 세면대에 비누를 들어 에밀리의 얼굴부터 목, 등, 풍만한 가슴에 하복부까지 내려가 비벼주자 그녀는 거품을 일으키면서 김준의 몸과도 부비댔다.
“같이 씻어~”
“그래. 나도 씻어야지.”
두 남녀는 욕실 안에서 서로의 몸을 샤워볼 삼아서 부비대고, 그러다보니까 또 아랫도리에 피가 돌았다.
“음~”
“….”
에밀리는 이번엔 자신이 샤워기를 들더니 김준의 몸을 구석구석 씻겨낸다음 조용히 꿇어앉아 발기한 자지 앞에서 입을 벌렸다.
아침부터 또 사랑의 자리가 생겼고, 마지막에 에밀리가 입을 쩍 벌려 입안에 가득한 정액이 긴 혀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씻고 나올수 있었다.
***
오늘의 아침 식사는 인아와 은지가 손좀 쓰고, 가야나 나니카 같은 애들도 도와서 푸짐한 한 상이 펼쳐졌다.
“하~ 진짜 엄청난 발전이야.”
“뭐가?”
마리가 식탁을 보고 감탄하면서 한 말이었다.
“저희 처음 왔을때요. 전부다 굶은지 오래돼서 잔뜩 물에 풀은 수프, 물이 한강인 된장국, 김가루 넣은 죽 먹었을때요.”
“아~ 그땐 그것만 먹어도 가슴이 진정됐어.”
생각해보면 진짜 처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했다.
쌀이랑 소주야 잔뜩 있다고 해도 당장에 밥을 해도 반찬이라고는 김치냉장고에 있는 김치가 전부.
그나마도 고기랑 야채 상하기 전에 다 처리해야 된다고 햄을 만들고 고기를 만들어서 버텼는데, 인원이 9명이다 보니 아껴아껴 먹는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트러블도 많았다.
“햄 한 조각으로 싸운 둘도 있잖아?”
가야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에밀 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햄도 못 먹게 한 발리볼 걸 너 말이야.”
“아, 미친! 그땐 진짜 냉장고에서 막 꺼내먹으면 거덜나는 상황이었거든?”
“응~ 아니었어.”
그때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김준은 슬그머니 가야를 바라봤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조용히 식사에 몰두했다.
지금 생각하면 먹을게 부족하니 위기감을 느껴서 콘돔도 없는데, 입으로 해주겠다고 나선 맏언니였다.
그 이후로 인아가 종묘상 털이와 농사 시작, 이후 버섯을 재배하고, 한 달 안에 양상추, 깻잎, 시금치, 총각무 등이 자라서 풀때기만이지만 그럴듯한 밥상이 만들어졌고, 이후 편의점 루팅과 물물교환, 그리고 사냥을 통해서 고기반찬도 넉넉해졌다.
식사 이후로 그릇을 치우며 설거지에 들어갈 때, 관정을 통해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보고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치를 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의 작업은 일단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집안일 제외하고 다 나오게 했다.
***
“끙~ 끙~ 어우, 무거워!”
창고에서 낑낑거리며 말통을 하나씩 들고오는 아이들.
김준은 그것들을 앞에 놓으라고 한다음 이제 본격적으로 기름창고를 만들 준비를 했다.
위치는 지난번 관정 파이프 옆 빈 공간으로 이 자리는 원래 도시가스 들어오기 전에 LPG 통을 설치했던 곳이었다.
“자, 봐바! 드럼통에다가 깔대기 달고서 여기다 담는거야.”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놓은 말통의 기름들을 신나, 휘발유, 경유, 등유에 따라 차근차근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개를 단단하게 막은 다음 먼저 수동 펌프를 하나 가져와 휘발유 통에 꽂았다.
“이게 말이야. 드럼통에 딱 달라붙에 만든거거든? 이렇게 꽂은다음에 여기 보면 손잡이 너트 있지? 이걸 꽉 잠가놔.”
김준은 직접 해보라면서 내밀었고, 가야랑 에밀리가 자신만만하게 펌프를 설치하고 거기다가 잠금까지 완벽하게 했다.
그리고 한 번 핸들을 돌려보라는 말에 에밀리가 그것을 잡고 흔들자 안에서 빨려나온 휘발유가 준비된 그릇에 담겼다.
“오~ 이렇게구나?”
“다 했으면, 여기 잠금캡으로 꼭 잠가. 만약에 불씨 쪼그만거라도 있으면 진짜….”
“퍼엉~!!”
“그럼 다 죽는 거야. 언제든지 대비해야돼.”
김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투척용 소화기를 근처 벽에 설치했다.
이건 지난번 고물상에서 가져온 것인데, 주로 지하철 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갑작스런 화재가 생길 때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김준은 드럼통에 각각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을 표시하고 혹시라도 혼유라는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조심성을 강조했다.
“다른건 몰라도 기름은 진짜 특히 조심해야 한다.”
“네.”
“화재교육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건 안 되니 일단 여기 창고 공사부터 할 거야.”
나무에 철망에 슬레이트 철판까지 있을건 다 있으니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기름들을 꺼내 외부창고를 만드는 것으로 기존에 기름을 담아놨던 1층 창고의 방 한 곳을 또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으니 향후 사용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김준은 오늘의 작업을 다 마치고서 당분간 기름 창고를 만드는 것에 대해 몰두했다.
다른 아이들도 거기에 맞춰서 보조를 해 주면서 못질도 같이 하고, 사포질도 하면서 이제는 손발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그럴듯한 기름 창고를 만들어낸 김준은 그 뒤로 다시 한 번 루팅을 준비했다.
***
“아아, 흐아….”
얼굴을 부여잡고 아파서 울고 있는 도경을 보고 마리가 진단을 했지만, 상태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치과 가서 치료해야된다고.”
“아으, 시려서 죽겠어요.”
그동안 잘 지내다가 어금니 통증으로 밥을 전혀 씹질 못하는 도경.
어린 시절 크게 썩어서 긁어내고 충전재를 채운 어금니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서 물도 시리다고 얼굴을 부여잡았다.
“자, 일단 진통제라도 먹고 빨리 치료 알아보자.”
마리는 상비약 중에 두통/치통/생리통에 뛰어난 그 약을 처방해줬고, 바로 한 입 먹은다음 삼키면서 통증을 참아내는 도경이었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을 불러놓고서 루팅 준비를 했다.
“원래 총포상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정토사에 먼저 가야겠어.”
“거기… 새해 되고 가 본적 없죠?”
“이 참에 가봐야지. 다들 잘 계셔야 할텐데 말이야.”
정토사에는 스스로 우물을 길어내고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는 스님들, 그리고 김준이 구한 아이엄마와 간호사, 치과의사가 있는 곳이다.
“근데 치과의사라고 해도 장비 없이 그게 안 될텐데.”
마리가 한숨을 내쉬자, 거기서 치료를 받았던 나니카가 손을 들었다.
“저기… 제가 거기서 스케일링 해봤는데, 그냥 긁어냈어요.”
“맞아! 쪼끄만 스피어 그거 가지고 득득 긁어내는데 아프긴 해도 치료는 잘해.”
에밀리도 손가락에 입을 내서 새하얀 이와 한 번 파헤친 뒤로 새살이 돋은 잇몸을 보여줬다.
김준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번에 금은방에서 챙긴 금붙이랑 은 챙기고, 그냥 금으로 때워달라고 하면 해 주지 않을까?”
“그거 금으로 되는게 아니라 은이랑 주석으로 섞는거에요. 게다가 본 뜨고서 맞추려면 며칠 걸리는데….”
마리가 현실적으로 치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김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쿨하게 말했다.
“까짓거 한 번 더 가지 뭐.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야?”
어차피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면서 김준은 지난번과 같은 파트너로 정한 도경은 강제 참전, 그리고 라나에게 물었다.
“나라 너는 치아 괜찮아?”
“전 충치 없어요. 스케일링도 작년에 받았고.”
그때는 좀비도 뭐도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소속사 전담 치과로 관리를 해서 가지런한 흰 이를 자랑했다.
“흐음, 그러면 이번엔 나라가 양보하고, 치아 관리 받을 애 한 번 정하자.”
그러자 나니카와 에밀리는 이미 한 번 받았으니 패스, 마리 역시도 자기 치아는 아직 문제 없다면서 패스, 은지나 인아, 가야 등이 서로 보다가 가야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아, 그러면… 제가 가도 될까요?”
가야는 자신도 스케일링과 안쪽 어금니가 약간씩 시리다면서 입 안을 보였다.
김준이 보니 흰 어금니에 일자로 까만 줄이 보이는게 저것도 긁어내야 할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가야랑 도경이가 치과 치료받을 겸 같이 정토사로 가고, 거기서 물물 교환하게 필요하니 일단 쌀 좀 챙기자.”
“네, 그럼 오늘 밤에 다 실어 놓을까요.”
“어, 그러자.”
바로 진행하기로 한 김준의 응답에 가야와 은지는 바로 일어나서 다른 애들 데리고 차 안을 채울 준비를 했다.
보통 절에 필요할 만한 물건들로 가루 우유와 도정 안 된 쌀, 그리고 마트에서 너무 가져와서 벌레 꼬일 위기의 밀가루와 녹말가루 등을 차곡차곡 담았다.
그렇게 다음의 루팅은 치과 치료와 쌀과 물자를 교환하는 일이었다.
***
“으으으”
“도경이는 좀 쉬고 있어. 가야가 뒤에서 경계좀 서고.”
“네, 오빠. 이쪽은 제가 맡을 게요.”
조수석에 앉혔지만, 일단은 환자니 쉬고 있으라고 말한 김준.
그리고 뒤에서 가야에게 석궁을 안겨준 상태에서 경계를 서게 했다.
정토사 까지 가는 길은 가는 길이 복잡하지만, 이제껏 다닌 적이 많아서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바깥에 좀비가 보이지 않는 길.
덕분에 차가 정토사까지 올라갔을 때, 동네 등산 마실을 나오듯이 자연스럽게 들어온 김준 일행이었다.
빵 빵
클락션 두 번 울리고 천천히 총을 들고 내렸을 때, 김준은 안에 있는 정토사 건물로 둘을 데리고 들어갔다.
“와~ 여기구나?”
가야는 처음으로 와본 산 속의 도도히 서 있는 절탑을 보고 신기해했고, 도경은 오랜만에 오는 곳에 안에 앓던 이를 치료할수 있대서 안도했다.
“허어~ 반가운 손님이 오셨소.”
털모자에 목도리를 두툼하게 찬 승복 차림의 주지 스님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줬고, 김준 일행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으으, 안녕하세요. 스님.”
“허어, 보살님께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십니다?”
“이가 깨졌다는데, 어떻게 치료가 될까요?”
“흐음, 그 보살님이 지금 기도 중이신데 잠시 기다리시지요.”
도경은 일단 기다리기 위해 스님들을 따라갔고, 김준은 절을 보면서 마음에 안정이 되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가야를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도 그 술집 아주머니 있는 곳 보다는 안전해보이네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때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곳에서 손과 옷에 숯검정이 잔뜩 묻은 30대 여성이 나왔다가 김준과 눈이 마주쳤다.
“…아?!”
“어머!”
그녀는 바로 옷에 손을 닦아내고는 황급히 두손을 모아 인사했다.
“그, 안녕… 하세요?”
“하준 어머니 맞으시죠?”
“네, 네!”
그동안 많이 나아진 모습으로 절 안에서 식사 일을 하고 있는 하준 엄마.
그리고 다른 방에서 아장거리며 걸어다니는 아이가 보였다.
“쟤도 많이 컸네요.”
“네, 그때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허어~ 불자께서 또 와주셨군요?”
식사를 같이 하던 성정스님이 와서 합장을 했고, 김준은 그분에게도 인사하면서 내부를 슬쩍 살펴봤다.
시대가 어느때인데 아직 아궁이를 때고 있었고, 솥 안에 뭐가 익는지 몰랐다.
“오늘의 공양은 뭡니까?”
“저, 그것이….”
“저기… 쌀이 얼마 없어 나물과 죽을 끓이고 있습니다.”
하준엄마의 말에 김준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가야를 봤다.
“와~ 때맞춰 왔네?”
“네?”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손으로 차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같이 가실래요? 시주할 쌀하고 밀이 있는데.”
물물교환이라기 보다는 절간에 바치는 공양물 기증식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도경이 앓던 이를 치료받는 동안 김준과 가야는 절 안에 있는 스님과 보살들과 같이 캠핑카 안의 물자를 날랐다.
아포칼립스 속에 은혜가 넘치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 * *